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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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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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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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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박수칠 때 떠난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분리하기 전에 오너로써 처리해야 할 대형 M&A가 몇 개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도쿄시바우라(東京芝浦)의 이미지센서 사업 인수문제다.

일본의 도쿄시바우라는 지난 2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심각한 회계부정에 휘말렸다.

경영진이 교체되고 구조조정차원에서 계륵과도 같은 이미지센서 사업을 매각하기로 했는데, 입찰 경쟁이 제법 뜨거웠다.

전 세계 이미지센서 점유율 1~4위가 모두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입찰금액을 써낸 캐나다의 DALLSA Corporation이 인수하게 됐다.

이로써 도쿄시바우라는 낸드플래시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DALLSA는 CMOS 분야에서 소닉과 대등한 경쟁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 소닉은 글로벌시장 점유율 37%를 차지하고 있는 최대 사업자였다.

도쿄시바우라가 차지하고 있던 글로벌시장 점유율 2.3%를 가져오게 됨으로써 DALLSA Corporation은 소닉과의 격차를 7% 이하로 줄였다.

또한 빠르게 추격 중인 오성전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미스터 할리우드가 15년 만에 지주회사 JHO Company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난다. JHO Company의 고위 관계자는 “오너가 몇 개의 핵심 중간지주사 미등기임원에서도 물러날 예정이다”며 “회장(총수) 역할도 내려놓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9년 JHO Company가 대규모기업집단으로 개편되고부터 이사회의장을 맡아오던 지호 류는 직접 경영에는 참여하진 않았지만, 트라이-스텔라를 세계 최고의 영화 스튜디오로 키워낸 것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상장기업으로 성장시킨 일등공신이다. 재계에서는 공석이 된 이사회의장 자리를 파커가문의 삼형제 중 한명이 이어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에 따라 JHO Company의 뉴욕증시 상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 LA TIMES,


월가에서 공석이 되는 JHO Company 이사회의장에 파커가문의 차남인 노아 파커 혹은 장인 제임스 파커가 들어올 것이란 루머가 돌았다.

그 외에도 PS에서 손을 뗀 헨리 게이츠, 전 연방준비위 의장, 다선 상원의원을 지낸 민주당 인사 등의 무게감 있는 인물도 함께 거론되었다.

그런데 누구도 생각지도 못했던 이가 이사회의장으로 부상했다.

바로 마크 버네이스다.

윌모트 헤이스팅스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 StreanFlicks를 떠났다가 JHO Venture Capitals 자문과 GMG 인큐베이팅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낸 바로 그 마크 버네이스다.

경영과 투자의 전문가가 아닌, 엔지니어 출신을 선임하는 파격적 행보다.

파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동안 JHO Company Group은 비상장으로써 사외이사 선임에 소극적이었다.

그 같은 노선을 전면 수정했다.

에드워드 버펫, 헨리 게이츠, 스테픈 잡스, 미증권감독기관장 출신, 연방준비은행 출신, 4대 투자은행 회장 출신, UCLA 총장 출신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거물들을 대거 사외이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류지호가 빠진 이사회를 로비력과 경영 자문 능력이 출중한 이들로 채우려는 의도다.


-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JHO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지주회사 의장만 사임하는 것인가?

“아니다. 미등기이사직도 모두 내려놓는다. 그에 따라 유능하고 명망 높은 이들이 대거 JHO에 유입될 것이다. 그룹에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난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창 나이에 경영 활동을 접는 것에 아쉬움과 당혹감을 동시에 표출했던 이들은 영화에 집중하겠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계에서는 대체로 환영일색이었다.

트라이-스텔라의 실적을 의식해야 했던 류지호가 그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영화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매번 작품마다 2% 아쉬웠던 부분(상업성에 대한 강박)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했다.


“의장직 내려놓으면 뭐해? 권력은 그대로인데. 그의 영향력이 할리우드에서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그처럼 투덜거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평소 류지호를 질투해왔던 업계 사람들이다.

대표이사는 경영진을 대표하고, 이사회의장은 경영진을 견제하는 구실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상장기업이며 지배주주(오너)가 명확했던 JHO Company Group은 그러한 경계가 모호했던 것도 일정부분 사실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주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운영하는 곳이 많다.

미국에서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제야 JHO Company Group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온갖 추측성 기사가 판을 쳤다.


-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류지호에 대한 내사 중.

- 미국 세무당국 류지호 탈세혐의 포착.


그 중에는 악질적인 가짜뉴스도 횡행했다.

류지호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경영일선에서 퇴진한다나.

클릭수 유도를 위해 확인되지도 않은 소설들을 기사랍시고 양산하는 한국의 인터넷 언론들.

기성언론은 사설정보지보다 못한 그런 기사를 열심히 받아썼다.

가온그룹과 의장 비서실에서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얼마 안 가서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그 같은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특단에 조치를 준비 중이다.

바로 NAVE 포털뉴스의 댓글 링크 개편과 언론사 구독서비스로의 전환이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이자 절대 다수가 뉴스를 소비하는 NAVE 뉴스 섹션에 댓글 서비스를 없애고 해당 신문사 홈페이지로 아웃링크를 시키기로 했다.

또한 그 동안 암암리에 자행되었던 NAVE의 뉴스 편집을 차단하기 위해서 유저가 직접 언론사를 선택해 즐겨찾기(구독)를 해서 능동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포털의 언론사 아웃링크(기사 클릭 시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방식)를 추진하기로 한 것.

상당한 혼란과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강력하게 추진하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더 늦기 전에 지나치게 뉴스 인링크 서비스 수익성이 높은 NAVE의 수익구조를 개편하고, 황색저널리즘으로 치닫는 한국의 인터넷 언론 지형도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다.

이 시도가 늦으면 늦을수록 한국의 저널리즘은 멸망하고 말 테니까.

NAVE의 혁신을 가로막는 우물 안 개구리식 수익구조에도 변화를 주고.


✻ ✻ ✻


가온그룹에서는 20년 동안 이어진 전통이 하나 있다.

인생계획서 작성이다.

입사한 후에 무조건 제출해야 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한 인생계획서다.

특히 신입사원의 경우 연수기간에 20대부터 60대까지 10년 단위로 나눠 인생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생계획서는 직원이 진급하거나 퇴사할 때 전달했다.

진급자들은 인생계획서를 수정하거나 다시 써서 제출하기도 하고, 퇴사자의 경우 폐기처분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전통은 한국재계 서열 2위가 되어서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오너이자 총수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류지호 역시 인생계획서를 작성해서 그룹에서 보관 중이다.


“여기 있습니다. 의장님.”


비서실장 김우영이 류지호의 인생계획서를 건넸다.

잘 봉인된 봉투를 뜯어 류지호가 몇 년 전 수정한 인생계획서를 읽어보았다.


- 효도하자! 성공하자! 가정에 충실하자! 당당한 사내가 되자! 우정을 소중히 하자! 돈을 왕창 벌자!


과거로 돌아온 류지호가 일기장을 구입해 처음으로 결심한 것들을 적어놓은 것이다.

그 결심들을 토대로 매 10년 간 인생계획서를 수정해왔다.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가온그룹 하계 컨벤션에 참석한 류지호는 잘 봉인되어 있던 인생계획서를 꺼냈다.

모두 10페이지다.

대부분의 직원이 2~3페이지인 것에 비하면 매우 성의 있게 작성된 계획서다.

사원들에게 모범을 보일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수정하고 보완을 꾸준히 해오다보니 페이지가 늘어난 것 뿐.


“......”


두 번째 인생에서 염원했던 것들 상당수가 실현되었다.

미완 상태인 것도 많았다.

그중에는 언젠가는 실현될 것도 상당수다.

10년 전에는 실현 가능한지 의심스러운 것이 지금은 완벽하게 실현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4대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하는 기록이다.

최고상을 모두 수상한 그랜드슬램은 아니지만.

어쨌든 토론토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최근의 칸영화제에서까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영화 부문에서 과연 실현 가능할까 싶은 것도 있다.

오스카 그랜드슬램 혹은 Big Five 달성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또는 각색상, 총 5개의 상을 수상한 영화를 그랜드슬램, 혹은 빅 파이브(Big Five)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영화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5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6년), <양들의 침묵>(1992년) 등 단 세 작품뿐.

21세기에 와서는 달성하기 불가능한 미션이 되었다.

투표권을 가진 아카데미 회원수가 워낙에 많아져서 표들이 갈리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영향으로 과거에 비해 다양성이 강조되고 있기도 하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잘한 일인 것 같아.’


인생계획서를 읽고 난 후 든 생각이었다.

자신이 소망했던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다.

특히 한국영화 분야에서 하려고 했던 것들 대부분이 훌륭하게 자리를 잡았다.

남은 부분은 업계 문화적인 것들이라서 류지호와 WaW가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다.

업계 구성원들이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라서.

그룹으로 봤을 때, 가온은 한국 최고의 기업은 아니다.

당장에 오성그룹을 뛰어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도달하지 못할 목표는 아니다.


‘그 부분은 앞으로 그룹을 이끌어갈 이들의 몫이 되겠지.’


몇 년 안에 오성그룹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매출은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정자산은 여전히 수 십 조 원의 격차가 있다.


짝짝짝!


컨벤션 홀을 가득 채운 가온그룹 임직원들이 열화와 같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류지호가 단상에 올라 마이크 앞에 섰지만, 좀처럼 기립박수가 멈출 줄 몰랐다.


“지금까지 받아본 박수 가운데 가장 열렬한 박수인 것 같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이사회의장에서 물러날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류지호의 가벼운 농담에도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앉으세요. 공산당 전당대회도 아니고.... 영화제 시상식장도 아니잖아요?”


그제야 임직원들이 착석했다.


“기업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류지호가 입을 떼자 어수선했던 컨벤션 홀이 일순 조용해졌다.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답이 가능할 겁니다. 대체로 사람, 자원 등의 요소를 고려한 영향력.... 영향력이 기업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온이 Forbes를 비롯해 글로벌 유력 경제지들이 발표하는 파워풀한 한국기업 순위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짝짝짝.


다시 한 번 객석에서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룹의 역사가 훨씬 오래된 오성과 경일, 선경 등의 역량을 단숨에 추월한 것이니까.

시가총액, 자산규모, 매출 등으로 평가하는 기업 순위와 기업 영향력은 다르다.

기업 영향력은 재무구조는 물론이고 종업원 숫자, 한 해 동안 각종 포털과 뉴스에서 언급된 횟수, SNS 영향력 평가 지표 등 다양한 내용을 적용한다.

종업원 수나 매출 등에서 아직 오성그룹에 손색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윤리경영, 사회공헌, 소비자 중심 경영, 직원 복지 등의 지표와 소셜 매트릭스 지수에서 월등한 점수를 얻어서 1위에 오를 수가 있었다.


“오성그룹과는 재계서열 상 1위와 2위지만, 우리는 격차가 여전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죠.”


대체로 한국의 재계서열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하는 공정자산을 기준으로 한다.

이 시기의 오성그룹 공정자산은 대략 352조 원이다.

2위는 가온그룹으로 312조 원, 3위가 196조 원의 한국전력공사다.


“금융사업 부문을 분리시키지 않는다면 2020년에는 격차가 제법 유의미하게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객석에서 자신감 넘치는 대답들이 들어왔다.

영화사업이 근간이라고 하지만, 실제 가온그룹은 자산과 매출에서 금융과 제조업 비중이 매우 큰 대규모 기업집단이 되었다.

가온그룹의 금융 부문은 은행이 없음에도 한국의 5대 금융사다.

사실상 가온과 오성의 금융부문이 국내 비은행업권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다.


“나는 가족과 영화 일에 남은 인생을 바치겠지만,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선사업에도 더욱 많은 시간을 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염려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내가 이사회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가온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가온그룹의 사회적 책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짝짝짝.


“가온은 엔지니어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회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 역사학자, 고고학자 같은 인문학자가 부족하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사회와 공동체에 제공해야 합니다. 가령 자연이 이룬 가장 대단한 발명이 인류라면, 인류의 가장 대단한 발명은 도시 혹은 사회적 합의를 이룬 공동체일 겁니다. 부동산 가격, 인구 과밀화, 저출산 같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교통체증, 생활쓰레기, 재생에너지,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불평등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짝짝짝.


여흥전문대와 아리울대학교를 키워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해 가온그룹에 이바지 하겠다 정도로 임직원들이 이해했다.


“여러분들께 당부하고자 합니다. 21세기 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해결하는 사회문제가 크면 클수록 기업의 이익도 커질 거란 사실을 잊지 마세요.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위대한 업적을 쌓아야 합니다. 위대하다는 소리는 이윤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행위로는 절대 들을 수 없습니다. 더욱 포용적이며 더욱 지속가능하고 더욱 행복하고 건강하도록 하는 것. AI 기술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란 단순한 접근보다, 그로 인해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게 될 인간의 일자리를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온그룹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1만 개의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게 돕고, 1억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10억 명의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복합 플랫폼 기업이 되길 기대합니다.”


짝짝짝!

계속해서 열화와 같은 박수가 계속해서 터졌다.


“나는 꿈꾸는 사람들의 친구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언제든 나의 보급과 지원이 필요하면, 찾아오세요. 나는 이제 박수칠 때 떠납니다. 감사합니다.”


류지호가 단상 옆으로 나와 허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짝짝짝!


다시 한 번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단상에서 내려온 류지호는 맨 앞줄에 자리하고 있는 주요 수뇌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장님!”

“축하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 축하를 드립니다. 의장님.”

“영영 떠나실 것처럼 말씀하셔서 섭섭합니다.”


2015년 하계 가온그룹 컨벤션은 오너(총수)의 지주회사 이사회의장 은퇴로 마무리 되었다.

컨벤션이 마무리되고 곧바로 속보들이 터졌다.

가온그룹 개편안이 구체적으로 발표되고,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 멤버들도 알려졌다.

비상장기업은 사외이사를 잘 두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로.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사외이사의 역할은 더 중요해 지고 있다.

가온그룹은 그 동안 사외이사에 소극적이었다.

오너가 이사회에서 물러나면서 투명성 강화를 위한 준법경영이 강조되었다.

그로 인해 미래·재생에너지 산업의 국제적인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전문경영인급 외국인 사회이사를 배치해 이사회 중심 경영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이사회 안에 준법 및 윤리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앞으로 그룹 차원에서 준법경영의 큰 그림을 짜며, 각 계열사의 준법경영 이행 여부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가온그룹 총수 류지호가 JHO와 가온그룹 이사회의장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공석이 된 이사회의장에는 금융감독위원장 출신의 신영섭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표이사는 전략기획실과 새만금개발유한회사 대표를 역임한 문지열 부회장이 영전했다. 또한 전문경영인급의 외국인들을 대거 사외이사로 받아들여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준비했다. 그룹 개편과 오너의 경영일선에서의 퇴장은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함으로써 투명경영의 의지를 강조하는 한편 소유와 지배를 분리하겠다는 류지호 의장의 강력한 의지 피력이라고 할 수 있다.]

- YNTV 경제부.


한국의 재벌들이 한창 3~4세 후계자 경영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후계자들 대부분이 류지호와 비슷한 연배들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결혼비디오 사업으로 시작해 엔터테인먼트와 반도체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류지호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 구조를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로 채워놓으며 한국 경영환경에는 등장한 적 없는 파격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가온그룹 지주회사 이사회에만 비상임 포함 17명의 이사를 두기로 했다.

문지열 회장이 상임이사로 이사회에 참가하고, 4인의 상임이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가온그룹과 크게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던 이들로 구성했다.

이사회 산하 소위원회도 보강했다.

감사위원회, 이사선임위원회, 자회사 및 자본위원회, 자문위원회, 운영위원회, 인사위원회, 공공정책위원회 등 7개 위원회를 산하에 두고 이사회 업무는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각각의 위원회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당초 자문위원 자격으로 이사회에 잔류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류지호는 완전히 이사회에서 빠지기로 하고, 그 자리를 노조에 주기로 했다.

물론 노조가 이사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직접 경영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CEO 선임 같은 의결활동도 하지 못한다.

그저 자문위원회에 참여해 경영진의 결정 상황에 대한 법규정 문제 여부를 검토하고,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의결기관인 이사회에 직접 전달해 경영활동에 반영할 수 있도록 자문하는 역할 정도다.

그것만 해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모두가 우려했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노조가 무리한 욕심을 부릴 것이라면서.

헌데 막상 노조를 이사회에 들였음에도 크게 갈등이 벌이지는 일은 없었다.

가온그룹의 노조가 매우 유순하고 친기업 성향이긴 하지만.

경영활동에 참여해 감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호의와 권리는 분명 다른 것이다.

많은 이들이 독일이니 프랑스니 사례를 들이대면서 노조의 경영참여를 주장한다.

어떤 글로벌 기업도 노조가 의결권이나 감사권한까지 행사하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한국인들이 추앙하는 북유럽의 기업들조차도.

기업의 주인이 주주이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머슴이 집안살림에 간섭하는 일은 없으니까.

그렇기에 가온그룹의 사외이사 구성이 한국에서 큰 화제를 낳았다.

한국은 기업에 지배주주가 존재한다.

지배주주는 창업주 본인이거나 창업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개인들일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은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직간접으로 소유해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에 사실상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형식적으로는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를 선임하긴 한다.

그러나 지배주주에 의해 사전에 내정이 이루어진다.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후보자가 이사로 형식적으로 선출되면, 이사회에서는 후보자를 대표이사로 추인하는 방식으로 CEO가 선출되는 식이다.

사실상 이사회는 지배주주인 총수의 거수기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가온그룹에 헌신해 온 래리 킴 회장이 이사회의장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룹과 아무런 접점도 없는 신영섭 서울대 명예교수가 의장이 됐다.

그는 윤리경영에 관해서 국내 최고의 석학인 동시에 진보적인 경제역사학자다.

그룹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부분에서 기여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회장에서 물러난 래리 킴은 류지호 가문(?)의 패밀리오피스를 관리할 예정이다.

즉 미국의 GARAM Ventures의 데이브 보우먼처럼 류지호 가족의 자산을 운용하고, 상속 및 경영권 승계, 사회공헌 설계까지 자산관리 전 부분을 책임질 계획이다.

류지호 집안의 금융집사 노릇이나 하라고 회장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막중한 가온그룹 금융부문을 책임질 예정이다.


[가온그룹은 새로운 이사회의장 및 사외이사 진용을 완벽하게 갖추면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유럽의 가족기업 대부분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이사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이사회에서 유능한 CEO를 선임하고, 실적이 좋지 않으면 해임하는 것으로 오너로써 권리를 사용한다. 류지호는 자주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해왔다.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소유하고 있는 그룹이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된다. 이사회의장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류지호의 지배력에 변동이 생긴 것은 아니다. 이사회를 강화한 것은 간접적으로 그룹을 지배하겠다는 의미다. 보통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경우 대표이사나 이사회의장 자리에 독립적인 무게를 가진 인물이 들어와야 의미가 있다. 존재감 없는 이사회의장과 대표이사는 사실상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의미가 없는 것이고, 자칫 의전용 이사회가 되지 않도록 주주들의 감시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류지호 의장의 용단은 한국의 기업문화에 있어서 매우 신선하고 바람직한 행보라고 볼 있다.]

- 겨레 신문 경제부.


류지호가 가온그룹 이사회의장에서 물러나던 시기.

김영태 대통령이 10대 재벌들과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기존 5년의 증여·상속세 연부연납을 10년으로 늘리고, 이자율도 파격적으로 경감해주기로 했다.

대신 10년 동안 각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파격적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눈 가리고 아웅할 수도 있기에 김영태 정부는 각 대기업별로 맞춤형 사업 지원책을 제시하면서 투자액과 고용인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오성그룹에게는 반도체 부문에서 새로운 파운더리 생산시설 확충, 금성그룹에게는 2차전지 투자 확대, 한방그룹의 경우 방산 분야 투자와 고용인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줄 것을 요구했고,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이자율을 원상 복구하도록 했다.

이에 진보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진보계열 지지자들의 민심도 요동처서 지지율이 급전직하했다.

그럼에도 김영태 대통령은 재벌의 경영승계를 자신의 임기 안에 해결보길 원했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재벌 대기업에서 경영 리스크 하나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견그룹들의 주가가 많이 올랐다.

정부와 재벌의 합의사항으로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것이 재벌보다는 주로 중견기업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행보를 영리하다고 해야 할지.....”


김영태 대통령은 재벌을 적당히 어르면서도 한편으로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일방적으로 재벌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던 기존의 상법을 일부 손보는데 성공했다.

내친김에 공매도를 비롯해 금융시장 안정과 관련한 법률도 개정에 나섰다.

김영태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자신의 소임을 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금융계와의 카르텔을 깨부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미완의 사법 및 언론개혁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재정부카르텔과 사학재단을 개혁하는 것이 소임이라 말하곤 했다.

그 탓인지 유독 금융과 교육 분야에 진보인사들을 전진 배치해서 칼춤을 춰댔다.

고인물은 썩게 마련이다.

87체제와 97체제로부터 각각 30년, 20년 가까이 흘렀다.

6월 항쟁과 외환위기는 다른 측면에서 한국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학계에서 이를 ‘87 체제’와 97 체제라고 부른다.

뭐라고 불리든.

그때 이후로 한국사회는 크게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류지호가 두 번을 살면서 느낀 것이다.

해묵다 못해 날고 낡아빠진 이념논쟁.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는커녕 나날이 확대되고 있는 경제적 격차와 불평등 강화.

내부분열로 치닫고 있는 세대갈등.

비관적 감정이 썩다 못해 왜곡되어 발현되어 암처럼 번지고 있는 혐오 심리.

4차 산업혁명, 노동개혁, 복지강화, 권력기관 개혁, 실리 외교, 재벌 개혁 등.

산적한 문제들이 시급을 요하고 있건만.

진영논리에 빠져서 민주와 자유만 외쳐대고 있다.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구호가 전부가 아닌 것을.

반공이니 자유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민주주의 성숙과 공정한 자원의 배분을 통한 불평등 해소.

그것이 기본 토대다.

이전 삶의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대한민국의 앞에는 미중 갈등으로 야기되는 세계 질서 개편, 팬데믹,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시대, 러우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복합적인 위기가 놓여 있다.

국민 누구도 세종대왕급 리더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상식만이라도 갖춘 리더가 국가를 이끌길 바랄 뿐.

한국과 미국은 곧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게 된다.

두 나라 국민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리더가 아니라 안정감을 주는 리더가 당선되길 간절히 기원해 보는 류지호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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