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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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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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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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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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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민중의 적 : EMBARGO.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G-Tower로 가시죠.”


강남의 랜드마크 빌딩 G-Tower에 도착한 일행은 관리소장의 안내로 공실을 둘러봤다.

기준층 기준 전용면적 722평으로 건설되었는데, 센터코어 구조라 중앙에 엘리베이터 비상계산이 있어서 분할 임대하기 편한 구조다.


“마침 126평 공실이 있었습니다.”

“층고가 어떻게 됩니까?”

“2.7m입니다.”

“천정고는 2.3~2.4m겠군요?”


프로덕션 디자이너 윤민구가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정말 여길 다 채워야 하는 거예요?”

“안타깝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아.”

“가온그룹 아무 오피스 빌려서 촬영하면 안 되겠습니까?”


류지호는 대답 대신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에휴!”


촬영, 조명 감독은 자기 알 바 아니라는 듯 노출계를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류지호는 사운드 스테이지에 적당한 크기의 사무실 세트를 지어 촬영하고 싶지 않았다.

무조건 대형 오피스의 깊은 심도를 화면에 담고 싶었다.

촬영감독이 창가 곳곳의 노출을 확인했고, 조명감독은 사무실의 전등과 전기를 확인했다.


“하여간 감독님하고 작업하면 업무량이 웬만한 영화 몇 편을 합친 만큼이라니까....”


텅 비어 있는 126평 사무실을 미술로 모두 채워야 한다.

단순히 업무용 공간으로 채우는 것은 쉽다.

시간이 묻어 있으면서 영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대신 민구씨가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볼 수 있잖아.”

“솔직히 조수들 인건비 생각해보면 매번 적잡니다.”

“보너스 싫어?”

“감독님 영화가 아무리 협찬이 잘된다고 해도, 이 사이즈를 채우는 건....”

“오피스 가구는 다 구입해. 영화에서 쓰고 다솜미디어에 넘기면 되니까.”


실제로 화면에 잘 잡히지 않은 책상이나 서랍장 따위는 폐가구를 가져다 놓고 적당한 소품으로 채워버려 가리면 된다.

모든 곳에 새 가구를 가져다 놓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그래서 영화미술은 경험과 센스가 무척 중요하다.


“김 피디, 발전차는 지하주차장에 대도 돼?”


촬영감독 윤민구의 물음에 김재욱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발전차 댈 곳을 나중에 따로 알려드릴 게.”

“장비는?”

“그립장비와 라이트는 지하주차장에서 이삿짐 전용 엘리베이터로 올리면 돼.”

“지선은?”

“계단으로 올려야지 뭐.”

“여기 전기 써도 되냐?”

“장소사용료에 전기료도 들어가 있긴 해. 그래도 자체 형광등 외에는 우리 전기 쓰는 걸로 해줘.”

“오케바리.”


로케이션 콘셉트가 결정된 후로 공간 디자인과 데코레이션 컨펌으로 이어졌다.

류지호는 각 파트가 가지고 오는 콘셉트와 디자인을 골라내서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들이 모두 확정된 후에 스토리보드를 작업할 계획이다.

G-Tower 공실을 확인한 일행이 김재욱이 예약해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자리 내내 로케이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조명감독 유영준이 김재욱에게 물었다.


“한강대교에서 촬영할 수 있어?”

“가능할 것 같아.”

“진짜 서울시에서 허가를 해준대?”

“응.”

“감독님 때문인가?”

“공진형 감독님 영화와 묶어서 쇼부치고 있거든.”

“<괴물>?”

“요새 공 감독님이 서울시 영상위원회 직원하고 한강을 싹 훑고 있거든.”


서울시는 한강의 대외 이미지를 높인다는 명분하에 영화 <괴물>의 프리프로덕션 과정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WaW 픽처스는 <EMBARGO>에 대한 협조공문도 넣었다.

세계적인 인지도가 있는 감독의 작품이라서 서울시는 뭐든 도와줄 태세다.

<괴물>은 '한강에 출몰한 괴물'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했기에 로케이션 헌팅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한강에는 일반인이 모르는 숨겨진 곳이 많다는 사실.

꼼꼼한 성격의 공진형 감독은 익숙한 곳들을 피해 다양한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다.


“차가 못 가는 데가 많아서 감독님하고 연출부들이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샅샅이 뒤지고 또 뒤지고 있나보더라고.”


공진형 감독이 한강과 연결된 하수구의 악취를 뒤집어쓴 것만도 여러 번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한강의 교각, 다리, 둔치를 정확히 파악한 뒤 완성됐다.

이 프로젝트는 2002년 3월 경 무비서비스 출신 제작자가 시작했다.

<살인의 추억>을 마친 공 감독이 한강에 네스호의 괴물을 합성한 사진을 들고 와서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150억 제작비 조달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살인의 추억>이 워낙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니까.

본격적으로 프로덕션 오피스가 꾸려지고 주요 배역도 하나 둘 캐스팅을 시작했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누구도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의 VFX수준으로 괴물을 표현할 수 없을 거라 봤기 때문이다.

공진형 감독은 WaW의 문을 두드리고 싶었다.

제작자가 꺼려했다.

프로젝트를 WaW에 통째로 빼앗길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제작자는 일본의 한 회사와 접촉해 150만 달러 투자 MOU를 체결하고, 해외 필름마켓에서 선판매 가계약도 체결했다.

로비 잭슨의 TreeWeta Studios에 괴물 CG를 의뢰하기도 했다.

제작비 조달은 난관의 연속이었지만 제작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그런데 TreeWeta Studios에서 <괴물> CG를 못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그들로서는 <킹콩>과 <호빗>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온 역량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외부 일감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진형 감독이 미국에 머물고 있던 류지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공 감독과 제작자가 LA로 날아갔고.

얼마 안 가 투자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투자·배급은 WaW 엔터테인먼트가, 해외배급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미국영화 리메이크 권리는 ParaMax가 구입했다.

VFX는 Hues & Rhythm Studios가 책임지기로 했다.

이 계약은 미국 연예매체에서도 대서특필하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연히 여러 국가에 선판매 되는 효과도 누렸다.

진작 류지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훨씬 쉽게 갈 수 있었다.

제작자가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을 부리다가 안 써도 될 에너지와 비용을 낭비한 꼴이다.

윤민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감독님?”

“왜요?”

“혹시 한강대교 아치 구조물을 통째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윤민구는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라는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통째로 만들 것 까지는 없고.... 강철중과 상수가 올라선 부분만큼은 만들어야겠죠?”


윤민구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EMBARGO>의 도입부에서는 한강대교 철제 구조물 위에서 자영업자(전편의 상수) 자살 소동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현장에 도착한 강철중은 고소공포증을 핑계를 대며 슬슬 눈치만 본다.

결국 마지못해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간 강철중은 농성중인 자영업자를 설득을 빙자한 약 올리고 협박하기, 때로는 웃기기 등 원맨쇼를 펼치게 된다.

촬영감독 윤기수가 대화에 합류했다.


“지상에서 대략 1m 높이, 두 사람이 올라 설 곳에서 한쪽만 기울어지게 3m 정도는 만들어야 될 겁니다.”


윤민구가 물었다.


“진짜 철 구조물을 만들 필요는 없지요?”

“밤 장면이라 소재는 크게 상관없을 것 같네요.”


윤민구가 류지호를 돌아봤다.


“야외에? 아니면 사운드 스테이지에?”

“WaW종합촬영소 야외 그린 매트 촬영장이 좋지 않을까?”


김재욱이 끼어들었다.


“거기 <태풍>팀이 세트 만들고 있어서 못 쓸 걸요.”


<괴물>과 마찬가지로 박진택 감독 역시 해양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태풍>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WaW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ParaMax가 투자배급한 <마스터 앤드 커맨드>의 해양 세트를 재활용하기 위해 뉴욕대 동문과 류지호에게 문의를 해봤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마련한 제작비로는 할리우드 시설을 활용하는 것이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전에 지은 게 아니고?”


<태풍>의 해양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대전의 가온 디지털 연구소와 ETRI가 협력해 김블 수조세트를 짓기로 했다.

김블(Gimbal)은 선박 혹은 항공기와 같은 큰 규모의 세트를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움직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장치다.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

류지호의 지시로 가온 디지털 연구소 차원에서 김블 장치를 만들기로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비주얼 수퍼바이저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냥 실내에서 촬영하죠. 어차피 포스트에서 합성해야 하니까.”


동시대 감독들이 전쟁영화, 해양액션, 총격씬, CG 합성영화에 몰두할 때 류지호는 Eye-MAX, D-Cinema를 한국에 소개했다.

<EMBARGO>에서는 다시 필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액션 시퀀스 부분에서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도심 카 체이스를 한국영화에서 보여줄 작정이다.

이를 위해 Vic&Jay의 카 체이스 코디네이터를 초빙할 계획이다.

<매트릭스 : 리로리드> 고속도로 액션 시퀀스 수준은 못 한다.

다만 카 체이스 별 거 아니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충무로에 주고 싶다고 할까.

<태풍>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될 김블 장치의 테스트 성격도 있다.

1편의 강철중은 직업이 형사였다.

때문에 격투씬을 풍부하게 찍었다.

이번에는 직업이 기자다

격투장면은 한 장면만 나온다.

대신에 달리기 추격씬, 카 체이스, 높은 곳에 매달리기 등 격투 장면을 대체할 액션 볼거리가 들어갈 예정이다.


“류 감독은 카 체이스는 잘 찍겠어. 많이 찍어봤으니까.”

“내가 찍었나? 스턴트팀이 찍었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실제 현장에서는 카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지휘 했다.

스토리보드는 류지호가 했고.


“이번에는 발바닥에 땀 좀 날 것 같네.”


류지호가 너스레를 떨자, 두 명의 윤씨 성을 쓰는 감독이 ‘큭큭‘ 웃었다.

미국에서 촬영경험이 있는 두 사람이다.

류지호가 무슨 의도로 엄살을 떠는지 모르지 않았다.


❉ ❉ ❉


두 곳의 신문사를 방문한 다음 날.

신문 동정란에 각각 <민중의 적> 촬영팀의 내방소식이 실렸다.

‘본사 내방’이라는 타이틀로 ‘누가 언제 본사를 내방해서 어떻게 했다‘는 식으로 류지호의 방문 사실을 이례적으로 소상하게 알렸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 동정란은 꽤나 열독률이 높았다.

이 기사에는 ‘민원성 기사’도 많았다.

동정란에 본사 내방 사실을 기사로 내보냄으로써 신문사는 해당 인물에게 최대의 호의를 베풀어주는 거였다.

신문사 사주, 편집국장, 부국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나,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의 내방 사실을 동정란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담당 기자가 깨진다.


“내 얼굴이 뭐가 되느냐!”


기자들은 국장급들의 성화가 싫어서라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여느 직장과 똑같다.

대기업 관계자는 일반인보다 더 챙겨야 하고.

류지호 같은 인물은 대접을 정말 잘해야 한다.

광고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신문 하단에 기본으로 나가던 영화 광고가 사라지는 추세다.

완전 사라지려면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여전히 블록버스터는 신문광고가 큰 홍보마케팅 수단이다.

특히 겨레신문의 경우 영화전문주간지도 출간하고 있기에, 가온그룹이 큰 고객이다.

겨레신문은 특별 세무조사로 신나게 까대고, 씨네마21은 세계적인 감독 류지호와 WaW 엔터테인먼트를 찬양한다.

기자 사회에서는 전자를 ‘조진다‘고 표현하고, 후자를 ’빨아준다‘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하면 ´어르고 달래‘는 것이다.

겨레신문이 가온그룹 특별세무조사를 두고 신나게 기사를 갈겨대자 씨네마21 기자들이 WaW 엔터테인먼트에 출입하면 싸늘한 반응이 쏟아졌다.


- 섭섭합니다.

- 이럴 수 있습니까?

-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미 단정을 하고 기사를 씁니까? 예지력이라도 있습니까?


WaW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기자들에게 항의가 빗발쳤다.

박건호 회장처럼 고위 임원은 따끔한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 나중에 별 문제 없다고 결론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그룹 홍보실 차원에서 암묵적으로 취재거부를 했다.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하다못해 정보원들, 친분이 있는 회사 내부인사들조차 입조심을 했다.

그럴 때, 기자들은 출입처와 꼬인 관계의 복원을 위해 애쓴다.

회사차원의 스탠스와 분리해서 기자 개인적으로 취재처 직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인간적인 대화로 앙금을 푼다.

그때만큼은 기자도 얻어먹지 않는다.


- 기자는 기사로 푼다.


기자만의 해법이다.

사태가 수습되고 나면 결자해지 차원에서 출입처에 관련된 화제, 인물, 미담 등의 기사를 써 분위기를 반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처럼 특별세무조사 기사가 독자들에게 시들해지는 시기부터 가온그룹과 관련한 미담 기사들이 각 신문에서 등장했다.


“쟤는 스트레이트용이야.”

“얘는 인터뷰용이고.”


취재원이나 출입처를 비판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잘 쓰는 기자.

인터뷰 같은 호의적인 기사를 잘 쓰는 기자란 의미다.

<EMBARGO>의 강철중은 스트레이트용 기자다.

영화 부제인 엠바고를 밥 먹듯이 깨면서 온갖 특종을 챙긴 독종이자 꼴통 기자다.

엠바고(embargo)란 '보도 시점 유예' 또는 '시한부 보도 중지'라는 저널리즘 관행을 지칭한다.

즉 언론이 취재원과 합의해 언제 보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강철중은 특종을 위해 수차례 엠바고를 어겨 출입처 기자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강철중과 대비되는 경쟁사 기자가 있다.

기자들 표현으로 ‘쪼찡’이라고 불린다.

영화계와 마찬가지로 언론계에도 일본어 잔재 천지다.

일본어 쵸징모치의 앞부분만 떼어서 ‘쪼찡‘이라고 부르는데, 쵸징(提灯)은 일본 음식점 앞에 걸려있는 주름 잡힌 붉은색 등을 일컫는다.

모치는 갖고 간다는 일본말로 쵸칭모치는 ‘초롱을 들고 간다’라는 의미가 된다.

예전 일본에서 밤에 이동할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의 경우 쵸징을 들고 길을 밝혀주는 하인이 있었다.

이에 빗대어 남의 앞잡이가 되어서 그 사람의 장점 등을 잘 선전하는 기자라는 의미로 ‘쪼찡’을 쓴다.

즉 ‘쪼찡’은 호의적인 기사를 주로 쓰는 기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연속해서 출입처에 호의적인 기사를 쓰거나 호의수준을 넘어서 아예 취재처 사람으로 오인될 수준의 기사가 나갈 경우.


"야 너 쪼찡이지?"


라고 농담한다.

일반 대중이 보기에 잘못된 행태지만, 정작 기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라면 비판기사와 호의적인 기사 두 가지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EMBARGO>에서 다양한 기자들의 모습이 묘사되는데, 경쟁사 기자 중 한명이 전형적인 ‘쪼찡’ 기자로 묘사되고, 영화 속 빌런을 ‘빨아주고’ ‘옹호하는’ 기사를 양산한다.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태세를 백팔십도 바꾸며....


[내가 원래 스트레이트 잘 쓰는 놈이야. 안 써서 그렇지.]


라고 영화 속에서 뻔뻔하게 개소리를 늘어놓는다.

YNTV 사회부장 송일성은 한 때 스트레이트성 기사를 잘 쓰는 기자였다.

필드 대신 데스크에 앉는 위치가 되어서일까.

취재를 통한 살아있는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쟁이 기자로 전락했다.

그래서 장문식 상무에게 신나게 조롱당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하여튼! 배울 만큼 배운 새끼들이 뭔 일본어에다가 노가다판 은어를 그렇게 많이 써! 일본어 엄청 쓰면서 기사는 또 한글로 써. 아예 일본어로 기사 쓰지?”


기자 사회에서 사용되는 일본어식 표현이나 은어가 30개가 넘는다.

장문식 같은 일자무식이 볼 때 언론사 입사 시험을 ‘고시’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다.

국가공무원 뽑는 것도 아닌데 떡하니 고시라고 붙이니.

사실은 고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별 것 아니다.

합격하기 어려워서다.

과거에는 똑똑하고 공부 많이 하고 준비된 지원자만이 기자가 됐다.

그런데 근본도 없는 일본어를 변용한 은어를 마치 대단한 직업세계 용어라도 되는 아무렇게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으니, 무식한 장문식이 보기에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 외에 검찰과 경찰, 학계, 문화예술계에도 여전히 일본어 잔재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제 때부터 기자했냐? 쪽바리 앞잡이도 아니고,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기자라는 새끼들이 노가다판 개무식쟁이나 쓰는 일본어를 쓰고 지랄이냐?”

“.....”

“달건이 출신인 나도 이제는 뒷골목 말 안 쓰는구만.”

“.....”

“하여간, 먹물 좀 빨았다는 새끼들이.... 친일파 아니라고 존나게 우겨대면서도 일본말은 또 드럽게 섞어 써. 아주....”


건달 출신에게 이런 말 듣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90년대라면 송일성이 곧바로 쏘아붙였을 터.

기자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일까.

사회부장 쯤 되면 어지간한 대기업 간부들도 쩔쩔매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 됐고! 내가 류 감독에게 그렇게 잘 못 한 거야?”

“잘 못 했지? 이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장문식이 한 대 칠 듯이 송일성을 노려봤다.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지금도 봐. 아주 야자가 일상이야. 내가 형인데 말이지. 내가 너보다 다섯 살 위다. 새끼야~”

“기자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원칙이야. 그래야 대통령이든 달동네 주민이든 공평하게 기사를 쓸 수 있으니까.”

“지랄하십니다, 아주~”


사회부 캡(팀장)이 처음 수습기자들을 교육할 때 가르치는 것이다.

기자들은 군부독재시대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칭호를 쓰지 않았다는 걸 훈장으로 여긴다.

민주화가 된 이후로 기자들은 대통령에게 ‘님‘자를 붙이지 않기 위해 아예 호칭을 생략하는 화법을 쓴다.

5대 중앙지 기자들은 대기업 회장에게도 ‘님’을 안 붙인다.

아예 호칭을 생략한다.

웃기는 것은 10대 기업에 들지 못하는 회장들에게는 버젓이 누구누구 회장이라고 부른다.

일진 기자쯤 되면 ‘반야자‘ 화법이 기본이다.


“평등이든 공평이든 난 모르겠고. 빅보스 오시면 무조건 빌어.”

“그러니까 내가 뭘 잘 못했는데! 난 류 감독 빨아주는 기사도 X나게 썼다고. 장 상무도 잘 알잖아. 내가....”

“누가 좋은 기사 써 달래? 빅보스 P.I하는 거 봤어? 들어는 봤어?”

“아니, 난... 그냥 선의로다가.”

“송 부장, 우리 빅보스 언제부터 알고 지냈지?”

“고등학교 때부터지.”

“그래도 몰라?”

“그러니까 뭘!”


송일성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빅보스 고삐리때 교감 새끼하고 거 뭐시냐... 하도 오래 되놔서 이름도 기억 안 나네. 암튼, 패싸움해서 고 팀장이 퇴학을 당할 때. 그때 송 부장 어떻게 했더라?”

“뭘 어떻게 해. 개 같은 인간들 기사로 조져놨지.”

“조져놓기 전에 기자 송일성은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정말 땀내 나게 취재해서 사건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어.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랬어.”

“....?”

“그래도 자기가 나온 학교라고 학교 명예니 뭐니... 재학생들 보호한답시고 기사도 꽤 조심해서 썼지. MBS에서 신포고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화면으로 내보냈을 때 송 부장이 뭐라고 지랄을 떨었더라?”

“공중파 기자 개새끼....”

“나는 프레임을 씌우느니 뭐니 하는 어려운 말 몰라. 근데, 내가 그날 개관기념식에서 우리 빅보스가 강연한 거 비디오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려 봤다 이거야. 송 부장이 기사에 써재낀 것 하고 틀리다는 말이야. 나 같은 중졸이 봐도 교묘한 말장난 같더란 말이지.”

“취재 기사가 아니라고. 데스크의 시선이라고 신문으로 치면 칼럼 같은....”

“기사고 칼럼이고 자시고. 기자가 취재를 해서 그 바탕으로 사실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내보내야 하는 거 아냐? 뉴스가 소설이야? 왜 추측하고 상상해서 빈 칸을 채우는데!”


신문하고 방송은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본질은 똑같다.

사실에 근거해 객관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어떤 언론사든 각각 기사방향이 다르고 논조가 다르다.

쉽게 구분하기 위해 보수니 진보니 갖다 붙이지만.

언론사의 논조라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드시 있는 사건기사의 경우, 기자는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도록 조심한다.

기본 중에 기본이다.

갈등요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자의 눈을 갖춰야 하는 법.

때문에 기사를 쓰기 이전에 기자의 관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래서 기자채용시험이 고시 수준에 맞먹을 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선임들은 후임들에게 한 꼭지 기사를 쓰더라도 ‘야마‘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현재의 의미, 기사의 핵심 주제를 ‘야마‘라고 할 수 있다.

기사 안에는 소설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클라이맥스 요소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기사 한 꼭지를 쓰더라도 한편의 소설처럼 완벽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즉 기사는 글쓰기다.

사실을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언어로 기술한 문장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뉴스에 선정주의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즉 독자를 홀릴 수 있는 기사 구성이 요구된다.

사실 전달의 본질이 흐려지고, 글쟁이로서의 능력이 부각될 소지가 다분하다.

심지어 기사가 창작의 영역이 들어가기까지 한다.


“무슨 거대한 야망이고 결연한 의지야? 내가 본 거로는 실패할 거에 쫄지 말고, 시도하고 도전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이더구만. 야심만만한 미래? 거대한 비전? 그날 우리 빅보스는 회사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는지 아무 거나 막 해보라고 하던데? 다솜미디어 신임사장은 골치 아픈지 머리까지 부여잡더구만.”

“그렇다고 돈지랄하고 있다고 쓸 순 없잖아.”

“써 그냥. 가온그룹 오너가 돈 써재끼는 건 있는 그대로 내보내라고. 같잖은 포장해서 이상한 이미지 만들지 말고.”


장문식이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는데, 등 뒤에서 타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룸 입구로 향했다.


“그냥 쓰긴 뭘 그냥 씁니까? 장문식 상무님!”


장문식이 일어서서 양복 상의를 저미는 시늉을 해보였다.


“거, 헛기침이라도 하고 들어오지.....”


류지호가 한심하다는 듯 장문식을 보다가 송일성에게 시선을 던졌다.

송일성이 일어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를 했다.


“와, 왔어?”

“벌써 취했습니까?”

“아냐. 일단 각 일병씩... 입가심으로....”


장문식이 류지호의 자리를 마련해 줬다.


“우리 감독님.... 여전히 신수가 훤하셔 아주~ 입구에 딱 서있는데, 후광이 그냥 화악!”

“입 다무세요. 장 상무.”

“넵!”


류지호가 소주병을 집어 들자, 송일성이 얼른 낚아채려고 했다.


“받으세요. 오랜만에 술 한 잔 따라드릴게.”


또르르.


류지호가 따라주는 소주를 받아 마신 송일성이 재빨리 소주병을 넘겨받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꿀꺽.

송일성이 바짝 긴장해 류지호의 말을 기다렸다.


“혹시 YNTV 사장에 관심 없어요?”

“....?”


송일성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비난과 협박성 경고를 각오했다.

헌데 뜬금없이 YNTV 사장이라니...

새로운 방식의 협박인가.

류지호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밀어붙였다.


“있어요, 없어요?”


작가의말

평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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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 안정 속의 변화. (5) +4 23.09.26 2,211 88 22쪽
627 안정 속의 변화. (4) +5 23.09.25 2,267 9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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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안정 속의 변화. (2) +3 23.09.22 2,294 9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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