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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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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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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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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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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좋은 기업이란.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길고 길었던 백원일보와 가온그룹의 전쟁이 끝이 났다.

문민정부부터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던 백원일보다.

그런데 족보도 없는 한국의 한 대기업 때문에 일제강점기 이후로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가온그룹과 10년 가까이 법정분쟁을 이어가며 변호사비용에 수십 억 원을 썼고, 최대 광고주였던 가온이 광고를 빼면서 재무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게다가 민주화운동 출신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청와대와도 전면전 중이다.

그 와중에 전임 주필의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내부에서는 사장의 동생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도 발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주 아들이 퍼블릭네이처 스캔들과 연루된 것이 드러났다.

퍼블릭네이처 스캔들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퍼블릭네이처 대표를 변호하면서 엄청난 수임료를 받은 것이 밝혀지고, 그 수임료가 브로커를 통해 로비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법조계의 썩은 실태와 전관예우의 폐해를 온 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벌어진 온갖 추태와 밝혀진 비리의 진상에 국민들은 경악했고, 참여정부부터 진행되었던 미완성의 사법개혁의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되었다.

본래라면 이 사건으로 촉발된 나비효과가 박은애-최순자 게이트라는 초대형 정치 스캔들로 연결되어 온 나라가 더욱 크나큰 충격에 빠졌겠지만.

류지호의 개입으로 인해 한국 정치지형도가 바뀌면서 그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암튼 백원일보는 전장이 여러 개로 나뉜 것에 부담을 느꼈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고 오래 끌어온 가온그룹과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들과 전쟁을 치루는 것으로 노선을 결정했다.

백원일보는 1면에 가온과의 소송결과를 전하며 승복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편집자 칼럼을 통해서 가온그룹에 사과를 전했다.

사실상 가온그룹에 백기를 든 것이다.

본래라면 사주일가와 그들이 소유한 언론사의 위기는 다른 문제다.

한국에서는 다르다.

괜히 족벌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주와 언론사는 한 몸이니까.

백원일보는 사주일가와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백원일보의 구성원들은 사주 일가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가주 일가가 가진 영향력에 기생하는 것이다.

사주 일가가 영향력이 약화되자 태세를 전환했다.

본래라면 대통령 탄핵집회가 한창일 시기에 백원일보 폐간 전국민 촛불집회가 매주 광화문에서 열리고 있다.

그 여론을 등에 업고 김영태 대통령이 언론개혁에 칼을 뽑아들었다.

한국에서 신문사 폐간은 매우 어렵다.

법적으로 관련법과 조항은 있지만, 적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신문의 발행정지 및 등록취소 권한은 시도지사의 권한이다.

시도지사가 발행정지를 명할 수 있고, 법원에 등록취소의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시도지사가 있을 턱이 없다.

설령 한다고 해도 법원에서 발행정지 처분을 내릴지 장담할 수 없고.

신문법에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매우 두텁게 보장하는 문제가 아니다.

백원일보가 가진 권력에 법원이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 가온그룹이 제기한 백원일보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최종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소회 한 마디 해주시오.


조용히 입국하려고 했다.

오랜만에 인천공항이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취재진 대표가 류지호에게 약식 인터뷰를 요구했다.

무시했다.


- 참여정부 이후 최대 규모의 백원일보 폐간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 18년 만에 강도 높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 서울시장이 백원일보에 대한 신문사 등록취소 심판청구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류지호가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을 무시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기자들이 난리를 치는 이유가 있다.

류지호는 세계 3대 경제지와 미국의 5대 일간지를 소유(간접적으로)하고 있다.

한국신문까지 계열사를 통해 소유하고 있다.

류지호와 백원일보가 수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지만, 따지고 보면 동종업계 관계자다.

폐간이라는 선례가 만들어지는 것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 봤다.


- 영국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의 뉴스 오브 더 월드가 폐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The NEWS Corp은 영국·미국·호주 등에서 수십 개의 신문사를 보유하고 있다.

로버트 폭스 입장에서 타블로이드 하나 포기해서 자신에게 향하는 정치적·법적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그것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이라고 할지라도.

반면에 백원일보 사주 일가는 오로지 백원일보 하나 밖에 없다.

디지털 신문도 있긴 하지만 크게 영향력은 없다.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주 일가는 족벌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돈 많고 친구 많은 졸부일 뿐이다.

언제든지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악감정은 좌파·우파 가리지 않는다.

우파에서도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백원일보에 기생하거나 협력하는 기득권들도 언제든 백원일보를 버릴 수 있다.

제2, 제3의 백원일보는 널려있으니까.

암튼 칼자루가 이번 정부의 손에 쥐어졌다.

이번에도 진보적인 정부가 백원일보에게 굴복하게 된다면 영영 기회가 없을 터.


‘폐간은 못시키더라고 족벌은 해체할 수 있겠지.’

가온그룹이 한국신문을 소유함으로써 족벌언론의 일각을 무너뜨린 것처럼.


❉ ❉ ❉


한국에 들어온 류지호는 먼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입덧은 안 하고?”


언젠가부터 아들보다 손주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부모님이다.

게다가 며느리가 임신을 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아직은 괜찮은가 봐요.”

“첫째 둘째 임신했을 때 입덧 심하지 않았어?”


준혁을 출산한지 5년이 넘었다.

솔직히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셋째는 계획에 없다며?”

“어쩌다 보니.”


몇 년 동안 장기출장이 잦았다.

떨어져 지내다가 함께 할 때면.... 꽤나 뜨거웠다.


“초음파는?”

“그제께 찍고 왔어요.”

“문제는 없고.”

“쌍둥이라네요.”


부모님이 깜짝 놀랐다.


“아이구야~”


류지호가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이란성이래요.”

“아이구야~”


심영숙이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한 녀석이 BC등급이라서 걱정은 되는데.... 의사 말로는 괜찮을 거래요. 상태가 좋다고.”


갑자기 심영숙의 마음이 급해졌다.


“언제 돌아갈거니?”

“3박4일 일정으로 왔어요.”

“미국으로 갈 때 나도 가도 돼?”

“며느리 걱정 되세요?”

“혹시 사돈이 와 있어?”

“처음도 아니고. 베테랑 유모가 함께 지내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래두, 그런 게 아니야. 아기가 둘씩이나 뱃속에 있는데.”

“레오나가 원체 건강하기도 하고. 둘이나 순산을 해 봐서 어머니는 걱정 안 하셔도 되요.”

“며느리 듣는데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세상에 믿을 게 남편 밖에 없는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는 법이 어디 있어?”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 류지호가 얼른 태세를 전환했다.


“제가 말을 잘 못했어요. 수행비서에게 말 해 놓을 테니까, 따로 짐은 싸지 마세요.”

“그래.”


부모님은 언제든 미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몇 년 전에 IR-5(미국 시민권자의 부모) 비자를 통해 미국영주권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벨에어 집에 부모님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다.

옷가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갈 필요가 없다.


❉ ❉ ❉


이전 삶에서 제일생명 사거리라 불렸고, 한교타워사거리로 명칭이 바뀌었던 강남대로와 사평로가 만나는 교차로.

90년대 중반 멀티플렉스 G.O.M 빌딩이 들어서며 명칭도 바뀌었다.

2000년에는 도로명이 정식으로 곰사거리로 변경되었다.

G.O.M Cinemas가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는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복합상영관의 시초이자,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던 장본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랜만에 류지호가 G.O.M 1호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극장용 LED 스크린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오성전자가 개발한 시네마 LED '오닉스‘가 공개되는 날이다.

미국의 JHO Company Group과 오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는 시네마 LED 생태계 구축을 위해 콘텐츠 촬영부터 상영까지 LED 대형스크린에 최적화하는 공동 연구를 해왔다.

이전 삶보다 1년을 앞 당겨서 성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

류지호는 G.O.M과 오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관계자들과 함께 시네마 LED로 상영한 Pixart의 <도리를 찾아서>를 관람했다.


“Eye-MAX 스크린 사이즈에 맞먹는 크기를 자랑합니다.”


G.O.M 강남점에 세계 최초 설치된 시네마 LED 스크린의 크기는 가로 14m×세로 7.2m다.

LED 직접 광원을 통해 색 표현력을 극대화해 더 세밀하고 생생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주변 조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뛰어난 시야각과 함께 HDR(High Dynamic Range) 콘텐츠를 지원해 뚜렷한 색상을 전달하며 광학 왜곡과 간섭에서도 자유롭다.

촛불 300개를 동시에 켰을 때만큼의 밝기(300니트)가 지원되어서 기존 영화관(48니트)보다 6배가량 환하다.

기존 영사기 상영방식은 렌즈를 이용해 스크린 전체를 포커싱하는 방식이다.

스크린에 초점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시네마 LED 스크린은 직접 광원을 통해 화소 하나하나를 재현해 전체 화면이 선명하고 살아있는 디테일이 강점이다.

스크린 어느 부분에서도 균일한 밝기를 유지해 몰입감도 더 뛰어나다.

밝은 환경에서도 상영할 수 있어서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4K와 HDR(High Dynamic Range)을 지원한다고요?”


류지호의 물음에 오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장이 얼른 대답했다.


“예. LED 직접 광원을 통해 색상 왜곡 없이 제작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JBL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져,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사운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향후 스포츠펍, 오페라, 콘서트 중계, 게임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에도 활용 방안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31m×22.4m도 가능해요?”

“....예.”


어째 대답이 뜨뜻미지근했다.

아직은 그 정도까지 기술력이 올라와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전 삶에서 라스베이거스의 LED Sphere가 준공하기 훨씬 전에 류지호가 사망했다.

그런데 류지호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업계보다 더 민감하게 피부로 느끼고 있다.

JHO와 가온그룹 계열사 몇 곳이 관련 산업에 발을 걸치고 있고,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뉴욕 스퀘어빌딩에 세계적인 LED 스크린 업체들이 제안서를 꾸준히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카지노 기업 Sands Group이 뉴욕의 스포츠 및 공연장 기업과 합작으로 스웨덴 소재의 세계 최대 구형 경기장 Ericsson Globe Arena를 본 뜬 초대형 공연장을 라스베이거스에 짓는 계획을 논의 중이라는 보고를 이미 접했고.


‘만약 아리울에 Ericsson Globe Arena 같이 구형으로 생긴 공연장을 짓고 내외부를 오성전자의 시네마 LED로 덮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Venetian Resort Sphere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건설비가 23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건설비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곰 강남점을 시작으로 저희 오성전자 디스플레이사업부에서는 미국 텍사스와 메릴랜드, 중국, 인도, 독일, 말레이시아 등 16개국에 진출 2018년까지 50개 극장에 설치할.....”


주절주절 떠드는 오성전자 부사장의 말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류지호는 아리울에 2만 석짜리 랜드마크 공연장을 궁리해 봤다.

대유가온건설, Eye-MAX, 오성전자, GMG Technologies가 힘을 모으면 하이테크놀로지가 적용된 신개념 공연장이 만들어질 것도 같았다.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어째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쪽으로 머리가 저절로 돌아가는 것 같네.’


그것도 남다른 사이즈로.


❉ ❉ ❉


류지호가 한국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WaW 엔터테인먼트다.

<Brood War> 차기작으로 내정한 <Siege of Jinju>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에 앞서 프로듀서에 친구 김재욱을 선임했다.


“<홍어장수>는 어쩌고?”


조선시대 문순득이란 홍어장수가 3년 2개월 동안 겪은 모험담을 김윤희와 김재경 작가가 시즌제 드라마로 집필 중이다.

처음 기획할 때는 <Brood War>가 끝나고 StreamFlicks와 계약해서 연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Siege of Jinju> 프로젝트가 부상하면서 개발지옥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


“내가 연출한다는 확답을 당장 주긴 어려워.”

“그럼 나머지 4부까지만 마감하라고 김 작가한테 말해 둘게.”

“첫 번째 시즌이 류큐에서 떠날 때까지지?”

“응.”


문순득은 홍어를 사다가 나주 영산포에 내다 팔던 상인이었다.

25살 때인 1802년 1월18일 작은 아버지 등 5명과 함께 배를 타고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서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나 일본 류큐까지 밀려갔다.

류큐에서 대략 9달 정도를 머물렀다.

흑산도에 유배 온 다산의 형 정약전이 <유암총서>에 실은 95쪽 분량의 <표해시말>에 비교적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류지호의 한국 작가팀은 사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후에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왜와 류큐 그리고 조선의 정치적 입장까지 스토리에 녹여냈다.


“일단 4시즌짜리로 조정을 해보라고 해.”

“StreamFlicks와 이야기 끝난 거야?”

“아니.”

“.......”

“OTT는 거기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4시즌짜리 기획서를 다시 만들어서 다른 곳들하고도 접촉해 볼까?”

“GOMTV에 우선협상권을 줘봐.”

“알겠어.”


<표해시말>에 따르면 문순득 일행은 1802년 10월에 류큐를 떠났다.

목적지는 중국이었지만, 또 다시 바다에서 표류했다.

보름 이상을 표류하다가 11월에 필리핀의 루손(여송)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8달을 체류하다가 1803년 9월9일 상선을 타고 마카오에 도착해 12월11일 광둥을 거쳐 1804년 4월14일 난징에 이르렀다.

1804년 5월19일 베이징에 다다라서야 조선 관료를 만날 수 있었고, 마침내 귀국길에 오를 수가 있었다.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어 한양에 당도해서는 왕을 알현하기도 했다.

3년이 넘는 동안 표류하던 끝에 1805년 1월 8일에서야 흑산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세기 초반에 그것도 조선의 평범한 어부가 3개 국가와 수십 개 지역을 돌아다녔다.

또한 모험에 가까운 시련도 겪었다.

게다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대인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오는 소재다.

따라서 김윤희 작가팀은 최소 6개 시즌을 염두에 두었다.

한국 OTT 오리지널로 제작하게 되면 제작비 부담이 만만치 않기에 시즌을 압축하기로 했다.


“<Siege of Jinju>는 2017년에 가봐야 구체적인 일정이 나올 테니까. 그 전에 네가 박은상 감독하고 <무인시대> 해보는 건 어때?”

“준영이형네 프로덕션에서 기획하고 있는 무신정변 프로젝트?”

“응.”

“박 감독님이 하겠대?”

“아마도.”

“놀고 있는 감독님들 만나기로 했다면서. 그건 뭐 때문인데?”

“적당한 프로젝트 하나씩 맡겨볼까 하고.”


류지호가 한국영화에 덜 신경 쓰는 사이, 중견감독들이 다시 충무로에서 잊히기 시작했다.

감독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서도, 충무로 주류가 배척해서도 아니다.

그들 사이를 잇는 네트워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과거와 현재를 잇는 류지호 같은 이들이 충무로에서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의 인적 네트워크였던 80~90년대를 풍미했던 감독들도 기회를 잡지 못할 수밖에.


“하긴 저 대단한 스콜체제 감독도 영화 한 편 찍으려고 온갖 수모를 다 겪는다고 하니.”


류지호가 실소를 흘렸다.


피식.


마르틴 스콜체제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와 스튜디오가 원하는 영화 사이에서 간극이 너무 커서 갈등이 있는 것 뿐.

실제 투자를 받기 힘들진 않다.

스튜디오에 고분고분 굴면, 언제든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할리우드 감독이다.


“암튼 영화야 드라마야?”

“까놓고 말해서, 그 양반들한테 영화 맡기면 손익분기점은 맞출 수 있겠냐?”

“배창훈 감독이 <퇴마기록> 한 것처럼 하면 말은 되지 않을까?”

“인기 웹툰이나 소설 중에서 성향이 맞는 작품하고 매치 시켜보려고.”


사회적 문제의식과 정치적 영화를 잘 다루는 정호영 감독에게는 IMF와 관련한 영화를,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선보이는 이명수 감독에게는 최근 몇 년간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웹툰 원작을, 블랙유머를 의외로 잘 다루는 배창훈 감독에게는 근현대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러브스토리를 잘 다루는 박지균 감독은 힐링요소가 강한 인기 웹소설 원작을, 엄선해서 각자에게 맡겨볼 생각이다.


“감독님들이 요즘 관객들의 속도감을 잘 못 따라가. 그건 염두에 둬야 돼.”


류지호가 모를 리가 없다.

과거에 활약했던 감독들이 오랜 공백을 겪다가 복귀한 후에 그 시대의 관객들이 체감하는 속도감에 맞추질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속도감이라 함은 스토리텔링과 카메라워킹, 편집 리듬 등을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영화보다는 길게 호흡을 가져갈 수 있는 TV시리즈를 맡겨보려고.”

“이명수 감독님의 영화는 책만 잘 걸리면, 보는 맛은 있는데.”


영상이 스토리를 너무 앞서가서 난해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따라서 시나리오를 많이 타는 감독이 이명수다.

시나리오가 탄탄해야 미장센도 빛을 발하는 것이거늘.

언젠가부터 엇박자를 내기 시작하더니....


“느와르를 맡겨보는 건 어때?”

“안 한다고 할 걸?”

“왜?”

“은근히 장르적 클리셰에 예민한 것 같더라. 그래서 플롯 중심의 쫀득쫀득한 이야기보다는 캐릭터와 분위기 중심의 이야기를 권해보려고.”

“<대도오>같은?”

“응.”


이명수 감독은 무협소설 <대도오>를 SF무협으로 해석한 만화 <남자이야기>의 실사화 감독의 물망에 올랐었다.

아쉽게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쉬원커(徐文克) 감독도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지만, 중국 국수주의자 커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영화가 좌초되었다.

한국 영화팬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쉬원커 감독이 변심해서 중국 공산당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원래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에 대해 반감이 있었다.

그가 제작하거나 연출한 무협영화를 자세히 보면 중화적인 국수주의가 절절하다.

<황비홍> 시리즈 역시 명백히 반미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많은 홍콩영화팬들이 쉬원커의 변절 내지는 타락에 실망을 많이 하지만, 정작 본인은 중국 영화계에서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차라리 <남자이야기>를 이명수 감독님에게 맡겨보지 그래?”

“네가 볼 때는 어때?”

“나는 감독님이 잘 할 것 같아.”

“그거 말고. WaW가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를 다룰 수 있냐고?”

“좀비물도 하잖아. 못 할 것 없지.”


<부산행>이 개봉 대기 중이다.

GH오락집단유한공사와 합작으로 대작무협 영화와 드라마도 꾸준히 제작하고 있고.

비록 실패했지만, SF장르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프로덕션 디자인과 CG 분야는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


“문제는 예산이지.”


영화제작은 실전이다.

시행착오는 90년대로 충분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시대이다.

영화는 예산으로 시작해서 예산으로 끝난다.

영상도 연출도 연기도... 모두 예산에 좌우된다.


“이명수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도 찍어보셨고. 감당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제작비를 대주면 누구나 다 그 수준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재욱아, 한국의 영화감독에게 <아바타> 시나리오를 주고 3억 달러를 지원해주면 그 수준으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전부는 아니지만, 몇 분 감독님은 할 수 있지 않나? 공 감독님이나 김 감독님이 할리우드에서 작업을 해 봤잖아.”


천만에 말씀이다.


“어쩌면 연출 면에서는 그 감독들이 제이미 캐머론보다 더 깊고 섬세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최종 결과물까지 캐머론 영화보다 뛰어날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3억 달러짜리 영화를 찍어보지 않아서?”

“4,000만 달러짜리 영화가지고 블록버스터라고 난리를 쳤잖아.”


류지호는 <설국열차>를 폄하할 의도는 없었다.

다만 1억 달러짜리 영화만 해도 매 순간 숨이 턱턱 막힌다는 사실.

그런 영화에서는 감독 직권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제작비를 따로 계약서에 넣는다.

1,000억짜리 영화를 찍어보지 못한 감독은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

창의력과 수백 명의 스태프들을 이끄는 리더십은 연출력과 다른 문제다.


“감독의 의사결정은 무조건 돈으로 연결돼. <올드보이> 찍을 때 최 선배가 특별 요청한 가위를 두고 제작진들 사이에서 그렇게 고민이 많았다며?”


유명한 일화다.

극중 오대수가 가위로 혀를 자르는 장면에서 배우가 우연히 잡지를 보다가 특이한 디자인의 가위를 보고 제작진에 소품 교체를 요청했다.

가뜩이나 제작비에 쪼들리던 제작진은 400만 원 상당의 가위를 제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이전 삶에서는 박진우 감독 사비로 제작해서 소품으로 사용했다.

투자·배급사가 WaW 엔터테인먼트로 바뀌면서 그 같은 재밌는(?) 일화는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남자이야기>가 영화화 되어야 한다면 <설국열차>급 예산이 필요할 걸?”


김재욱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400억이 넘는다고?”

“<설국열차>는 배우 출연료가 상당부분을 차지해서 그렇고. <남자이야기>는 프로덕션 디자인 파트와 VFX에 최소 150억 이상 넣어야 할 거야.”


김재욱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난감함을 온몸으로 표출했다.


“와~씨!”


이제 막 제작비 100억 원이 넘는 한국영화에 한해서 블록버스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설국열차>는 합작영화라서 예외로 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한국영화 최고 제작비는 <명량>의 145억 원이다.


“네가 운용할 자신이 있다면 다시 개발을 시작해 보고.”

“오~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무 아무타불....”

“뭐래? 이 자식이.....!”


충무로 최고의 프로듀서 리스트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 김재욱이다.

WaW 엔터테인먼트 인하우스 영화중에서 유독 어려운 영화만 도맡아서 하고 있다.

손대는 영화마다 대박흥행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손해를 본 영화는 한 편도 없다.

충무로에서 가장 예산집행이 칼 같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0억에서 한 번 예산을 짜볼게.”

“300억까지 괜찮아.”

“그거 한국시장만으로 절대로 커버 못 쳐.”

“스페셜티 디비전 하나 만들어.”


스페셜티 디비전(Specialty Division 혹은 Specialty film division)은 독립저예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할리우드 메이저가 자회사로 설립한 독립레이블이다.

프로덕션 자회사나 제휴영화사와는 다른 형태다.


“혹시... 영화 망하면 법인 청산하기 쉽게 하려고?”

“겸사겸사. <Siege of Jinju>도 거기서 하는 걸로 하고.”

“네 돈으로 하게?”

“자신 없다며?”

“그런 건 아니고.....”

“WaW 픽처스도 블록버스터 라인업이 있을 거 아냐. 내 영화 때문에 다른 영화가 피해 보는 게 싫어.”

“배급을 딴 데 맡길 수도 있다는 거야?”

“상관없겠지.”

“혹시 잘못되면 경쟁영화사에서 리스크 다 떠넘기고... 좋겠네.”

“재욱아....”

“응, 왜?”

“우리 이제 최선을 다했다. 노력했다. 그런 말 의미 없는 짬밥이야. 그냥 무조건 잘해야 돼. 너도 이제 변명의 여지가 없어.”

“누가 뭐래?”


친구 중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고우찬과 쌍벽을 이루던 김재욱.

인천에서 개나리나 떨던 말썽꾸러기가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영화사업부 차기 사장 유력 후보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마중지봉(麻中之蓬)이라는 말처럼 곧은 삼밭 속에서 자란 쑥은 곧게 자라는 법.

바른 사람과 사귀면 그의 감화를 받아 자연히 바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고우찬과 김재욱이 그걸 증명한다.

매우 예외적이지만, 장문식 상무도 있고.


작가의말

생각보다 주변에서 코로나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프지 마시고 건강한 한 주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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