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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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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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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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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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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민중의 적 : EMBARGO.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기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런 것도 영화에서 나와요?”

“그냥 궁금해서요.”

“따로 책상은 있을 걸요? 그런데 IO가 상주하진 않아요.”

“프리패스로 바뀌었나 보군요?”

“단독 터졌을 때는 새벽부터 와서 진을 치고 있긴 하더라고요.”


이 당시만 해도 국회, 정당, 언론사, 대학, 연구소 등에 국정원 정보관(IO)이 파견 나와 있거나 상시출입을 하고 있다.

이전 삶에서는 대선개입 의혹의 중심이었던 국정원 심리전단이 문제가 되면서, 국정원법이 개정되었다.

대략 2015년경부터 국정원 직원 파견 또는 상시출입이 금지되었다.

언론사에 국정원 직원이 파견 나와 있다고 해서 과거 정권들처럼 검열을 하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달리 언론이 권력과의 관계에서 호락호락하지 않기도 하고.

언론의 동향을 관찰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민감한 사안에 관해 기사화 될 때 상부에 보고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언론사를 출입하는 IO의 주요 업무다.

때로는 언론사와 기사에 대한 엠바고를 두고 협상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언론사는 IO를 통해 기사 소스에 대한 확인을 받는다.

암묵적으로 공생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구조로 때문에 진보 언론사는 이번 정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원이 언론사에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이 언론 독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기자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법과 제도가 그걸 못 따라 잡는 것 같아요.”


류지호의 입가에 냉소가 스쳤다.

어차피 한통속이다.

류지호는 취재를 도와준 기자를 비난하고 싶진 않았다.

‘천황폐하 만세’니 ‘김일성 만세’를 부르고 ‘5·16을 혁명’으로, ‘시민 학살자’를 찬미한 가자는 죄가 없고 오로지 언론사만 문제일까.

권력의 비위를 맞추고 용비어천가를 부른 기사를 쓴 언론인이 승진하고, 경영자가 되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고, 청와대 공보수석이나 홍보수석이 되는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은 과연 정치인일까 언론인일까.


“졸라, 짜증나네!”


느닷없이 설형기가 신경질을 부렸다.

류지호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하하.


금연 때문이다.

설형기는 금단증상으로 다소 신경과민을 보이고 있다.


“6개월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세요. 3달 정도가 제일 힘들다네요.”

“류 감독! 담배 피우는 장면 있어요?”

“담배 피우는 조차장에게 화내는 씬은 있죠.”

“걔가 담배 피우는 거 보면 한 대 칠 것 같은데?”


전편에서 마약딜러를 연기한 연극배우 출신 배우가 강철중 라이벌 기자로 등장할 예정이다.


“치세요. 성 선배가 진짜 화내는 모습 찍어보게요.”

“아서. 괜히 오바했다가 두고두고 갈굴 걸. 나만 무지 피곤해져요.”


둘 사이에 말투가 묘했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류지호.

반말과 존대 사이를 오가는 설형기.

류지호가 형아우 하자고 했지만, 설형기가 거절했다.

형아우 먹는 순간 감독과 배우의 긴장 관계가 사라져서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실수하게 된다나.

일견 맞는 말이긴 했다.


‘전에는 잘도 형아우 먹은 주제에. 안 어울리게 내외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일적으로만 만나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사적으로 소주도 마시고 해야 했는데.


“선배, 술 한 잔 합시다.”

“술 마시면 담 배 피울 것 같아. 류 감독이나 마셔요.”

“어차피 다이어트 끝나면 피게 되어 있어요. 갑시다!”


그 날 술자리에서 설형기는 결국 담배를 다시 피웠다.

어차피 피우게 되어 있었다.

핑계가 필요했을 뿐.


✻ ✻ ✻


주인공들이 YNTV 사회부 기자들을 쫒아 다니며, 기자 세계를 체험하는 시기.

류지호는 김영찬을 포함해 류지호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과도 어울렸다.

주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함께 관람했다.

당연히 뒤풀이가 빠질 수가 없었다.

대학로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려고 해도 금방 소문이 퍼져 배우들이 인사를 왔다.

그러면서 미래의 성격파 배우(character actor)들의 준비 상황도 확인할 수 있었다.

틈틈이 아역 배우들에 대한 오디션도 봤다.

아역 배우의 외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인사하는 것만 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인사인지.

진심으로 인사를 할 줄 아는 어린이인지.

연기아카데미 소속의 아역배우는 인사까지 훈련을 받는다.

그런 아역배우는 안정적이지만 매력이 없다.


“촬영 스태프가 배우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만큼, 배우도 스태프를 배려해야 해. 촬영장에서 배우가 스태프를 배려한다는 건 원활한 촬영이 가능하도록 알아서 움직이는 걸 의미하는 거야. 나는 인사 잘하는 사람을 좋아해. 그것만 지키면 뭐라고 안 해. 알겠지?”

“네. 감독님!”


보육원 임상시험의 마지막 희생자로 나오는 소은혜 역할과 남녀 아역 6명의 캐스팅을 마쳤다.

인기드라마에서 아역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단역 캐스팅은 동화 네가 알아서 해.”

“확인 안 해보셔도 되겠어요?”

“응. 대신 배우 출연료 후려치지 말고. 형이 카드 줄 테니까, 매니저들이 사주는 술 얻어먹고 다니지 말고.”

“누굴 양아치로 아시나....”


전편보다 배역이 많이 늘었다.

전보다 캐스팅 부문에서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당연히 조감독과 제작실장에게 매니저들의 접대 제안이 쇄도할 수밖에 없다.


“인상 펴. 인마.”

“....!”

“힘들 때 웃는 사람이 일류라고 그러더라.”


놀리는 것인지 격려인지.


❉ ❉ ❉


G.O.M 강남점.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다.

가온그룹이 최초로 극장업을 시작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극장 로비에 일반관객이 아닌 업자들이 운집해 있다.

전국 50여개 극장이 회원사로 가입한 전국극장인연합회 회원들, 전국 영사기사협회 회원들, 배급협회 회원사 관계자들, 촬영감독들, DI 업체 관계자, 한국 디지털 영화포럼 관계자 등 영화업계 수많은 관계자들로 극장이 북적거렸다.

직원들이 방문객 한 명 한명을 확인했다.


“초청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초청장이 있어야 합니까?”

“예.”

“그냥 들어가게 해 주죠?”

“죄송합니다. 초청장이 없으면 입장을 하실 수 없습니다.”

“깜박하고 안 가져왔어요.”

“성함과 단체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


한때 WaW 엔터테인먼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던 이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이 글로벌 디지털 영사기 업체들이 자사 제품 시연회를 열리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시연과 프레젠테이션 행사가 끝난 후 Ritz & Garden Hotel에서 리셉션도 마련되어 있다.

때문에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면 이번 행사에 참석할 수가 없다.

G.O.M 단독 주최였다면 이렇듯 철저하게 참석자를 통제하지 않았겠지만,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디지털영화포럼이 메인 주최자였다.

좌석이 한정적이기에 다소 빡빡하게 굴었다.

방송장비박람회가 아님에도 DALLSA D-Cinemas를 비롯해 6개 업체가 한 장소에서 쇼케이스를 가질 예정이다.

세계 최초다.

따라서 국내 관계자들만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 디지털 콘텐츠 협회 관계자를 필두로, 중국, 홍콩,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멀티플렉스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디지털 프로젝터 업체들이 한 자리에서 시연회를 갖는 만큼 각국의 업계 관계자들로서는 실제 극장에서 기기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쇼케이스를 위해 G.O.M International,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국디지털영화포럼이 힘을 모았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소닉코리아. 캐스트정보(나쇼날 총판), 벤허콥(디지털솔루션) 등 업체들이 제품 홍보와 영업에 사활을 걸었다.

국내만 놓고 봐도 1,400여개의 스크린이 2008년까지 모두 디지털영사기로 전환, 2,000억 원 규모의 신규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체들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 할 수밖에.

지금까지 국내에 디지털 프로젝터가 시범적으로 도입된 스크린은 50여개다.

올해 연말 기준 전국 400개 스크린을 보유하게 될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G.O.M Cinemas와 175개 스크린을 확보하게 될 BGV는 내년 하반기 안에는 대규모 디지털 프로젝터 발주계약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쇼케이스에 참여한 6개 업체 관계들은 자사가 수입 혹은 유통하는 제품의 쇼케이스에 한 치에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재 디지털 프로젝터 제품으로는 2K 진영에 Cristie, Baraco, JEC, 나쇼날이 있고, 4K 진영에는 DALLSA와 SONIC이 위치했다.

DALLSA와 SONIC 두 업체만 4K를 주력 프로젝터로 밀고 있다.

이유가 있다.

SONIC은 Dallas Instruments의 DLP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체적인 포맷을 고수하고 있다.

DALLSA D-Cinemas는 NIB 박람회에서 이미 2K. 4K 두 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인 바 있다.

G.O.M International 계열 전 세계 극장에 2K 프로젝터가 들어가 있다.

때문에 이번 쇼케이스는 기술력을 자랑할 겸 4K 제품만 시연하기로 했다.


“아시다시피, 디지털시네마는 제작에서 배급·상영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디지털 화질을 얼마나 잘 구현하는가 그것이 관건입니다. 2K가 일반 HDTV와 별반 다름없는 해상도를 구현하는 반면, 4K는 이보다 픽셀이 4배가 많아 화질에서 확실히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닉 코리아 영업이사의 설명이었다.


“2K와 4K 영상을 육안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는데다 이미 2K 영사기가 필드테스트를 통해 안정성을 검증 받았고 가격도 저렴해 훨씬 매력적입니다.”


2K 프로젝터 판매업체의 반박이었다.


“2K 또는 4K 방식 도입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은 가격입니다. 1대당 약 1억2,000만원인 2K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20%가 더 비싼 4K 방식의 프로젝터는 극장 입장에서는 부담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국극장연합회 사무국장의 말이었다.

이에 DALLSA와 SONIC은 일정 수준 이상 발주를 하면 큰 폭의 할인을 해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다만 정확한 디스카운트 퍼센트는 밝히지 않았다.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가 공격적으로 디지털영화 상영환경 구축사업을 벌임으로써, 전국극장연합회가 차별화 전략으로 4K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4K 방식의 여영사기 도입이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4K 상영 환경에 적합한 콘텐츠가 부족하고, 4K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영화를 4K 방식으로 상영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배급협회 사무국장의 말이었다. 4K 영사기가 2K보다 화소수가 2배 가까이 많아 뛰어난 화질을 구현하지만, 가격이 20% 이상 비싸다.

자막이 깨지는 현상까지 있어서 국내에 도입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DALLSA D-Cinemas가 자막이 깨지는 문제를 해결했다.

2K 진영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4K 프로젝터에서 자막 문제가 있었던 걸 기억하고 있던 류지호다.

개발 초기부터 이 문제를 DALLSA D-Cinemas에 주지시켰다.

GMG Technologies는 산하에 다양한 영상소프트웨어 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당연히 제품 성능과 함께 포스트프로덕션과의 연계까지 고려하며 개발하고 있는 장점이 있다.


짝짝짝.


6개 업체의 쇼케이스가 무사히 끝났다.

참석자들이 Ritz & Garden Hotel에 마련된 리셉션장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업체 관계자들이 치열한 영업전을 벌였다.

공식행사가 끝나갈 무렵이다.


“오늘 행사에 특별한 분이 참석하셨습니다. 디지털 시네마 부문에서 선도적이며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류지호 감독님이 와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짝짝짝!


참석자들이 박수로 류지호를 단상으로 이끌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한국 영화계의 이해당사자 간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류지호입니다.”


짝짝짝.


다시 한 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한국 지인들이 그럽니다. 앞서가는 IT 기술에 비해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대비와 적응력이 뒤쳐져 있다고 말입니다. 선도적인 미국뿐 아니라, 가까운 일본, 중국의 경우 실질적인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고, 유럽, 남미, 필리핀, 인도까지 광범위하게 연구에 나서고 있어요. 그러니 한국도 빨리 적합한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미국의 DCI 표준이 우리에게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다 보면 관련 시장에서 뒤쳐질지도 모릅니다.”


이 시기 미국은 할리우드 메이저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및 유럽 등은 정부 주도로 디지털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디지털시네마포럼이 디지털시네마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IT 강국이자 자국 영화 점유율이 40%가 넘는 한국은 디지털시네마 표준화를 만들고 아시아로 확대시키기 유리한 조건인 건 맞습니다. 그 논의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늦게 시작됐다고 해도, 표준화 작업을 통해 중복 투자 등의 비용 손실을 막고, 할리우드의 표준화 기준에 휘둘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다.

탁상공론이기도 하고.


“디지털화된 콘텐츠는 네트워크를 통해 배급되고 IT 기술과 접목해 관리돼야 합니다.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위한 암호화 처리 문제가 중요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네트워크나 암호화에 있어서 IT 기술을 이용해 세계화에 대비하는 것이 적합한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비록 한국이 디지털 시네마에서 후발 주자이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서 업계를 선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이다.

디지털 시네마가 특정하고 단일한 기술이라기보다 프로젝터, 서버, 망을 통한 공급, 보안 시스템 문제 등 여러 가지 기술들이 동원돼야 하는 기술집약형 사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각 분야에 대해 분명 강점을 가지고 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기술의 장점이 발휘될 여지는 많다.


“이제 디지털 시네마는 눈앞의 현실이 됐습니다. 막연한 핑크빛 전망을 걷어내고 뚜렷한 기술과 비전을 가지고 논의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지원과 영화 관련 업체들의 참여뿐만 아니라 관객, 수용자 네트워크의 능동적인 관심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아시아 영화계가 재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가 만든 영화를 할리우드 배급업자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리우드 메이저를 소유한 류지호가 할 소리는 아닐 듯 싶지만.


“디지털 시네마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배급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회사는 영화 관련 기업이 아닙니다. 우주항공기업인 Pacific Aero Company입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현재 Pacific Aero는 앞선 위성정보통신기술을 가지고 미디어 배급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Pacific Aero는 프로젝터나 서버 같은 기기가 아니라 디지털 위성을 통한 호출 등의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러워하거나, 남의 일이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Pacific Aero는 영화 관련 특별한 기술 없이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일본을 제외하고 어떤 국가도 디지털 카메라, 프로젝터를 개발할 수 없다.

아니 개발할 필요가 없다.

대신 디지털 시네마에는 위성송수신, 서버, 배급 망, 암호화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그 부분은 누구도 도전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디지털 시네마 기술 표준은 할리우드 메이저가 공동 출자한 DCI에 의해 정의될 겁니다. 아마 DCI가 정한 표준이 SMPTE(국제적인 표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전 세계 모든 개봉영화의 규격은 그 표준을 따를 것이고, 그 표준대로 패키징 되어 유통·상영될 겁니다.”


영화 산업을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곳이 할리우드다.

그들이 가진 시장 지배력으로 인해 영화 산업의 표준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이미 비스타 비전, 시네마스코프 등 영화 화면비부터, VHS, DVD 포맷 같은 것들 전부 그들이 결정해 세계 표준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서버, 암호화, 디지털 시네마 패키지 전송기술, 보안 분야일 겁니다.”


특히 서버 보안의 경우는 미국조차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분야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경우 영화 재생을 위해 암호를 걸어 놓게 된다.

암호가 걸린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KDM이라고 불리는 키를 받아야 한다.

KDM(Key Delivery Message)는 영화배급용 암호키다.

영화관 서버의 고유 정보 인증서(PEM)가 있어야 이 키를 발급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키를 만들 때 사용했던 PEM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하다.

각 상영관마다 키가 개별적으로 발급된다.

키를 발급할 때 시간도 입력한다.

영화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상영이 가능한지 정해놓은 시간이다.

예를 들어 영화제에 출품된 디지털 영화의 경우는 해당 영화제 기간에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만 상영이 가능하게끔 입력한다.

보통은 3~4시간 정도 상영이 가능하도록 설정되는 편이다.

일단 영화 재생을 시작하면 입력된 시간과는 상관없이 영화는 끝까지 재생되긴 하지만, 만약 정해진 시간에 영화를 재생하지 못하면 발급받은 키는 무용지물이 된다.

마지막은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명언으로 마무리했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


짝짝짝.


쇼케이스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따로 행사를 갖지는 않기로 했다.

세계적인 방송장비 및 가전 컨벤션이 열리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토마스 쿤이 말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이해시킴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자들이 늙고 사라지고, 새로운 진리를 신봉하는 세대가 주류가 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충무로는 도제시스템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맛본 구세대가 퇴장하고, 젊고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세대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다.

어쨌든, 디지털 시네마 분야는 카르텔로 돌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 카르텔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DCP 원천 기술을 보유한 Dallas Instruments는 미국의 Cristie, 벨기에의 Baraco, 일본의 JEC, 캐나다 DALLSA에만 독점 공급하고 있다.

디지털시네마 서버 제조사들도 미국의 Doremy, Doldy, Qube, 벨기에의 XDC, 홍콩의 GDC 등이 시장을 나눠 먹는다.

영화가 발전한 나라(미국) 혹은 지역(유럽)을 대표하는 회사가 하나씩 존재하는 형국이다.

그 외 전자산업 강국 일본을 제외하고 카르텔에 들어가지 못한다.

표준을 정하는 할리우드 메이저 연합체,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반도체 회사, 6개의 프로젝터 제조사, 5~6개의 서버 제조사, 카메라 제조사, 포스트프로덕션 소프트웨어 업체 등이 하나의 카르텔로 묶여 돌아간다.

많은 이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지만, 그 카르텔의 중심에 JHO Company Group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하라고 격려할 수도 없고....’


류지호는 한국이 틈새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길 바랐다.

암호화, 서버, 전송기술이 그것이다.

류지호의 충고를 듣는 영화인은 없다시피 했다.

다 지들만 잘났다.

따로 놀고 있다.

대기업이든, 영세 영화업자든.

손해를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작사, 배급사, 극장 모두 쉽게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네마로의 전환은 무조건 대기업이 유리하다.

충분한 자본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의체 구성이 중요한데....’


류지호로서는 박건호가 큰어른이자 중재자로서 업계를 잘 이끌어주길 바랄 수밖에.


❉ ❉ ❉


충무로에서 제작자 마인드를 가진 대표적인 감독을 꼽자면 강은석, 양성규, 류지호를 들 수 있다.

세 명은 연출에만 신경 쓰는 감독이 아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양성규 감독이 마케팅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무비서비스의 강은석 감독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는 기획단계부터 투자까지도 관여한다.

류지호가 프로듀서와 연출을 겸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영화팬은 없다.

로케이션 헌팅에서도 그런 성향이 두드러진다.

<민중의 적>를 찍을 때였다.

오페라 하우스 씬을 예술의 전당에서 촬영하려고 했었다.

사전에 예술의 전당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어찌된 일인지 촬영 직전에 가장 높으신 분의 ‘촬영 불가’ 한마디 때문에 번복됐다.

다른 촬영 후보지를 갑자기 찾아야 했다.

시나리오에서 예술의 전당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예술의 전당 측은 ‘전례가 없음‘만 반복했다.

갑작스럽게 약속을 파기한 예술의 전당 측에 항의했지만 불허 통지가 번복되지 않았다.


“공연장이 일반 공연장이라서....”


류지호는 이전에 한 차례 둘러봤던 안산의 공연장을 선택했다.


“괜찮아. 콘티를 사건과 캐릭터 위주로 다시 짜지 뭐.”


다른 감독 같으면 어떻게든 예술의 전당에서 찍게 만들어 달라고 화를 냈을 터.

류지호는 미련 없이 장소를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제작 파트에서는 끝까지 예술의 전당을 설득했다.

그 사이 류지호는 기존 오페라 하우스 씬의 콘티를 고쳤다.

류지호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높으신 양반들은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자주 뒤집으니까.

이미 B안, C안까지 마련해 둔 상태였다.

나중에 건너서 듣게 된 비화는 다소 허무했다.

한국의 클래식음악계가 예술의 전당에 압력을 가했단다.

품위와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 영화촬영을 포함해 기타 공연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를 공개해선 안 된다고.

선민의식이었다.

예술의 전당은 부와 유명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류지호 대신 클래식음악계에 굴복한 것이다.


”훨씬 많은 제작비가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그 정도 예산으로 <민중의 적>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기회비용에 대한 류지호 감독님의 빠른 판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민중의 적> DVD에 수록된 전하영 부사장의 회상이었다.

류지호는 까다로운 감독에 속한다.

대체로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다만 제작자 마인드가 있기에 의사결정이 빠르고 탄력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류지호의 플랜 B는 차선이 아니다.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응 계획)과도 다르다.

류지호의 플랜 B는 또 하나의 플랜 A이다.

때문에 서초동 예술의 전당으로 준비한 것도, 안산문화예술회관으로 준비한 것도 모두 플랜 A였다.

안산문화예술회관에서 촬영한 것이 본래 예술의 전당 콘티보다 밀도가 높다는 평가를 내렸다.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 공간을 강조하는 대신에 조규환의 감정을 따라가는 콘티가 훨씬 더 밀도 있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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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하라. +7 23.09.27 2,292 89 23쪽
628 안정 속의 변화. (5) +4 23.09.26 2,211 88 22쪽
627 안정 속의 변화. (4) +5 23.09.25 2,267 93 22쪽
626 안정 속의 변화. (3) +8 23.09.23 2,375 88 23쪽
625 안정 속의 변화. (2) +3 23.09.22 2,294 94 23쪽
624 안정 속의 변화. (1) +7 23.09.21 2,435 93 27쪽
623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2) +4 23.09.20 2,335 96 25쪽
622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1) +10 23.09.19 2,342 103 25쪽
621 포토라인에 서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5 23.09.18 2,367 100 23쪽
620 모른 척 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8 23.09.16 2,395 106 25쪽
619 비평가들이 싫어하면 관객이 좋아해. +4 23.09.15 2,319 108 24쪽
618 People Not Profit! +3 23.09.14 2,306 103 23쪽
617 우린 괴물이 아닙니다! +13 23.09.13 2,340 111 28쪽
616 Only One을 향하여! +6 23.09.12 2,331 112 24쪽
615 살아줘서 고맙다..... +8 23.09.11 2,383 105 29쪽
614 민중의 적 : EMBARGO. (14) +5 23.09.09 2,322 100 25쪽
613 민중의 적 : EMBARGO. (13) +4 23.09.08 2,204 92 26쪽
612 민중의 적 : EMBARGO. (12) +3 23.09.08 2,029 79 23쪽
611 민중의 적 : EMBARGO. (11) +6 23.09.07 2,169 97 24쪽
610 민중의 적 : EMBARGO. (10) +4 23.09.07 2,016 83 23쪽
609 민중의 적 : EMBARGO. (9) +4 23.09.06 2,217 97 23쪽
608 민중의 적 : EMBARGO. (8) +3 23.09.06 2,091 85 23쪽
607 민중의 적 : EMBARGO. (7) +6 23.09.05 2,228 92 25쪽
606 민중의 적 : EMBARGO. (6) +2 23.09.05 2,134 86 22쪽
» 민중의 적 : EMBARGO. (5) +7 23.09.04 2,300 87 24쪽
604 민중의 적 : EMBARGO. (4) +2 23.09.04 2,193 84 25쪽
603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395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84 73 24쪽
601 민중의 적 : EMBARGO. (1) +9 23.09.01 2,517 10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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