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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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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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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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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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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민중의 적 : EMBARGO. (10)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항공촬영이 필요할 때 신고를 하면 민간항공기를 띄울 수가 있다.

그러나 휴전선 일정 거리 구역과 서울 상공은 비행금지구역 혹은 비행제한구역이다.

국방부 관할의 비행금지구역이라서 항공촬영을 하려면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서울 일대는 비행제한구역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또한 일몰 이후 서울 상공에 헬기를 띄우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무조건 금지다.

때문에 지상파 방송의 보도헬기가 뜰 때도 국방부, 서울시, 국정원이라는 복잡한 사전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민중의 적 : EMBARGO> 제작진 역시 야간 항공촬영을 허가를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허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류지호까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서울시장을 만났다.


“제가 뉴욕시장과 친분이 조금 있습니다. 뉴욕시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서울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분 시장님이 만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볼까요?”


뉴욕시장과 만나는 이벤트는 시정홍보차원을 넘어 정치적으로 꽤나 빅이벤트다.

뉴욕시장과 함께 찍은 사진은 다음 선거에서 써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치적이다.

원래부터도 류지호라면 물불 가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서울시장이다.

자신을 위해 인맥을 사용하겠다니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류 의장. 이번 세무조사 말이요. 서울국세청이 산하 기관도 아니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행하는 일이라 내가 이래라 저래라 왈가왈부하기가 영....”

“시장님이 사기업의 세무조사까지 신경을 왜 쓰십니까. 시정에 전념해도 모자란데....”

“내 혹시 몰라 서울시에 엉뚱한 생각하는 공무원이 있나 알아봤지만, 모두가 가온그룹을 좋아합디다.”

“성수동도 그렇고, 상암도 그렇고. 그룹 차원에 서울시가 추진하는 역점사업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할 것 입니다.”


한편에서는 나래안전 시스템의 군 장성 출신들이 수도방위사령부와 국방부 최고위급을 연쇄적으로 만났다.

적당한 협박과 당근책을 제시하며 협조를 당부했다.

가온그룹 사외이사와 고문으로 있는 전 안기부 출신들이 국정원 후배들을 조용히 만나기도 했다.


“영화에서 국정원에 좋지 못한 인상을 주는 장면이 있다고 하던데.... 빼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당연히 빼겠다고 약속했다.

류지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들로서는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안 빼면 또 자기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


“자네들 옷 벗으면 가온으로 올 수도 있잖아. 중대한 안보사안도 아니고 겨우 몇 시간 한강에 헬기 띄우는 것 가지고 류 의장 심기 불편하게 할 건 없잖아.”


국정원은 검사처럼 동일체 원칙 같은 거 없다.

국내팀, 해외팀 또 부서별로 제 각각 라인이 복잡하다.

게다가 나래안전 시스템과 국정원 간부들은 공생관계다.

국정원은 미국의 CIA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정보를 수집할 역량 자체가 없다.

따라서 한국 대기업의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얻는 정보나 첩보도 상당하다.

그런 상황에서 별 것 아닌 일로 류지호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현직에서 물러났을 때 갈 수 있는 직장 리스트 중에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문제없는 거지?”

“절차에 따라 신고를 했고, 적법한 심사과정을 통해 허가를 득했으니 문제될 일은 없습니다.”


민간기업의 사업 편의를 위해서 성남비행장 활주로 각도까지 틀어버리는 막장을 보여주는 대한민국이다.

잠결에서조차 안보를 피 토하며 부르짖는 보수정권의 대통령의 한 마디에.

그러니 비행제한구역에 서너 시간 헬기 띄우는 것이 대수일까.

비록 진보정권이라 할지라도 언론과 공무원만 가만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도 떠들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는 것이겠지.’


✻ ✻ ✻


퇴근시간을 훌쩍 지난 밤 10시 경.

한강대교 중간에 위치한 노들섬에서 노량진 방향으로 경찰이 차량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경광등을 든 민간인들도 보인다.

WaW 픽처스 제작부서 직원들이다.

이 촬영을 위해 지방촬영을 가지 않은 제작부들이 모두 동원됐다.

노들섬에서 노량진 방향으로 두 번째 아치형 교각.

스턴트더블이 아치형 리브(Arch-Rib) 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 아래로는 경찰차, 앰뷸런스, 119 소방대 사다리차 등이 다리위에 흩어져 있다.

경찰, 소방대원, 기자 등을 연기하는 보조출연자만 50명이다.

연출, 조명, 촬영팀들도 그 사이에 섞여있다.


투타타타타!


베이스캠프 노들섬에서 RC 핼리켐(helicam)이 떠올랐다.

카메라는 ARiCHⅢ가 장착되어 있다.

미국에서 특별히 주문해 들여온 최신 핼리캠이다.

한강 상공으로 날아오른 핼리캠이 원효대교까지 날아갔다.

류지호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슛!”


이를 전달 받은 이동화가 메가폰을 들어올렸다.


“레디!”


아치형 리브 상단에 서 있는 스턴트더블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핼리캠이 천천히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후우.


한쪽은 한강이고 한쪽은 한강대교다.

한강대교 인도에는 사람 키 높이의 안전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밥 먹듯이 몸을 날리던 그대로의 환경이다.


후웁.


스턴트 더블이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감독이 와이어를 차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지만, 번거로워서 거부했다.

와이어 없이 촬영을 하네 마네 설왕설래가 있었다.

결국 스턴트팀이 감독을 설득했다.

한강으로 뛰어드는 것도 아니고, 아치형 리브 꼭대기에 서서 소리만 지르는 대역연기다.


“액션! 액션!”


다리 아래서 조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스턴트 더블은 사력을 다행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


어차피 대사는 실제 배우의 목소리가 들어갈 터.

자신은 아무 말이나 지껄이면 된다.


휘청.


너무 연기에 몰입했나.

삐끗했다.

미끄러질 뻔했다.


휴우.


저 아래서 움직이는 이들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다행히 삐끗하고 말았다.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된 것이다.


투타타타타!


RC 핼리캠이 스턴트더블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오늘 밤의 한강은 바람이 잔잔했다.

아치형 리브 위에서 대역을 소화해야 할 스턴트더블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민중의 적 - EMBARGO> 제작진에게도.


치이익.


- 동화야! 한 번 더 갈 거야!


이동화가 다리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메가폰에 대고 소리쳤다.

누가 보면 이동화가 감독인 줄 알 정도로 열정적이다.


“스탠바이! 한 더 더 갑니다! 집중하세요!”


긴장의 끈을 잠시 내려놓았던 보조출연자들과 단역, 스태프들이 얼른 정신을 수습했다.


투타타타타.


RC 핼리캠이 방금 전 촬영 때 지나갔던 높이보다 좀 더 저공비행을 했다.

반대방향으로 날아올 때는 고도를 좀 더 낮춰 비행했다.

그 만큼 아치에 올라가 있는 스턴트더블의 위험부담이 늘어난다.


“커어엇!”


이동화가 사인을 내자, 다리 위에서 연기하던 배우들이 일제히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연출부 막내가 얼른 이동화의 곁으로 달려왔다.

막내치고는 나이가 좀 많아 보였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늦게 충무로에 발을 디딘 김덕운이란 친구다.


“조감독님, 여기 물!”

“고마워요. 덕운씨.”

“밤새도록 소리 질러야 할 텐데. 괜찮겠어요?”

“목 쉴 거 각오해야죠. 별 수 있겠어요?”


이동화와 김덕운이 모니터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방금 전 촬영분을 확인하는 류지호를 숨죽이고 지켜봤다.


“......”


류지호의 표정만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틈에 촬영감독 윤기수가 류지호의 등 뒤에 자리했다.


“감독님, 한 번 더.....?”

“400피트 다 돌린 거 맞지?”

“다 돌아갔어.”

“동화야, 항공촬영 허가 시간 남았냐?”

“헬기는 끝났고, RC는 기체 이상만 없으면 계속 찍을 수 있어요.”

“그럼 됐어. 일단 엑스트라 분량 몰아서 찍자.”


류지호가 결정을 내리자, 모여 있던 스태프들이 흩어졌다.

한강대교 상공을 선회하던 RC핼리캠이 노들섬에 내려앉았다.

몸체부터 꼬리까지 길이 1.8m, 프로펠러 길이 3m의 항공촬영 전용 RC 헬리콥터다.

NSS(Nettmann Shooting Systems)가 최근에 개발한 짐벌 마운트를 장착한 기종이다.


“디렉터 류.”


시원한 이마와 풍성한 수염이 매우 인상적인 로버트 네트만이 다가왔다.

NSS의 창업자이자 수석 엔지니어 밥 네트만이다.

WaW종합촬영소 장비대여소에서 최신 항공촬영용 RC핼리캠을 주문한 바 있다.

로버트 네트만이 직접 제품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했다.

JHO Company Goup 편입에 대해 류지호의 의중을 듣고 싶어서다.

결국 NSS가 GMG Technologies 자회사로 편입되기로 정리됐다.


“핼리캠 촬영은 끝난 건가?”

“쉬고 계세요. 한두 번 더 날려야 합니다.”

“알겠네.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지.”


로버트 네트만은 <민중의 적 - EMBARGO> 항공촬영을 모두 마치게 되면, 대전의 가온그룹 산하 디지털 연구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개발 중인 항공촬영 드론의 개발상황을 확인한 후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드론에 장착할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 자이로 안정화 헤드와 관련된 계약이다.


✻ ✻ ✻


모니터스테이션을 벗어난 류지호가 노들섬과 한강대교 경계지점으로 향했다.

그곳에 특수소품용 택시가 한 대 준비 중이다.

촬영감독 윤기수가 택시 뒷좌석에 올라타 자세를 잡고 있고, 그의 옆에는 설형기 배우가 타고 있다.


“감독님, 그냥 스트레이트로 쭉 들어갈 거지?”

“아니야. 조금 바꿨어.”


현장에서 콘티를 바꾸지 않는 류지호다.

웬일로 동선을 조금 복잡하게 변경했다.


“경찰이 한 번 막아설 거야. 그러면 강철중이 택시에서 내리게 돼. 그때 한 번 끊어서 가자고.”

“택시 밖으로 나가서도 핸드헬드로 쭉 가는 거지?”

“그 이후로는 본래 스토리보드와 같아.”

“강철중 얼굴에서 끊는다?”

“그렇게 해줘.”


리허설을 몇 번 진행했다.

본래가 간단하지 않은 촬영이다.

택시 안 시야로 경찰, 구급대, 기자, 시민의 차량들로 혼잡한 다리로 진입하는 모습을 찍고.

차에서 내린 강철중을 카메라가 계속 따라가다 현장을 지휘하는 경찰 최고책임자를 찾아간다.

거기에 택시가 멈추기 전 순경이 택시를 막아서는 상황을 하나 추가했다.

인물이 들어오는 타이밍과 카메라의 호흡이 찰떡같이 맞아야 했다.


[강 기자....!]


고위 경찰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강철중을 반긴다.


[경찰에 협상전문가 놔두고 왜 기자를 부르고... 지랄이야. 증말 대한민국 짭새 무능해도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나.]


강철중의 독설에도 고위 경찰은 대거리를 못한다.

한강대교 아치에 올라서 자살소동을 벌이는 인물은 전편에서 건달 산수로 출연한 감초연기의 대가다.

우정출연이다.

여차저차해서 강철중은 어쩔 수 없이 아치형 구조물에 기어 올라가게 된다.

산수와 강철중이 구조물 위에서 옥신각신한다.

전편과 달리 이번에는 산수가 강철중을 몰아붙인다.

실제 아치형 구조물 위에서 벌어지는 쇼트들은 WaW종합촬영소 세트에서 찍는다.

이런 장면에서 류지호는 관여를 안 하는 편이다.

접신한 것처럼 캐릭터에 동화되어 본능적으로 연기를 하는 타입의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판을 깔아주고 배우들이 알아서 마음껏 놀라고 주문할 뿐.

애드리브가 난무했다.


[근데 하고많은 기레기 냅두고 왜 나야?]

[경찰들이 그러더라고 기자 중에 기자.... 가장 개새끼 같은 기자라고. 무슨 기자가 욕을 그렇게...]

[기자는 사람 아냐? 욕을 왜 못해.]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래. 내가 개새끼라고 그랬나? 근데 너 몇 살이야?]

[그건 알아서 뭐하게?]

[몇 살이야?]

[원숭이.]

[난 64다, 이 새끼야!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어린놈에 새끼가!]

[요즘 전산화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호적의 잉크는 니미.... 야, 기자는 존대 안 해. 씨바.... 왜? 언론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니까.]

[이거, 완전 개새끼네.]


대본에 없는 대사들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했더니,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즉흥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본래는 IMF가 어떻고 먹고 살기 힘들고 어떻고 주절주절 하소연 하는 대본이다.

류지호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애드리브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후로도 산수는 툭하면 대한일보 사옥에 나타나 시위를 벌인다.

그럴 때마다 강철중과 마주치며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오로지 남을 웃기는 데만 모든 열정을 쏟는 코미디언도 열 개의 개그 중에 서너 개 터지면 성공한 거다.

한국 코미디의 연출의 문제는 ‘두타’다.

즉 머리 타격이다.

한국영화의 코미디를 이끌어 낼 때 뒤통수나 머리를 꼭 때린다.

머리 때리면 즉자적으로 관객이 웃는다.

유치하지만 절로 웃음이 터진다.

당연히 좋은 영화 연출이 아니다.

날로 먹겠다는 거다.

어쨌든, 류지호는 스스로 코미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에서 웃기겠다는 마음이 없다.

자연스럽게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묘사되었다면 놔두지만, 일부러 배우들의 연기로 우연히 뭔가를 만들어내진 않는다.

따라서 웃기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배우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폭소가 터졌다고 해서 그 장면을 영화에 넣지도 않는다.

스태프가 웃었다고 해서 관객까지 웃는 다는 보장이 없기에.

작정하고 만든 코미디 영화도 아닌데, 유머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두 번의 삶에서 감독을 해보면서 류지호가 새삼 확인한 것이 있다.

관객은 감독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웃고, 잘 운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강요하는 순간, 관객은 냉담해진다.

감독이 편집실에 앉아 키득거리며 웃음이 빵빵 터질 것이라 자신하다가 막상 극장에서 반응이 싸늘한 것을 보게 되면 당황하게 마련이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는 감독은 다음 작품부터 무리하게 된다.

더 자극적인 슬랩스틱, ‘두타’ 같은 즉자적인 코미디에 매달리게 된다.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고는 우는 모습을 길게 보여주기도 한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신파는 결코 진부한 클리셰가 아니다.

세계 유수 국제영화제 수상작에도 슬랩스틱과 신파가 활용된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영화에서는 진부하게 느껴질까.

70년도 전에는 분명 두 방식이 ‘신파(新派)’였지만, 지금은 ‘구파(舊派)’다.

한국영화는 여전히 구파가 되어버린 방식을 현대에서 고스란히 사용하기 있기 때문에 그 진부함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비평가도 알고, 영화과 교수도 알고, 기자도 안다.

관객들도 안다.

오직 투자자와 몇몇 감독만 모를 뿐이라는 것이 류지호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 ❉ ❉


4월에 시작된 가온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가 9월에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온 언론이 떠들썩했다.

그런데 위법한 사항이 드러나지 않자 간간이 나오던 기사가 싹 사라졌다.

대중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명백한 표적 세무조사라는 걸.

그럼에도 가온그룹 임직원들은 의연하게 대처했다.

작은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으면 너무 힘들다.

처음 받게 되면 정말 만신창이가 된다.

물리적으로 피곤한 것보다는 심리적인 고통이 매우 심하다.

일부 중소기업 사장은 세무조사 기간에 급격히 체중이 줄어들거나 대상포진이 발생하거나 조사실에서 나와 쓰러지는 경우까지 있다.

세무조사 결과 통지를 받고 긴장이 풀린 나머지 탈진하여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여러 차례 세무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규모 있는 사업자는 심리도 안정되고 몇몇 이슈에 대하여는 미리 준비와 예상도 하고 대처한다.

하지만, 처음 세무조사를 받는 중소기업 이하 사업자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세법상 과세대상으로 쟁점이 되면서 조사종결까지 하루하루를 고통의 나날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조사 종결을 며칠 남겨두고.


“세무조사 연장을 통보해 왔습니다.”

“얼마나요?”

“한 달 정도 더 조사한답니다.”

“아~ 씨X! 진짜!”


경험이 없거나, 억울한 경우에 조사 관서에서 세무조사 연장이나 중지통지가 오게 되면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지게 된다.

세무조사의 취지보다는 조사반 개개인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바뀌게 되면서 주변에 여기저기 민원을 제기하여 고질적인 악성 민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저승사자'는 관할 관청이나 사법기관이 아니다.

바로 국세청이다.

세무조사 기간 규정에는 조사대상 세목·업종·규모, 조사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기간이 최소한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조사대상 과세 기간 중 연간 수입금액 또는 양도가액이 가장 큰 과세기간의 연간 수입금액 또는 양도가액이 100억 원 미만인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 기간은 20일 이내로 하여야 한다.

최초로 연장하는 경우에는 관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2회 이후 연장의 경우에는 관할 상급 관서장의 승인을 받아 각각 20일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국세기본법 제81조의 8의 내용이다.

이것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기업의 세무조사는 최소 6개월이다.

경우에 따라서 1년 넘게 특별 세무조사를 받을 경우까지 있다.

지난 4월 초.

(주)나래안전 시스템에 150여 명의 국세청 직원이 들이닥친 이후로, 스펙트럼 엔터테인먼트, G.O.M International 등 계열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세무조사를 벌였다.


“올 것이 왔다.”


세간의 평가였다.

특히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을 중심으로 조사1국, 조사2국, 국제거래조사국 등이 대거 투입됐다.

아무리 특별세무조사라고 하지만 규모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국제거래조사과 인력이 현장에 나갔다는 점에 주목했다.

가온그룹의 해외 법인은 물론 오너의 탈세 및 해외 은닉재산 등에 대한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명백히 ‘기획 조사’였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서류와 전산자료 압수에 이어 금융정보분석원(FIU)을 통해 금융거래까지 추적했다.

오너 류지호의 탈세 및 해외 은닉재산에 대한 조사까지 이뤄졌다.

통상 국세청 조사1국은 대기업, 조사2국은 유통기업을 담당하며 국제거래조사국은 외국계 기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수행하는 곳이다.

또한 G.O.M Cinemas와 나래안전시스템의 계열사 부당 내부거래 의혹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와 감사원으로부터 조사, 감사를 받았다.

가온그룹의 전체 계열사를 완전히 뒤집어 놓지는 않았다.

다만 명확하게 표적을 상정하고 정밀 조사와 감사를 벌였다.


“뭐야 이 맥 빠진 결론은?”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지 대한경제 편집국장이 엠바고가 걸린 가온그룹 특별세무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무성한 소문과는 다르게 8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그것도 추징금을 부과 받은 두 회사가 국세청에 대해 과세 전 적부심사를 신청 하지 않을 때 이야기입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경제부 기자가 부연 설명했다.


“신청할 경우 금액 자체가 축소되거나 늘 가능성도 있지만,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가온그룹 입장에서는 신청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 같습니다.”


통상 대기업을 표적으로 해서 특별 세무조사를 벌일 경우, 수백 억 대 추징금을 징수당하거나 총수가 구속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10대 재벌대기업을 탈탈 털었는데 핵심 계열사도 아닌 두 곳 합해 추징금이 겨우 8억 원이다라....”

“일반 무지랭이들이야 8억 원 추징당했으니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하겠지만, 매우 투명하고 깨끗하게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는 거죠. 원래 우리나라 세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조항이나 해석이 많으니까요.”


심지어 8억 가운데 상당액은 가온그룹 자회사로 편입되기 전 나래안전시스템 전 경영진이 법인세 및 기타 세금을 누락했던 것이다.


“G.O.M Cinemas가 계열사 아네모네 프랜차이즈에 일감몰아주기를 한 사실이 일부 확인되었다며?”

“오너의 사익편취와는 거리가 멀고 부당내부 거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에서도 다툼의 여지가 충분하답니다. 가온그룹 법률팀과 다온로펌이 달려들면......”

“오너가 미국에서 농장이고 대저택이고 자가용 제트기까지 구입하는데 역외 탈세나 해외 은닉 재산에 대한 결과를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류지호가 미국에서 형성한 재산에 한국에서 흘러간 자금이 전혀 없답니다. 기껏 류지호를 대상으로 털었는데 나온 결과라고는 1,200만 원의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 부당 제공 한 건과 법인 차량 5회 무상사용이라는데. 솔직히 재벌 총수들이 제공받은 혜택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류지호는 업무 외 비용을 모두 자비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일본, 홍콩, 캐나다 등 해외 법인의 역외 탈세 가능성도 강도 깊게 조사했다.

혐의점이 없어서 검찰에 고발을 할 수 없었다.


“혐의점 없이 고발했다가 역풍이라도 맞게 되면, 여럿 옷을 벗어야 하니까. 기획 조사를 궁리한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늘공 입장에서 위험부담을 안을 이유가 없겠지.”

“맞습니다. 국장.”

“이거 엠바고 걸렸다고?”

“다음 주 월요일까지요.”

“왜? 가온그룹에서 대응할 준비시간 벌어주는 거야?”

“아닙니다. 청와대에서 제동을 걸었습니다.”

“왜?”

“가온그룹 길들이려다가 역공을 받게 생겼잖습니까? 여의도에서는 가온그룹 측과 대통령 비서실이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돕니다.”

“가온그룹한테 멱살이라도 잡힐까봐?”

“토끼굴인 줄 알고 쑤셨는데 호랑이굴인 셈인 거죠.”


편집국장이 잠시 고민했다.


“내일자 조간 톱으로 넣자. 네 단독으로 해서.”

“엠바고 깹니까?”

“언제부터 따박따박 엠바고 지켰다고?”

“가온에서 광고 빼면 어쩌시려구요? 가뜩이나 온라인 마케팅으로 전략을 수정한다고 대놓고 밝힌 마당에.”


대한경제에만 연간 15억 상당의 광고를 주고 있는 가온그룹이다.


“가온 조지는 느낌 나지 않게 적당히 균형적인 견지로 기사 다시 만져서 가져 와.”

“넵!”


뉴스 소비 경향이 종이신문에서 포털사이트로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어지간한 엠바고는 의미가 없어졌다.

언론사가 무분별하게 난립하기 시작하면서 취재경쟁보다 보도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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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하라. +7 23.09.27 2,292 89 23쪽
628 안정 속의 변화. (5) +4 23.09.26 2,211 88 22쪽
627 안정 속의 변화. (4) +5 23.09.25 2,267 93 22쪽
626 안정 속의 변화. (3) +8 23.09.23 2,375 88 23쪽
625 안정 속의 변화. (2) +3 23.09.22 2,294 94 23쪽
624 안정 속의 변화. (1) +7 23.09.21 2,435 93 27쪽
623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2) +4 23.09.20 2,336 96 25쪽
622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1) +10 23.09.19 2,342 103 25쪽
621 포토라인에 서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5 23.09.18 2,367 100 23쪽
620 모른 척 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8 23.09.16 2,395 106 25쪽
619 비평가들이 싫어하면 관객이 좋아해. +4 23.09.15 2,319 108 24쪽
618 People Not Profit! +3 23.09.14 2,307 103 23쪽
617 우린 괴물이 아닙니다! +13 23.09.13 2,340 111 28쪽
616 Only One을 향하여! +6 23.09.12 2,332 112 24쪽
615 살아줘서 고맙다..... +8 23.09.11 2,383 105 29쪽
614 민중의 적 : EMBARGO. (14) +5 23.09.09 2,322 100 25쪽
613 민중의 적 : EMBARGO. (13) +4 23.09.08 2,204 92 26쪽
612 민중의 적 : EMBARGO. (12) +3 23.09.08 2,029 79 23쪽
611 민중의 적 : EMBARGO. (11) +6 23.09.07 2,169 97 24쪽
» 민중의 적 : EMBARGO. (10) +4 23.09.07 2,017 83 23쪽
609 민중의 적 : EMBARGO. (9) +4 23.09.06 2,217 97 23쪽
608 민중의 적 : EMBARGO. (8) +3 23.09.06 2,091 85 23쪽
607 민중의 적 : EMBARGO. (7) +6 23.09.05 2,228 92 25쪽
606 민중의 적 : EMBARGO. (6) +2 23.09.05 2,134 8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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