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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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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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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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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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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민중의 적 : EMBARGO. (1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감독님, 마음대로 찍으십시오!”


비서실장이 부천시장을 만난 다음날 곧바로 태도가 달라졌다.

당초 허가와 달리 상동의 왕복 6차선 중 5차선을 두 블록이나 통제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했다.

공무원들이 쩔쩔매면서 모두 감당했다.

인근 주민들이 달려와 항의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사고 없이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좁은 앵글은 여주에 조성된 종합촬영소 타운 도로에서 촬영했다.

최종적으로 종합촬영소에 만들어 놓은 김블(Gimble) 위에 차량을 올려놓고, 합성 소스를 촬영해 연결하면 완성된다.

대략 3분 20초의 카 체이스를 예상하고 있다.

여주의 종합촬영소 타운 도로에서 촬영할 때, 짬을 내서 양수리 종합촬영소 춘사관 개관기념식에도 참석했다.

기념식 중간에 문화훈장 수여식이 거행되었다.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김우혁,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아시스>로 최우수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이창석 감독, <올드보이>의 박진우 감독, 류지호 감독이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또한 <오아시스>의 진소리 배우와 제작사 명호강, <올드보이>의 박무영 배우가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원래 이때 훈장 수여가 있었나?’


이전 삶에서 딴 세상의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뭘 해도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문화훈장에는 세종대왕 얼굴이 들어가 있다.

무공훈장에는 투구 문양이, 산업훈장에는 닻과 톱니바퀴 문양이 들어 있고, 체육훈장에는 월계수 잎, 과학기술훈장에는 해시계와 DNA 이중나선 문양이 사용된다.

모두 공적과 연관되는 상징이다.

류지호가 훈장을 받았다는 것은 국가를 위해 공적을 세웠단 의미다.


‘한쪽에서는 없는 죄도 만들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훈장을 주고....’


얼핏 비서로부터 조폐공사 훈장사업의 누적적자가 100억에 이른다고 들은 것도 같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훈장을 마구 남발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은 퇴임할 때 공과와 상관없이 최고훈장을 셀프로 수여하기도 한다.

무공훈장이나 보국훈장 서훈자는 국가보훈처에서 별도로 관리한다.

일정한 혜택도 받는다.

나머지 13개 부문 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별다른 혜택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훈장 수훈자가 혜택을 바랄 리는 없다.

그 자체가 명예이니까.


❉ ❉ ❉


영화를 제작할 때 우여곡절이 없을 순 없다.

<민중의 적 : EMBARGO>은 카 체이스 장면 촬영을 빼곤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다.

계절 요인은 언제나 감독을 압박한다.

낙엽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류지호는 로케이션 촬영을 마쳐야 했다.

계획된 스케줄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긴 하지만, 날씨는 언제나 변수다.


“재욱아~ 지금 페이스대로라면 크리스마스 전에 크랭크업 하겠지?”

“지금까지 촬영한 씬 중에서 따로 보충촬영 할 건?”

“없어.”

“에필로그는?”


촬영이 중반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좀처럼 에필로그를 결정하지 못했다.

류지호답지 않은 모습이다.


“B콘티로 가자.”

“난 찬성! 대찬성이야.”


해피엔딩이다.

아쉽긴 한데.... 한편으로 홀가분했다.


“타협하는 것 같긴 한데.... 모두가 'No'하는데 나만 ‘Yes' 할 순 없지.”

“사는 것도 꿀꿀한데, 영화에서까지 비극을 확인하는 건 좀 그래.”

“그러냐?”

“강철중은 반쪽짜리 승리에 그치고 말지만.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 그게 맞는 것 같아.”

“어쭈.... 구라 좀 푸네?”

“짬이 있지.”

“크랭크업 날 에필로그 찍는 걸로 하자. 기상청 예보 잘 챙겨줘. 따로 날 잡아서 마지막 크레인 쇼트만 남겨두었다가 눈 오는 날 촬영해도 되고.”

“CG가 아니라, 진짜 눈 오는 날 촬영하게?”

“함박눈이 내리지 않아도 돼. 나중에 부감 커트에 눈 CG 보강하면 되니까.”

“알겠어.”


14주, 50회 촬영.

마음만 먹으면 더 줄일 수도 있었다.

굳이 그러지 않았다.

WaW 픽처스의 촬영현장은 철저하게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할리우드처럼 분단위로 계산해서 돌아가진 않지만, 그날 소화해야 할 분량은 어떻게든 끝마치고 철수하는 편이다.

그것만으로도 류지호는 무척 만족했다.

그 간 충무로가 못해서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감독과 배우만 부지런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스템이다.

결과적으로 감독에게도 좋다.

프리프로덕션에서 시간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하고, 프로덕션에 들어가서는 준비된 것에서 오차없이 진행하고,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사용하고.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감독과 헤드스태프가 무엇을 찍을지 명확히 한 후에 프로덕션에 들어가면 스태프들이 알아서 준비를 해 준다.

한식인지 양식인지, 사이드 메뉴는 뭐고, 소스는 뭐로 할 것인지.

감독이 정해주면 스태프들이 음식을 만들어 입에 넣어준다.

재능이 있지만 그걸 안 해서 영화가 엉터리도 나오는 감독도 많다.


“자. 가 봅시다!”


류지호가 힘차게 외치자, 현장이 마지막 점검으로 분주해졌다.

촬영 퍼스트가 노출과 포커스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배우들은 조감독과 함께  블로킹 (Blocking)을 확인했다.

촬영팀 소속 슬레이터(Slater)는 스크립터와 녹음기사와 씬 넘버, 커트 넘버, 테이크 넘버를 재차 확인했다.

충무로에서는 보통 슬레이트를 연출부 소속의 막내가 쳤다.

할리우드에서는 엄연한 전문부서다.

촬영된 필름에 마킹을 하는 이유는 편집 및 사운드 싱크 작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전에 촬영팀은 매번 러시필름을 확인한다.

촬영이 제대로 됐는지 현상에는 문제가 없는 지, 필름을 확인할 때 롤 넘버, 씬 넘버 때로는 필름 종류까지도 슬레이트 마킹된 화면을 보고 알 수 있다.

매 장면마다 카메라의 초점이 먼 곳에 맞춰져있을 수도 있고, 가까운 데 맞춰져있을 수 있다.

렌즈에 따라 사이즈, 앵글 등이 다르다.

배우의 감정이 깊은지, 풍경 위주의 스케치인지도 중요하고.

때론 스크립트와 함께 연결까지 봐야 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경험과 센스가 필요한 전문 분야인데, 충무로는 초짜에게 그 일을 맡긴다.

충무로에서는 거의 매번 인물 앞에서 슬레이트를 친다.

그래야 슬레이트에 포커스가 무조건 맞으니까.

한국영화 촬영감독들은 슬레이트 포커스가 맞든 안 맞든 그런 거 신경 잘 안 쓰는 편이다.

디지털 영화의 시대가 오더라도 전문화는 매우 중요하다.

포스트프로덕션에서 효율을 올려주기에.


“슛!”


류지호의 콜에 복명복창이 잠시 이어졌다.


“레디! 카메라!”


큐사인이 빠르게 이어지다가.

오랜만에 류지호가 직접 큐사인을 냈다.


“GO!”


도르르.


축구공이 굴러와 운동화에 부딪친다.


툭.


선영(송라원)이 허리를 숙여 축구공을 잡고 허리를 편다.

카메라는 송라원의 상반신 위주로 팔로우한다.


[선배. 의리 없이 혼자 움직이기에요!]

[취재에 무슨 의리를 찾아? 지 먹을 건 지가 알아서 찾아 먹어야지.]


강철중과 선영이 티격태격하는데, 5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쪼르르 달려온다.

아역 주인공 은애다.

곧장 강철중의 다리에 매달린다.


[아저씨 바쁘거덩.... 좀 떨어질래?]

[얘한테 왜 화를 내고 그래요?]

[화 안냈는데?]

[냈어요!]

[안 냈어. 새꺄~]

[이리와. 언니랑 같이 가자.]


요지부동인 은애가 커다란 눈망울로 강철중을 올려다본다.

강철중이 처음으로 불법의 냄새를 맡게 되고, 중요한 피해자와 만나는 장면이다.


“컷!”


방송계에는 ‘잘 키운 아역 하나 열 배우 안 부럽다’는 말이 있다.

특히 사극에서는 이 통설이 어김없이 적중하곤 한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대장금>에는 떡잎부터 남다른 아역배우가 무수히 등장한다.

장금이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을 많이들 추천했다.

류지호는 장금이 친구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을 캐스팅했다.

이전 삶에서 요리예능의 MC로 류지호에게 익숙한 녀석이다.

류지호는 한국의 아역배우 연기스타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로 3~5세 때부터 연기 학원에 다니며 연기 수업을 받는데, 연기가 천편일률적이다.

또박또박한 말소리도 거슬렸다.

TV드라마에서는 야무진 모습으로 포장된다.

영화에서는 몰입을 떨어뜨릴 수가 있다.

류지호는 아역 배우가 출연할 때마다 본인이 직접 큐사인을 한다.

아역들과의 교감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류지호에게 묻는다.


“어릴 때 예쁘면 커서 못나진다는 게 맞나봐. 아역 출신치고 커서 외모를 유지하는 경우가 없는 걸 보니까.”


왜 아역배우들이 예쁜 미모를 커서까지 유지하지 못하는지.


“예쁜 얼굴에 대한 기준이 10대와 20대가 달라서 그럴 거야.”


성장기의 불규칙한 생활과 스트레스는 성장 저해 요인이다.

아역 때는 키가 제법 컸지만, 자라면서 키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얼굴의 성장점에서 눈, 코, 입, 턱 등에 각각 따로 있다고 한다.

그 성장점이 같은 비율로 커지는 게 아니라 제각각 커 나가기 때문에 어릴 적 예쁜 얼굴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거다.

성호르몬 분비 시기가 빨라져서 한창 자랄 시기에 성장 호르몬 분비가 적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 아역 배우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초경이 1, 2년 빠르다.

부모 욕심 때문에 어린 시절 배우생활을 하다가 성인 초입에 들어서며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배회하다가 나쁜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류지호가 세상 모든 아역을 돌봐줄 순 없다.

영화판에서 도태되는 존재가 한 둘도 아니고.

그런데 성인과 어린이들이 받는 데미지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비록 부모가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생활이었다고 해도,

류지호는 자신이 참여하는 작품에서만큼은 아역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챙겨주고 싶었다.

암튼 은애는 김현수(전주호 역)의 바이오벤처 Life-Plus의 백신 불법임상 실험의 피해자다.

영화 속 사건에서는 30명이 넘는 3~5세 명의 아동 실험대상자가 존재했다.

실제 영화가 묘사하는 희생자는 난지도에 유기된 사망자와 은애 단 둘이다.

나머지 사망 혹은 부작용을 겪은 고아 아동들은 관객이 상상하도록 여지를 열어두었다.

김현수 일가의 재벌이 후원하는 고아원은 전국에 10여 개.

고아원마다 김현수 부친이 방문한 사진이 크게 전시되어 있다.

횡성의 한 농업고등학교 기숙사를 고아원으로 탈바꿈시킨 촬영장에도 그 내용을 암시하는 사진과 기념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저희 학교는 호농종묘가 후원하고 있지요. 호농종묘는 가온그룹 계열이고요.“


파커 필드와 공동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기에 엄밀히 말하면 호농종묘가 계열사는 아니다.

어쨌든 <민중의 적 : EMBARGO>에 등장하는 메인 고아원으로 개조된 횡성의 한 농업고등학교는 호농종묘가 후원하고 있다.

호농과 중앙종묘는 횡성과 홍성 소재 농업고등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성적 우수학생의 경우 장학금을 물론이고 대학진학과 해외유학까지도 지원하고 있어서 외국으로 공부하러 간 학생도 스무 명이 넘습니다. 외국에서 박사를 따고 온 학생 몇 명은 은혜를 갚기 위해 호농과 중앙종묘에 입사해서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죠.”


촬영을 구경하기 위해 주변을 얼쩡거리는 학생들을 쫓기 위해 기숙사를 순찰하곤 하는 학생부장이 열심히 학교 자랑을 늘어놓았다.


[보육원 원장이 지역유지도 아니고, 무슨 공사가 이렇게 다망해....]


강철중의 투덜거림 그대로다.

고아원 원장은 김현수 부친의 호를 따서 보육원 이름까지 바꿀 정도의 인물로 영화 속 가상 지역의 유지다.

바이오벤처 Life-Plus의 백신 임상실험을 위한 각종 서류에 서명한 장본인이다.

원장이 원생을 대신해 서명에 서명한 것은 현행법상에서 불법은 아니다.

법적으로 원장이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Life-Plus의 신약 임상실험에 동의한다는 서류에 고아들을 대리해 서명한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다만 신약 및 백신과 관련한 예비 실험과 동물실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백신 부작용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Life-Plus가 인체실험을 감행했다는 것은 큰 문제다.

법을 떠나서 윤리적으로 부모가 없는 아동의 취약점을 이용해 실험대상자로 삼은 것은 패륜과 다름없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동남아시아 저소득 국가 아동이나, 아프리카 아동들에 대한 신약 임상실험도 윤리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개발도상국 중에서 선진국 진입이 가장 유력한 한국에서 자국 아동을 대상으로 불완전한 신약을 실험한다는 것은 법률을 떠나서 인간으로써 할 짓이 아니다.


[얘야... 아기야... 좀 떨어질래.]


은애는 강철중에게 찰싹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강철중은 이 어린 고아가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도와달라는 몸부림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아저씨가 집엘 못 들어가서 냄새가 심해. 봐봐. 꼬랑내 나지? 안 나? 맡아봐봐. 나지? 그러니깐....]


은애가 앙증맞은 손으로 선영을 가리킨다.

강철중이 선영을 돌아본다.

선영, 괜히 딴 짓이다.


[쫌 씻고 다녀라, 인마.... 기자란 새끼가 취재다니는 꼬라지 하고는.]

[향수 뿌, 뿌렸는데.....]


이전 씬에서 선영이 경찰서 숙직실에서 기자들과 함께 숙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사건 취재를 위해 하루 종일 싸돌아다녔고, 최종 취재처가 경찰서였던 것.

사건취재 기자들의 경우, 새벽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취재하다보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몇 날 며칠 경찰서 기자실이나 숙직실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선영이 사건기자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털털한 성격을 보여준다.


부욱.


강철중이 자신의 기자수첩(다이어리) 한 장을 찢는다.

침까지 발라가며 바람개비를 급조해서 만든다.

그리고는 억지로 은애 손에 쥐어준다.

바람개비를 가지고 나가 놀라고 등을 떠민다.

은애는 바람개비를 받아들고도 좀처럼 강철중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고.


[마, 가서 애들이랑 놀아. 친구 없어?]


강철중은 귀찮기만 하다.

이 바람개비는 영화에서 중요한 소품이자 장치다.

보육원에서 은애가 실종되었을 때, 또 Life-Plus사의 연구소 등에서 강철중이 피해자가 은애라는 걸 눈치 채게 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클래이막스에서 바람개비가 다시 강철중에게 돌아오는데, Life-Plus의 불법, 비윤리적 고아 상대 임상실험을 까발리는 결심의 촉매제가 된다.

보육원 원장이 헐레벌떡 원장실로 들어온다.


[아이구. 신문사에서 나오셨다구요.]


시원하게 벗겨진 이마,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40대부터 노인을 연기한 성우이자 배우 윤도상이다.

중후한 목소리와 푸근한 인상으로 인해 악역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껏 출연했던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맡았던 역할이 모두 서민적이거나 좋은 사람 역할이 많았다.

선영이 좋은 형사 역할을 맡았다.


[시설도 깨끗하고 아이들 표정이 참 밝네요.]


결코 시설이 좋은 보육시설은 아니다.

그걸 보여주듯 원장을 연기하는 윤도상이 은근슬쩍 발로 쓰레기를 책상 밑으로 밀어 넣는다.


[요새 가출하는 애들 평균 몇 명이나 됩니까? 대부분 중학교 때 많이 도망가죠?]


강철중의 태도는 마치 사건 수사를 나온 형사 같다.

강철중은 어르고, 선영이 달래가며 취재를 빙자한 유도심문이 이어진다.

원장도 만만찮은 인물이 아니다.

겸손하면서도 강철중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 원장님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얼굴 나가게 해 주께.... 우리 신문 사회면에 미담 기사 나가면 최소한 지자체장 포장 받는 거 모르죠? 저기 상패들 사이에 원장님 훈장 걸어놓으면 폼 나겠네.]


강철중이 원장을 구워삶아 사진촬영을 한다.

엉터리 사진촬영이다.


[저기요. 신문에 나갈 사진 안 찍어 봤어요? 고뇌에 찬 듯 한 표정...... 좋습니다. 요새, 후원자도 줄고... 힘드시겠어, 그죠잉?]

[허허.... 그저 그러려니 합니다.]

[인상도 좋은 양반이 표정이 왜 그래? 약간 고개를 들면서... 시선은 45도로... 좋네! 딱 그 표정. 정말 인자하고 좋잖아. 사진발 잘 받으시네. 이마가 시원시원해서 그른가?]

[.....]


띄워주고, 맥이고.

강철중이 능수능란하게 원장을 요리한다.

그런데 특별한 소득은 없다.

고아원에서 발견한 경쟁신문을 발견하고 공연히 짜증을 부려보는 강철중이다.


[머리가 확... (원장의 민머리를 빤히 보며) 응.... 진보적이라서 그른가? 저짝 신문 보시나 봐요 우리 원장님은? 대한일보 봐요. 대한일보. 지역에서 행세 꽤나 하는 양반들 다 민족정론지 보지... 누가 저짝 신문 본다구. 우리 신문은 경품으로 자전거도 한 대씩 준다더만. 애들이 자전거로 통학하고 그러면 좋잖아.]


사실 진보신문은 고아원 원장이 아니라 보육교사가 구독하고 있다.

내부 고발을 고민하는 인물이다.

원장은 예의도 없고 매우 거만한 강철중에 질려버린다.


[양아치도 아니고.... 뭐 저딴 게 기자야? 야, 밖에 소금 뿌려!]


✻ ✻ ✻


총 4회로 잡혀있는 횡성 농업고등학교 기숙사 촬영은 주말에만 들어가서 촬영했다.

평일에는 강남의 G-Tower로 출근하며 대한일보 편집국 장면을 주로 촬영했다.

Open Set.

한국과 몇 개 나라에만 있는 로케이션 구분이다.

서구권에서는 LOCATION과 SET 둘로 나눈다.

커피숍이나 편의점 같은 곳을 촬영할 때 실제 영업하는 곳을 빌려 촬영을 한다.

그런 곳의 촬영지 구분을 흔히 Open Set로 분류한다.

서구권에서는 그런 곳을 사운드 스테이지에 세트로 만들어서 찍는다.

혹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백랏(Backlot)에 지어놓은 건물 실내에 미술과 소품을 동원해 세트처럼 꾸며서 촬영한다.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촬영지가 사운드 스테이지라면 SET 그 외 모든 장소를 LOCATION으로 구분한다.

촬영 장소의 구분은 영화제작예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할리우드나 유럽 영화선진국을 제외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공간을 만들어서 찍을 수 없다.

실제 공간을 빌려서 촬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긴 개념이 Open Set다.


“의료장비는 제작부만 만질게요. 스태프들은 절대 만지지 마세요!”


제작실장이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카메라 안 돌아갈 때는 비닐 커버 씌워놓고 있구만.”

“죄송합니다. 기스 나면 제작부가 독박을 써서요.”

“설마... 우리 감독님은 그럴 분이 아닌데?”


할리우드에서는 세트 장식을 전담하는 스태프가 관리하기 때문에 제작스태프가 호들갑을 떨 일이 없다.

제아무리 WaW픽처스라고 해도 할리우드처럼 분업화가 완전하진 않았다.

자칫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소재가 불거질 수 있다.

제작부가 관리하는 것이 모두에게 부담이 없다.


“말이 그렇다는 거고. 암튼 특수소품 옮길 일 있으면 무조건 제작부에게 맡기세요.”


여주의 WaW종합촬영소에 만들어 놓은 Life-Plus 백신연구소 무균실 세트에는 억대 단위의 의료 장비를 몇 개 빌려왔다.

혹여나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봐 제작부들 모두가 전전긍긍이다.

누가 류지호의 영화 아니랄까봐, 세트에 돈과 공을 많이 들였다.

고증을 위해 불러온 대형병원 소속 의사와 제약연구소 관계자가 입을 다물지 못했을 정도다.

미국 일부 대형병원이나 연구실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시설이었으니까.

윤민구의 미술팀이 무균실을 비롯해 바이오연구실 분위기를 내기 위해 국내외 의료장비 업체와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구했다.

국내 의료장비 수입업체는 백신임상실험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야기에 자문과 PPL을 거부했지만, DALLSA Corp.으로부터 이미지센서를 납품 받는 미국의 한 의료장비업체에서 도움을 주었다.

DALLSA Corp.은 로열필립스전자(RPE)를 인수한 후 의료장비 및 산업 장비 사업부문이 한층 강화되어 관련 분야의 강자로 부상 중이다.

이후로 거래처 목록도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의료장비생산 업체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푸슈슈. 푸슝.

덜컹.


클린룸을 통과한 일단의 무리가 무균실로 들어선다.

흰색 가운, 멸균 마스크와 캡, 위생장갑까지 착용하고 있다.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침대는 모두 10개.

모두 투명 소재의 멸균 커튼이 둘러져 있다.

그런데 침대에는 오로지 여자 아이 한 명만 있다.

아역 주인공인 은애다.

남은 9개의 침대에도 은애 같은 처지의 아동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은애의 침대로 다가온 무리가 멸균 커튼 너머의 은애를 살펴본다.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은애는 실험 케이스에 담겨있는 모르모트 같다.


[그냥 찌르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김현수(전주호)가 연구원들에게 화를 낸다.


[벌써 부작용으로 8명의 아이들이....]

[당신 자식이야?]

[......]

[당신 자식도 아닌데 어디서 박애주의자인 척 해? 이거 성공하면 당신 손자도 혜택을 누리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투자자가 발을 뺀답니다. 어떻게 할 거요!]

[.....]

[다들 뭐라도 말을 해보란 말이야! 연구실에 꿀이라도 숨겨놓고 처잡수시고 있나?]


연구원들은 가만히 입을 다물 뿐.

김현수가 연구들이 듣지 못하게 중얼거린다.


[X발.... X같네...]

[예? 뭐라고 하셨는지....]

[입은 막혔어도 귀를 뚫려 있나 봐요? 실험결과를 조작하든 뭘 하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하란 말입니다. 당장 투자자는 붙잡아야 할 거 아닙니까!]

[.....]

[가져와.]

[....예?“

[내가 할게. 그거 찌르는 게 뭐가 어렵다고.....]

[아, 안됩니다. 대표님.]


얄밉다.

미친놈처럼 길길이 날 뛰지는 않는다.

존대와 하대를 오가는데 그 말투가 굉장히 재수가 없다.

연구원들 앞에서만 본 모습을 드러내는 김현수는 나쁜 짓을 침착하고 태연하게 벌이는 진짜 나쁜 놈이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류지호는 전주호의 사소한 부분까지 간섭했다.

눈을 찡그리고 깜박거리는 것까지 세심하게 디렉션할 때도 있다.

전주호 배우가 과잉된 연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영화 연기가 정립이 안 된 시기에 데뷔한 배우들은 옛날 연기가 몸에 배어 있다.

연극적이거나 TV드라마 연기가 그것이다.

메소드와 리얼리즘 연기가 자유롭게 오가는 현대적 연기와 동떨어져 있다.

내면이나 감정을 성량이나 과도한 몸짓(표정 변화)으로 표현하려고 든다.

그러다 보면 연기 과잉 즉 오버를 하게 된다.

눈동자, 호흡의 변화, 대사 톤, 미세한 멈춤 등.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았다.

연기는 상상력의 예술.

관객이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게 실력이고.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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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하라. +7 23.09.27 2,292 89 23쪽
628 안정 속의 변화. (5) +4 23.09.26 2,210 88 22쪽
627 안정 속의 변화. (4) +5 23.09.25 2,266 9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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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안정 속의 변화. (2) +3 23.09.22 2,294 94 23쪽
624 안정 속의 변화. (1) +7 23.09.21 2,435 93 27쪽
623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2) +4 23.09.20 2,335 96 25쪽
622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1) +10 23.09.19 2,342 103 25쪽
621 포토라인에 서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5 23.09.18 2,367 10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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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비평가들이 싫어하면 관객이 좋아해. +4 23.09.15 2,318 108 24쪽
618 People Not Profit! +3 23.09.14 2,306 103 23쪽
617 우린 괴물이 아닙니다! +13 23.09.13 2,339 111 28쪽
616 Only One을 향하여! +6 23.09.12 2,331 112 24쪽
615 살아줘서 고맙다..... +8 23.09.11 2,382 105 29쪽
614 민중의 적 : EMBARGO. (14) +5 23.09.09 2,321 100 25쪽
613 민중의 적 : EMBARGO. (13) +4 23.09.08 2,203 92 26쪽
» 민중의 적 : EMBARGO. (12) +3 23.09.08 2,029 79 23쪽
611 민중의 적 : EMBARGO. (11) +6 23.09.07 2,168 97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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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394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84 7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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