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1 09:05
연재수 :
897 회
조회수 :
3,821,127
추천수 :
118,499
글자수 :
9,933,002

작성
23.09.02 09:05
조회
2,394
추천
104
글자
24쪽

민중의 적 : EMBARGO.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내가...? 거 뭐시냐... 나는 류 감독한테 찍힌 거 아니었어?”

“최근 무척 실망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장? 갑자기....?”


송일성이 채워준 소주를 단 번에 목뒤로 넘긴 류지호가 안주를 입에 넣을 생각도 안 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현재의 사장을 YNTV 미디어 법인의 대표 이사로 올리고, YNTV는 창립시기부터 몸담고 있는 선임기자들 중심으로 보도국을 재정립하길 바랍니다.”


YNTV 미디어는 작은 회사가 아니다.

자회사에 뉴스전문 채널, 재외동포 위성방송, YNTV날씨, N타워, YNTV연예채널을 두고 있다.

현재 사장은 70년대 진보신문 외신기자를 시작으로 지역민방 사장을 거쳐 작년에 YNTV 대표이사로 취임한 인물이다.

이전 삶에는 정부입김이 닿는 낙하산 인사가 사장으로 오기 전까지 비교적 YNTV을 잘 이끈 것으로 평가받은 인물이었다.

다만 언론인이라기보다는 전문경영인의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류지호의 성에 차지 않았다.


“후배님, 나한테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내가 초심으로 돌아가서...”

“선배님은 관심 없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송일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장문식은 소주를 마시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병 주고 약주고... 들었다 놨다....

류지호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송일성을 길들이려고 하고 있다.


“회사에서 왕따라도 당해서 퇴직하길 바라는 거냐?”

“그럴 리가요.”

“편집국장과 부국장 중에서 찾아보면 되지 않아? 난 부장이라고.”

“그 사람들은 기자잖아요.”

“난 기자 아니냐!”

“선배의 펜은 둥글둥글하죠. 아니 둥글둥글 해졌죠. 아닙니까?”


YNTV 내부인사들 중에서 후보를 몇 명 추렸다.

대부분이 강성들이다.

힘을 쥐어주면 폭주를 할 것 같았다.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명분으로 휘두르는 언론의 폭주 역시 다른 의미에서 사회폭력이다.

그나마 제어가 될 만한 인물이 오랜 인연인 송일성 정도다.


꿀꺽.


송일성이 답답하다는 듯 소주를 연거푸 따라 마셨다.

류지호가 그의 빈 잔을 채우면 말을 이었다.


“YNTV은 보도 전문 채널이죠.”


딴에는 한국의 CNN을 표방하고 있다.


“근데 대표할만한 탐사보도가 없어요.”


회사 내부에서도 탐사 보도 프로그램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저널리즘의 꽃이 ‘탐사보도’임에도.


“작년에 새로운 사장이 오고, 기획취재팀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인원 좀 보강해서 데일리 이슈 대응력을 높이는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요?”

“세간에 뭔가 큰일이 터지면 YNTV을 찾는다는 그런 이미지가 강해. 시의성 있는 사안에 대한 신속한 보도와 더불어 여러 가지 시각을 있는 그대로 방송하고, 시청자 제보 같은 부분이 YNTV의 강점이야. 어떤 사안에 대한 이념적 편향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주고 여러 가지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채널이라는 것이 YNTV 하면 떠오르는 채널 이미지라고.”


딴에는 회사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보이는 송일성이다.


“탐사보도를 저널리즘의 원형이라고 생각해요. 일반적 보도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객관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들추어내고, 사건과 사고의 맥락을 이해하도록 짚어 줄 수 있으니까.”


객관성과 심층취재가 담보되지 못하면 대중 선동으로 전락할 수가 있다.

그로 인해 치르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수도 있고.

그래서 해외 매체의 탐사보도는 대체로 일정한 지식수준을 갖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다.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의 이면을 들춰내서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견이 필요하니까.


“우리의 경쟁력은 실시간 뉴스와 속보야.”

“누가 YNTV의 실시간 뉴스와 속보를 포기하랍니까? 저녁 시간 뉴스는 지상파와 비교해 경쟁력이 없잖아요. 주요 공공장소나 농협 같은 업장 위주로 점유율을 유지하는 주제에 무슨 CNN을 꿈꿉니까?”

“솔직히 <그것이 알고 싶다>나 <피디수첩>과 경쟁할 만한 취재력이나 네트워크가 없어.”

“언제까지 통신사에서 주는 뉴스 받아서 내보낼 겁니까? IMF를 거치며 힘들었던 내부사정도 어느 정도 정상화 되었고, 조직도 정비되지 않았어요? 이제 기자들이 역량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대주주가 광고 많이 따오라고 압박하는 것은 들어봤어도 취재역량을 강화하라고 주문하는 경우는 금시초문이다.


“심층적인 보도를 내가 꺼낸 것은 더 이상 기계적 균형에 매몰된 1분 30초짜리 수박 겉핥기식 뉴스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성역 없는 취재, 진실에 다가가는 보도는 뉴스 소비 행태가 빠르게 변하는 언론 환경에서도 아주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류지호는 공공성이니 객관성 담보 같은 말장난 대신 경영적 측면에서 이야기했다.

곧 뉴스 소비가 포털사이트로 일방적으로 쏠리게 되는 걸 알고 있는 류지호다.

지금과 같은 경영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포털 중심의 뉴스의 저질화에 맞서려면 심층과 탐사가 답이다.


“탐사보도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적 함의를 제대로 읽어내고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기존 언론취재 관행인 출입처 취재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이 말은 정보 공급자 중심의 뉴스에서 시청자와 취재처 이해관계가 덜한 자유로운 취재팀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보도를 통해 구현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YNTV의 기존 뉴스 보도와 다른 차별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류지호는 공정보도니 가치중립을 주장하지 않았다.

콘텐츠 혁신안에 대한 내용을 주로 이야기했다.

선도적으로 사회 이슈를 고민하고, 그걸 콘텐츠로 구현해 내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전 보도국으로 확산시켜나가는 프로세스.

장기적으로 언론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탐사보도는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

“PP 인수하는 쓸데없는 짓만 더 하지 않는다면 보도역량을 더 강화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신임 사장은 실시간 속보에 비중을 뒀던 기존 노선에서 깊이 있는 보도를 강조하고 있어. 이해 당사자 인터뷰와 취재기자의 뉴스 해설, 토론 같이 뉴스 심층성을 강화하는 코너를 배치하고 있기도 하고. 부족한 취재 인력에 탐사보도까지 해야 하는 취재기자들은 업무 부담이 가중돼 뉴스 질이 하락할 수도 있단 말이야.”

“기획취재팀 인원이 몇 명인데요?”

“일곱 명.”

“3배까지 못 늘립니까?”

“탐사보도 하려면 베테랑들이 붙어야 되는데... 쉽지 않을 거야.”

“쉽지 않은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왜 탐사보도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데? 장 상무가 지상파 탐사보도팀과 쿵짝을 잘 맞추고 있지 않나?”

“단발로 건드리고 은근슬쩍 발 빼는 경우가 많아요.”


탐사보도는 후속 취재와 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슈를 휘발성으로 날려버려선 안 된다.


“삼봉백화점 붕괴 후속 보도를 어떻게 했죠? 죽기 살기로 물고 늘어져서 많은 진실을 밝혀냈잖아요? 가장 최근 국회의원들 외유성 해외출장 실태를 다룰 때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전수조사도 하고, 출장결과 보고서를 연속 시리즈로 공개해 아주 제대로 만천하에 까발렸고요.”

“어흠!”


장문식이 헛기침으로 주목을 끌었다.

자신이 큰 보탬이 됐다고 시위하는 것이다.


“정치 사안에 온 역량을 집중하라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대략 15만 점 정도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확인이 불가능한 개인 소장 문화재까지 포함하면 어느 정도가 될지 알 수 없고. 이런 사안을 끝까지 추적해 알리고, 관계당국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나서주길 촉구하는 것도 의미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일련의 탐사보도는 결국 YNTV 뉴스 신뢰를 재정립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글쎄... 그런 건 아무래도 지상파가.”

“포털 때문에 뉴스 미디어 환경이 크게 바뀔 겁니다. 기존 관습을 답습하면 YNTV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BBC도 아니고.... 24시간 뉴스만 전달하는 채널인데... 우리는 YNTV만 보면 이슈와 사건이 정리가 되더라... 사건 정리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거나 이념적 편향성에서 자유롭더라...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목표고 목적이라고.”

“그래서 또 한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사장에게 해야지 왜 나한테 자꾸 그러는데?”

“온라인 뉴스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고민해 봐야 합니다.”

“우린 신문을 발행하는 언론사와 달라.”


한국의 포털이 뉴스를 모조리 빨아들인다.

뉴스전문을 표방하는 YNTV는 포털 뉴스와의 차별화를 추구해야 한다.

얼마 안 가서 젊은층이 텔레비전을 안 보는 시대가 온다.

젊은층을 유인하기 위해서 타깃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타깃을 정하지 않고 출입처 발 기사를 쏟아내는 종합 일간지형 뉴스와 달리 특정한 니즈를 파악해 이에 특화된 뉴스를 공급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선거 보도를 해 봐서 나보다 잘 알겠지만. 우리 언론에서도 점점 팩트체크가 중요해지고 있어요. 언론의 정파적인 풍토 때문에 협업이 나오기 힘들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국가기관이 나설 수도 없고, 국가가 지원하는 언론진흥재단 같은 기관이 하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지요. 정파성이 덜한 곳에서 해야 하는데, 일단 YNTV 정도밖에 떠오르는 곳이 없어요. 민간의 언론정보연구소가 있지만... 차후 중립적인 언론관련 연구소와 협업을 추진하긴 해야겠죠.”


이전 삶에서 팩트 체크 시작은 가짜뉴스가 활개 치는 2010년 대 중반 미국과 프랑스였다.

언론과 독립된 기관이 Googol, 페이스노트와 협업을 통해 신고가 들어오면 검증하는 방식의 팩트 체크 서비스를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2017년 경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에서 팩트체크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 분야의 로튼 토마토라고 아세요?”

“알지.... 근데, 나는 사장을 할...”


송일성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류지호는 자기 할 말을 늘어놨다.


“그것처럼 뉴스를 이용하는 일반 대중들의 뉴스 신뢰도도 따로 표시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 봤어요. 왜 대중은 뉴스기사를 평가하거나 신뢰에 대해 의견을 남길 수 없는 겁니까? 쌍방향 소통의 시대에. 뉴스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공급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거짓과 진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뉴스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매체가 다양해지면 소위 찌라시급 뉴스도 지금보다 더 늘어나게 될 겁니다.”


이용자들이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정보를 올려놓으면, 언론사가 이를 검증한 내용을 싣고 사실, 대체로 사실, 사실 반 거짓 반, 대체로 거짓, 거짓 등 척도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

류지호가 생각한 팩트체크 방식이다.

가장 좋은 것은 많은 언론사가 참여해 교차 검증하는 것인데.

그 부분은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레거시 미디어가 온라인으로 옮겨갈 것을 염두에 두고 고민한 겁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생산자 중심의 뉴스가 아니라 유저 중심의 뉴스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장기적으로 뉴미디어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송일성은 혼이 쏙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도깨비 놀음도 아니고 YNTV 사장 자리에 앉혀주겠다니.

게다가 언론사의 미래까지도 걱정해주고 있다.


"날 어딜 봐서 사장에 앉히겠다는 건지... 날 믿어?“

“최근 하는 거 봐서는 못 믿죠.”

“그런데, YNTV 뉴스채널을 내게 맡긴다고?”

“누가 맡긴답니까? 회사를 경영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지. 선배는 저 옛날 삼초처럼 초치기의 달인이 되어버려서 기자로서는 신뢰가 없습니다.”


초치기는 기사에 양념 같은 표현을 구사하는 걸 의미했다.

즉 약간의 과장, 흥미를 유발시키는 단어 사용을 일컫는다.

그걸 통해 수많은 기레기들이 뉴스기사를 수준이하의 글짓기로 만들고 있다.


“재미없는 기사를 어떤 독자가 좋아해. 그러다 시청률 안 나오면 광고도 안 붙고. 회사는 쫄딱 망해야 하나?”

“맛을 내주는 양념이 요리 재료 자체까지 망가트리니까 그렇죠.”

“삼초는 또 어디서 들었대.”

“기자 영화 찍는 놈이 취재를 안 했을까요?”

“국장이 괴씸죄를 씌워서 너희 조지면.”


류지호는 가만히 있는데 장문식이 발끈했다.


“조져보라고 해봐 어디. 일단 광고 다 빼고, 언론중재위원회와 민사소송으로 대응하고. 막말로 YNTV 기자 중에 출입처에서 접대 안 받아본 기자 놈 없을 걸? 일부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 떡값조로 선물도 받고 있겠지. 기업 후원으로 해외 출장 가는 기자 놈들은 어떻고. 과천에 사회부 기자들 잘 가는 식당 이름 대봐?”


류지호는 한 술 더 떠서 서초동 검사들과 검찰청 출입기자들이 회식하는 룸싸롱도 말해보라면 말해볼 수 있다.

검찰청 부장들이 자기 팀 검사들 회식 때 기자들도 부른다.

그때 20만 원 든 봉투를 출입기자들에게도 돌린다.

검찰 특활비에서 나가는 돈봉투는 평검사만 챙기는 것이 아니다.

검찰청 출입기자들도 용돈조로 받아 챙긴다.


“옛날에나 그랬지 지금은 안 그래.”

“부모님 명예 걸고 장담할 수 있어?”

“왜 부모님을 끌어들이고 그러나....”

“이놈이나 저놈이다 같다면, 기왕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낫지 않겠어? 안 그래 송 부장아?”


결국 송일성은 못 당하겠다는 듯 항복했다.

송일성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거 봐.”

“뭘 봐요?”

“내 말이 맞잖아.”

“무슨 말?”

“우리 후배님은 영화감독보다 가온그룹 총수가 더 어울린다니깐. 직접 경영일선에서 지휘하면 오성그룹도 발아래 둘 걸.”


류지호는 자신이 할 말을 충분히 했다고 여기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도 오성그룹은 발아래 두고 있어. 지금 JHO 무시해?”

“그래그래. 장 상무 말이 백번 옳다!”


이후로 세 사람은 별 이야기 없이 소주를 나눠 마셨다.

장문식이 취기가 살짝 오른 송일성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돌아왔다.


“진짜 송 부장 사장시키시게?”

“내가 밀어준다고 되겠어요?”

“누가 감히 보스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고.”


YNTV 사내에서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생 좀 하겠죠.”

“고생 정도가 아닐 텐데... 일성이 혼나보라고 일부러....?”

“회사 내에서 신망은 좀 있던가요?”

“쟤가 펜은 많이 무뎌졌어도 존심 하나로 사는 놈이요. 후배들도 잘 챙기고. 그렇다고 우리 편인지는 잘 모르지만서도.”

“우리 편이 뭐가 중요해요.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죠.”

“으하하. 것도 그러네.”

“뇌물 주고, 온갖 향응 접대하면 쉽죠. 나중에 반드시 탈납니다. 심정적으로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가려운 곳을 슬쩍 긁어주는 게 진짜 선수에요.”

“송 부장이 YNTV 사장 자리에 욕심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대....?”

“재정이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YNTV 경영자라면 회사 외형 키우는 것보다 뉴스 보도에 더 투자를 많이 할 거라고. 와이드넷 인수 때도 혼자 반대했다고 하고. 그 자금으로 신입 기자 채용을 늘리자고 주장했다나.”

“편집국장이 못 될 바에야 경영 쪽으로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암.”

“앞으로 장 상무 팀이나 JHO 한국 지사는 직접적인 정보는 주지 마세요. 기본 소스만 넌지시 던져놓고, 탐사보도팀이 파헤치도록 외곽 지원만 하는 걸로 해요.”

“아유! 이제 왁구 짠 다고 돌아가지도 않는 짱구 굴리지 않아도 되겠네.”

“연말이나 연초 대규모 인사이동 때 장 상무도 자리를 옮기게 될 겁니다.”

“나도 재정이처럼 유배 보내시려고....?”

“표면적으로 나래안전 관리 책임을 묻는 걸로 할 겁니다.”

“감수해야지 별 수 있겠나 싶고... 뭐 그러네.”

“뭘 감수해요? 하도 여기저기 천지분간 못하고 쑤시고 다녀서 검찰이고, 국정원이고, 경찰에 다 드러난 주제에.”

“쩝. 내가 오랫동안 정보팀 굴리긴 했지요.”

“조준열 과장 어때요?”

“준열이 좋지. 가방 끈도 길고, 잔머리도 잘 돌아가고, 나래안전의 돌대가리들을 잘 이끌긴 하겠어. 이쪽 바닥에 알려진 것도 없고. 후임 잘 찍으셨네.”

“조 과장을 나래안전 경영지원실장으로 발령 내고, 장 상무는 얼마 전 인수한 밴쿠버 호텔 부사장으로 보낼 겁니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이왕이면 홍콩이나 마카오...”

“채 사장님 계시는 에티오피아나 콜럼비아로 보내드려요?”

“아닙니다. 캐나다 아주 좋아합니다. 365일 스키 타고 좋겠네. 아주~”


밴쿠버는 비교적 온화한 기후다.

스키는 겨울철에만 즐길 수가 있다.

실제 밴쿠버는 여름이 좋다.

겨울에는 해도 일찍 지고,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좌천이 아니라 승진 발령 아닌가....?”

“가보면 알아요. 규모는 꽤 큰 편인데, 4성급 호텔이라 전주 정도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만만한 신문사 기자 몇 데리고 룸빵 가서 밴쿠버 호텔을 세계적인 호텔로 키워놓고 당당하게 한국으로 복귀하겠다 뭐 이런 뻐꾸기 좀 날리면 되겠지요?”

“뻐꾸기를 날리든 나팔을 불어재끼든 그건 장 상무가 알아서 하고, 직속으로 움직이던 직원들은 데리고 가지 말고 다 흩어버리도록 해요.”

“완전히 새판을 짤라고....?”


황재정을 무주로 내려 보낼 결심을 하면서, 류지호는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고민했다.

간부급 이상의 인사 정체도 해소하고, 육성한 인재들을 그룹 경영에 좀 더 폭넓게 참여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략기획실에는 사업부나 자회사 간 흡수통합 아이디어도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미국발 금융위기 대비 차원에서 그룹 내실화를 고민 중이다.

장문식이 운용하던 정보팀을 진즉 개편했어야 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사실 그 쓰임도 다 했다고 볼 수 있고.

장문식 팀은 지난 10여 년 간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17대 국회위원 선거에서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

가온그룹의 정보수집 활동은 더욱 은밀해 질 필요가 있다.


‘권력의 뒤를 캐는 건 이제 쫑이다.’


현실적으로 적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만들지 않는 것은 힘들다.

따라서 적대적인 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외적으로 드러난 정보수집 활동을 축소하고,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기로 했다.


“자꾸 깔짝대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실는지....?”

“유림 멀티플렉스?”

“애새끼들이 오냐오냐 커서 그런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검사가 끼어있다고요?”

“꼴에 성진그룹이라고 중견기업 오너 사위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뭘 할 수 있는데요?”

“할 수 있는 게.... 없지요, 아마?”

“모여서 사업을 한다는 게 겨우 3~6개관 멀티플렉스 몇 개 묶어서 극장 체인 사업한다면서요?”

“뽕이나 연예인 지망생 후린 걸로 망신 주는 선에서 마무리 할까요?”

“알아서 하세요.”


마약사범은 제조 및 밀매가 아니라면 1~2년 실형이 나온다.

횡령·배임 역시 50억 미만이라면 대개 최대 3년 정도 실형을 살고 나온다.

대형 로펌과 계약해 재판을 벌이면 형량은 더 준다.

장문식이 망신 준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음주뺑소니를 저질러도 6개월 살고 집행유예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암튼 장문식의 한국에서 마지막 임무가 결정됐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성영대 패거리를 치워버리는 일이다.

장문식팀의 전문분야다.

별 문제없이 처리할 것이다.

그룹과 전략기획실은 권력실세와 딜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잔챙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 ❉ ❉


“진짜 일을 잘 해.”


류지호는 조감독 이동화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출부가 가져온 로케이션 헌팅 자료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원하는 분위기와 느낌을 제대로 파악했고, 촬영 여건까지 함께 고려했다는 것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며 영화계에도 전문 로케이션 매니저나 업체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로케이션 매니저들은 영화감독이 원하는 장소를 제대로 찾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광고, TV드라마, 영화의 로케이션 콘셉트 자체가 다르다.

공간의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큰 편이다.

때문에 충무로는 연출부와 제작부가 여전히 발품을 팔며 로케이션 헌팅을 하고 있다.


“감독님이 무엇을 원할지 몰라서 이 만큼 준비했어요.”


대체로 충무로 연출부들의 마인드다.

로케이션 매니저는 섭외가 불가능한 지역은 아예 후보군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충무로 연출부는 섭외가 불가능한 것 따위는 무시하고 일을 한다.

게다가 로케이션 헌팅은 센스가 필요한 분야다.

로케이션 헌팅으로 놀라운 미장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헌팅이 영화의 절반이다.”


그 같은 믿음으로 영화에 딱 떨어지는 공간을 찾아 추적 작업을 벌인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영화 로케이션 촬영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막무가내였다.

감독이 점찍은 공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촬영허가를 따내야 했고, 섭외가 틀어지면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촬영을 강행해야 했다.

모든 장소가 확정되고 크랭크인 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감독과 주요 스태프들이 함께 사전 헌팅 회의를 하고 로케이션 계획을 미리 짜는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유럽 쪽에서는 로케이션 헌팅 행위에 척후(Scout)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단순히 둘러보는 수준이 아니라 깊숙이 탐색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지나치게 영화적 공간처럼 보이는 곳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지나치게 현실성, 개연성에 집착하다보니 공간 구성이 재미가 없다.

반면에 류지호, 이명수, 공진형, 박지욱, 김재윤 감독 등 일명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리얼리티와 함께 ‘영화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들 영화의 미장센은 동시대 다른 한국영화보다 훨씬 풍부하고 상징적이다.

영화에서 도시나 지역은 그 자체의 역사성과 이미지로 인해 캐릭터와 서사를 갖기도 한다.

미국의 뉴욕, LA, 시카고, 디트로이트,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체코의 프라하 같은 도시는 어떤 영화에서 그 자체로 서사다.

한국에서는 박진택 감독의 <친구>가 부산이란 도시를 서사로 제대로 활용했다.


“2년 후가 기대되네.”


북미에서 <괴물>이 개봉한 후의 반응이 기대가 되는 류지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울 한강의 거대한 지하공동은 실재하는 공간이다.

이전 삶에서 북미 영화팬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한 나라의 수도를 관통하는 강의 너비와 길이에도 놀랐다.

그렇기에 실제 괴물이 살았다는 오해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서울시민에게는 매일 지나치는 쓸데없이 길기만 한 한강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흥미로운 강이다.

영화감독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동물 CG에 독보적인 기술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Hues & Rhythm Studios가 한강괴수를 창조할 예정이다.

공진형 감독 특유의 해학과 Hues & Rhythm Studios의 VFX가 결합해 이전 삶보다 훨씬 뛰어난 영화적 재미를 주지 않을까 류지호의 기대가 무척 컸다.


“동화야! 함께 로케이션 헌팅 비디오 보자.”


작가의말

주말 잘 보내십시오.

다음 주에도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0 재밌어 질 것 같네.... (1) +8 23.09.28 2,195 104 25쪽
629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하라. +7 23.09.27 2,292 89 23쪽
628 안정 속의 변화. (5) +4 23.09.26 2,210 88 22쪽
627 안정 속의 변화. (4) +5 23.09.25 2,266 93 22쪽
626 안정 속의 변화. (3) +8 23.09.23 2,374 88 23쪽
625 안정 속의 변화. (2) +3 23.09.22 2,294 94 23쪽
624 안정 속의 변화. (1) +7 23.09.21 2,435 93 27쪽
623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2) +4 23.09.20 2,335 96 25쪽
622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1) +10 23.09.19 2,342 103 25쪽
621 포토라인에 서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5 23.09.18 2,367 100 23쪽
620 모른 척 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8 23.09.16 2,395 106 25쪽
619 비평가들이 싫어하면 관객이 좋아해. +4 23.09.15 2,318 108 24쪽
618 People Not Profit! +3 23.09.14 2,306 103 23쪽
617 우린 괴물이 아닙니다! +13 23.09.13 2,340 111 28쪽
616 Only One을 향하여! +6 23.09.12 2,331 112 24쪽
615 살아줘서 고맙다..... +8 23.09.11 2,382 105 29쪽
614 민중의 적 : EMBARGO. (14) +5 23.09.09 2,321 100 25쪽
613 민중의 적 : EMBARGO. (13) +4 23.09.08 2,203 92 26쪽
612 민중의 적 : EMBARGO. (12) +3 23.09.08 2,029 79 23쪽
611 민중의 적 : EMBARGO. (11) +6 23.09.07 2,168 97 24쪽
610 민중의 적 : EMBARGO. (10) +4 23.09.07 2,016 83 23쪽
609 민중의 적 : EMBARGO. (9) +4 23.09.06 2,216 97 23쪽
608 민중의 적 : EMBARGO. (8) +3 23.09.06 2,090 85 23쪽
607 민중의 적 : EMBARGO. (7) +6 23.09.05 2,227 92 25쪽
606 민중의 적 : EMBARGO. (6) +2 23.09.05 2,133 86 22쪽
605 민중의 적 : EMBARGO. (5) +7 23.09.04 2,299 87 24쪽
604 민중의 적 : EMBARGO. (4) +2 23.09.04 2,193 84 25쪽
»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395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84 73 24쪽
601 민중의 적 : EMBARGO. (1) +9 23.09.01 2,516 105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