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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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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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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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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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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이름!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류지호는 가족과 함께 뉴욕의 롱아일랜드 파커저택으로 넘어왔다.

연말연시를 뉴욕에서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신 설명절은 한국의 부모님댁에서 보내기로 했다.

휴가를 보낸다고 해서 류지호의 <Tsogang> 준비를 소홀할 수 없었다.

시간을 내 아내와 함께 뉴욕 소재 미술관들을 돌아보았다.

<Tsogang>과 <스타크래프트> 실사화의 비주얼 부분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휘트니 뮤지엄에서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에드워드 호퍼,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 컬렉션을 감상하고, 여성화가 앨리스 닐과 흑인화가 아치볼드 모틀리의 작품들을 음미했다.

미국 흑인의 삶을 회화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고갱, 마네, 보나르, 피카소 등 인상파와 후기인상파는 물론 특히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위대한 작품을 감상하며 예술적인 영감을 얻었다.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17개 전시관을 꼼꼼히 살펴보며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작품과 유물들을 감상했다.

평소에도 다양한 예술분야를 즐기고 있다.

이전 삶에서는 모호하고 스스로 정의할 수 없었던 예술이 이제는 한층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되었다.

예술을 정의하긴 어렵다.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왜냐 하면 예술이란 생각이고 질문이고 탐구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현실에 기반을 두지만 사회운동과 다른 것은 탈 동시대적이란 점 때문이다.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수단에 대한 질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목적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다.

예술은 후자의 질문에서 출발하고 그 해답은 탐구에 있다.

예술은 반드시 공유할 대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감상자에게 본질적인 삶의 조건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준다.

예술은 사회의 변화, 즉 인간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언제나 사회보다 앞서 간다.

그리고 예술의 분야는 다양하지만 그저 재료와 그 재료를 통해 표현된 구체적 결과물의 외견상 차이 뿐, 실제로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다.

류지호가 예술과 예술가로서의 삶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은 가까워진 것이고.

실무는 또 다른 문제다.

미술관투어를 하며 <스타크래프트>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 그림을 하나 확정할 수 있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그림이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중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의 한 장면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하도 프랑스 혁명과 함께 자주 등장하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겼고, 그림 한 가운데에 민중을 이끄는 여인이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삼색기를 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사용된 이후 사용을 금지 당했다가 1830년 다시 혁명을 위해 사용되었다.

사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아닌 1830년 7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샤를 10세의 절대주의 체제에 반발하여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1830년 7월 28일의 장면을 사실주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으로서 정치적 목적을 담은 최초의 근대회화다.

즉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붓으로 나타낸 민주주의를 향한 혁명의 상징이다.

지금까지도 자유를 쟁취하고 해방을 꿈꾸는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들라크루아가 당시에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보수주의자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그가 활동할 당시의 프랑스는 진보와 보수의 격량이 몰아치던 혁명기였다.

그럼에도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제외하고는 혁명의 흔적이나 프랑스의 격변기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거의 담기지 않았다.

류지호는 들라크루아의 그림들에서 ‘혁명’보다는 시대가 처한 ‘재난’이라는 상황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과 <싸이프러스 섬의 학살> 같은 그림도 함께 레퍼런스에 포함시켰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4차 십자군전쟁에서 함락되었다.

그때 프랑스의 총사령관이 군마를 타고 입성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위대한 프랑스의 승리보다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패배한 자들의 피와 비참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1822년에 그리스의 싸이프러서 섬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보여주는 그림 <싸이프러스 섬의 학살>은 당시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인들이 자유를 요구하면서 혁명을 도모한 것에 대한 무고한 양민들을 대량으로 살육한 사건을 담았다.

자유주의를 지지하던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세간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위대한 그리스인의 해방 투쟁‘보다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적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암튼 <스타크래프트> 실사화를 관통하는 질문은 ‘혁명’ 혹은 ‘새로운 질서’다.

사라 캐리건이나 주인공 짐 레이너의 영화 속에서의 행적은 그를 위한 투쟁의 기록이며, 인간과 저그 그리고 프로토스 종족이 마주한 우주적 재앙은 ‘재난‘이다.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사랑’을 메인 메시지로 내세우긴 하지만.

각기 다른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가진 종족의 대립과 연합을 통해 현시대 지구적으로 겪고 있는 모순을 지적한다.

영화 <Tsogang>의 레퍼런스 그림은 미국의 흑인화가들의 작품에서 골랐다.

류지호가 아는 흑인 미술가로 가장 유명한 이는 천재미술가 장 미쉘 바스키아다.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는 흑인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검은 피카소라 불린다.

마약 중독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생전에 인종차별, 빠른 성공,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 사회비판적 의식 있는 젊은 청년 예술가였다.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마약 중독에 빠지고 말았지만.

그의 짧은 일대기는 영화 소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그 유명한 바스키아 작품들에서 <Tsogang>의 영감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추상적이고 다소 난해하다는 점도 있지만.

특유의 ‘삐딱함’이 영화 <Tsogang>과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미국 흑인의 일상과 역사를 담은 그림을 통해 '흑인 정체성'을 모색해 온 화가 케리 제임스 마셜의 그림에서 영감을 더 많이 받았다.

태어난 곳은 앨라배마주였지만, LA에서 자란 케리 J 마셜은 어린 시절을 보낸 LA 남부의 흑인동네와 시카고 남부 흑인 밀집지역에서의 경험을 그림에 주로 담았다.

LA를 비롯해 미국의 흑인거주지역에 대한 후원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류지호에게도 그림과 정서가 친숙했다.

흑인 인권에도 진지한 케리 J 마셜은 정작 자신의 작품에서는 진지함보다는 유쾌함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아프리카가 배경인 영화라면서?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함께 미술관 데이트를 하며 레오나가 물었다.


“솔직히 아프리카 미술의 고유함이 어떤 진부함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고. 일상성보다는 예술 그 자체에 지나치게 탐닉한다고 할까.”


류지호는 <Tsogang>에서 ‘토속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힌트는 충분히 얻었어?”

“대략적으로...”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미술이라면 원시성을 간직한 조각들을 떠올린다.

화가 피카소와 마티스, 조각가 자코메티 등이 아프리카 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런데 현대 아프리카 미술은 서양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굉장히 모던함을 풍긴다는 인상을 받은 류지호다.

초현실적이고 꿈같은 세계를 창조하며, 개인적인 경험과 고향의 역사에 대한 회화적 성찰을 꾸준히 하면서 서구권에서 그 신선함과 창의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 같다고 할까.

그 같은 작품 속에서 <Tsogang>의 톤 앤 매너 힌트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차라리 미국의 흑인화가들의 그림에서 좀 더 다채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비록 아프리카와 전혀 관계없는 미국 흑인들의 정체성과 일상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결코 절망에 빠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즉 <Tsogang>에서 묘사하는 베추아날란드 주민들은 서구인들이 계몽하고 돌봐줘야 할 미개한 인류가 아니라 그저 과학문명이 덜 전파된 시골에 살고 있는 순박한 이웃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류지호는 케이 J 마셜 외에도 바클리 헨드릭스, 찰스 화이트 같은 아프리카 출신 화가뿐만 아니라 미국 출신 화가인 밥 톰슨과 조셉 요컴 같은 화가의 그림들도 꼼꼼히 살펴봤다.

뉴욕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두 영화의 시각적 톤 앤 매너가 얼추 정립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최종 결정은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촬영감독, 시각효과 코디네이터 등과 함께 토의를 거치고 난 후에 내리면 된다.


❉ ❉ ❉


연말연시 동안 롱아일랜드 파커저택은 차분했던 평소 분위기와 완전히 달랐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 나서 분위기를 주도한 것도 억지로 웃음꽃이 핀 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고령의 윌리엄 파커를 배려했다면 차분한 분위기가 흘러야 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왁자지껄했다.

내일이 될지 아니면 내년이 될지 알 순 없지만, 윌리엄 파커와 이별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그래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윌리엄 파커가 느끼길 바랐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많지 않은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이 많은 사람은 큰 집이나 호화로운 사립 요양원에서 간병인을 두고 보살핌을 받고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은 보통의 요양원에서 보살핌을 받는 차이가 있을 뿐.

병약하고 외로운 것은 다르지 않다.

죽음 앞에서 요양원의 호화로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과 낮았던 사람도 큰 차이가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요양원 입소 초반에 조금 더 방문자가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

연말연시 내내 파커의 형제들이 떠들썩하게 분위기를 이끈 것은 아버지가 외로움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류지호의 장인장모가 거처를 아예 롱아일랜드 저택으로 옮겼다.

비록 수발을 전문 간병인이 돕는다지만, 심리적 안정과 외로움을 덜어주는데 가족만 한 것이 없기에.


“브래드.”

“예.”

“내가 너무 오래 브래드를 붙잡아 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은퇴해도 진작 했어야 했다.


“아닙니다. 주인님을 끝까지 곁에서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짧은 감사의 표현이었지만, 많은 걸 내포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파커 패밀리의 집사로 살아온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래드의 헌신을 나와 레오나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주인님이 영면에 드신 후에 말씀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집사 브래드, 풀 네임 브래들리 J 아담 또한 칠순을 넘긴 나이다.

그럼에도 윌리엄 파커의 수발을 들고 있다.

말벗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집사가 인사·회계와 같은 관리인의 중책까지 맡게 되었지만, 중세 귀족 저택의 와인이나 맥주의 관리자가 집사의 기원이다.

불과 80여 년 전만 해도 왕실 및 귀족가문의 마부, 문지기, 풋맨(하인), 시종 등은 제복을 입었다.

하인들 사이에서도 제복이 출세와 서열의 증표였다.

출세가 계속되다보면 최종적으로 제복을 벗는 시기가 온다.

바로 집사가 된 후부터다.

저택관리인, 즉 집사가 되면 그의 주인처럼 멋지게 차려입어야 한다.

멋스럽게 꾸며야 집사 자신의 평가도 올라가고, 주인의 품위와 품격도 빛나는 법이니까.

집사 브래들리 아담은 영국왕실 집사학교 ‘브리티시 버틀러스쿨’ 출신이다.

지금의 ‘브리티시 버틀러스쿨’ 교장은 그의 직속 후배다.

그뿐이 아니다.

브래들리 아담은 상당한 부자다.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5개국에 9개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는 ‘모던 버틀러스(Modern Butlers)’라는 집사교육 기관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집사 아카데미인 네덜란드의 ‘국제버틀러아카데미(International Butler Academy)’의 명예교수이며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고.

벨에어 저택관리인 윌튼이 꼼짝도 못하는 이가 브래들리 아담 집사다.

현존하는 집사의 역사 그 자체인 인물이기에.

그런 노인이 끝까지 주인을 모시고 있다.


‘아마 주인과 집사 관계가 아니라 우정이겠지. 아니면 의리일 수도 있고.’


윌리엄과 브래드는 장장 50년 넘게 마스터와 집사로 함께 했다.

윌리엄 파커의 모든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가족이 아니다.

바로 브래들리 아담 집사다.


“주인님께서는 비록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지만 사랑하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주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되네요.”

“작은 주인 부부가 와 계시지 않습니까.”

“브래드도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건장 잘 챙기고.”

“....예.”


브래들리 아담 집사와 헤어진 류지호가 저택을 빠져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자취방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상 객사(客死)와 다르지 않았다.


- 정말 보람 있는 삶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정말 후회 없이 살다간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잃지 않고 가족들 앞에서 그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는 임종의 광경은 흔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통해 중요한 것을 깨달은 류지호다.

잘 죽는 것이 인간으로써 마지막 숙제라는.

인간은 누구나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그 부분 역시 신의 영역이다.

그나마 인간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보람되고, 의미 있으며,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 뿐.

그조차 의지대로 되기 매우 힘들긴 하지만.


✻ ✻ ✻


연말연시를 뉴욕에서 보낸 후로.

류지호는 가족과 함께 설 명절을 쇠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조용히 입국해 여주의 부모님댁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았다.

가온그룹 의장비서실 외에는 류지호가 한국에 들어온 것도 몰랐다.


“한국신문이 어려워.”


설날 류민상에게 새배를 하러 온 황재정이 뜬금없는 소문을 들려주었다.


“노조에서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래. 아마 사주 일가와 노조가 강대강 대결로 갈 것 같아.”

“그래서?”

“그룹 차원에서 만약 한국신문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나 봐.”


오너인 류지호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회장님하고 부회장 몇 사람만 아는 내용이래.”

“넌 어떻게 아는데?”

“회장님이 알려줬으니까 알지.”

“너를 통해 나를 한 번 떠보려고?”

“언론사 소유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다들 네 눈치를 보니까.”


1954년 창간된 한국신문은 나름 중도 포지션을 표방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로 광고매출이 급격하게 줄면서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

월급까지 밀리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는데 사주는 꼬박꼬박 이익을 챙겨갔다.

미국의 대표적인 한인신문으로 유명해서 류지호와도 제법 인연이 있다.


“대기업이 언론사를 소유할 수 없을 텐데?”

“지분 보유 제한이 있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우회해서 지배하지 못할까봐?”

“가뜩이나 제국 어쩌고저쩌고 말들이 많은데.... 괜찮대?”

“욕먹는 것은 한 순간. 언론사 가지고 있으면 두루두루 써먹기 좋지.”


류지호는 한국의 언론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뉴미디어시대에 들어서면서 The Wall Street Journal의 온라인 아시아판 그 중에서 한국판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한국신문을 소유하거나 그에 준하는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해.”

“나름 역사가 오래된 신문이라서 데이터베이스가 꽤 충실할 거야. 우리 그룹 연구소에 방대한 데이터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걸?”


괜히 스탠퍼드에서 공부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남들은 언론사를 통해 대관업무에 써먹을 궁리를 할 텐데, 황재정은 한국신문이 수십 년 동안 쌓아놓은 기사와 그를 뒷받침 하는 각종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인문사회학적 연구에도 신문기사 데이터베이스는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내 의견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해.”


사실상의 승낙이나 마찬가지다.

류지호는 The Wall Street Journal이 어떻게 흑자경영이 되고 있는지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다.

가온그룹의 사내 벤처를 통해 뉴미디어와 융합한 새로운 신문구독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국내 신문사를 가질 수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 ❉ ❉


한국에서 설을 쇠고 LA로 복귀한 류지호는 곧바로 아카데미 시즌에 참여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또 한 번의 파격이 예상되었다.

바로 류지호가 작품상 시상자로 나서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상은 보통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하는 것이 관례다.

2000년 이후로 스티븐 아들러가 세 차례(76회. 81회, 83회) 작품상 시상자로 나서긴 했지만, 그 외에는 중량감 있는 할리우드 배우가 수상자를 발표하고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자에게 전달했다.

그랬던 관례가 이번 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깨질 예정이다.

전년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자가 류지호이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흑인조차 시상자로 서지 못하던 전례에 비춰볼 때 비백인이면서 나이까지 어린(?) 류지호가 아카데미 최고상을 시상하는 것은 대단한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류지호가 유색인종으로 최초 작품상 시상자는 아니다.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바하마 출신의 배우이자 감독 시드니 푸아티에가 작품상을 <브레이브 하트> 프로듀서에게 안겨준 바 있다.

당시에 시상식 사회는 카린 골드버그가 봤으며, 시드니 푸아티에는 흑인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주연급으로 활동했던 배우였다.

당시에는 명확한 시상식 콘셉트가 있었던 것.


[1927년 MSM의 메이어 사장은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협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영화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지호 류가 첫 번째 할리우드 황금기를 이끈 리더들의 계승자는 아니지만, 전설적인 영화사 MSM을 소유하고 있고, 트라이-스텔라 스튜디오를 통해 할리우드 황금기를 리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카데미 마지막 시상자로 무대에 설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 The Hollywood Reporter.


보수적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이사회가 류지호의 할리우드 위상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아카데미 시상식 행사를 총괄하는 ABC방송국 최고경영진의 의지인지.

저간의 사정은 알 순 없다.

확실한 것은 비백인이며 비유대인이며 명망 있는 배우가 아닌 류지호가 아카데미 마지막 무대를 이끈다는 것은 아카데미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란 사실이다.

그렇게 아카데미 시상식이 다가오는 가운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TV뉴스속보를 보던 류지호가 너무 놀라서 곧바로 소닉에픽뮤직그룹의 덱스 모리스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이에요?”

- 그렇다는군. 후우.....


팝스타 위트니 휴스턴이 비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 이틀 전이었다.


“그래미 갈라쇼에서 공연하기로 되어 있던 거 아니었어요?”

- 그랬지.

“사인은 뭐래요?”

- 알아도 말해 줄 수 없네.


부디 마약 문제만 아니길....


- 자네는 애도만 하게. 참견하지 말고.


위트니 휴스턴이 유니벌스뮤직그룹 소속 아티스트였다면, 류지호가 발 벗고 나서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아쉽지만, 그녀는 소닉에픽뮤직 계열 아리스타 레코드 소속이다.

게다가 류지호는 음반업계 관계자도 아니고.

이러쿵저러쿵 나서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았다.


-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이 9일에 열린 리허설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에 옷차림도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었답니다. 담배와 술 냄새가 진동했지만 누구도 뭐라는 사람은 없었던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도널드 제이콥이 발 빠르게 정보를 취합해 류지호에게 알려왔다.

위트니 휴스턴의 죽음이 알려지자 많은 팝스타들이 애도의 뜻을 보였다.

각계각층 그리고 팬들의 애도와 추모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예정되었던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위트니 휴스턴의 사망 소식으로 행사 구성을 긴급하게 수정했다.

고인을 기리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특히 제니 허드슨이 ‘I will always love you’를 열창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류지호는 모리스 메타보이, 샘 리버먼, 마빈 코트너와 함께 위트니 휴스턴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영화 <보디가드>에 관여했던 당시 수뇌부들이다.

류지호는 따로 추모사를 하진 않았다.

<보디가드>에서 고인과 함께 열연한 마빈 코트너가 대표로 추모사를 읽었다.

마이키 잭슨 또한 고인의 친구로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녀가 겪은 ‘군중 속의 외톨이’를 누구보다 깊게 공감하는 이가 마이키 잭슨이었다.

어릴 때부터 슈퍼스타였다는 공통점과 함께 부모로부터 정상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점과 형제들로부터 좋지 못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 또한 같은 두 사람이었다.


“비록 그녀의 영광의 순간은 이제 막을 내렸지만, 그녀의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이름입니다.”


장례식의 끝을 장식한 노래 역시 ‘I will always love you’였다.

영화 <보디가드>를 상징하는 OST.

류지호 시대를 연 트라이-스텔라 초창기의 중요한 영화 가운에 하나다.

흥행에 대성공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인종갈등이 엄연히 존재했던 시기.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사랑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던 시기에 <보디가드>란 영화를 통해 흑인여가수 위트니 휴스턴은 ‘만인의 연인’이란 칭호를 부여받았다.

<보디가드>로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지만, 그녀가 부른 OST는 이 시기까지도 깨지지 않는 OST 사상 최다 판매량 기네스 기록이다.

비록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인종차별을 극복한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대중들에게 깊숙이 각인된 존재가 되었다.

<US magazine>의 편집자가 일찍이 별명을 붙인 것처럼.


America's first black sweetheart.


최초의 흑인 출신 미국의 연인으로 남게 되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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