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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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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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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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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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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뭐 이런 괴짜가 있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가 괜히 세계 최대의 국제영화제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올해 영화제 예산이 무려 2,000만 유로(약 335억 원)에 달하고, 공식후원 기업만 17개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며, 필름마켓을 포함해 출품된 영화가 장편 1,000편, 단편 40편 이상이다.

영화제 기간 칸을 방문하는 취재진만 5,000명을 훌쩍 넘긴다.

방문객은 평상시의 3배에 가까운 20만 명이며 경제유발효과는 무려 3,000억 원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필름마켓의 거래 규모가 1조 원을 훌쩍 넘긴지 오래다.

그런 세계 최고의 국제영화제에 매해 한국영화가 초청을 받아왔다.

그러나.

단편부문과 학생부문인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각각 한 편이 진출했을 뿐.

올해에는 경쟁부문에 단 한 편의 한국영화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본래는 <설국열차>의 출품이 예상되었다.

포스트프로덕션 일정이 늘어지면서 불발됐다.

다만 필름마켓에서 일부가 공개될 예정이다.


“오랜만에 미국영화의 강세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ParaMax Entertainment 사장 애덤 베이커가 류지호의 곁에 찰싹 붙어 이런저런 영화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경쟁부문 21편 가운데 6편이나 미국영화가 초청되었죠. 그 중에 보스의 <Tsogang>도 포함되어 있고.”

“예년에 비해 작품수가 적은 것 같네요.”

“경쟁부문에서 두 편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영화가 지분을 많이 차지하면서 유럽영화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칸영화제가 언제부터인가 미국영화에 과도한 특혜를 주는 인상이다.

그에 따라서 지나치게 상업주의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과 비판을 심심치 않게 받아왔다.

지난해가 특히나 심했다.

22편의 경쟁작 중 5편이 미국 출품작이었고, 개막작까지 미국영화가 장식했으니까.


“2007년에 이례적으로 4편이 초청된 이후로도 1~3편 정도가 초청되던 것에서 작년에 갑자기 5편으로 늘리니, 상업주의 논란이 터질 만도 하죠.”

“벌써부터 비판의 강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특히 <Tsogang>의 경쟁부문 초청에 대해 이러저런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세계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류지호에게 구애를 하기 위해서였는지.

경쟁 영화제에 류지호의 영화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든.

<Tsogang>을 경쟁부문에 초청한 것도 모자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에 유럽언론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Tsogang>을 비롯해 두 편의 미국영화는 유럽과 공동제작 크레디트를 올리는 영화 즉 유럽영화라고 분류해도 문제가 없는 영화라는 점이다.


“이번 칸이 욕을 먹는 건 월드프리미어 신작들을 선보이던 관례를 무시하고 미국에서 이미 개봉한지 5일이 지난 <위대한 개츠비>를 경쟁부문에 초정했다는 겁니다.”

“워너-타임이 전사적으로 밀어주고 있나 봐요?”

“무리해서라도 전 회 3D 상영할 모양입니다.”

“칸뿐만 아니라, 국제영화제들이 다 욕을 먹고 있긴 하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매해 불거지는 비판과 비난이다.

전례를 깬 미국영화 작품 숫자, 또 <위대한 개츠비>의 무리한 초청 등.

미국영화를 향한 칸영화제의 굴복이요 상업주의화의 극명한 상징이라는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같은 선택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는 칸영화제의 위상을 구기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지금은 집행위도 후회를 하고 있겠군요?”

“글쎄요. 올해 레드카펫 라인업을 보시면.....”

“하하. 레오날드 그레이프가 오랜만에 칸에 모습을 드러냈죠.”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감독의 이름값과 쟁쟁한 스타 진용에 비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미 미국에서 개봉했는데, 평단과 관객 모두에서 썩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고.


“워너-타임이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칸에서 주목을 받아야 흥행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국제 영화제가 순수 영화적 완성도로 평가된다고 믿는 순진한 업계 사람은 없다.

대중들이 모르는 가운데 물밑에서 상당한 로비가 벌어진다.

돈이 오가거나 하는 로비전이 아니다.

세계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권력을 통한, 인맥을 통한, 소프트파워들이 총동원된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단에 스티븐 아들러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미국 출신 영화인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미국영화의 경쟁부문 초청작 숫자도 사상 최초로 6편이나 되고, 심사위원단 구성도 미국출신이 많은.... 충분히 뒷말이 나올 상황이다.


“그거야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평가고. 고언형제, 존 자무슈, 사더버그... 그 사람들은 명실상부 ‘칸의 총아’들이라고 불리는 감독들이죠.”

“보스는 왜 빼십니까?”

“베니스와 토론토가 좀 더 내적 친밀감이 있어서....”


애덤 베이커가 하하 웃고는 말을 이었다.


“어찌되었든 지금까지 칸에서 이 정도 감독군으로 미국영화의 위용이 빵빵했던 적이 없었지요.”

“올해는 칸 특유의 다양성을 기대하긴 무리겠네요.”


아시아 지역에서 대세가 된 한국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중국과 일본의 거장들이 아시아 영화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증명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데, 심사위원장 스티븐 아들러가 아는 척을 했다.


“LA에서 만나지 못할 자네를 유럽에서 다 보게 되는구만.”

“오랜만이네요.”

“안녕, Jay."

“마리, 잘 지냈어? 디렉터 리도 오랜만입니다.”


류지호보다 앞 서 칸에 들어와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공식활동에 들어간 마리 키드먼과 리안 감독과도 인사를 나눴다.


“70mm 상영은 어떻게 되지? 뤼미에르 극장에서 가능한가?”


스티븐 아들러 심사위원장은 작품의 완성도보다 상영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위대한 개츠비>가 3D로 상영되고. Eye-MAX 상영도 가능한데, 70mm가 안 될 이유가 없죠.”

“아직까지 70mm 필름 상영이 가능하다니, 왠지 안도감이 드는군.”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과거 영사기를 꺼내 손을 본 모양이더라고요.”


참고로 Eye-MAX 역시 65mm 필름을 사용하지만, 촬영과 영사방식이 기존 70mm 영사시스템과 완전히 다르다.

실제 필름 사이즈는 65mm다.

사운드 트랙이 양쪽에 들어가는 상영용 프린트가 70mm다.

그래서 보통은 70mm라고 표현한다.

암튼 Eye-MAX(15/70) 포맷 영화는 필름을 세로로 눕혀서 영사기 렌즈를 통과시키고, PanaFlex 70mm 포맷은 35mm와 동일하게 통과시킨다는 차이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70mm 영사기는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프랑스에서도 일부 오래된 극장을 제외하고 디지털 영사시스템에 밀려 마치 골동품처럼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20년 만에 오리지널 슈퍼파나비전 영화를 보게 되겠어.”

“정확하게는 17년 만이죠.”

“원하면 필름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나?”

“특별한 감독들에게 한정될 겁니다.”

“차별을 둔다는 거야?”

“제작비 문제와 작업공정의 난이도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아무 감독에게나 스튜디오가 쉽게 허락하지 않을 걸요.”

“극장 문제도 있겠지.”

“아마도 10년 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필름을 상영할 수 있는 스크린이 100개도 안 남을 거예요.”


JHO Pictures는 <Tsogang>의 미국 상영을 위해 각지에 흩어져 있는 70mm 필름 영사기와 부품들을 사들이고 있다.

70mm 영사기가 고철로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확보해둘 작정이다.


“그나저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몰라요.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나중에 따로 이야기 좀 해..”

“그러시죠.”


스티븐 아들러와 헤어진 류지호는 <Tsogang> 출연진들과 함께 개막식 레드카펫에 참여했다.


“새론, 긴장 풀어.”


아프리카 현지 배우 중에서 유일하게 칸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새론 제프투가 유난히 긴장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긴장감을 떨치지 못했다.



쏴아아아!


레드카펫 행사 전에 소나기까지 내리면서 새론 제프투는 더욱 안절부절 못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취재진과 팬들이 장사진을 이뤘기 때문이다.

막상 레드카펫 행사가 시작되자.


“에이야~ 헤이야! 잠보!”


류지호와 에지오포가 아프리카 전통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새론 제프투가 그런 모습에 힘을 얻었는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긴장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류지호와 에지오포가 흥얼거린 노래는 <Tsogang>의 OST다.

새론 제프투가 용기를 내면서 배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춤을 췄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취재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메리 번을 빼고 <Tsogang>의 출연한 배우들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없다시피 했다.

홍보팀에서는 스포트라이트가 류지호에게만 모아질 것을 우려했는데.

레드카펫 위에서 배우들이 함께 <Tsogang>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래서 국제영화제가 할리우드 영화에 목을 매지.”


레드카펫에 어떤 이들을 세우느냐가 영화제의 위상을 나타낸다.

할리우드 영화 프리미어와 아카데미를 제외하고, 그 어디에서도 특급스타를 한둘도 아니고 여럿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레오날드 그레이프를 비롯해 할리우드 특급스타 다수를 만날 수가 있다.

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들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도 많다.

안타깝게도 국제영화제의 흥행여부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초청유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작가영화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우리의 삶을 주시하고, 열정적이고, 섬세한, 세계 어떤 나라의 감독의 첫 영화 혹은 적은 예산으로 만든 영화 등은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없는 걸까? 왜 이런 영화들은 칸 경쟁작에서 점점 사라져만 가는가.]

- Cahiers du Cinéma 편집장의 시선 중에서.


국제적 명성의 영화제의 경쟁부문에서 새로운 발견보다 안정적인 것에 주목하는 경향을 비판한 말이었다.

올해 칸영회제 포스터가 보여주듯 이번 테마는 사랑, 성(性), 가족 그리고 관계를 탐구하는 영화들로 채워졌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극장을 벗어나 정치적 구호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유발하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로 가득한 영화가 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개막작 <Tsogang>이 제국주의와 인종차별 문제를 건드리고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세기의 로맨스를 다룬 진부한 사랑 타령일 수도 있다.

국제영화제는 주로 마니아들이 찾는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 거장들이 작품을 거듭할수록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변주해나가는지 궁금해 한다.

신인 발굴이나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거부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당연히 그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 영화제의 임무다.


✻ ✻ ✻


개막식에 앞서 류지호는 프레스콜, 기자회견, 레드카펫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70mm 오리지널 시네마스코프 2.35:1 화면비로 <Tsogang>이 상영되면서 아나몰픽 렌즈를 이용한 슈퍼 35mm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화질과 질감을 선사했다.

이번 칸영화제에 취재차 방문한 수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의 류지호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다.

오랜만에 저예산(?) 영화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진지한 문제의식을 저예산 영화에서는 곧잘 표현했던 류지호다.

게다가 케케묵은 70mm 와이드스크린을 꺼내들었으니 궁금증을 한껏 자극할 만했다.

우호적인 시선으로 긍정적인 기대감을 품은 이들.

조금이라도 실망스럽다면 실컷 비웃어줄 준비가 된 이들.

두 개의 진영으로 갈렸다.

독설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칸영화제 리뷰를 생각해볼 때, <Tsogang> 제작진은 단단히 마음에 준비를 했다.

<Tsogang>은 개막작 상영, 언론 시사회, 메인 상영 등 총 4회에 걸쳐 상영되었다.

그 중에서 언론 시사회는 냉탕과 온탕을 정신없이 오갔다.

프레스 스크리닝은 의례적인 기립박수가 나오다가도 실망스런 영화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야유가 쏟아진다.

영화제 초반에만 몇 편의 영화 시사회에서 기자들의 맹렬한 야유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Tsogang>은 열렬한 기립박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반응들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한고비 넘겼나....?’


프로듀서 게리 캠프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류지호는 비평계에서 정의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다소 혼란스러운 감독 중에 한 명이다.

한국에서 또 일본에서 그리고 주활동 무대인 미국에서.

곳곳에서 찍은 영화들의 장르와 형식에서 일관된 흐름이 없다.

이번엔 아프리카다.

워낙에 다양한 문화권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에 작품세계를 큰 틀에서 분석하고 정의내리기 쉽지 않다.

심지어 차기작이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하다하다 우주까지 가서 찍냐?”


기자들 사이에서 그 같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류지호가 MARS-X의 주주인 걸 빗대서 하는 농담이다.


“필모그래피에서 주제나 스타일에서 일관성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 뭐 이런 괴짜가 다 있지?”


유럽의 한 영화잡지 기자가 <Tsogang>을 관람한 후에 한 투덜거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열린 공식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까지 혼란스러웠다.


- 영화 제목에 대해 말해 달라.

“보츠와나 국가의 후렴구다. ‘깨어나라’라는 뜻이다.”

-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어떤 요소를 먼저 떠올렸나. 캐릭터인가, 장소인가, 어떤 특정 이미지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나.

“내가 어떤 이야기에 매혹되었다면... 그것은 캐릭터나 장소, 이미지 등 모든 요소들이 한순간 밀려오고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거대한 황무지에서도 생명력이 꿈틀거린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던 것에서 출발했다. 아내와 동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며 6편 정도의 시놉시스를 썼던 것 같다. 그 가운데 하나가 <Tsogang>이다.”

- 다른 이야기도 말해줄 수 있나?

“대륙과 인종의 경계를 넘나들며 식민주의와 욕망, 폭력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도 있고, 에티오피아의 유명한 재즈뮤지션의 이야기도 있고,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수단의 현실을 다룬 이야기도 있다.”

- 그 영화들도 제작될 예정인가?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 매년 한 편 씩 영화를 내놓는 것 같다. 작은 영화부터 대작까지 다양하다. 비결이 뭔가?

“난 천재가 아니다. 그래서 꾸준히 집요하게 파고든다. 매일 단 한 페이지라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연습이 아니다. 매우 진지하게 한 씬을 작성한다. 아주 예전에 폴 벡숑과 시나리오 쓰기 습관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를 만난 이후 더 부지런해졌던 것 같다.”

- 작성한 시나리오가 얼마나 있나?

“나도 모른다. 꽤 많을 거다. 몇 편을 썼는지 확인하진 않는다.”

- 벨에어의 비밀의 방에는 마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러의 방같이 꾸며진 곳이 있다고 들었다.

“내 머릿속의 잡다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놓은 것뿐이다. 정돈된 상태보다 무질서한 상태에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방은 정리정돈을 잘 안 한다. 내 아내도 그 방에는 잘 안 들어간다.”


게리 캠프가 끼어들었다.


“그 방은 끔찍하다. 10분 이상 머물게 되면 두통이 몰려온다.”


질문의 대상이 게리 캠프로 바뀌었다.


- <Tsogang>은 요즘의 할리우드 분위기에서 예산이 적은 편에 속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더 많은 예산을 쓸 수 있음에도 디렉터는 종종 저예산을 고집하는 것 같다. 프로듀서로서 어떻게 보나?

- 음···. 예산이 아무리 적어도 감독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촬영을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 Jay는 연출에 정말 완벽한 본능적 감각을 지녔다. 그런데 어느 날 현장에서 디렉터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억 달러짜리 영화를 찍을 수 있으면서 왜 고생을 사서하지?’ 그래서 물었다. ‘처음으로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린 영화의 예산은 300만 달러였잖은가. 세상에는 100만 달러짜리 영화도 많다. 난 잘할 수 있는 걸 그저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더라. 난 Jay와 일하면서 그가 예산문제에 직면해서 좌절을 겪는 모습을 단 한 순간도 본적이 없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후회도 했을지 모른다. 내가 그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상황, 어떤 위치에서든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다.“


다시 질문이 류지호에게 향했다.


- 이 영화는 중간급 예산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짜임새 있게 완성된 느낌이다.

“중간급 예산의 촬영현장에선 어떤 예외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떤 배우가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더라도 감독은 예정된 대로 촬영을 완수해야 한다. 그런 건 영화만 봐서는 알 수 없다. <Tsogang>은 그렇게 타이트하지 않았다. 상대적인 거다. 15주를 쓰든 9주를 쓰든 혹은 단 4주만에 완성을 해야만 하든. 영화연출에 있어서 마법의 순간은 촬영날 현장에서 배우와 나누는 교감에 있다. 그런 교감으로부터 좋은 장면이 나오는 것인데, 이번 영화에선 전작들보다 리허설 시간이 많이 주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훌륭히 해냈다.”


질문이 추이텔 에지오포에게 향했다.


- 에지오포, 당신은 그렇게 작은 키가 아닌데, 영화 전반부에서는 조금 작아 보인다. 그런데 어떤 사건 이후부터 어딘지 갑자기 키가 자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일부러 구부정하게 설정을 했다거나 왜소하게 보이려고 애쓰진 않았다. 디렉터는 내게 캐릭터를 일관되게 유지하라고 주문했다. 초반에 품이 조금 넓은 옷을 입혔다. 촬영 때는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주변의 인물들로 신장이 큰 인물들이 배치되었더라. 카마가 일종의 각성을 한 이후부터 모든 출연진이 내 신장과 비슷해졌다.”

- 류지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후 어떤 점에서 변화가 있었나.

“아주 자유롭게 작업했다. 그건 우리 사이에 깊은 신뢰가 쌓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 디렉터 류는 배우와의 유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 번과 새론 제프투가 차례로 대답했다.


“내게 많은 자율권을 줬다. 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적이 없었다. 불행했던 건, 감독과 대본을 분석하기 위해 그의 집에 방문할 때마다 그의 아내가 맛있는 것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크랭크인하기 전에 1.7Kg이 쪘다. 다이어트 하는데 애를 먹었다.”

“영화에 입문하는 단계에서 많은 것을 감독과 다른 배우들에게서 배웠다. 이번에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른 영화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Le Monde의 영화전문기자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 거대한 이야기가 아닌데 결국 거대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유가 그런 식으로 전편에 걸쳐 장치를 두었기 때문인가? 세레체 카마가 떠나는 첫 장면에서 그의 조국에는 포장도로가 없었다. 그런데 사랑과 함께 쟁취한 독립한 조국에는 근사한 포장도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정표까지 떡하니 길가에 달려있다. 나는 디렉터가 그 이정표에 민주주의의 길과 독재의 길을 새겨 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정표에 베추아날란드의 수도 가로보네가 써져 있지 않았나?”

- 어떤 사람들은 당신의 그런 두루뭉술한 엔딩에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잘 참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Tsogang>을 관람하게 된다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보츠와나에 대해 검색을 해볼 것이다. 그를 통해 보츠와나가 좀 더 세계에 알려졌으면 좋겠다. 미지의 나라가 아니게 되면, 보츠와나는 세계인의 감시를 받게 된다. 보츠와나의 지도자들이 220만 국민 외에 수십 억 명의 감시자를 신경 써야 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 본인이 직접 연출을 할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감독에게 맡겼으면 어땠을까?

“그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쉽지만 실현 되지 못했다.”

- 아프리카 로케이션이 힘들지는 않았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들, 가령 에볼라 바이러스, AIDS, 말라리아 등. 아프리카 촬영을 두려워해 시작 전에 하차한 사람도 있었다. 아프리카에도 병원이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비록 약도 인력도 많이 부족하지만. 세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침대에서 나오지 말아야 한다. 나의 용감한 크루들은 선입견을 떨쳐내고 아프리카 촬영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 떠들썩하고 난잡스런 풍자가 판을 치던 영화에서 다시 소박하고 잔잔하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영화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교양인을 위한 퍼즐을 오랜만에 선보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수 있는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힘 빼고 찍었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난 아무것도 안했다. 프로덕션이 진행될 때 숨만 쉬고 있었다. 이 영화가 볼 만 했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머릿속을 잠시 다녀갔던 밥 리차드슨, 데니스 개스너 같은 크루들과 내가 시키지도 않은 연기를 자기들 멋대로 훌륭하고 멋드러지게 해낸 배우들 덕분이다.”


기자는 꼬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즉각 되물었다.


- 아무것도 안 했다고?


작가의말

너무 덥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건강 유의하십시오.

활기찬 한 주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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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 좋은 기업이란. (2) +4 24.09.09 897 61 25쪽
956 좋은 기업이란. (1) +3 24.09.07 965 64 24쪽
955 요즘, 유독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9 24.09.06 995 71 26쪽
954 Mr. Hollywood! +20 24.09.05 1,014 84 27쪽
953 En Taro Kubrick! +9 24.09.04 991 73 24쪽
952 박수칠 때 떠난다! (2) +8 24.09.03 998 75 26쪽
951 박수칠 때 떠난다! (1) +9 24.09.02 1,026 66 26쪽
950 Tri-Stellar의 경쟁자는 또 다른 Tri-Stellar다! +9 24.08.31 1,047 68 23쪽
949 믿어 좀! 의심하지 말고. (3) +10 24.08.30 1,045 70 27쪽
948 믿어 좀! 의심하지 말고. (2) +8 24.08.29 1,026 72 26쪽
947 믿어 좀! 의심하지 말고. (1) +3 24.08.28 1,057 72 21쪽
946 Brood War. (8) +3 24.08.27 1,006 62 24쪽
945 Brood War. (7) +7 24.08.26 997 64 27쪽
944 Brood War. (6) +5 24.08.24 1,027 67 25쪽
943 Brood War. (5) +4 24.08.23 1,055 64 23쪽
942 Brood War. (4) +6 24.08.22 1,027 65 24쪽
941 Brood War. (3) +2 24.08.21 1,073 70 24쪽
940 Brood War. (2) +4 24.08.20 1,089 66 27쪽
939 Brood War. (1) +6 24.08.19 1,155 70 26쪽
938 다스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 +2 24.08.17 1,151 72 25쪽
937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3 24.08.16 1,179 78 27쪽
936 자넨... 정말 미스터 할리우드가 맞는 것 같아. +6 24.08.15 1,179 76 23쪽
935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 +5 24.08.14 1,161 72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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