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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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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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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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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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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Brood War.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영화감독을 유형별로 나누자면, 크게 스토리에 좀 더 치중하는 경우와 화면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화에서 스토리와 화면은 따로 분리할 수 없기에 한쪽에 좀 더 비중을 둔 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류지호는 플롯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거나 충격적인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부류의 감독은 아니다.

의미심장한 메타포가 심어진 이미지.

강렬한 시각적 쾌감.

극단적인 이야기를 절묘하게 배합.

그 같은 솜씨가 일품이란 소리를 주로 듣는 감독이다.

굳이 분류해야 한다면, 비주얼리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에 가깝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류지호는 ‘거장’ 소리 들을 수준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영화예술에 있어서 분명한 성과가 있긴 하지만.

현대의 영화거장들의 필모그래피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류지호가 영화예술의 큰 줄기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영화에 있어서 ‘작가주의‘의 개념이 확대되는 추세다.

연출에 있어서 주제의식, 스토리텔링 그리고 미장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태런티노나 놀란처럼 기존의 플롯을 전복한다던가.

고언형제처럼 안티 할리우드적인 블랙유머를 통해 독창적인 범죄물 장르를 만들어낸다거나.

고전적인 연출스타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웨슬리 앤더스의 스타일리시한 영화도 있다.

히치콕이나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원 씬 원 쇼트 시퀀스를 선보인 류지호는 클래식한 연출에 현대적인 감각적 화면 구도, 색감 활용, 조명 효과, 미술 디자인을 융합해 미장센 중심의 내러티브를 구사한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무슨 수를 쓰든 미장센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난기 다분한 <Dream Come True>에서조차 컬트적인 구도와 화면 색채를 선보이기도 했으니까.


제이그램(Jaygram).


류지호가 사용하는 스토리보드(storyboard)를 스태프들이 부르는 명칭이다.

오직 류지호의 영화 프로덕션에서만 볼 수 있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가 하던 방식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의 한국식 콘티북이다.

영국출신 거장 리드 스콧이 데뷔작 <결투자들>부터 <프로메테우스>까지 스스로 꼼꼼하게 그린 스토리보드를 지칭하는 이른바 '리들리그램'(Ridleygram)에서 따온 말이다.

리드 스콧 감독은 <에일리언> 연출 기회를 얻기 위해 3개월의 시간동안에 주요 장면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스케치해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그 스토리보드를 스튜디오 간부들에게 보냈고.

이미지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영화를 본 것 같은 인상을 받은 스튜디오 임원은 그에게 기꺼이 메가폰을 맡기기로 했다.

리스크 관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 스튜디오 임원들이다.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는 리드 스콧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업계 전설 같은 일화다.

UCLA 영화학도 시절부터 류지호의 스토리보드는 제법 유명했다.

상업영화를 하면서 더욱 유명해졌고.

리드 스콧처럼 멋지게 그림을 그릴 줄은 몰라도 정교한 콘티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제이그램(Jaygram)이다.

처음에는 류지호 사단의 크루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던 말이었다.

그러다가 류지호만의 특별한 모습이랄 수 있는 풀스토리보드 스타일을 높게 평가한 평론가들이 그 표현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할리우드 취재기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되었다.

참고로 류지호는 눈사람 혹은 졸라맨 스타일의 스케치만 한다.

그걸 전문가가 멋진 그림으로 탈바꿈시켜 준다.

Timely comics 소속의 데생 작가가 주로 작업해 오고 있다.

제이그램의 그림만 떼어놓고 보면 Timely풍의 그래픽노블 같다.


- 류지호 감독의 <REMO : Or Maybe Dead!>의 스토리보드북, 미국 영화학도들의 필독서로 선정돼!


한때 이런 뉴스가 한국에서 보도된 적이 있었다.

과장된 뉴스다.

Eye-MAX 3D 영화 <REMO Ⅲ : Or Maybe Dead!>의 스토리보드가 미국에서 출판되긴 했다.

생각보다 많이 팔렸지만, 영화학도 필독서는 아니다.

미국 영화과 교수들이 선정한 영화과 학생들이 참고할 만한 추천 도서 수십 권 중에 하나로 뽑히긴 했지만.

그 목록에는 히치콕, 큐브릭, 스콧 등 쟁쟁한 거장들의 스토리보드가 총망라되어 있다.

그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 자체가 류지호로서는 영광이긴 하다.

류지호의 스토리보드는 디테일과 수준이 꽤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림의 디테일이 문제가 아니다.

스토리보드에 표현된 정교한 콘티와 연출 요소가 매우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3D 영화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하고 있다.

3D 영화 기초 입문서 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다.

좀 더 심화된 3D 콘티는 <아바타> 메이킹이나 스토리보드를 참조하면 되고.

<스타크래프트> 실사화 3D 작업은 <아바타>가 제작될 때보다 여건이 상당히 좋았다.

리그(Rig)가 필요 없는 일체형 3D 카메라까지 개발되어 있다.

포스트프로덕션의 파이프라인도 훨씬 탄탄해졌고.

스크립트의 그린라이트는 3고만에 켜졌다.

반면에 스토리보드는 무려 8번이나 갈아엎었다.

그로 인해서 제이그램이 완성되기까지 무려 6개월이나 걸렸다.

그 과정에서 류지호의 고민은 하나였다.


“무엇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스타크래프트>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어떤 영화도 시도한 적 없는 비주얼을 보여주는 것.

류지호는 <Chrismas Cargo>의 연출에 임하면서 두 편의 영화에 경의를 표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57년 작품 <영광의 길>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1948년에 내놓은 <로프>라는 영화다.

류지호의 특기 중에 하나로 자리 잡은 원 씬 원 쇼트, 혹은 원 컨티뉴어스쇼트 촬영의 영감을 받은 영화중에 하나가 바로 <영광의 길>이다.

이 영화에서 큐브릭 감독은 흔들림을 극도로 억제해 참호 속을 미끄러지듯 돌아다니는 유려한 카메라 워크를 선보였다.

현장감을 극대화하면서 형식적인 안정을 동시에 얻는 효과를 얻었다.

류지호는 그 같은 기조를 이어받는 동시에 더욱 발전시켜서 단편영화 시절부터 가능한 한 호흡에 영화를 끌고 가면서 영화 속 실제 공간을 누비는 인물의 체험에 관객의 시선을 일치시키도록 유도했다.

또한 알프레드 히치콕은 이동 촬영 중 인물의 등이나 장애물을 거치며 화면을 가렸다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단절된 숏을 연속적으로 연결한 바 있다.

류지호는 <Chrismas Cargo>에서 밤새 이어진 전투 장면에서 장진호의 민가의 아침 식사 장면으로, 다시 얼어붙은 강에 떠내려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시체로 옮겨가는 식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충돌시키고, 서스펜스와 서정을 교차시키며 강렬한 감정적 시너지를 일으킨 바 있다.

그 같은 기법들로 인해 ‘감상’이 아닌 ‘체험’의 영화가 되었다.

네이팜탄 포격으로 재만 남은 민둥산, 포격으로 패인 웅덩이에 살얼음, 손대면 부서지는 꽁꽁 얼어붙은 시신들... 그런 것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여느 반전(反戰) 영화들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했다.

류지호는 전쟁을 직접 전시하는 것보다 그 분위기와 공기를 체험시켜서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것이 깊이를 얻는 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Chrismas Cargo>는 전쟁 소재의 장르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전쟁을 체감하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간혹 익스트림 롱 쇼트로 잡힌 전장의 풍경으로 인해 소격효과까지도 일정부분 성공했었고.

<스타크래프트> 실사화 프로젝트는 지금껏 류지호가 해왔던 모든 시도들의 종합판이 될 예정이다.


“과연 새로운 비주얼이 있기나 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뭉뚱그려진 현대 창작물을 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전을 찾아보았다.

SF장르를 찍기 위해 1920~1970년대까지 다양한 영화를 레퍼런스로 삼는 것이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류지호는 새로운 것이 없다면 이미 나와 있는 것을 융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레퍼런스가 된 영화는 큐브릭의 영화도 스콧의 영화도 길리엄의 영화도 루카스의 영화도 아니었다.

수많은 할리우드 후배 감독들의 시각적 스타일에 영향을 준 클래식 중의 클래식.

Eye-MAX 영화를 찍을 때마다 참고하게 되는 바로 그 감독의 작품들.

돌고 돌아, 결국 데이비드 린 감독이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


류지호는 이 영화를 스테레오그래퍼인 로이 캠벨, 촬영감독 디온 비베,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니 개스너와 함께 수도 없이 관람했다.

그것도 1989년에 복원 및 화질 보정 되고 35분 러닝타임이 추가된 디렉터스컷 버전 프린트를 구해서.

Gower Studios 시사실에서 주구장창 관람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며 뭔가 배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영화를 틀어놓은 채, 네 사람이 미술, 3D화면 구성, 콘티에 대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토론할 뿐.

레퍼런스 영화들을 꼼꼼하게 분석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 세계관에 등장하는 참호전, 벙커전투, 탱크전투, 공중전 등과 함께 레이너 특공대가 펼치게 될 게릴라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게릴라전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론을 발전시키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최초의 현대 전략가 T. E. 로렌스(Lawrence)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1,2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전투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진 않았다.

500여년 후, 저 먼 은하까지 진출한 인류가 원시적(?)으로 땅을 파서 참호에 들어가 보병전투를 치를 것 같지도 않고, 인간 vs 인간 전투양상보다 세 개의 다른 특성을 가진 종족의 전쟁이었기에 인류의 전쟁전술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정보기관과 군 전략관 출신들을 자문으로 초빙해서 의견을 구하긴 했다.


“차라리 한국전쟁에서 인해전술을 펼친 중공군에 맞선 국군의 신출귀몰 유격전이라면 모를까.”


<Christmas Cargo>에서 묘사한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중공군에 맞서 덕동고개를 방어해낸 F 중대의 활약이 저글링 떼에 맞서 후퇴 없는 참호전을 펼친 마 사라 민병대의 모습과 유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긴 했다.


“원작 게임의 디자인을 존중하려고 해도, 걸리는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어야 말이지.”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니 개스너는 괜히 원작게임의 실사화에 끼어들었다 싶은 후회가 들기도 했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디자인에 온갖 영화에서 따온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영감이고 오마주죠. 사실 대놓고 베낀 것도 많아요.”

“그걸 어찌 그대로 영화에서 쓰겠어.”


영화미술가로써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지만.

표절의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그래도 대놓고 베낀 것 중에 <스타워즈>를 비롯해 몇 개 영화 저작권을 JHO Company 계열이 가지고 있어서 소송 위험은 없죠.”


가령 코랄행성, 샤일로 행성 등은 <스타워즈>의 코러산트 행성을 노골적으로 가져다 썼다.

류지호의 영화에서 게임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한다면, 자칫 Skywalker Films로부터 디자인 도용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다.


“전문가들을 자문단으로 구성했잖아요. 귀찮더라도 고증을 받도록 하세요.”


<스타크래프트> 행성 디자인만을 위해 UCLA 공대 학장을 중심으로 미국의 유명 건축가, 도시계획가, UC계열 건축과교수 등 전문가팀을 꾸렸다.

전문가팀은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의 사회상 및 자연 환경 변화 그리고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예측을 토대로 2500년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풍경 20가지를 예상했다.

그것을 기본 바탕으로 마 사라, 안티가 프라임, 타소니스 등 주요 행성 도시 디자인 10개를 만들어냈다.


“에드가 드가입니까?”

“드가가 친구 마네와 함께 한동안 탐닉했던 경마 그림들이야.”


데니 개스너는 레퍼런스로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의 경마 시리즈 화첩을 제시했다.


“발레 시리즈가 아니네요?”

“그 그림들은 너무 우울하니까. 발레리나 그림을 레퍼런스로 썼다고 하면 디렉터를 공격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먹잇감을 줄 수 있지 않겠어? 예술적 가치와 상관없이....”

“난 상관 안 해요.”


에드가 드가는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을 많이 받는 화가다.

스스로도 그와 관련해 어떤 변명이나 해명을 하지 않았고.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을 상당히 많이 그렸다.

그것도 공연 모습이 아닌 리허설이나 공연 후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드가가 활동했던 1800년대 후반의 발레리나들은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일이 많았다.

가난한 집 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재력 있는 후원자에게 후원을 받아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들이 많았다.

드가에게 그런 발레리나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림 속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될 리가 없다.

때문에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들의 얼굴은 보통 뭉개져있다.

그림 곳곳에 어린 발레리나를 노리는 남성들의 모습을 암시하기도 했고.

다른 화가들과 달리 여성을 굳이 미화하지 않았다.

당시에 성적으로 타락한 사회 모습을 풍자하려는 의도라는 식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을 원숭이에 비유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드가가 여성혐오자일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의 일상을 다루고, 발레라는 예술행위를 화폭에 담았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은 그림들.

누구는 여성에 대한 경멸이 담겼다고 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우울하고 슬프고 고독해 보이는 그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데니 개스너가 발레리나의 그림이 아니라 경마 시리즈를 제시한 의도를 류지호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톤 앤 매너가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SF가 아니라, <스타워즈> 풍의 스페이스 오페라로 접근하고 있는 거네요?”


즉 밝고 낭만적인 SF 블록버스터를 따르겠다는 의미였다.

Timely Cinematic Universe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낭만적이면서 움직임이 많은 모험활극이란 것에 일단 동의해요. 다만 SF 장르가 현실 사회의 일면을 풍자하기 좋은 특성을 가졌다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네요.”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다.

스토리텔링, 상징과 은유는 연출가의 것이니까.


“드가 그림을 보면, 작품 속에서 춤을 추거나 공연을 준비 중인 발레리나와 그녀를 지켜보는 어두운 그림자의 모습을 가진 부르주아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어요. 내가 알기로는 당시 발레리나는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소녀들이 택하는 신분상승의 통로였는데. 그 욕심과 또 상품화된 육체를 탐닉하는 타락한 부르주아의 모습이 드가의 작품 속에는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 거죠. 퇴폐적으로 변질된 프랑스 예술계를 꼬집어 낸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삐딱하게 보면 드가 자신 역시 그러한 상품화된 육체를 구경하고 즐기는 부르주아 중의 한 명 일 뿐이죠.”

“디렉터는 경마 그림보다 발레리나 그림에 더 끌리는 모양이야?”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 사라 캐리건과 맹크스와 붙는 어떤 장면에서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 중 하나를 오마주하면 어떨까 하는....”


드가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토론을 하다보면 해가 질 터.

예술작품에서 독재나 파시즘을 암시할 때 성적도구로써의 여성을 묘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크튜러스 맹크스를 드가로 대입해 보면 사라 캐리건에 대한 그의 시선이 어떠할지 곧바로 떠오르는 류지호다.

기회만 엿보고 있던 로이 캠벨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테란연합의 권력자들이 로리타 콤플렉스라도 있었을까?”


잠자코 있던 데온 비베가 입을 열었다.


“일본의 망가에서 그런 경향이 일부 엿보이기도 하지.”

“일본에서는 아동 포르노물에 대한 규제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예외니까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일본은 1999년부터 아동 포르노물의 생산과 유포만 규제해 왔다.

당시에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등장하는 18세 이하 캐릭터의 성적인 장면 역시 금지하라는 요구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여러 논란 끝에 일본의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0대 소녀가 등장하는 성적인 만화가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일본에서 국회의원들도 수천만 명의 만화 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일본에서는 ‘아동학대는 나쁘지만 아동과의 성적인 상황을 상상하고 즐기는 것은 불법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생각을.....”


일본이 달리 성진국이 아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늦게 아동 포르노물 관련된 규제가 생긴 것이 일본이다.


“암튼....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서 사라 캐리건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연합에 의해 각종 실험을 당하잖아. 결국 고스트(Ghost)라는 요원으로 양성되고. 디렉터도 재팬애니 <최종병기 그녀> 알지?”


끄덕.


“<건슬링거 걸>도 알아?”


도리도리.


“프랑스 폴 벡숑의 <니키타>에서 따온 것 같긴 한데, 거기 등장하는 의체들이 모두가 장애 혹은 심각한 사고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10대 초중반 즈음의 소녀들이 베이스거든.”

“난 <스타크래프트>에 재팬애니는 묻히고 싶지 않아, 로이.”

“그런 게 있다고. 참고하라고 한 말이었고. 암튼 사라 캐리건의 경우와 달리 고스트에 발탁된 아이들의 중에 부모가 신분상승을 욕심으로 자원했을 수도 있지 않겠어? 모두가 피해자라면 사라 캐리건의 비극이 변별점이 없을 것 같아서.”

“고스트는 권력자들의 사냥개로 키워졌지만, 그로 인해 권력자의 가장 가까이에 있게 되지. 수많은 범죄 장르물의 클리셰 중에 하나긴 해.”


참고로 짐 레이너 역시도 아들을 고스트 사관학교에 보냈다가 사고로 잃은 아픔이 있다.

때문에 사라 캐리건과 처음에는 그렇게 관계가 좋지 않다.


“로리타 콤플렉스가 아니어도 나치를 비롯해 수많은 독재자들이 어린이들을 선전선동 도구로 사용하거나 청소년들까지 전쟁터로 밀어 넣은 반인륜적 행태를 벌였어.”


그런 것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일본애니메이션 중에 하나가 <아키라>다.


“수많은 SF 작품의 클리셰지. 어린이, 초능력, 탐욕스러운 어른들에 이용당하지만 결국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결말.”

“현재도 진행형이긴 해.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하는 것 봐. 어린이들에게 폭탄을 쥐어주고 자살테러를 시키잖아. 그 놈들도 죗값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신이 결코 허락하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는 광신도들은 결국 정의로운 인간의 폭력에 지게 되어 있지. 그래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피를 머금어야 굴러간다고도 하고.”


<REMO>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의식 중에 하나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만 보던 데니 개스너가 정리에 나섰다.


“드가의 그림이 너무 차갑고 우울하다면 그의 친구인 마네의 그림은 어때?”

“드가든 마네든.... 인상주의 화가들의 특징처럼 프로토스 종족에 관해서는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이용해서 빛에 의한 발색을 면밀하게 표현해내 봐요.”

“프로토스만?”

“테란과 저그 종족은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들에서 영감을 받는 것들로 톤 앤 매너가 잡혔으면 좋겠어요.”


데니 개스너가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데온 비베 촬영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Jay 영화가 화사하겠는 걸.”

“그 정도까진 아니고.... 어떻게 생각해요?”


류지호의 물음에 데니 개스너가 고민을 멈추고 대답했다.


“<REMO> 최종편의 톤 앤 매너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네.”


로이 캠벨이 말했다.


“그 정도면 네 영화중에서 굉장히 화사한 편에 속하는 것 아니야?”

“....그런가?”


참고로 드가는 예술적 성취와 상관없이 평가가 상당히 엇갈린다.

예술에서는 누구보다도 관대했지만, 그 외에 것에는 완강하고 단호하게 구분을 지어 마치 이중인격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묻어나는 성실함과 천재성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화가로서는 높은 명성을 자랑했지만, 한편으로 인간적으로는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독불장군형 예술가라고 할까.


“지겨워서 더는 도저히 못 참겠어!”


로이 캠벨은 한 영화만 주구장창 보는 것에 질려버렸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류지호가 리드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감독판을 또 다시 틀었기 때문이다.


“디렉터 스콧이 ‘Layering’이라고 불리는 기법을 영상에 도입한 건 알지?”

“잘 쓰면 끝내주지만, 잘 못 쓰면 망하는 양날의 검이지.”


스콧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에서 사용한 소위 ‘Layering’이란 방법론은 간단하게 말해서 화면 안에 영상적인 요소의 층(Layer)을 겹쳐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 현실감을 주는 방법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스콧 감독은 매 장면마다 디테일에 있어서 수많은 시각적 레이어를 만들었다.

한 장면에 20~30가지 시각적 레이어가 들어갔을 정도로 정교하면서 복잡한 화면 연출이 압권이다.


“2D 영화에서 이런 레이어링 방식은 복잡한 화면 속에서 관객을 마치 자신이 거대한 세계 속에 실제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어 줘. 숨겨진 작은 디테일을 찾는 재미도 있고.”


류지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영상의 밀도를 강조들 하는데. 글쎄.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야.”


관객에게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좋은 연출이 아니다.

영화과에서도 한 화면에 너무 많은 정보와 메타포를 넣지 말라고 가르친다.

온갖 것을 한 장면에 다 때려 넣는 연출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3D영화 역시 입체감과 공간감을 주기 위해 무리하게 레이어를 층층이 많이 넣는다면 도리어 중요한 돌출효과가 죽어버릴 수가 있다.

그렇듯 한 화면 안에 레이어가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말 하고 싶은 것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활용한 스모그와 움직이는 스포트라이트 같은 것들을 곳곳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그 아이디어들로 신비로우면서도 역동적인 화면을 보여주잖아.”

“기각!”

“왜?”

“아날로그로 많은 걸 해내야 했던 스콧 감독의 시대와 지금 내 상황은 많이 달라. 알다시피 굳이 3D가 아니어도 난 Eye-MAX만으로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복잡하게 설계된 화면이 무조건 밀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뭔가를 많이 넣는다고 풍부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맞는 말이라, 로이 캠벨은 토를 달 수 없었다.

언제나 가장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법.

시각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엄청난 비주얼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에 뭔가를 채워 넣는 것이 기본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덜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출의 영역이다.

시청각의 예술인 영화는 관객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제시하면 도리어 어떤 정보도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관객이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은 연출이다.

다만 ‘레이어’의 개념은 <스타크래프트> 실사화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란 사실.

Eye-MAX 3D 영화이기 때문이다.

입체감을 위해 매 장면 수많은 레이어가 디자인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서 더 넓은 화면비, 더 넓은 공간감, 더 풍부해져야할 색채와 질감을 고민해야 했다.

코프룰루 은하 어떤 행성의 황무지, 빛이 없는 광활한 우주 공간, 인간의 문명과 이질적인 프로토스 종족만의 고도의 기술력이 들어간 공학 및 건축디자인, 지구의 생물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온 저그 종족까지.

관객들에게 처음 본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를 위한 디자인이 많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SF영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럴 듯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뛰어나지만, 그 안에는 과학과 인문학적 기본이 결여되어 있다.

<스타크래프트> 실사화 프로젝트에 과학적·인문학적 자문과 고증에 80여명의 전문가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들이 각 분야에서 알맞은 자문을 해주고, 교차로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가 발생될 수박에 없다.

감독이 영화적 개연성을 위해 과학적 고증을 일부 포기할 수도 있기에.

그럴 때마다 전문가들이 개연성이 만들어지도록 과학적 방법론을 찾아주고 있다.


“영화는 이 정도 보는 것으로 합시다. 이제는 각자 할 일을 해야겠죠.”


류지호는 3D 영화를 찍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작업한 3D 영화를 참고하지 않았다.

전혀 엉뚱한 영상들을 참고하고 있다.

비디오 게임, 뮤직비디오, 아마추어가 올린 NeTube 동영상에서 생각지도 못한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있었다.


- 개스너팀이 류지호에게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돌고 있는 소문이었다.

아트디렉터들이 엄청난 양의 콘셉트아트를 그려야 했다.

SnowStorm의 개발자들도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콘셉트아트를 그려 류지호에게 내밀고 있다.

수십 박스의 각종 콘셉트아트와 디자인 중에서 더 멋지고 더 근사하며 더 과학적인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날로 먹는’ 것은 아니다.

SF장르는 작가와 감독이 아는 만큼 또 고민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정직한 장르기에.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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