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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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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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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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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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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큰오빠!“


비서들을 돌려보내고 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류아라가 다가왔다.


“공자학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뜬금없는 물음에 류지호가 되물었다.


“공자학원?”

“혹시나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 같은 게 아닐까 해서.... 다들 중국에 잘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큰오빠만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 것 같아서.”

“저기 좀 앉자.”


류지호가 여동생을 마당 한편의 벤치로 이끌었다.

남매가 자리를 잡자, 가사도우미가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커피...”

“나도 같은 걸로 부탁해요.”


가사도우미가 주택 안으로 사라졌다.


“동북공정이라.....”


일명 동북공정 즉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다.

한국인의 뿌리에 해당하는 동북지역 3개 성에서의 한민족 역사 형성과정을 부인하는 역사인식을 노골화하는 프로젝트다.

이에 한국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켜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처하고 있다.


“공자학원이 벌써 생겼어?”

“지난달에 강남에 공자 아카데미라는 곳이 문을 열었거든. 세계 최초라고 홍보하더라고.”


본래 역사에도 이 시기에 세워졌는지 류지호는 알지 못했다.


‘90년대 세워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공자학원은 중국이 중국어와 자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든 교육 기관이자 문화 보급 기관이다.

중국 교육부 지원으로 2004년 처음 한국 서울 강남에 1호점이 설립됐다.

내년부터는 열흘에 1개꼴로 전 세계로 확산된다.

이전 삶에서는 2020년 말 기준 전 세계 162개국 총 541개 공자학원이 운영되었다.

공자학원은 해외 대학과 연계하는데, 설립할 때 대학 측에 약 10억 원을 지원해주고 매년 운영비로 1억~2억 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중국 탐방단, 장학금, 교수 연구비도 지원하는 등 설치하는 대학을 위한 혜택이 풍부한 편이다.

중국만 공자학원 같은 기관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영국 브리티시 카운슬, 독일 괴테 인스티투트, 프랑스 알리앙스 프랑세즈도 비슷한 기관이다.

한국정부 역시 한글을 가르치고 우리 문화를 알리는 세종학당을 곧 설립한다.


“한국정부는 문화원 외에 해외어학당 설립 계획은 없대?”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본래 역사에서는 2007년 세종학당이 설립되어 76개국 213곳에 보급되었다.


“근데 오빠... 중국 공산당은 공자를 혐오하는 거 아니었어?”


킥킥.


류지호가 웃었다.

가사도우미가 커피 두 잔을 남매에게 서빙하고 돌아갔다.


호로록.


류지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공자학은 명성이 높으나 실제로는 쭉정이나 겨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영웅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최악의 학살자 중에 한 명이 한 말이다.


“문화대혁명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바로 각 방면에서 공자의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 주석이 했던 말이지.”


1966~1976년까지 10년 동안 중공에서 일어난 대규모 파괴 및 친위 쿠데타인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에서 주석이 한 말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공자와 공자 사상을 혐오했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후로 공자묘는 철저히 파헤쳐지고 유린당했다.

그 시기 중공에서는 분서갱유 못지않은 문명파괴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졌었다.


“아이러니한 게 뭔 줄 알아?”

“뭔데?”

“전 세계적으로 공자학과 유교에 대해 가장 깊고 넓은 연구가 진행되고 성과가 있는 나라가 공자의 나라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란 사실이야.”

“아~ 그래서 중국의 학자들이 우리 학교 교수님들과 교류를 많이 하고 있구나. 그 교수님들이 다 유교의 권위자분들이셨어.”


한국의 국문학자들도 필수적으로 유교를 일정수준 공부해야 한다.

조선의 문학을 이해하려면 유교를 알아야 하니까.

그 외에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유교를 공부해야 하고.

역사학자 역시 기본적으로 유교에 대해 공부한다.

공자는 중국인이고 그의 사상도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정작 현대에 와서 꽃을 피운 나라는 한국이다.

유교의 본산도 아닌 그 옆 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유교학자가 수두룩한 것이 아이러니다.

한국인은 중학교부터 공자가 중국인이라고 명확하게 배운다.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이는 극소수의 유사사학 신봉자뿐이다.


“현 공산주의 중국 정권은 공자를 죽이면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어. 그런 주제에 공자의 탈을 쓰고 사회주의 선전 전초기지를 세우다니. 웃기는 일이지만 웃을 수만은 없네.”


공자학원은 쉽게 말해 독일문화원이나 영국문화원과 같은 중국형 문화원이다.

어학을 가르치는 공자학당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원과 달리 공자학원은 교육방침, 강사, 자금 및 조직구조까지 중국 교육부 직속 기관인 국가한반(國家漢班)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즉 공산당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문화원이란 소리다.


“자국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많은 나라들이 외교부 산하에 문화원을 두고 선전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공자학당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우호적으로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 찬양을 은연중에 심어주고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것이 문제지.”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외국에 전파한다면서 하는 짓이 ‘공산당의 은혜가 동해보다 깊다’ 같은 가사가 들어있는 노래가 들어간 교재로 수업을 하고, 한국전쟁은 미국이 자국의 마을을 공격했기에 제국주의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 참전한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버젓이 들어간 비디오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었다.

결국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북미와 유럽 대학에서 공자학원을 두고 여러 갈등이 빚어지게 되고, 미중 갈등이 첨예하기 전부터 80여 곳의 공자학원이 폐쇄되었다.

급기야 유럽 최초로 공자학원을 설립한 스웨덴마저 공자학원과 모든 관계를 끊었다.


“중국 공산당 프로파간다 전초기지가 되면 큰일인 거 아니야? 호서대, 안동대, 인천대가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고 하던데.”


류아라의 모교인 연희대에도 공자학원이 들어선다.

2020년 기준 22개 대학교에 설립되는 등 전국에 총 23곳의 공자학원이 설치되었다.

재정 곤란을 겪고 있는 세계의 많은 대학은 ‘인심 좋은’ 후원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 당국은 이런 대학들을 타깃으로 삼아 대학 내 공자학원을 주둔시키고 대학의 스폰서로 나서며 학술 활동에 관여한다.


“네 모교에서 있었던 일 벌써 잊었어?”

“전범기업 후원 받은 교수들?”

“우리나라 대학의 상당수가 전범기업인이 세운 재단의 돈을 받고, 중국 공산당 선전조직의 후원을 받으며 미국기업으로부터 용역을 받고 있지. 아, 불곰사업 이후로 러시아와도 방산과 항공우주산업에서 교류를 하고 있구나. SVR이 활동하지 말란 법도 없지.”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대환장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대학은 정치와 이념에서 자유롭게 학문을 갈고 닦는 터전이 되어야 하는데, 정치와 이념 그리고 돈에 환장한 이익집단으로 변질되고 만다.

서구권 국가에서는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통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체제 선전을 일삼는다며 비판할 때 한국의 대학들은 이에 대해 부인했다.

이름만 공자학원이다.

공자의 이념과 사상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공자의 이름을 도용해 학생들을 무장 해제하게 만든 후 중국 공산당 체제의 정당성과 온갖 역사왜곡, 막무가내 중화제일주의를 시나브로 주입할 뿐.

서구권에서는 그에 대해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경계를 한다.

아프리카·남미 등 개도국은 세계 경제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과 문화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공자학원을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대로 가면 한국의 지방대학을 먹여 살리는 것이 중국 유학생이 된다.

공자학원을 섣불리 건드릴 경우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중국 유학생의 유치가 어려워지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 카르텔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사학재단은 공자학원 경계심이나 퇴출에 전혀 관심이 없다.

겉으로는 반중정서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공자학원 네트워크를 유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너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진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힘을 쓰지 못하는 나라가 한국이야. 전 세계 주요 국가마다 차이나타운이 여러 개 있는데 한국에는 중국인들이 조성한 차이나타운이 없어. 제아무리 친일파 친중파가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발악을 해도 한민족에 새겨진 그들 나라에 대한 반감 때문에 호락호락하게 그들 의도대로 되진 않을 거야.”

“그래도....”

“미국이 풀브라이트 장학생을 통해 제3세계에 친미인사들을 키워내는 것은 되고 중국이 공자학당을 통해 친중세력을 키워내려는 것은 안 돼? 일본도 국가적으로 전범자와 힘을 합쳐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돈을 뿌리며 각종 사업을 벌이는데 그 문제는? 우리도 문화원을 통해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그를 통해 친한파 네트워크를 쌓고 있고.”

“그럼 공자학원도 괜찮을까?”

“안 괜찮지.”

“......?”

“보편적인 문화원이나 어학당에 머물면 교류차원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지. 문제는 그들이 사용하는 교재가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못지않게 문제투성이일거라는 데 있지.”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 문화원들은 교재나 홍보물 내용에 있어서 해당 국가의 정서를 고려해 꼼꼼하게 챙긴다.

중국 공자학원은 그런 게 없다.

중국 측이 만든 중국어 교재는 정교한 뉘앙스로 조작된 선전 요소로 돼 있어 외국인의 시각으로는 걸러낼 수 없다.

그 교재로 공부했다고 해서 중국의 체제를 선망하고 추종할 리는 없겠지만, 굳이 중국의 선동에 놀아날 필요는 없다.


“반중 선동하는 전문시위꾼 단체 말고,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학술 중심의 보수단체를 선정해서 지원해 봐. 신흥우파물 한 톨도 안 묻은 사람들로.”

“일본 역사왜곡과 별개로? 투트랙으로 지원해?”

“실무는 네가 알아서 해야지. 오빠가 다 떠먹여주리?”


반중정서는 시민사회에서는 용인 될 수 있다.

그 또한 표현의 자유일 테니까.

정부 역시 일정 부분 반중 스탠스를 취할 순 있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으니까.

외교적으로 반중과 친중을 적절하게 오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혐중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서 최우선 원칙은 자국의 이익이다.

때론 웃는 얼굴 뒤로 비수를 숨기고 있을 필요도 있다.


✻ ✻ ✻


2005년이 밝았다.

한국에 머물고 있던 류지호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린 경제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대통령은 직설적 화법으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칠 것임을 내비쳤다.


[다음 정권을 운영하는 사람은 선진국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중진국과 선진국 톨게이트에서 한국호 자동차 키를 넘겨주겠습니다.]


올해 경제정책 방향과 재정 조기 집행 및 종합투자계획을 간략하게 밝히기도 했다.


[올해는 중소기업이 빛 좀 보는 해로 목표를 잡고 있지요. 중소기업이 장기 마라톤 레이스에서 대기업과 나란히 함께 뛸 수 있도록 체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구상해 왔고, 올해부터 바로 실천에 들어갑니다. 1~2년 만에 효과가 나타날지 장담은 못하겠지만 어떻든 효과가 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자신감을 피력했다.


[한국 경제가 몸이 건강하니까 다시 회복될 겁니다. 경제는 살아날 겁니다.]


류지호가 경제부처 장관에게 두툼한 보고서를 한 권 전달했다.

GARAM Invest에서 발간한 올해 세계 경제전망과 미국발 부동산 거품 쇼크 경고가 담긴 보고서다.

대한상의 회장이 류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나도 한 부만 주게.”

“주요 기관의 보고서는 다 받아보지 않으셨어요?”

“자네 투자회사가 낸 보고서는 없어.”

“오늘 내로 비서에게 보내놓겠습니다.”

“나는 말이야. 듣기 좋은 말로 채워진 보고서보다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서가 좋더라고.”

“....?”

“다들 위험을 두려워하는데, 사실 기회이기도 하잖은가?”

“월가에서 욕 많이 먹고 있어요. 공연히 불안감을 확산시킨다고. 우리가 좋자고 경고하는 것이 아닌데....”

“미국 경제가 조금만 흔들려도 우리 같이 무역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다리가 후들후들 하지.”


대한상의 회장이 살갑게 구는 이유가 있다.

그는 건설회사의 지주회사격인 두진중공업 회장이기도 했는데, 상암에 세워지고 있는 가온타운의 공사를 수주한 바 있다.

17층 높이의 WaW 엔터테인먼트 본사 건설공사다.

참고로 상암디지털미디어 시티에는 총 4동의 건물이 타운을 형성할 계획이다.

처음 상암지구에 토지를 불하받았을 때만 해도 고도제한으로 82m 높이에 최대 17층까지밖에 짓지 못했다.

작년에 133층 초고층 랜드마크 계획이 입안되면서 130m까지 고도제한이 풀렸다.

이에 상암의 나머지 건물 중에 한 곳을 높아진 고도제한에 맞춰 건설하기 위해 공개입찰을 준비 중이다.

그뿐이 아니다.

부산 센텀시티 복합쇼핑문화타운의 백화점이 올 봄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어서 호텔, 도심형 테마파크, 첨단산업 오피스 빌딩 등, 입찰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게다가 국회 첫 회기에서 새만금간척사업 특별법이 개정되면, 수주감이 넘쳐난다.

두진그룹 입장에서 최소 20조 원 이상의 개발사업으로 점쳐지는 새만금프로젝트에 한자리 낄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전경련에는 가입 안 하나?”

“어른들의 친목모임에 끼기가 부담스러워서요.”

“나이가 대순가? 기업 규모가 위상을 말해주는 게지.”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화내실 것 같아서요.”

“왜? 꼰대들 모임이라 싫어?”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있잖아요. 대한상의라는 대표 단체가 있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온이 국내보다 해외 사업에 치중하는 편이라 해외동포 조직과 연계가 잘 되어 있는 대한상의에 좀 더 기대하고 있는 바가 있고, 뭐 그렇습니다.”

“전경련이란 게.... 그렇지?”


류지호는 불편한 대화를 피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최근에는 전시회를 안 열고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대한상의 회장은 사진에 조예가 깊다.

프로급의 사진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 개인 전시회도 개최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다 한 때지. 김준우 작가가 자네 죽마고우라지?”

“예.”

“그 친구 사진도 한 점 가지고 싶은데.”

“나중에 전시회에 오시면 제가 주선을 해볼게요. 어쩌면 친구가 선물을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내 신세 좀 지겠네.”


이르면 올해 두진그룹에서 소위 형제의 난이 벌어질 터.

류지호가 굳이 오지랖을 떨 이유는 없다.


“오랜만에 뵙네요.”


류지호는 신년회에 참석한 주요 회장들과 돌아가며 대화를 나눴다.

호인인척 하는, 신경질적인, 겸손한 척 하는, 시종일관 차분한 등.

저마다 성격이 다 달랐다.

공통점은 어린(?) 류지호를 무시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

처음 경제인 모임에 참석했던 때와 분명 달라진 대접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류지호는 코엑스 행사장을 빠져나와 차량에 올라탔다.

G-Tower로 향하며 생각했다.

한국의 진보정부고 보수정부고 간에 5년 내내 특권과, 유착과, 기득권과... 싸움으로 임기를 채운다.

보수정부와 기득권은 한 몸이라서 무조건 한 편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워낙 다양한 카르텔이 오만 군데에 다 걸쳐 있기 때문에 안 걸리는 데가 없다.

진보는 기득권이 없을까.

문민정부 이래도 시민사회 기득권도 있고, 노동조합의 기득권도 있고, 서민의 기득권도 있다.

정권은 임기 내내 어떤 경우에는 전쟁처럼, 어떤 경우에는 싸움처럼, 또 어떤 경우에는 실험처럼 특권과 반칙과 유착과 기득권과 갈등 속에서 진이 빠진다.

가장 골칫거리는 언론과의 갈등이다.

진보언론이 진보정권에 우호적이고, 보수언론이 보수정권에 대체로 우호적인 것은 맞다.

그런데 진영논리와 관계없이 서로 등을 돌리는 순간이 온다.

그때는 전쟁이다.

전쟁과 실험의 차이는 뭘까.


‘실험에는 룰이 있고 전쟁에는 룰이 없다는 것이지.’


그래서 룰 없이 언론과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다보면 최악의 경우 정권이 지기도 한다.

언제나 승리는 언론이다.

그것이 시민의 승리라고 포장된다.


‘결국 기득권이 이긴 것을.....’


어느 덧 참여정부도 중반으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주주의 대한 국민의 주문이 사라졌다.

민주주의 그만하면 됐단다.

경제가 엉망이니까 경제 꼭 살려야 된다고 한다.

신용카드 대란, 자영업자 신용불량 대량 양산, 일자리 감소 등.

서민경제가 힘겨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복지정책은 어쩌고, 교육은, 역사 바로 세우기, 사법개혁, 정치선진화, 북핵과 관련된 외교문제, 주변국들의 역사왜곡 사안, 언론과 사학 개혁 등은 어쩌란 말일까.

그런 것들을 다 내버려두고 오로지 경제만 매달리면 되는 것일까.

사실 민주주의는 구호일 뿐일지 모른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고.

그리니 국민들의 요구가 일견 당연하다.

이 시기에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유의미하게 토대를 닦아놓아야 할 텐데.

100년을 지탱할 대한민국의 안정된 국가 시스템을 위해서라도.

그럼에도 국민 대다수가 이제 그만 됐단다.

IMF처럼 국가부도 위기 상황도 아니다.

참여정부 들어 경제지표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

연일 경제가 망했다고 난리다.

언론은 또 왜 그리 정부에 바라는 것이 많은지.

경제 쪽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뭘 또 그리도 훈수를 많이 두는지.

신년인사회에도 많은 경제 분야 학자들이 참석했다.


“7% 성장률 꼭 달성하고, 민생문제 금방 해결해 주고, 중소기업 활성화 시켜주고, 가계부채 줄여주고, 일자리 금방 만들어 주고, 임금도 팍팍 올려주게 하고, 각종 경제 분야 규제 혁신해 주고, 국민 소득 2만 달러 달성해 주고.... ”


류지호가 보기에 차라리 기적을 이뤄달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해 보일 정도다.

지나친 요구는 정권으로 하여금 무리하게 만든다.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어떤 정권이든 정부가 무리하지 않게, 쫓기지 않게, 언론과 국민들이 그리고 경제인들과 지식인들이 좀 차분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관리해 갈 필요가 있는 법이거늘...’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목소리만 크다고 다가 아닌데.

다들 목소리만 크다.

GARAM Invest에서 낸 보고서에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국가 부동산 항목이 있다.

가온 경제연구소도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분석했다.

올해 중반부터 내년까지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에 작년부터 국내 주요 언론에서 부동산 전문가란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가격이 하락할 것이니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적극 권장하고 있다.

GARAM과 가온 경제연구소 모두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상승 관련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대책 마련을 경고하고 있지만, 한국 언론은 연일 그런 건 모르겠고 오로지 부동산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다.

올해 말부터 한 동안 강남 재건축을 위시한 전국 집값이 폭등하게 된다.

집값 광풍을 잡겠다고 정부가 수요부터 공급까지 부동산 시장 각 분야를 총망라하는 종합선물세트식 대책을 쏟아낸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자 광풍이 부는 시국에 규제의 칼날을 겨누다가 되레 시장 과열을 부추겼고, 대책들이 오히려 집값을 더 띄웠다.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외생 변수가 발생하게 되면 집값이 폭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류지호가 재정경제부에 굳이 보고서를 전해준 것은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의존하고 있는 가계가 타격을 덜 받도록 경제관료들이 대비를 해주길 바라서다.


‘귀담아 들어줄지 모르지만....’


국내 주요 민간경제연구소, 각 증권사에서 나오는 보고서는 한 번 걸러서 따져봐야 한다.

주요 대기업조차 내부 보고서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들이 사주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보고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90년대 한국에 온갖 전문가들이 넘쳐났다.

한 때 미국에서 한국인 경제학 박사를 워낙 많이 배출해서, 미국에서 한국 오는 비행기마다 새로 박사 받은 사람들이 한 명씩은 타고 있다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MBA(경영학 석사) 열풍으로 옮겨갔다.

1990년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금융화가 동시에 벌어졌고, 그러다보니 한국 증권사에도 경제연구소를 하나씩 설치하는 게 유행이었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에너지경제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처럼 꼭 경제연구소일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도 산업화 시절의 흔적이 남아서 각종 정책연구소들이 경제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대학, 국책연구소 그리고 기업연구소와 같은 경제학자들이 움직일 공간이 많아졌고, 대기업 기획실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과장 보태서 가온그룹 전략기획실과 경제연구소에 그런 박사들이 발에 치일 정도다.

그럼에도 노벨경제학상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이다.


‘학자와 연구원들의 예측과 전망이 다 맞으면, 차라리 점집을 차리는 것이 맞을지도....’


일반인들에게는 잘 공개되지 않는 경제학자들끼리의 내부 논의가 꽤 있다.

그런 자리에는 대기업, 증권사, 대학 혹은 정부기관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어떤 내용에 대해 의견을 모으기도 한다.

그런 전문가 사이의 내부 논의가 국민들에게 전달될 경로는 거의 없다.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의 눈치, 월급 주는 사람의 눈치, 정권의 방침.

높은 분들의 생각에 반하는 논의가 나올 수 없는 구조여서 그렇다.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든,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박사든.

기업 방침과 정부의 정책기조에 반하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옷 벗고 나오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대학 교수들의 경우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정부로부터 '우리 편'이 아니라고 간주되면, 각종 위원회나 자문 등 교수들이 달고 싶어 하는 타이틀의 길이 막히게 된다.

그깟 감투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학자들이란 사람들이 의외로 그런 감투에 목숨을 건다.

게다가 대학총장에서 재단까지, 교수들 위의 시어머니 참견이 보통이 아니다.

그런 것이 귀찮고 성가셔 그저 시간강사로 버텨도 문제다.

시간강사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무시하고 그냥 발언을 해도 되지만, 정교수가 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재계약을 안 해주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정교수가 될 때까지는 눈치 보면서 입 다무는 수밖에 없다.

정교수가 되면 좀 자유로워질까?

대학에서 교수들을 밀어내는 방식은 갈수록 다양해진다.

연구 과제를 통해서, 총장을 통해서 그리고 재단을 통해서 한국의 교수들은 언로가 자주 막힌다.


‘더럽고 치사하면 기득권이 되거나 기득권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야지.’


그렇다고 교수나 학자를 불쌍하게 여길 필요 없다.

이미 정교수가 되는 순간 확고부동한 기득권에 일원으로 편입되는 것이니까.


15년.


류지호가 한국에서 기득권이 되는데 걸린 세월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기존의 기득권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소요된 시간이다.

사소하게는 각 분야 권력자의 약점을 수집하는 것부터 한국 경제계에 수십조의 자금을 뿌려놓은 것까지.

자폭까지 감수해야 할 정도의 핵폭탄도 준비되기 시작했다.

나를 죽이려면 너희도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라는.


띠리리.


발신자를 확인하니 장문식이다.


- 의장님, 나 이제 갑니다요.

“어디 전쟁터 나갑니까?”

- 언제 볼지 모르니까....

“LA에서 밴쿠버가 지구 한 바퀴 돌아야 하는 덴 줄 알아요?”

- 작별인사 드릴라고 전화했더니, 왜 또 까칠하게 받으신데?

“가서 땡땡이 친다는 보고 올라오면 에티오피아나 남미로 발령 낼 겁니다.”

- 제길. 괜히 전화해서 쿠사리만 먹었네.

“가서 건강 잘 챙기시고, 아무 여자나 건드리지 마세요. 아랫도리 잘 못 놀리다간 총 맞습니다.”

- 비아그라 구해주고 그런 말 하쇼.


뚝.


더 듣다가는 말장난이나 할 것 같아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단순한 작별인사가 아니다.

장문식의 실없는 말에 암호가 들어있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것들이 준비를 마쳤다는.

류지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어디까지 될지 모르지만, 이미 화살이 시위를 떠났으니까.....’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 작성자
    Lv.86 도뮤
    작성일
    23.09.19 09:26
    No. 1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용갈장군
    작성일
    23.09.19 10:25
    No. 2

    작가님의 본업이 뭘까 궁금해집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그리고 냉소적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이자금
    작성일
    23.09.19 12:37
    No. 3

    참 희한해요
    분명 공자가 동이에서 태어 났고 동이에서 왔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성경은 아무 의심없이 믿으면서 한국 역사서는 안 믿는 사람들
    중국 일본 미국 백인들이 한 말은 의심없이 믿으면서 조상이 남긴 책은 안 믿는 사람들
    한국인들은 참 이상하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진실이라며
    조상인 단군은 허상이라는 사람들

    찬성: 3 | 반대: 2

  • 작성자
    Lv.78 모란
    작성일
    23.09.19 13:08
    No. 4

    문맥상 안맞아서 적습니다
    가람이 부동산 오른다고 투자하지 말라는게요
    오르니까 투자해야하고 떨어지면 투자하지 말아야 되는게 아닌가 해서 적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3.09.21 11:59
    No. 5

    보완/보충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9.19 18:42
    No. 6

    문화 대혁명때 중국 역사 자료 상당수가
    파괴 되고 불태워 졌습니다.
    분서갱유
    자신의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지워버렸습니다.
    한국의 역사자료 는 일제시대때 엄청나게
    불타고 빼앗기고 홰손 되었습니다.
    나라를 못 지킨 우리 탓 입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9.19 18:46
    No. 7

    지금 가람이 내놓는 경제지표가 2008년 금융 대공항
    껀을 슬쩍 흘리는 겁니다.
    그때 IMF 를 견딘 곳도 상당수가 날라갔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9.21 00:10
    No. 8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雲祖
    작성일
    23.09.21 21:22
    No. 9

    예전에 노통이 동북아의 중심이 되겠다 했는데, 중국의 동북공정에 놀아난 현상황은 뭘까요.
    노통을 동지 또는 친우라 말했던 자들은 밥그릇 들고 있겠네요. 그나물 그밥 조금이라도 더 담기위해 역사와 민족도 팽하고.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84 백수마적
    작성일
    24.06.09 16:34
    No. 10

    보수 정권만 되면 안보, 경제 상황이 거짓말같이 호전된다고 기사에 나오죠.
    어차피 국민 수준에 맞춰 가는거라 어쩔수 없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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