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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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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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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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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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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하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인사동의 꽤 유명한 한정식집.

류지호가 박건호와 임건희 전임 사장들과 저녁을 먹었다.


“이참에 은퇴하려고 했습니다.”

“아직 이르시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텃밭이나 가꾸며 여생을 보내려 했건만..... 끝까지 놔주질 않으시는군요?”


가온그룹 개편에서 두 사람은 각각 WaW와 나래안전에서 물러나게 됐다.

강제로 명예퇴직을 시킨 것은 아니다.

박건호 대표는 미추홀 전통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임건희 사장은 가온재단의 대표이사로 보직을 변경했다.


“WaW를 더 이끄실 수도 있는데 물러나시게 해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이 용기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두 분을 놓아드리고 싶지 않네요.”


전나래안전 사장 임건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놓을 정도로 공익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가온재단 이사장이 된 외삼촌을 도울 인사로 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 개편을 할 때 미추홀 전통문화재단을 류지호의 가족 재단인 다울재단 산하로 편입시켰다.

여러 사업을 추진하게 되는데,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 환수와 중국·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항하는 연구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조성 중인 미추홀 파크까지 관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으면서 사심이 없는 인사로 박건호 대표만한 인물이 없었다.


“국내 문화재 복원사업은 물론이고 무예24기 보존회 같은 전통무예연구 지원사업도 펼치셔야 할 거에요.”


2003년 수원화성과 연계하여 설립된 무예24기 보존회의 경우,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와 마상육기 전체를 수련하고 있다.


“미국 쪽 재단에서 남가주에 조성 중인 미추홀 파크가 개장하게 되면, 수련생들을 파견해 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해 볼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조금 알아보니까 무예도보통지와 관련해서 경당이니 십팔기보존회니 여러 복원단체들이 있더군요.”

“이사장님도 <복수의 꽃> 무예 자문에 참여했던 전통무예연구가 기억 하시죠?”

“아, 그 친구들이 무예24기 보존회에 있군요?”

“무작정 퍼주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미국 미추홀 파크에서 상설 공연을 펼칠 시범단을 그쪽에서 수련시켜줘야 하죠.”


공연 프로그램에는 십팔기뿐만 아니라, 국궁과 태껸, 씨름도 포함된다.

처음 계획은 한국의 전통정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내친 김에 한국 전통문화를 미국에 알리는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인교포사회와 빈민가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한·흑 화합차원에서 센트럴 지역 빈민들에게 일자리도 마련해 줄 생각이다.

임건희 사장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무주에 세워질 태권도 성지에 투자하시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나? 자네도 태권도인이잖아.”

“무주리조트에서 올라온 보고로는 거기 들어설 태권도성지라는 것을 위해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네요. 발 담그고 싶지 않아요. 대신 명인관에는 개인적으로 기부할까 생각 중이에요.”

“자네 스승님 때문에?”

“명인관에 헌액 된다면 기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명인관을 통째로 지어줄 의향도 있고 뭐 그래요.”


문제는 홍 관장이 태권도계 파벌싸움에 정나미가 떨어져 왕래를 거의 안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명인관 헌액을 거부할 수도 있다.

정부, 정치인, 전북도, 무주, 태권도협회, 태권도 연맹, 국기원까지.

태권도원(태권도 전당) 사업에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밀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썩 유쾌하지 않은 사연들이 뒤섞여 있다.


“태권도진흥재단인가 하는 곳에서 귀찮게 해서 화가 나신 건 아니고?”

“바쁘다고 핑계대면서 열심히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박건호가 화제를 돌렸다.


“허허. 감독님 배포는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임건희가 말을 보탰다.


“간척지에 도시를 통째로 건설할 생각을 하다니... 아산만을 개발한 경일도 못 한 것인데 말입니다.”


다시 박건호가 말을 받았다.


“가온그룹 계열사들이 힘을 모으면 잘해 낼 겁니다.”

“그럼요. 과장 좀 보태서 자고 일어나면 회사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하하.”


두 노인네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서 공익재단을 맡는 것에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어쩌나 조금은 걱정했다.

기우였다.

차라리 후련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문어발식으로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때가 있어요.”

“무분별한 차입경영도 아니고. 전반적으로 부채관리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래리 킴 회장이 어떤 인사인지는 류 감독이 더 잘 알지 않나?”

“두 분이 격려해주시니 힘 부쩍 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늙은이들이 할 거라곤 참견보다 격려가 아니겠습니까?”

“하하. 옳은 말씀이십니다.”


대기업 핵심 사업의 최고경영자를 하다가 은퇴를 하고 나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추락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류지호가 보기에 은퇴자들이 새로운 삶에 어떻게 연착륙할 수 있는지 본인에 맡겨두는 것도 도리는 아닌 것 같았다.

가온그룹은 이번 그룹개편으로 은퇴를 하는 고위임원들로 인해 퇴직임원 관리에 관한 매뉴얼을 새롭게 만들었다.

특정 계열사 임원들에게는 재직 중 취득한 정보에 대한 비밀엄수는 물론이고 재직했던 회사의 내부사정을 일정 기간 누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퇴직임원들은 주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거나 정보를 직접 다루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다.

퇴직자들에 의한 정보 유출이나 경쟁 기업들의 악용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이후 보안서약까지 받아놓는 것이다.

또한 사장급 이상은 1~2년간 고문역으로, 부사장급 이하는 자문역으로 위촉하기로 했다.

필요한 경우 5~6년 동안 상담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룹 차원에서 퇴직임원모임과 그들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을 별로도 운영하기로 했다.

퇴직임원들의 노하우를 썩히는 것도 기업 입장에선 아쉽다.

가온그룹을 위해 쌓아왔던 아이디어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거나, 다른 곳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울 작정이다.

특히 박건호 대표 같은 경우, 경영 현장을 떠나더라도 존재만으로도 기업의 이미지 재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업계 바깥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겠지만, 영화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임건희 전나래안전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보안업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향력은 건재할 터.


“아버지와 외삼촌 잘 부탁드려요.”

“저희가 할 말입니다.”


다울재단 이사장 류민상에게 박건호 대표는 천군만마다.

새롭게 출범하는 가온재단을 책임지게 된 심재우 역시 임건희 사장의 합류로 한결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과장 보태서 자고 일어나면 달라져 있을 정도로 가온그룹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90년대부터 대비한다고 했지만, 성장속도에 비해 그룹 시스템이 못 쫓아가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은퇴자 관리 부분도 그 중 하나였다.

그룹개편과 함께 처음으로 창업공신이랄 수 있는 이들이 은퇴하게 됐다.

그룹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었다.


❉ ❉ ❉


연초부터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일명 ‘연예계X파일’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연예계 최고스타 99명과 유망한 신인 26명의 신상정보를 정리한 파워포인트 문서다.

이미 2003년부터 리서치에 들어가서 작년 3월 본격적인 작성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가 처음 공개된 것은 작년 11월이었다.

오성그룹 계열 광고기획사 넘버원기획이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작성한 내부 보고서였는데,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소위 ‘카더라’ 통신에서나 볼 수 있는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 정보가 문건에 담겼다.

당연히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 하체가 짧고 다리가 안 예뻐서 치마 입으면 안 어울림. 자주 보면 싫증나는 얼굴. 사생활 문란, 스캔들 폭발직전. 호스트빠 출입 잦음. 정계 실력자 OOO가 스폰서임. OOO와 동거했음...


문서에는 연예인 개인의 사생활은 물론,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비하적인 표현까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심각한 인격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루머 항목에는 주로 스캔들이 적혀 있었다.

사실 확증된 것들이 거의 없는 시중에 떠도는 뜬소문일 뿐이었다.

증권가 찌라시보다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광고모델로서의 향후 가치를 논한 대목도 ‘주관적’인 것일 뿐.

당연한 것이다.

제아무리 미(美)의 기준이 획일화된 한국사회라고 할지라도.

파일에서 거론 된 연예인들의 매력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점수를 매겼다.


“광고 모델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동서리서치에 의뢰한 것인지 다른 의도는 전형 없었습니다.”


넘버원기획의 변명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외부 용역까지 줬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거지.”


WaW 엔터테인먼트나 ARAM 프로덕션에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겠다고 나서면 그 같은 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찌라시 수준의 연예부기자나 리포터 혹은 차연택 같은 비전문가에게 의존할 리가 없다.

진짜 전문가들, 연예계 현장 그리고 일반 대중들까지 폭넓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매우 전문적이고 디테일하게 작성할 것이다.

가십 위주의 보고서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의뢰로 나온 보고서라고 볼 수 없는 수준 낮은 보고서가 일명 ‘연예인 X파일’이었다.

그 같은 하찮은 수준의 보고서를 작성한 이면에 다른 속셈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다.

어쨌든 최초 유출범이 동서리서치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초 유출 이후로 포털 사이트 및 파일 공유 서비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서 급격히 확산됐다.

실명이 적시된 연예인 125명중 59명이 형사소송을 제기하며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다.

허위정보를 담은 자료를 배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파일제작에 관여한 넘버원기획과 동서리서치 대표 등을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 허위자류 제작·유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고소를 진행하는 공동 법률대리인들이 대중들에게 호소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중매체에 연예인들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자성을 촉구합니다!”


수많은 기획사와 매니지먼트들이 곤경에 처한 것과 달리 매니지먼트 CHAN은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스캔들과 루머를 정리한 소문 항목에서 특별히 흠잡을 만한 내용이 없었다.

언급된 소속 연예인 전부가 자기관리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매력/재능 항목에서 몇몇 여배우에 대해 키가 작다느니 가슴이 빈약하다느니 같은 묘사가 있었는데, 그걸 본 소속 연예인 몇 명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외모 지적에 크게 실망한 연예인을 위로하기 위해 매니지먼트 CHAN이 나서서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급하게 잡았다.

두 분야에서 모델을 가장 아름다고 매력적으로 묘사해 주기 때문이다.

마음에 상처를 달래주는 것 중에 금융치료만 한 것도 없고.


- 감독님!


수행원들과 함께 류지호가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 한 말씀 해주고 가시죠!


일본으로 영화를 찍으러 가는 걸 취재 나온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연예계 X파일’에 가 있었다.

류지호의 지인들이 파일에 이름을 많이 올렸기 때문이다.


“초고속인터넷 강국인 우리 사회의 정보화 현실과 문화수준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정보통신 기술을 가지고 겨우 이런 일이나 벌이는 것은... 국가적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고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 넘버원기획이 낸 사과문 발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건에 대한 인정에 불과했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포돼서 미안하다는 것인데, 당사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겁니다.“

- 가온그룹 차원에서 대응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매니지먼트 CHAN이 계열사이고, 리스트에 오른 연예인 가운데 감독님과 특별히 친분이 있는 배우들도 많지 않습니까?

“해당 연예인의 소속사가 알아서 처리할 사안이겠죠. 다만 기업윤리 실종을 단적으로 보여준 부분을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 넘버원기획으로부터 따로 사과를 받으신 바는 없습니까?

“내 이야기는 안 들어가 있던데... 혹시 들어가 있던가요?”

- ......

“수년 동안 광고모델로 기용하겠다고 툭하면 오퍼를 해서 골치 아팠는데. 드디어 모델로서 크게 메리트가 없는 모양입니다. 귀찮은 것 하나를 덜어내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일 것 같습니다.”


킥킥.


몇몇 기자가 작게 키득거렸다.

몇 번 공익광고를 찍긴 했지만, 상업광고는 절대 찍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류지호는 다음 질문이 나오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미안하게 됐다는 사과문보다는 솔직한 인정과 유출자에 대한 경위를 소상히 밝혔어야 했다고 봅니다. 기획사의 자료가 모그룹의 내부정보망에 유포된 경위와 최초 유출자라고 지목한 리서치 회사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한 진실을 밝혀야 했습니다. 국내 최대의 광고기획사의 위기대처라고 보기에 매우 모자란 대처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출국을 해야 해서.....”

-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따로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전말이 법정에서 밝혀질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건에 묻혀 관심 밖으로 사라지겠지만, 상처 입은 연예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있을지. 광고기획사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 ......

“이번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를 들썩였던 사건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범죄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수의 연예인이 치명적 피해와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었는데, 가해자와 책임을 물을 대상이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누가 납득을 할 수 있을까요?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이 아이러니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것에 대해 연예부 기자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을 터.

그래서 류지호가 짚어주기로 했다.


“가려내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면 아무리 큰 피해가 일어나도 속수무책이겠죠. 형태만 다르지 포털 사이트 댓글과 각종 커뮤니티 또 온라인 게임 채팅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질적인 댓글과 채팅글과 닮아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이번에는 연예인이었지만 다음에는 여러 분 중에 누군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쁜 일이 벌어지기 전에 관련한 법제화가 마련되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고우찬의 경호팀이 따라붙는 취재진을 차단했다.

류지호가 얼른 VIP 통로로 사라졌다.

어쨌든 문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연예인들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문서를 제작 의뢰한 넘버원기획은 연예인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보고서 제작에 동참했던 일부 기자와 방송 관계자들은 현업으로 복귀하지 못하게 된다.

이후 ‘연예계 X 파일’은 수많은 비난 속에서 수면 밑으로 잠잠히 가라앉는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두 번째 버전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어떤 불손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증권가 찌라시를 편집해 유포한다.

재벌가의 며느리, 톱스타 커플의 결별설, 연예인과 조폭과의 관계, 심지어 류지호와 레오나와 관련된 루머도 있다.

해외스타의 국내 방문 해프닝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스타까지 그 범위가 넓어진다.

연속해서 3탄도 나오고, 4탄까지 나오게 된다.

그 시점이 매우 묘했다.

국내 정치·경제 복잡한 현안이 불거질 때 문서 유출이 화제가 된다.

한국에서 연예인 사건사고는 주로 정치적 이슈를 덮기 위해 활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문건은 몰라도 후속 시리즈들은 어딘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고오오오.


전용기 창문 너머로 한국 땅이 보인다.

10년 넘게 장문식이 운영한 정보팀은 많은 일을 했다.

데본 테럴 역시 알게 모르게 한국의 사정에 대해 고급정보를 모아 전달했다.

정보업계에서 나래안전 시스템 정보팀은 공식적으로 해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온그룹 본사 기획조정실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실상은 전략기획1팀장 조준열이 나래안전으로 자리를 옮기며 더욱 은밀해졌지만.

올해 장문식팀이 모아놨던 정보가 한꺼번에 사용될 예정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정치인, 언론, 사법, 사학, 관료, 재벌까지.

‘연예계X파일’은 그런 일들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일이다.

가장 먼저 터질 사건은 사학재단 비리다.

YNTV 단독이 될 가능성이 높고, 후속 보도는 MBS <피디수첩>이 탐사보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이 LA와 하와이에서 언론사 사주 가문의 비리사건이 터진다.

주로 세금탈루와 비자금 관련 이슈다.

방점은 소위 ‘오성X파일’이라 불리는 검사 떡값 사건이다.

대형 이슈들로 정신이 없을 때 주요 입법을 성공시킬 계획이다.

특히 ‘오성X파일’ 이슈를 더욱 증폭시킬 정보를 대량을 풀어버릴 계획이다.

오성그룹을 잡자고 하는 작업이 아니다.

검찰과 모피아의 힘을 조금이라도 빼기 위해서다.

참여정부가 힘을 내길 응원할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과 모피아 척결에 나서만 준다면 몇 가지 법안을 통과시켜 개혁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장문식 팀이 그 동안 작업했던 것들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면 정권이 검찰과 모피아 개혁을 진행하는데 힘을 받을 수도 있다.


‘조 실장이 잘해내야 할 텐데.’


한꺼번에 모든 것들이 폭죽 터지듯 터져서는 안 된다.

뒤죽박죽 뉴스만 넘쳐나고 실속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스노우볼 굴리듯 절묘하게 컨트롤 되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데본 테럴이나 도널드 제이콥 같은 CIA 출신의 전략가가 지휘를 한다면 좋겠지만, 나름 전략기획통으로 잔뼈가 굵은 조준열이 충분히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뜻대로 안 된다면 그것 또한 운명인 것이고.


‘그나마 외환보유고가 매우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네.’


IMF 구제금융을 받아본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인지, 한국의 금융당국에서 외환관리에 매우 공을 들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걱정을 떨칠 순 없었다.

이전 삶에서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를 10년 이상 침체시킬 정도로 파괴적이었으니까.


‘내가 한국경제를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과 경기침체에 빠지면,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발 앞서 미래를 대비해 두었다.

TIMELY - STREAMFLICKS - NeTube.

혹시나 JHO Company Group이 정체를 겪게 된다면 활로를 뚫어줄 사업들이다.


우드득.


류지호는 가볍게 목을 풀며 고민들을 털어냈다.

전용기 집무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표지에 <샤모(シャモ)>라는 타이틀이 달려있는 대본을 꺼냈다.

한자로는 軍鷄(군계), 우리말로는 싸움닭이다.

태국어 샴에서 나온 말이다.

태국은 일본과 에도시대 때부터 교역을 해온 나라다.

태국 싸움닭도 당시에 들어왔는데, 원래 태국의 옛 지명인 ‘샴(Siam)’에서 수입된 닭이란 의미에서 ‘샤모‘로 불렸다.

일본에서 샤모는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 저 젊은 사람 샤모(シャモ) 같아!


성격이 급하고 주먹이 앞서는 성격을 지칭한다.

싸움닭을 빗댄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 만화는 꿈도 희망도 없는 막장의 삶을 사는 주인공을 내세웠다.

극단적으로 어두운 전개, 사실적인 묘사가 강한 하드보일드 리얼 격투물이다.

제한적으로 알려진 소문만으로 사람들은 <록키>류의 격투기 영화를 기대했다.

류지호는 그렇게 영화를 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차라리 <레이징 불> 같은 영화로 가면 갔지.’


물론 격투기 장면은 박력 넘치고 처절하게 그릴 생각이다.

반면에 주제는 조금 복잡하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성악설‘에 기반 하긴 하겠지만.


- 우리의 악은 부조리한 사회로부터 왔다.


이와 같은 논리는 아니다.

악하기 때문에 선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포하는 극단적인 비관주의가 아니다.

순자의 가르침에 조금 더 가깝다.

법가에 영향을 끼쳤던 그 사상.


- 인간이란 본디 악하기 때문에 법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훈육하고 계도해야 한다.


주인공 나루시마 료 주위를 감싸고 있는 세력, 즉 군국주의자(가라데 스승), 일본 가두우익(야쿠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낼 생각이다.

일본 우익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법이나 사회적 규범 또 교육을 통해 계도하지 않을 경우 한계를 모를 정도로 막장이 된다는 걸 암시한다.

원작을 충실히 따르긴 할 테지만, 몇몇 설정은 비틀 예정이다.


[군국주의, 가두우익, 일본방송의 선정주의, 쇼 비즈니스, 가라데, 청춘.]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류지호는 일본에서 만들 영화를 통해.


- 미래는 일본 청년들 너희 것인데, 왜 기성세대가 짜놓은 판 위에서 춤을 추려하느냐. 방구석에 처박혀서 넷우익 짓거리 하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


일본 청년들만이 아니라, 류지호의 조국 더 나아가 미국의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류지호는 원작에 미묘하게 묻어 있는 전공투 투쟁을 조금 더 적나라하게 묘사할 작정이다.

일본의 학생운동 세대는 이후 단카이 세대가 되어서 일본 고도경제성장의 꿀을 빨았다.

한국과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와도 비슷하다.

급진적인 일부가 인생을 망치기도 했지만, 최선두에 섰던 이들은 정치권이나 예술계로 빠졌고, 어영부영 발을 걸치던 이들은 21세기가 되어 기득권층이 되었다.

부조리에 맞섰지만, 그 자신이 부조리가 되어가는 아이러니.

류지호 영화에서 유독 안티 히어로들이 부각되는 것은 그런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군계>에서 나루시마 료는 매우 야만적이다.

한편으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위선적이며 또 위악적이다.

야만이 좋다면 문명 안에서 야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문명 밖에서 야만을 누리며 살면 된다.

문명을 누리며 야만을 외치는 사람들은 위선과 위약자보다 더 이중적인 사람이다.

류지호는 나루시마 료를 통해 일본(한국/서구권 모두)사회의 위선과 위악을 들춰낼 생각이다.

그로 인해 일본 관객들이 불쾌하고 찝찝한 영화라고 규정할지라도.


작가의말

내일부터 추석 연휴입니다.

다음 주 연참을 하려고 했으나, 연휴 동안에도 매일 한 편씩 올리는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명절 보내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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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0 재밌어 질 것 같네.... (1) +8 23.09.28 2,195 104 25쪽
»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하라. +7 23.09.27 2,293 89 23쪽
628 안정 속의 변화. (5) +4 23.09.26 2,211 88 22쪽
627 안정 속의 변화. (4) +5 23.09.25 2,267 93 22쪽
626 안정 속의 변화. (3) +8 23.09.23 2,375 88 23쪽
625 안정 속의 변화. (2) +3 23.09.22 2,295 94 23쪽
624 안정 속의 변화. (1) +7 23.09.21 2,435 93 27쪽
623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2) +4 23.09.20 2,336 96 25쪽
622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1) +10 23.09.19 2,343 103 25쪽
621 포토라인에 서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5 23.09.18 2,367 100 23쪽
620 모른 척 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8 23.09.16 2,396 106 25쪽
619 비평가들이 싫어하면 관객이 좋아해. +4 23.09.15 2,319 108 24쪽
618 People Not Profit! +3 23.09.14 2,307 103 23쪽
617 우린 괴물이 아닙니다! +13 23.09.13 2,340 111 28쪽
616 Only One을 향하여! +6 23.09.12 2,332 112 24쪽
615 살아줘서 고맙다..... +8 23.09.11 2,383 105 29쪽
614 민중의 적 : EMBARGO. (14) +5 23.09.09 2,322 100 25쪽
613 민중의 적 : EMBARGO. (13) +4 23.09.08 2,204 92 26쪽
612 민중의 적 : EMBARGO. (12) +3 23.09.08 2,029 79 23쪽
611 민중의 적 : EMBARGO. (11) +6 23.09.07 2,169 97 24쪽
610 민중의 적 : EMBARGO. (10) +4 23.09.07 2,017 83 23쪽
609 민중의 적 : EMBARGO. (9) +4 23.09.06 2,217 97 23쪽
608 민중의 적 : EMBARGO. (8) +3 23.09.06 2,091 85 23쪽
607 민중의 적 : EMBARGO. (7) +6 23.09.05 2,228 92 25쪽
606 민중의 적 : EMBARGO. (6) +2 23.09.05 2,135 86 22쪽
605 민중의 적 : EMBARGO. (5) +7 23.09.04 2,300 87 24쪽
604 민중의 적 : EMBARGO. (4) +2 23.09.04 2,194 84 25쪽
603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395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85 73 24쪽
601 민중의 적 : EMBARGO. (1) +9 23.09.01 2,517 10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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