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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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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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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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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글자
28쪽

우린 괴물이 아닙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날개를 활짝 편 페가수스가 구름을 뚫고 달려 나온다.

이제는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할리우드 배급사 로고다.

바로 Tri-Stellar Entertainment 인트로 로고다.

제작사 JHO Pictures와 Timely Knights 로고도 차례로 떠올랐다.

Ji Ho Ryu... 프로듀서 류지호의 이름을 시작으로 오프닝 크레디트도 화면에 지나갔다.

오프닝 크레디트 배경화면은 아르메 고야크의 배경 설명 영상이다.

레모 사제가 인종학살의 비극을 맞을 뻔했던 마을주민을 구해주는 1편의 모습들.

무기력한 아르메 고야크가 산속 비밀사원으로 들어가는 모습 등.

세르비아 국경 마을 상공으로 나토 전투기 편대가 날아간다.


- 누가 두려우십니까. 두려워할 것은 신 밖에 없습니다.


세르비아의 한 마을 벽에 낙서처럼 써져 있는 문구다.

아름답지만 슬픈 음악이 흐르며 최종편이 시작된다.

추레한 옷차림의 아르메 고야크가 코소보 난민 틈에 끼어 밀항선을 타고 이탈리아 해안 도시에 도착한다.

슬픈 음악에서 경쾌한 비틀즈의 노래로 바뀐다.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h(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계속 되고) La la how the life goes on(랄 라,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죠.)]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골마을.

하늘에서 보면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선암마을을 연상시킨다.

들녘에는 농부들이 누렇게 익은 벼를 추수하고 있다.

도리깨로 타작을 하고, 파전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일족의 어린이들이 개미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한다.

이후 벌어질 좀비떼의 공격과 군집 공격적인 형태를 암시한다.

북한에서와 달리 치운 일족의 일상은 평화롭고 안락하다.

일족 최고의 암살자가 해외에서 암살자로 활동하는 것은 가족을 건사하는 아버지의 책임감이다.

남한으로 이주한 후로 그런 책임감에서 자유로워 진 것일까.

치운의 태도가 이전 편보다 푸근해졌다.

그때 레모 윌리엄스가 콘 맥클리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치운이 따라나선다.


[평화로움은 나를 베짱이로 만들고 있다. 내 삶은 투쟁과 암살 속에서 보람이 있다.]


일족의 마을에서 지내는 것이 따분할 뿐이지만, 말을 그럴 듯 하다.

맨해튼의 살인적인 교통체증 속에 아르메 고야크가 섞여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왜소한 음울한 흑마법사는 맨해튼의 살인적인 교통체증을 경험하고, 얼치기 관광객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뉴욕의 명물 엘로우캡도 경험한다.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타임스퀘어를 구경하기도 하고, 트리니티 교회도 얼쩡거린다.

그는 걸어 다니는 폭탄과 다름없다.

사악한 흑마법사는 어둠속 저 깊은 절망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아르메 고야크를 만든 것은 서방의 밝음이다.

류지호는 맨해튼 곳곳을 돌아다니는 흑마법사를 통해 서구 문명의 상징을 짚어준다.

법치주의, 이성 중심주의, 과학 중심주의,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뉴욕증권거래소)까지.

보스니아 출신의 흑마법사가 미국의 상징들을 부숴버릴 예정이다.


[절망, 후회, 참회..... 안식 없는 삶. 어둠속에서 나와 함께 영원히 살기를....]


센트럴 파크에서 세르비아계 민병대에게 자신의 가족이 인종청소를 당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테러리스트와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심지어 평화롭고 안전한 센트럴 파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린다.

강력하고 비정한 모습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었지만 살아있는 자들의 분노를 지켜보도록 하라.]


거대한 성조기가 걸려있는 뉴욕증권거래소로 아르메 고야크가 들어간다.

당연히 경비원으로부터 제지를 받지만...

여기까지는 입체영화보다 Eye-MAX가 강조되는 느낌이 강했다.

류지호는 좌우상하로 더 넓어진 화면을 매우 밀도 있게 구성했다.

오리지널 1.43:1 화면비로 봐야 묘미를 느낄 수 있다.

3D를 기대하고 안경을 쓰고 있는 관객들이 의구심을 품는다.


‘왜 이리 영화가 밋밋하지?’


아르메 고야크가 뉴욕증권거래소로 들어간 후부터 본격적으로 스펙터클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뭔가 불길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좀비의 정체는 최대한 숨겼다.

콘 맥클리의 시점이 되고서야 비로소 좀비떼의 무차별 공격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NYPD가 좀비로 변하는 장면을 묘사한 후부터 본격적인 3D Eye-MAX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좀비로 변한 시민이 혐오스럽고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한다.

처음에는 누가 시민이고 좀비 감염자인지 분간이 잘 안 간다.

곳곳에서 자동차 추돌사고가 벌어지거나,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거나, 곳곳에 총성이 울리고, 앰뷸런스에서 구급대원이 환자(?)에게 공격당하거나, 경찰관이 좀비를 향해 총을 난사한다거나, 좀비가 되어 떼로 몰려오는 NYPD를 피해 콘 맥클리가 어린이를 구한다거나, 관관객이 또 말쑥한 양복쟁이가 좀비가 되어 온 사방을 헤집는다거나....

특히 제복경찰들이 좀비로 변해 떼로 몰려다니며 공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제복경찰관이 공격하는 대상이 묘하게 흑인이다.

깨알 같은 풍자다.

흑인 절도범을 쫓는 백인경찰 모습은 미국에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기에.

이전 삶의 영화 <월드워 Z>의 필라델피아 좀비사태 시퀀스보다 훨씬 스펙터클하고 더 디테일하며 더 긴 시간을 할애해서 묘사됐다.

매 커트마다 컨버전스 포인트(영점)가 여러 인물을 옮겨 다니면 입체영화에서 몰입이 깨진다.

류지호는 한 화면에서 관객들 눈에 가장 오래 머무는 지점에 영점을 잡았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보다는 장시간 편안한 입체감을 제공하는 방식에 주안점을 두었다.

영상의 뎁스감이 제아무리 풍부하고 깊다 해도, 관객이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 실패다.

때문에 현란한 핸드헬드 카메라 워크나 뮤직비디오(혹은 본 시리즈) 스타일의 초치기 편집은 피했다.

대신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달리나 크레인을 많이 활용했다.

본래 좀비영화 같은 하위 장르는 톡톡 튀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류지호는 고어(Gore)한 표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B급 좀비영화에서 나오는 노골적인 인육파티는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뛰어다니면서 떼로 몰려다니는 좀비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치고, Eye-MAX 특유의 풍부하고 강력한 사운드가 귀를 자극하고, 스펙터클한 영상들이 눈을 즐겁게 하니까.

개미떼가 새까맣게 들러붙은 것처럼 좀비떼의 행렬을 입체영화로 묘사하니 관객이 마치 좀비떼에게 둘러싸인 착각마저 든다.


[맨해튼이... 좀비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주정부, 경찰, 주방위군 심지어 워싱턴DC도 그렇게 믿는다.

몰아쳤으니 잠시 풀어준다.

지난 9/11테러 당시 조디 워커의 행적을 풍자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했다가 어벙하게 보고 받는 모습 대신에 해외파병 병사(이라크 전쟁)들의 합동 추모식에 참석했다가 어버버거리는 모습으로 살짝 변형했다.


[더럽게 찜찜하구만.]

[누군들 안 그렇겠습니까? 누구나 장례식장 방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지요.]


영화 속 대통령은 곧장 백악관으로 가지 않는다.


[워싱턴도 위험한 것 아닌가?]

[벙커로 가시죠.]


마린 원 헬기가 방향을 선회한다.

이런 공중 장면은 Eye-MAX 3D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물론 잘못 하면 항공기가 종잇장처럼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류지호는 CG만으로 해결하지 않다.

미니어처로 에어포스 원과 마린 원을 촬영해 배경만 합성했다.

이후로 영화는 미국의 대통령을 아무런 쓸모없는 투명인간 취급한다.

등장할 때는 TV화면 속에서만 나온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공식에는 맞지 않는다.


[거래소부터 정상화시키도록 해.]

[아니, 시민의 안전부터.]


영화에서 정치인, 경제인, 군인, 경찰은 저마다의 주장만 한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희화하지 않았다.

반대로 군대와 경찰은 굉장히 침착하다.

미국이란 나라의 무력 담당자들은 항상 준비가 되어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안 낀 전쟁이 없고, 세계 곳곳에서 무수한 국지전을 벌여온 나라가 미국이니까.

정작 보스니아 내전 같은 돈 안 되는 전쟁은 애써 모른 척 했지만.

그러니 어떤 위협에서도 미국 정부와 군대는 냉철하다.

단 대통령만 빼놓고.

그런데 인간들 사이에서의 전쟁에서도 실수와 광기가 폭발하는데, 미지의 존재와의 전투에서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리가 없다.

맨해튼으로 이어지는 다리들이 통제되고.

주방위군이 인간과 좀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민간인을 사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미국의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아수라장에서도 언론은 취재에 열을 올린다.

CNN이 중동전쟁을 생중계한 것처럼.

잠시 쉬어갔던 영화는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방송헬기가 추락하고 그 여파로 건물이 파손되고, 잔해들이 지상으로 쏟아진다.

좀비떼 소동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는 모습이 묘사된다.

재난 이상이다.

멸망의 공포가 엄습한다.

좀비떼와 관련된 시퀀스가 나올 때마다 3D 상영관에서는 비명과 탄성이 터졌다.


‘일종의 개업빨이지....’


이 정도 수준의 입체영화를 관객들이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렇다.

그렇다고 2D 영화가 시시하지도 않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특유의 공식이 고스란히 들어있었으니까.

상식과 질서가 사라진 맨해튼.

재난영화의 클리셰에서 빠질 수 없는 마트장면도 나온다.

인종의 용광로인 뉴욕에서 이민자 문제, 인종 간의 갈등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계층의 상징들도 드러난다.

부자들은 언제든지 펜트하우스를 포기할 수 있지만, 어렵게 장만한 집을 포기하지 못하는 중산층도 있다.

그 과정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탕.

탕탕.


손이나 다리에 총을 맞으면 고통 때문에 틈을 보여야 정상.

그런데 좀비 감염자는 그런 게 없다.

때문에 맨해튼에 고립된 콘 맥클리와 생존자들은 안일한 대응으로 속수무책 희생자만 늘어난다.

절망적이다.

마침내 세계 최강의 암살자 사제가 맨해튼에 잠입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대략 15~20분 시점이다.


[닌자가 왜 항상 정면 돌파에요?]

[나는 절대 숨어 다니지 않는다. 정정당당하게 걸어가 목을 딸 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암살자는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

[그 말 진심이에요?]

[사람이 사람 말을 하지, 개소리를 내겠느냐, 이놈!]


많은 <REMO> 팬들이 기다려왔던 바로 그 캐릭터.... 치운다운 모습이다.

처음에는 좀비 퇴치에 애를 먹는다.

일반적인 격투기술로는 떼로 몰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레모 윌리엄스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총은 물론 휴대용 대전차 화기, 주방위군이 남긴 장갑차와 탱크까지도 활용한다.

반면에 치운은 오로지 육신으로만 좀비들과 대적한다.


[이것이 시난주다! 괴물들아! 껄껄껄.]


고집불통 꼰대스러움으로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치운의 액션 시퀀스는 언제나 파격적이다.

그의 폭력이 눈을 호강시켜주고 한편으로 통쾌함이란 대리만족도 충족시켜 준다.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시리즈를 통해 각성-성장을 거친 레모 윌리엄스도 뛰어난 무용(武勇)을 뽐낸다.

<REMO> 시리즈의 시그니처 등평도수(登萍渡水)도 빠질 수 없다.

이번에는 허공답보(虛空踏步)다.

물 위를 걷는 게 아니라 좀비들의 머리통을 밟고 뛰어 다닌다. 건물 벽을 평지처럼 뛰어다니기도 한다.

또 하나의 시그니처 총알 피하기는 좀비의 타액으로 바뀌었다.

본래 재난영화나 아포칼립스물은 연약한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해 사투를 벌이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그런데 두 사제가 등장하면서 자칫 좀비떼가 시시해질 수도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워낙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 역시 한낮 미물이듯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좀비쓰나미에는 치운조차 등을 보이고 달아날 수밖에 없다.

좀비떼는 마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같다.

암튼 레모와 치운이 등장하면 일단 시끄럽다.

레모는 시난주의 다음 세대 장문인이 될 후보임을 증명하고 있다.

더 이상 사부이자 아버지 같은 치운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어리광을 피우지 않는다.

엄하고 투박하기만 치운이지만, 이전 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상한 모습도 자주 묘사된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태도와 마음이 이전 편보다 더욱 깊어졌다.

이 묘한 조합이 관객에게 통했다.

인종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끈끈한 유대감은 보편적인 감정이니까.

떠들썩한 사제와 달리 뉴욕증권거래소를 시작으로 맨해튼을 활보하며 파괴를 일삼는 아르메 고야크는 비장하고, 음울하며, 슬프다.

혼란 그 자체다.

시민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콘 맥클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주로 깜짝 놀라게 하기, 공포심 자극, 휴머니즘 등을 드러낸다.

콘 맥클리와 생존자들이 위기에 몰릴수록, 주인공들의 등장을 바라게 된다.

그런데 주인공들은 엉뚱한 곳에서 온갖 난장판을 벌이며 관객들을 애태운다.

사실 최대·최고·최상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영화까지는 아니다.

<반지의 제왕>이란 뛰어난 판타지 영화가 있었으니까.

다만 현대 배경에서 카체이스, 대규모 난투, 총격과 폭발 시퀀스는 최고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고 자부할 만 했다.

건물에서 건물로 뛰어 넘기, 좀비 머리통 밟고 질주하기, 소방호스 몸에 묶고 스파이더맨 놀이하기 등 온갖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치운이 허공답보처럼 좀비 머리통을 밟고 질주하는 장면과 그에 못지않게 레모 윌리엄스가 건물 벽을 타고 달리는 장면은 일품이다.

좀비떼 공중낙하는 또 어떻고.

류지호의 머릿속에는 <아바타>, <트랜스포머> 등 검증된 3D 콘티가 들어 있었다.

아직은 관련 기술 모두가 성숙되지 않아서 류지호의 눈높이를 완전히 충족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3D를 만끽할 만한 수준이다.


“오오!”


3D 상영관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각종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콘 맥클리와 아르메 고야크 시퀀스는 대체로 드라마가 강조되었다.

그럼에도 심심하지 않게 콘티가 만들어졌다.

물량을 쏟아낸 화려한 장면 연출이 없다고 해도 3D가 선사하는 공간감을 만끽할 수도 있도록 장면을 만들었다.

입체영화는 튀어나오는 재미뿐만 아니라, 공간감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좀비들을 피해 건물 내부를 이리저리 도망치다 거리로 나왔을 때, 펼쳐지는 맨해튼의 도로는 압권이다.

수 킬로미터 저 멀리까지 뻥 뚫려있는 도로는 그 자체로 스펙터클이다.

바짝 조였다가 한꺼번에 확 풀어주는 류지호의 장기 중에 하나인 익스트림 롱 쇼트 연출이다.

이 영화에서 입체영화의 공간감을 설명할 때 류지호는 축구중계를 예로 들곤 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골대 앞에서 선수들 간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이잖아. 3D 영상에서는 누가 누구의 앞에 있고 뒤에 있는지가 2D에 비해 더 확연하게 구별되거든.”


개념은 쉽다.

그걸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난 인간이라고 이 빌어먹을 개자식아아아!]


좀비보다 살아있는 인간이 더 무섭다.

좀비영화의 테마이자 클리셰다.

다른 이의 희생을 통행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는 욕심.

극단으로 치우친 이기심은 그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특히나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는 본성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맨해튼의 부자들은 펜트하우스로 숨어든다.

시민들은 지하로 숨어든다.

보통 할리우드 영화에서 뉴욕의 지하철 혹은 지하도를 묘사할 때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소굴로 그려진다.

하수구는 지상의 화이트칼라와 비교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거주지로 상징된다.

그런데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하수구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자연스럽게 땅속에 파묻히게 되겠지만, 화이트칼라 부자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추락은 가난한 자보다 부자가 더 고통스럽다.

훨씬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름 없이 죽어가는 건 마찬가지인 것을.

퀸스의 주민들이 인종과 출신을 넘어 연대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맨해튼 화이트칼라들이 보여준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와 트리니티가 모르피어스를 구출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그 시퀀스에서 헬기에 장착된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REMO : ....or Maybe Dead!>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투타타타타!

텅.


2D로 봐도 화끈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기관총 난사장면인데, 3D로 보면 더욱 기가 막히다.

게다가 Eye-MAX 특유의 육중하고 강렬한 사운드 시스템은 비처럼 쏟아지는 탄피끼리의 마찰음까지도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해낸다.

지상에서 생존자들이 도망 다니는 장면이나 좀비를 향해 총질하는 장면만 보여주면 심심하다.

헬기 추락이나 폭발 장면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단골 메뉴다.

부자들이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하는 장면은 미니어처와 CG를 적절히 융합해 만들어졌다.

맨해튼에서 좀비만 보는 것도 슬슬 지겨워질 즈음.

뉴욕에서 대략 4,000마일 정도 떨어진 유럽을 보여준다.

영국 MI6 요원 앨리나 와츠가 뉴욕 테러범의 정체와 그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잠시 보여준다.

이미 전 편에서 발칸 전쟁의 이면을 파헤쳤던 전력이 있던 그녀는 끝내 테러범의 정체를 밝혀낸다.

주구장창 액션만 이어지는 영화의 서사에 그녀의 스토리는 반전까지 선사한다.

사제가 최종보스를 물리친 후 맨해튼을 수복하고 나서, 아르메 고야크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는 사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미 죽어 있었다.

말 그대로 언데드(Undead)였다.

다만 보스니아에서 죽었는지, 맨해튼에 도착하고 센트럴 파크에서 울음을 터트린 후에 스스로 언데드가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앨리나 와츠는 아르메 고야크가 힘을 얻었던 사원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 지하에서 수백구의 부패한 시체들을 확인한다.

보스니아 전쟁에서 살해당한 민간인들이다.


[이건 아닙니다. 이것이 악에 대항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닙니다. 우리 미국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가치는 이것이 아닙니다. 악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아랍계 미국시민의 절규다.

테러범을 잡겠다며, 뉴욕주 외의 거의 모든 주에서 무차별적으로 거동수상자를 체포·구금한다.

체포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슬람교도와 유색인종들이다.

맨해튼을 탈출한 생존자들을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눠 다른 수용소에 수용한다.

뉴욕의 퀀즈 한인타운에서는 피부색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연대해 좀비에 맞선다.

정작 안전한 옆 도시에서는 피부색으로 차별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고, 교육수준과 출신으로 등급을 나눈다.

물론 직접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눈썰미가 매우 좋거나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게 되면 눈치 챌 수 있는 디테일이다.


어쨌든 깔 건 까고 띄울 건 띄우고.


영화는 미국의 적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생존자들이 보이는 인류애를 더욱 강조한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어린이를 이용한다.

아이들만큼 용기 있고 정의로운 존재도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발 벗고 나서서 누군가를 돕는 곳에는 항상 어른이 아닌 어린 손길들이 있다.

류지호가 <Collaps>부터 종종 쓰는 방식이다.

눈물 질질 짜는 신파보다 어린 아이를 활용해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류지호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영화가 중반으로 달려가면 자본주의 상징 뉴욕증권거래소가 좀비떼들로 바글거리고.

미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미식축구 경기장이 아르메 고야크의 좀비군단에 농락당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한때 과학문명의 상징이었던 건물들이 무너지고.

세계의 경찰을 자부하는 미국의 군대까지 맥없이 좀비쓰나미에 쓸려 버린.

옛 유고연방비극의 한을 품은 흑마법사(실제 언데드)가 자본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직전.

할리우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영웅 레모 윌리엄스가 그를 막아선다.


[시간이 너희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악당이 폼 잡고 제 할 말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려줄 레모가 아니다.

물론 너무 술술 풀리면 재미가 덜하다.

가까스로 원흉이 처리된 것 같았지만.

아르메 고야크는 더욱 기괴하고 강력한 괴물로 진화한다.

처음 디자인은 5m 신장의 온몸을 좀비사체로 두른 더럽고 추악한 괴물이었다.

류지호의 강력한 요구로 조금은 깨끗한(?) 언데드 괴물로 바뀌었다.

관객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것과 혐오감을 들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에.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기에...


아르메 고야크와 미국은 닮아있다.

괴물과 싸우려면 먼저 대상에 대한 적대와 증오를 품어야 한다.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 단계에만 머문다면 자신도 괴물처럼 변할 테니까.

내면에 적대와 증오심만 가득하다면 그가 바로 ‘괴물’이다.

아르메 고야크가 진정한 괴물로 변하기 전까지 갈등했던 지점이다.

미국의 위정자들이 고민해야봐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탄식은 하늘을 가리우며, 멸망의 공포가 지배하는 이곳. 희망은 이미 날개를 접었나.....


N.e.T의 <Save us>가 흐르며.

성급하게 결과를 낙관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레모 윌리엄스를 보여준다.


[실수한 거 같아요.]

[나도 눈이 있다. 실수가 좋은 게 뭔 줄 아냐?]

[실수가 좋은 것도 있어요?]

[바로 잡을 기회도 함께 있다는 거다.]


치운이 괴물에게 달려든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결답게 지금까지 아껴놓았다고 오해할 만한 온갖 파이트 액션이 펼쳐진다.

이전 삶에서 온갖 화려한 액션 영화를 두루 섭력한 류지호가 만족할 리 없지만, Hues & Rhythm Studios의 자부심을 남달랐다.

앞으로 Timely Entertainment의 TCU가 선보일 액션의 맛보기 성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안 도울 거냐!]


저 대단한 치운도 어쩌지 못하는 최강의 괴물이다.

마치 <Avengers: Endgame>에서 우주적 강함을 가진 히어로들조차 타노스에게 맥을 추지 못했던 것처럼.


[세상 최강의 암살자잖아요.]

[인간 중 최강이지. 미지의 존재까지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나보고 같이 죽자는 거예요?]

[살려고 그런다. 이놈아!]


치운은 어려운 대결을 펼치는 와중에 치명적인 공격을 자신이 모조리 감당한다.

레모 윌리엄스도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무기력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의 분노 수치가 오를수록 관객들은 손에 땀이 찬다.

예상된 결말이겠지만, 레모 윌리엄스는 최후의 언데드 괴물을 맞이해서 이 시리즈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등평도수와 총알 피하기를 완벽하게 펼쳐보이게 된다.

또한 1편에서 탱크를 상대로 싸워서 승리했던 치운을 재현하듯이 레모 윌리엄스가 언데드 괴물을 처치하게 된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아니다.

이제야 시난주 장문인의 조건 하나를 충족한 것뿐이다.

군대와 경찰은 주인공이 활약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때서야 등장한다.

탱크, 장갑차, 중무장한 군대가 맨해튼으로 동시에 진입한다.

그것도 거룩하고 숭고한 성조기를 펄럭이면서.

영화 중반부에 그런 위대한 성조기가 찢어진 적이 있다.

좀비가 뉴욕증권거래소 옥상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며 대형 성조기를 가르고 길바닥에 처박히는 장면이 있다.

이 역시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면 쉽게 포착하기 쉽지 않다.

Eye-Max 화면비로 봐야 앞뒤 맥락이 이해가 된다.


쿠르릉.

꽝.


괴물과 대격전을 벌이며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던 건물이 기어코 무너진다.

뿌연 먼지가 온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정적.


저 멀리 뿌옇게 먼지가 안개처럼 퍼져 있는 곳에서 라디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What More Can I Give?’다.

이번 영화에 삽입하기 위해 마이키 잭슨이 솔로로 부른 OST다.

<물 좀 주소> 대신 들어간 노래다.

사실 류지호의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장면이다.

바로 단편영화 <Help Me, Please>의 엔딩이었으니까.

아수라장을 뚫고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세 살 어린이뿐이다.

<Help Me, Please>의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콘 맥클리 역시 좀비가 되어서까지 어린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네가 직접 보내줘라. 친구로서.]


탕.


레모 윌리엄스가 좀비가 된 콘 맥클리에게 안식을 선사한다.

소녀만 살아남았다면 임팩트가 약했다.

가라앉은 먼지 너머로 수많은 생존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쏘지 마세요! 우린 괴물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사장도 직원도 관료도 노동자도 의미가 없다.

그저 지옥 같은 아수라장에서 서로 의지해 살아남은 동지일 뿐.

마치 9·11 테러 속에서 서로 도우면 살아남았던 평범한 뉴욕 시민들처럼.

류지호는 사실 <REMO>의 최종편을 준비하며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테러리즘의 공포로 폭주하는 미국의 위정자들과 불안감에 휩싸인 평범한 미국인들 사이에서 굳이 그것이 떠오를 만한 영화를 제작해야만 하는지.

중동 전쟁이라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미국과 얼마 안 가 맞이하게 될 금융위기로 만신창이가 될 미국경제에 경고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최초 스크립트는 세련된 블랙코미디가 가미된 블록버스터영화였다.

좀 더 품격 있었고 스토리텔링도 복잡했다.

Eye-MAX 3D 영화가 되면서 서사가 단순해졌다.

외형적으로 캐릭터 영화가 됐다.

입체영화 특성에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진지한 주제의식까진 드러낼 순 없다고 해도, 최소한의 품격은 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Help Me, Please>를 통한 자기복제였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처럼 관객들에게 ‘살아남았다!‘ 라는 막연한 안도감이 아니라 비록 좀비로 변할 테지만 끝까지 아이만은 안전하길 바라는 부성애.... 그것을 통해 인류애란 메시지에 닿길 바랐다.

맨해튼 곳곳에 남은 선명한 핏자국을 밟고도 끝끝내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한 콘 맥클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내면 한편에 품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그 휴머니즘을.

그래서 오리지널 스크립트에 있던 자막인.


[형제애와 단합. 그들의 가치는 끊겼다. 전쟁범죄자 투지만과 이제트베고비치는 자연사했다. 밀로셰비치는 감옥에 있다. 아직 체포되지 않은 전범도 많다. 보스니아 전쟁은 과거의 민족 간 증오의 결과가 아닌 극단적인 정치인들의 날조 때문이다. 서방 세계가 그 전쟁에서 조연을 담당했다는 것을 부정해선 안 된다.]


최종 극장판에서 삭제했다.

끝까지 인간으로 남고자 했던 콘 맥클리의 유골함을 레모 윌리엄스가 가족에게 전달하는 장면을 넣었다.

그리고 좀비사태로 엉망이 된 맨해튼을 시민들이 힘을 모아 복구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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