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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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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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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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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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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안정 속의 변화.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나이로 서른다섯.

길고 긴 인생에서 또 한 번의 기로에 서는 시기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느냐, 아니면 접고 다른 길로 가느냐.

새 길을 찾기에는 다소 늦은 듯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은 것까지는 아닌 나이다.

적당히 노련하고 적당히 서투른.

그러나 가장 민첩한 나이이기도 하다.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이미 시작한 것에서 탄력을 받는 나이이기도 하고.

어린 친구들에게는 선배라고 불린다.

나이 좀 먹은 어른들에게는 어리다는 딱지를 막 떼는 시기다.

만년 고시생은 이 나이가 되면서 고시 포기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오매불망 입봉만을 꿈꾸던 조감독에서 막 입봉을 준비하던 나이였다.

서른다섯 살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창조적인 인물들이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나이기도 하다.

에디슨은 그 나이에 100여 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그러 면에서 서른다섯 즈음으로 해서 잠재력이 폭발하거나 그 잠재력을 믿고 진로를 변경하는 시기가 된다.

올해 류지호는 만으로 33살이다.

생일이 빨라 곧 34살이 된다.

한국식으로는 서른다섯이다.

사실 류지호에게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감독으로 또 투자가로 이미 일가를 이루었기에.

그런데 동갑 친구들은 인생에 있어서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


“본부장 제의가 들어왔어. 파격적이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김재욱의 소주잔에 류지호가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어디?”

“창투회사 두 군데서.”

“독립하고 싶어?”

“아니.”


김재욱이 창업투자회사의 영화부문 책임자로 아직은 부족했다.

WaW 픽처스 프로듀서라는 명함이 업계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맞지만, 그 타이틀이 한 사업을 책임질 능력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난 WaW에서 영화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 그래도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면 가끔 고민되더라고.”

“미국의 JHO Pictures처럼 해볼래?”

“네 영화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프로덕션을 맡아 보라고?”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될 <민중의 적>도 있고, <월야환록>도 네가 총괄하면 좋고.”

“혹시 <눈마새> 판권 사도 되냐?”

“판타지 영화에 관심 있어?”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언젠가 우리도 그런 영화 한 번 제작해 봐야하지 않을까?”

“<단적비연수>처럼 할 거라면 꿈도 꾸지 마.”


김재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제작비가 있어도 아직 한국에서는 <반지의 제왕> 발톱만큼도 못하니까.


“TV드라마도 해야 할 수도 있어.”

“준형이형네 Aram은 어쩌고?”

“이것저것 다 건드리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다솜 채널의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 드라마 하나 기획하고 있다.”

“트라이-스텔라TV나 TBO처럼 드라마 전문 채널로 가게?”

“거기는 UFC 중계도 하고 TBO는 복싱 중계에서 강점이 있지.”

“언제 또 한국에서 영화 연출할지 모르는 너 대신 다른 작품을 하라?”

“사수인 전하영 본부장과 의논해봐라.”

“그럴게.”


류지호가 공다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준영이형하고 곧 좋은 소식 들을 수 있는 거야?”

“최 피디가 청혼했어. 올 가을에 식 올릴 것 같아.”

“오오!”

“축하해.”

“잘 됐다.”


친구들이 일제히 공다연을 축하해주었다.

신소연은 배가 불룩 나와 있어 임산부임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신소연이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혹시 속도위반....?”

“님을 봐야 뽕을 따지.”


아들에게 음식을 챙겨주던 김민아가 투덜거렸다.


“하여간 뭐가 그렇게 바쁜지....”


찔리는 것이 많은 남편 고우찬이 딴청을 피웠다.


“지호야.”


김석민의 부름에 류지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게임회사는 내가 책임질게. 태경이가 인터넷 사업부로 가면서 내 책임이 막중할 것 같다.”


스펙트럼 홈 엔터테인먼트가 중간지주회사로 개편되면서 대규모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김석민은 게임 사업부문의 사장으로 남고, 서울대 후배 이태경은 추후 OTT 진출을 염두에 두고 사내벤처로 옮겨가게 됐다.

그 외에도 시네필 창립멤버들 대부분이 IT부문 손자회사들의 임원급으로 영전했다.


“게임개발사 하나 인수했다며?”

“GGR이라고 아냐? 탱크 슈팅게임 만든 회사인데.”

“<포트리스>?”

“그거 개발한 친구들이 퇴사해서 만든 회사를 인수했어.”

“게임이 뭔데?”

“<건바운스>라고. 재작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인데, 회사 사정이 복잡하더라고. 같이 하자고 했다.”


국민게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던 온라인 슈팅게임이 있었다.

첫 해 160억 원이 넘는 매출이 발생할 정도로 성공했다.

그런데 개발팀에게 돌아간 보상이 겨우 160만원이었다.

매출 대비 0.01%였던 것.

게다가 차기작은 다른 팀이 개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회사의 처사에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개발팀 거취에 쐐기를 박았다.

당시에 많은 게임 개발사들이 벤처수준이었다.

80~120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고, 주7일을 야근/철야를 하며 중노동에 시달렸다.

게임이 성공하면 높은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라고 믿었다

막상 게임이 성공하고 나면, 높은 인센티브는커녕 적은 보너스로 ‘퉁‘ 쳤다.

GGR을 퇴사한 개발진 일부가 소프트닉스(SoftNyx)를 설립했는데, 지난 2002년부터 <건바운스>를 서비스하고 있다.

GGR과 표절 및 저작권 소송을 진행했지만, 도리어 그들의 게임 <포트리스>보다 더 뛰어난 게임이라는 사실만 증명되었다.


“<포트리스> 같은 게임류는 한국에서 한 물 가지 않았어?”

“국내에서는... 처음 서비스할 때는 정교한 게임성과 아기자기한 그래픽이 잘 어우러져 기존 <포트리스>의 팬층을 흡수한 모양이야. 캐주얼 게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 컴퓨터 요구사양도 그렇게 높지 않았고.”


문제는 한국의 게임팬들은 이미 턴 방식 포격전 게임을 너무 오래, 많이 접했다는 사실이다.

슬슬 식상해지기 시작할 때라서 얼마 못가서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


“NEXTON에서 서비스하던 걸 스펙트럼이 가져왔어. 비록 인기가 한 풀 꺾였지만, 해외 시장 공략으로 활로를 뚫어보려고. 게임 자체가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거든.”

“<타임리 아레나>는 어떻게 하고?”

“동접 8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올 하반기부터 E-스포츠 시범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북미 서비스 계획은 구체화 되었고?”

“<건바운스>와 함께 진출하지 않을까 싶어. 올 여름 전에 인터내셔널 서버를 정식 오픈할 예정이야.”


국내에서는 <건바운스>가 한물 간 게임으로 전락하고 있지만, 인터내셔널 서버가 정식 오픈하면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참고로 제2의 <건바운스> 전성기 시기 인터내셔널 서버 동접자수 70만 명을 찍기도 한다.


“모바일 게임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거야?”

“그쪽 개발진하고 차차 논의를 해봐야지.”

“게임은 너희가 전문가니까 알아서 해. 다만 Snowstorm 배틀넷이나 <와우>도 그렇지만, 모든 게임은 개발이 다가 아닌 것 같더라. 서비스 관리와 패치팀 운영에 돈 아끼지 마.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사후 관리가 안 되면 망하는 게 한 순간이니까.”

“물론이지!”

“가온그룹 산하 계열사의 직원복지가 모두 동일한 것 알지? 창의력이라는 게 노동력하고 비례하지 않더라. 개발자들 노동 강도 잘 조절해.”

“사실 게임판이라는 게 그래. 회사를 위해 게임을 개발하고도 개발자라고 알려지지도 않고. 좋은 게임으로 평가되어도 게임 시상식에 참석도 못하고. Snowstorm이나 외국 개발진들은 게임팬들에게 잘 알려지고, 주목도 받는데 말이야.”

“네가 그렇게 만들면 되잖아.”

“고맙다.”

“그런 소리 말아, 인마.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거지. 너희만 좋으라고 지원하겠냐?”

“그러다 적자만 보고 그룹에서 찬밥 신세 되면 어쩌려고.”

“괜찮아. 온라인 게임만 만들지 말고 콘솔용이나 싱글 게임도 꾸준히 기획해.”

“......?”

“재욱이가 <눈마새> 판권 산다잖아. 그거 가지고 <엘더 스크롤 : 모로윈드> 같은 오픈월드 게임 만들어 봐라. 무조건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일본어 넣어서 해외판 배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

“첫 타이틀은 실패해도 돼. 내가 전폭적으로 밀어줄 게. 대신 오픈월드 게임의 개념을 충실히 습득해야 하고, 발전 방향도 수립할 수 있어야 되겠지.”


김석민 입장에서는 게임을 모르면서 류지호가 너무 쉽게 이야기 한다고 쏘아붙일 수 있었다.

헌데.


“가온의 디지털 연구센터든 GMG Lab이든 인공지능이 게임이든 가상세계든 3D 공간을 자동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될 거야. 개발자가 기본적인 콘셉트를 결정해주면 월드 내 자잘한 것들을 인공지능이 알아서 해주는 방식으로 방대한 세계를 채워야겠지. 인공지능이 게이머의 게임플레이를 학습해 NPC의 다이얼로그를 그때그때 생성하고 퀘스트로 제공해줄 수도 있고. 몬스터나 빌런까지도 게임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생성해 줄 수도 있고.”


김재욱이 끼어들었다.


“SF영화 에피소드야?”

“재욱이 넌 닥치고 있어 봐.”


김재욱의 입을 다물게 만든 김석민이 류지호의 설명을 곱씹었다.

자신의 모교 연구실에서도 AI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아 관련 연구도 꽤 진행되고 있다.

결코 SF적인 망상이 아니다.

실제 이전 삶에서 류지호가 죽기 전에 관련한 시도가 막 실험되고 있었다.

기술발전속도와 관련 연구에 대한 투자규모를 고려하면 2030년 안에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오픈월드 게임이 발매될 수도 있다.


“재정이는 이번 인사이동에서 빠졌더라. 무주에 계속 처박아 놓을 거야?”

“뭘 이쁘다고 불러들여? 몇 년 더 내버려둘 생각이다.”


생각보다 단호한 류지호다.

친구들은 더는 황재정을 언급할 수 없었다.

김재욱이 까불대며 썰렁해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얼마 안 가 다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 ✻ ✻


가온그룹은 계열사 개편과 인사이동으로 인해 파격적인 인적쇄신에 나섰다.


'안정 속의 변화'.


이번 조치의 기조를 요약한 말이다.

얼핏 모순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변화에 균형과 속도의 개념이 들어가면 전혀 모순되지 않다.

가온그룹은 네 개의 튼튼한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다.

무게 중심이 하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균형 잡힌 차체에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갑자기 출몰하는 돌부리를 피할 정도로 민첩성까지 갖추었다.

안정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든 진로를 변경할 수 있다.

그 같은 노선에 따라서 인적쇄신이 이루어졌다.

계열사별 인사 내역을 살펴보면, 변화 폭이 상당했다.

부사장 5명, 전무급 10명을 포함한 승진 36명, 전보 48명 등 총 84명에 대한 대규모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눈에 띠는 것은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겸비한 60년대생 젊은 경영진이 전면에 대거 포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달라진 경영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차세대 리더를 적재적소에 과감히 배치했다."


언론을 상대로 한 가온그룹의 공식 입장이었다.

가온그룹이 인적 쇄신 카드를 꺼내들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렸다.

딱히 경영 상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지 않은 시점이다.

특별세무조사에 대한 기강잡기와도 맞지 않았다.

업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재계서열 10위권의 대기업이 그룹 개편과 대규모 인사 조치를 단행한 것에 대해 의구심의 눈길을 보냈다.


“대내외 불확실성 대응의 일환으로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한 래리 킴 회장의 설명이었다.

말과는 달리 그 폭과 규모에 있어서 마치 ‘비상경영’을 선포한 만큼의 물갈이였다.

재계와 언론에서 내막을 분석하기 위해 온갖 억측을 쏟아냈다.

그때 가온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이 TV에 나와 대담을 벌였다.


- 적절한 시점의 ‘세대교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어째서 그렇지요?

- WaW 엔터테인먼트의 박건호 회장, 나래안전 시스템의 임건희 사장 등 주요 계열사의 사장단 나이가 칠순에 가깝습니다. 평소 류지호 의장은 가온이 젊은 기업임을 강조해 왔고, 의사결정은 민첩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죠.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40~50대 부사장급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다고 본 겁니다.

- 그러니까,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한다거나 경제 환경의 위기 때문이 아니라, 젊고 순발력 있는 인재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식의 세대교체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 물론 류지호 친정체제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의미도 있을 겁니다. 류 의장 직속 전략기획실의 참모들이 대거 계열사 고위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이거든요.

- 그룹 개편 작업과 함께 그룹 본사 비서실이 기획조정실과 이원화 됐지요? 래리 킴 회장의 역할과 권한이 대폭 늘어났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회장 직속의 기획조정실이 새롭게 세팅되는 것과 함께 류지호 직속의 전략기획실과 비서실도 더욱 규모가 커졌다.

경영지원 및 재무감사팀(31명), 인력팀(18명), 기획팀(14명), 경영진단팀(13명), 커뮤니케이션(12명), 법무팀(12명), 준법경영(27명), 신사업추진단(42명), 비서실(16명) 등 무려 222명으로 늘었다.

재계순위 1~5위 권 대기업 수준의 전략기획본부 수준으로 강화되었다.

그를 두고 친정체제 강화라는 말이 나왔다.


- 가온그룹의 시작이자 고향이랄 수 있는 웨딩사업 부문이 지주회사와 합쳐진 것도 이색적입니다.

-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자산운용부문을 완전히 독립시켰다는 점입니다.

- 그렇습니다. 대유가온증권이 아니라 독립된 금융자회사가 되었지요. 금산분리원칙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 추후 구 대유증권을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거라는 이야기도 증권가에 돌던데 말입니다.

- 가온은 절대 대유증권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 봅니다.


신년 벽두부터 지상파 토론프로그램마다 가온그룹의 개편과 인적쇄신을 화제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경제 관련한 신문에서도 연일 화제가 됐다.

2004년 세계경제는 고유가와 원자재 파동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미국은 1988년 이후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일본은 10년 장기불황의 덫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였으며, 중국은 9%대의 고성장을 지속했고, 동남아 국가들도 평균 6%대 중반의 성장을 이어갔다.

반면 한국경제는 이 같은 세계경제의 약진에 동참하지 못한 채 4%대 후반의 부진한 성장세를 보였다.

연간 수출실적은 사상 최초로 2,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호조를 보였지만, 소비가 2003년에 비해 감소하는 등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했다.

2005년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그런 시점에서 가온그룹이 비상 경영에 준하는 인적쇄신을 꺼내들었으니 저마다 분석하고 해석하기 바쁠 수밖에.

사실 거창한 이유가 따로 있진 않았다.

90년대부터 오너의 관여와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의 절충점을 어떻게 찾을까가 화두였다.

세계 최대의 식량기업 카질의 오너 가문처럼 주주로서의 권한만 사외이사 자격으로 행사할 것인지, 한국 재벌들처럼 이사회 의장과 지주회사 CEO를 류지호가 모두 꿰차고 그룹 전반을 지배할 것인지, Berk-Hath처럼 지주사 영업을 위주로 계열사들은 모두 독립경영하게 할지 같은.

한편으로 후계자에 대한 준비도 궁리 중이다.

스웨덴의 발렌헤리 가문이나 독일의 진칸-밀레 가문처럼 후계자들을 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엄격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춰서 후계자를 선발할 것인지, 능력과 상관없이 후계자가 오로지 이사회를 통해서만 권한을 행사하게 할 것인지, 혹은 가온재단을 통해 주주로써의 권리가 행사하도록 할 것인지.


‘서른다섯에 벌써 그런 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우습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장기적으로 후계구도를 대비하지 않아서 큰 낭패들을 보게 된다.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낭패를 겪지 않은 그룹이 없을 정도다.

류지호는 미래의 후계자로 인해 그룹이 혼란을 겪거나 소란스럽지 않길 바랐다.

자신의 자식들이 반드시 경영능력이 출중할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왕조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가면 될 것을.....’


✻ ✻ ✻


가온그룹은 ‘한국형 지배 구조’에 대한 모범 답안의 하나로 평가받는 기업이다.

정부가 지주회사 체제를 위한 법적 요건을 명시한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때 가온그룹의 지주회사 체제를 많이 참조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2004년 9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기준으로 (주)가온은 자회사(중간지주사) 12개, 손자회사 21개, 증손자회사 7개, 기타 8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통합지주사 (주)가온은 별도의 구조조정이나 합작 없이 지주회사를 설립했으며, 자회사(중간지주사)를 백퍼센트에 준하는 수준으로 완벽하게 지배하는 완전한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진보경제시민단체조차 가온그룹에 대해서는 증권거래소 공개를 통한 기업경영 투명화를 요구할 뿐,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트집을 잡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해 가온그룹은 비상장기업이지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써 공시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너와 회장의 계열사 순회가 끝나자 가온그룹과 관련 뉴스가 사라졌다.

오랜만에 곰사거리 G.O.M 강남점 의장비서실로 출근한 류지호를 전략기획실 팀장들이 맞이했다.

5대기업 전략기획본부 규모로 강화가 된 의장비서실 역시 인적쇄신으로 몇몇 팀장이 물갈이 되거나 새로운 업무파트가 신설되었다.


“전략기획실과 비서실이 이원화 되어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원활한 업무협조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실장과 대외협력팀장만 남고 다른 분들은 가서 업무 보세요.”


전략기획실과 비서실 팀장들이 의장 집무실을 빠져나가고, 류지호가 남은 이들과 회의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지열 전략기획실장이 말문을 열었다.


“World-OKTA에서 의장님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인케(INKE)도 출범하고 이런저런 해외동포경제인 모임이 난립하면서 대표성을 두고 이런저런 고민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World-OKTA는 1981년에 설립되어 모국의 경제발전과 수출촉진을 위하여 활동해 오고 있는 재외동포 경제인 단체다.

세계한인벤처네트워크(INKE)는 해외에 있는 한국 벤처기업들 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2000년에 4명의 한인 벤처기업가가 독일, 영국, 미국 세 곳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류지호는 고유현 대통령에게 해외동포 경제인을 파악해 활용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해외동포 조직을 선거에 이용할 생각만 하지 국가경제발전에 협력하며 윈윈할 수 있는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다.


“미국, 동남아시아, 유럽을 다니다보면 화교경제인들 모임을 보게 되죠. 그들 조직은 순수한 친목모임이에요. 따로 비즈니스 성과가 따라오진 않는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그들 모임은 글로벌로 놀아요. 행사를 나라를 바꿔가며 개최합니다. 개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대회를 계기로 전 세계 화교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것이죠.”


류지호를 영입해서 단숨에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단체로 부상하기 전에 글로벌 네트워크부터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의장님 뜻을 잘 알아듣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류지호가 낯선 얼굴의 중년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롭게 신설된 대외협력팀장 안병훈이다.


“보안기술지원팀은 완전히 해체가 되었답니까?”

“예. 의장님.”


가온그룹의 정보조직을 책임졌던 장문식이 캐나다로 좌천(?) 당하고, 보안기술지원팀이라 쓰고 정보조직이라고 읽었던 팀의 정보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의장 산하 전략기획실 팀장으로 있던 조준열이 나래안전 시스템의 보안정보기획 실장으로 영전하게 됐다.

의장 산하 조직에 조준열과의 연락체계를 만들며 대외협력팀을 조직했다.

팀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안병훈이다.

업계에서 가온그룹의 정보력을 논할 때 비교되는 조직이 있다.

바로 오성그룹의 대외협력업무파트라는 구조조정본부 산하의 기획팀 부서다.

이 조직은 오성그룹이 자동차사업에 진출할 때 만들어졌는데, 10여 명 정도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년 대외협력파트는 오성그룹의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정치인 관료 법조인 학자 등에 대한 인맥파일을 정비한다.

정계·관계·언론계·법조계 등등 상대로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고, 또한 물밑활동에 관한 한 타의 추종도 불허할 정도의 조직이 대외협력파트다.


“조직정비를 잘 마무리 했다고 하던가요?”

“예. 조준열 실장이 나래안전 보안기술기획실에서 한 첫 번째 조치가 그룹 전 계열사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정치인·공무원·법조인·언론인과의 친분을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호구조사’다.


“대기업에서 하고 있는 인맥조사군요?”

“가장 효과적인 정보 라인을 찾기 위한 방법입니다.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평소에도 꼼꼼하게 인맥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5대 기업은 다 갖추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식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선배가 만나자고 해서 식사자리에 가면 가온그룹 직원이 나와 있는 식이다.

생일 때 도서상품권도 보낸다.

가온그룹은 여행사를 산하에 두고 있고, 해외에 호텔과 리조트도 소유하고 있다.

접대가 필요한 이들의 가족여행을 남몰래 지원할 수가 있다.

고위관료가 될 싹이 보이는 이들이 해외연수나 유학을 가게 되면 우연히 한국인과 인연을 맺는다.

그 한국인은 가온그룹 지사 직원일 경우가 많다.

그들이 유학이나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시간이 흘러 그 직원이 관료를 담당하면서 친분을 이어가는 식이다.


“조 실장팀의 상근 직원은 10명밖에 안 되지만, 비상설기구인 그룹대외협력단은 정·관계 인맥이 두터운 계열사 임원 대부분이 참여합니다. 대략 130명 정도 임원이 참여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십여 명 가지고 실무가 됩니까?”

“각 임원들 아래 차장급 직원 1∼2명이 계열사별로 따로 실무를 담당하며 뒤를 받칩니다.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정보회의를 열어 수집된 정보를 조준열 실장팀이 분석해서 그룹 기획조정실과 저희에게 보고하는 체제입니다. 조 실장 팀에서 경계경보를 발하면 즉각 움직이는 비상대기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래안전 시스템이 구축한 정보시스템은 비상설기구까지 포함하면 총인원이 최대 300명까지 될 수 있다.

조준열의 경계경보가 보고되면 비상대기 시스템이 가동되고, 그룹 회장의 재가를 받은 후 대외협력단이 움직인다.

사안에 따라서 계열사 임원들의 인맥을 총동원할 수도 있다.


“저희는 오성그룹처럼 대외협력단의 활동실적이 인사고과에 반영되진 않습니다. 어차피 계열사 자체적으로도 별도 정보팀들이 따로 가동되고 있기에 계열사 임원들을 압박해 부담을 주진 않을 생각입니다.”

“적절한 판단입니다.”

“해외정보 역시 해외지사 및 주재원, 유학생들을 통해 수집하고 있고. JHO와 협조도 원활합니다.”

“따로 분석팀을 두진 않았고요?”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각종 라인을 통해 보고된 정보와 사내 전산망의 잡다한 정보를 면밀하게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전략기획실에서도 가지치기가 진행됩니다. 보고서는 회장님께 올라가고 의장님께는 비공식적으로 보고되는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정보팀을 가온그룹 전략기획실이나 홍보팀에 두지 않는 이유가 있다.

모든 정보수집 활동이 합법적으로만 이루어질 수만은 없다.

장문식 팀은 때로 도청이나 미행, 협박까지도 불사했었다.

가령 성영대 패거리를 혼내줄 때 필리핀 현지 카지노 모집책은 누군가의 협박을 받아 김지훈을 끌어들여 소위 작업을 쳤다.

그 누군가의 정체는 현지 모집책도 모른다.


“그 외에 그룹과 의장 직속 기획실 법무팀에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채용되면서 검찰 내 고급 정보를 탐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온로펌에서도 꾸준히 고급정보가 들어오고 있으며, 가온경제연구소의 경우 경제 정책 등 굵직한 정보를 한 발 앞서 파악하기 위해 정부 부처와 접촉면을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재정부와 산업자원부 등에서 스카우트된 관료 출신 임원들 역시 위기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문식이 정보팀을 이끌 때는 전직 정보기관원이나 건달, 경찰 같은 이들이 팀원의 중추를 담당했다.

기획과 관리에 능한 조준열이 수장을 맡게 되면서 인맥이 두텁고 사교력이 있는 공채 출신들이 대거 발탁되었다.

기존의 정보기관 출신과 함께 정·관계는 물론이고 언론·학계·검찰·경찰·군·국정원 등 사회 전분야에서 정보를 훑을 예정이다.


“장 상무팀처럼 오성이나 경일 정보팀과 쓸데없이 신경전 벌이며 인력낭비하지 않도록 하세요.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그들과 협력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 겁니다.”

“예. 이번에 합류한 공채 출신들이 알고 보면 그쪽 사람들과 건너건너 선후배고 학교 동문이고 그렇습니다. 인수합병 건처럼 경쟁해야 할 분야가 아니라면 언제든 협조가 가능할 것입니다.”

“안 팀장은 의장 산하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공연히 오지랖 부리지 않길 바랍니다.”

“예. 의장님!”


류지호가 전략기획실에 대외협력팀을 신설한 것은 은밀하고 더러운 일을 처리할 손발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양질의 정보를 제 때 보고받기 위해서다.

류지호가 벌이는 일의 규모가 국가단위로 커지면서 이전 삶의 기억만으로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고 있다.

류지호의 잘못된 의사결정 하나로 조 단위의 사업이 잘 못 될 수도 있다.


‘해외사업에 있어서 눈먼 장님으로 문고리 잡듯이 할 순 없으니까.’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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