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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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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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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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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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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LA 다저스.

말이 필요 없는 MLB 최고 인기 구단 가운데 하나다.

지난 2003년이었다.

적자만 누적되던 구단을 슈퍼리치 의형제에게 매각했다.

공동구단주가 된 매튜 그레이엄은 류지호와 의논해서 고액연봉자 일명 ‘먹튀’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시애틀 매리너스 트리플A에서 뛰던 한국인 선수를 데려왔고, 이전 삶에서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던 강타자 마이클 트라우티를 드래프트에서 지명했다.

최근에는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한 코리안 몬스터도 영입해 성적과 한국 마케팅 모두에서 좋은 성과가 기대되었다.

슈퍼리치 의형제가 LA다저스를 인수한 이듬해에 곧바로 8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더니 이후 2006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2년 연속으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 올라갔지만, 이후로 월드시리즈 문턱에 매번 미끄러졌다.

슈퍼리치 의형제가 구단주가 된 이후로 LA다저스는 내셔널리그 강자 자리를 완전히 탈환했다.

비록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는 끼지 못하고 있지만, LA 다저스가 좋은 성적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떠나갔던 팬들이 돌아왔다.

메이저리그 전체 관중동원 2위의 초인기구단의 위상을 회복했다.

이제 단 한 걸음만 남았다.

25년째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한을 풀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월드시리즈 챔피언십을 가져오는 일만 남았다.

마침내 2013 시즌을 맞이해 드라마틱한 정규시즌을 보낸 LA 다저스가 다시 한 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올해는 왠지 분위기가 달라!”

"Go Dodgers Go!“


포스트시즌을 맞이해서 LA가 들썩들썩했다.

올해는 ‘뭔가 되는 해‘라는 공감대가 팬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LA지역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2012-2013 오프시즌에 일부 변화를 줬다.

빈약한 내야 왼쪽을 보강하려고 라미레즈를 유격수로 돌렸다.

그 자리에 개빈 유킬리즈를 영입했다.

추성욱(좌), 트라우티(중), 캠프(우)의 외야는 적어도 내셔널리그에서는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에이스 커쇼를 받쳐줄 확실한 2선발에 그레인키를 6년 간 1억4,700만 달러 규모로 데려왔다.

역대 우완투수 최고액 계약이었다.

거기다 코리안 몬스터라 불리는 한국인 좌투수를 포스팅 금액 포함 6년간 3,600만 달러에 영입했다.

그 외에도 불펜과 내야수를 보강하면서 역대 오프시즌에서 손꼽히는 투자(돈지랄)를 단행했다.

덕분에 페이롤만 2억 달러를 돌파했다.

1989년 이후 뉴욕 양키스가 독주하던 페이롤 1위를 LA다저스가 빼앗아왔다.


- 이제야 구단주 미스터 할리우드가 LA다저스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역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었다.

LA다저스의 페이롤이 2억 달러를 넘어 3억까지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당장 2013 시즌에 연평균 2,000만 달러를 받는 선수만 네 명(켐프, 곤잘레스, 크로포드, 그레인키)에 1,500만 달러 선수 셋(이디어, 라미레즈, 베켓)에 1,000만 달러 세 명(빌링슬리, 커쇼, 릴리), 그들 10명의 선수에게만 무려 1억 5,8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출했다.

그 외에 몇 백 만 달러대 자잘한 선수들까지 합치면 확정 연봉만 2억 3천만 달러에 이른다.

고액 연봉선수 중에서 몇몇은 부상과 노쇠화에 따른 경기력 저하가 고민이지만.

팜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류지호의 성향으로 유망주들을 제법 모아놨기에 단장과 감독이 게으르고 무성의하게 구단을 이끌지 않으면 비교적 미래도 낙관적이다.

본래 역사대로라면 2005년 시즌을 마치고 해임되어야 할 단장 디포데스타가 여전히 다저스에서 사장 겸 단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잘한 것은 딱히 없다.

그렇다고 특별히 못한 것도 없다.

공동구단주들과 소통이 잘되는 편이다.

매튜 그레이엄으로써는 굳이 교체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재임 기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있고.

단 하나 월드시리즈 진출만 이뤄내면 종신 단장을 꿈꿔도 된다.

팜 시스템을 특히나 정비하고 가꾸는데 공을 들이고 있는 점이 류지호에게도 좋게 보였다.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져 팬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지만.

팜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축한 것으로 단장교체 여론이 상당부분 상쇄되고 있다.

마침내 LA다저스는 25년의 한을 푸는 날이 찾아왔다.

LA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 올라 3차전까지 선전을 펼치고 있다.

다저 스타디움 스카이박스에서 게임을 관전하는 류지호와 매튜 그레이엄의 얼굴이 제법 상기되어 있다.


“동생아, 이번 시즌 끝나고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냐?”

“무슨 대책?”

“지금 체제로는 포스트시즌에서 깔짝대다 정작 월드시리즈 우승은 못하는 비운의 팀이 될 것 같아서.”

“팜 시스템 안정되어 있고, 구단 재정도 나쁘지 않고, 주전선수 구성도 나쁘지 않고. 더 뭔가 필요해? 트라우티급 강타자와 커쇼급 투수라도 한 명 더 데려올까?”

“템파베이 레이스의 앤디 프리드먼이란 단장이 있어. 야구 좀 볼 줄 안다는 월가 친구들이 그를 추천하더라.”

“디포데스타를 교체할 때가 되긴 했지.”


구단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수뇌부를 교체해줄 필요가 있다.


“돈을 썼으면 결과를 내야 하는데. 알잖아.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성적을.”

“프리드먼이란 단장이 오면 달라져?”

“적어도 더 적은 돈을 쓰고 팀을 우승시킬지도 모르지.”


대강 프리드먼이란 단장의 스타일을 유추할 수 있었다.

구단운영 측면에서, 재정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정규시즌 우승급 전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방식.

사실 그것만큼 흑자를 내기에 유리한 방식은 없다.


“너도 알지? 월드시리즈 우승을 통한 금전적인 이득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거. 우승상금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고, 중계권료도 전국구 중계권은 MLB 사무국에서 관장하고, 월드시리즈 티켓수입도 전체 리그 티켓수입과 비교해서 뭔가 엄청 벌었다고 생각되지도 않잖아?”


LA다저스는 2004년부터 포스트시즌 단골손님이다.

그에 따라 평균관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 정도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한다면 3년 내 양키스를 누르고 평균관중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떠났던 팬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구단 재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아시아 마케팅 특히 한국에서의 상품판매 수익이 유의미한 수준에 도달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들 가운데 정규시즌 성적이 폭락하면 다다음 해에는 평균관중이 급락하는 경우가 잦았다.

우승 후유증이라고들 한다.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다음에 긴 암흑기를 겪는 것보다 답답하지만 지속적으로 강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매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팀의 포지션을 갖자는 거야?”

“어떤 팀처럼 우승 한 번 하고 오랜 기간 애를 태우느니 언제든 우승을 노려볼만한 팀을 응원하는 게 팬으로써는 더 행복하지 않을까?”


몇 년 침체를 겪어도 좋으니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자는 팬이 있을 수 있고, 당장 우승 안 해도 좋으니 꾸준히 강팀 이미지를 가져가면서 5년 안에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는 팬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매해 우승하는 거잖아. 강팀 이미지고 나발이고.”

“크하하하. 그야 당연하지!”


딱!


필드에서 경쾌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벌떡!


류지호와 매튜 그레이엄이 대화를 멈추고 동시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정규시즌에서 1번과 2번을 번갈아 수행하는 추성욱이 포스트시즌에서 1번으로 고정되며 우측 담장을 맞추는 2루타를 터트렸다.


“예쓰!”


이어 2번 타순에 들어선 고든이 안정적으로 번트를 대줘서 추성욱을 3루로 보냈다.

그리고 등장한 3번 타자 마이클 트라우티.

신중하게 볼을 고른 끝에 좌중간 깊숙한 곳에 공을 날려 3루 주자를 무난하게 홈으로 불러들였다.

젊은 선수들인 추성욱과 마이클 트라우티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성실하고 팀을 위한 허슬플레이에 노장들이 동조하면서 라커룸 분위기가 역대 최고로 좋았다.


“고! 다저스!”


류지호가 손뼉을 치며 다저스 응원구호를 외치자, 류시아가 아빠를 따라 응원구호를 외쳤다.


"Let's go Dodgers!"


오랜만에 야구장 나들이에 레오나와 아이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운명의 8회 말.


전혀 기대하지 않은 선수가 승부를 뒤집는 한 방을 터트렸다.

바로 포수를 맡고 있는 앨리스다.

답답한 경기를 단숨에 바꿔버리는 좌월 솔로홈런이 터진 후 마무리 잰슨이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한 이닝을 마무리했다.

월드시리즈 3차전을 LA다저스가 가져가져갔다.


“남은 4경기에서 먼저 2승을 올리면 1988년 이후 25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게 되는 거야!”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LA다저스가 우승을 했는지 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프런트와 선수구성이 많은 부분에서 바뀌어서 더더욱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허니, 올해는 뭔가 되는 해인가 봐.”


시아와 준혁을 양팔로 안아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류지호가 대답했다.


“그러게.”

“맨유가 리그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걸 보면서 다저스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제발 이번에 우승해서 부담감을 덜었으면 좋겠다. 그치?”


매튜 그레이엄이 끼어들었다.


“난 우승 안 해도 좋아. 어쨌든 25년 만에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어. 내야와 불펜만 조금 보강하면 내년부터 계속해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 거야.”

“무슨 소리! 이 기세 그대로 3연속 우승해야지!”


결론적으로 2013시즌 월드시리즈는 최종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LA다저스가 25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통산 7번째 우승이다.

우승이 확정되고 LA 중심가는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차량 퍼레이드를 하며 경적을 울려대고 불꽃놀이도 벌어진다.

90년대 LA폭동과 맞먹는 대소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류지호 가족은 그 경사를 마음껏 즐길 수가 없다.


✻ ✻ ✻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

그리고 깊은 겨울이 지나갈 즈음.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유독 부고기사가 미국 신문에 많이 올라온다.

MLB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가 한창 선전을 펼치던 시기.

류지호의 가족이 급히 뉴욕 롱아일랜드 대저택으로 날아갔다.

윌리엄 파커의 직계 자손들도 뉴욕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지난밤에 갑자기 윌리엄 파커가 응급실로 실려갔다.

특실로 옮겨졌던 윌리엄 파커가 저택으로 돌아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병세가 호전되어 저택으로 돌아간다면 다행이건만.


- 아내와 함께 잠들었던 바로 그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구나.


평소 윌리엄 파커의 당부였다.

윌리엄 파커는 올해 89살이다.

졸수연(卒壽宴)이란 구순 잔치를 불과 1년 앞두고 있다.

평소에 치매가 약간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산책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나이가 들어 쇠할 대로 쇠한 기력을 다시 채울 순 없었는지.

그도 아니면 정해진 수명을 거스를 순 없었는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부스럭.


류지호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레오나가 뒤척이는 류지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잠이 안 와?”

“응.”

“단전호흡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 해봐....”


류지호가 침대를 빠져나왔다.


“잠시 산책 좀 하고 올게.”

“같이 갈까?”

“아니야.”


류지호가 대충 겉옷을 걸치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쌀쌀한 기운이 얼굴을 훑고 지나가자,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다.


“.....”


정원사들의 보살핌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류지호가 천천히 거닐었다.

이별의 슬픔.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운 마음.


‘이젠 돌아가실 때가 되었지...’


하는 불효의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25여 년 전.

뉴욕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공항까지 마중 나온 윌리엄 파커의 모습부터.

가장 최근에 휠체어에 태워서 지금 류지호가 걷고 있는 정원을 함께 산책했던 모습까지.

갑자기 콧잔등이 매웠다.

꼴사납게 눈물을 떨어뜨리진 않았다.

이별의 날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왔으니까.

윌리엄 파커는 회귀자 류지호에게 있어서 진짜 어른 중에 한 명이다.

하이에나들이 우글거리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때론 가르침을 주었던 스승이 바로 윌리엄 J 파커다.


명예(honor).

품격(dignitas).

영광(gloria).

권위(auctoritas).

교양(decorum).


만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

윌리엄 파커를 보며 류지호가 동경했던 것들이다.

따라하다 보면 닮을 수 있겠거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진짜 귀족.

돈에 휘둘리지 않고 지배하는 진짜 부자.

한 가정의 든든한 기둥.

류지호의 롤모델이었다.


“......”


윌리엄 파커의 방에 불이 켜졌다.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줄 알고 류지호가 저택 안으로 달려들었다.

다행히 간병인이 기저귀를 갈기 위해 전등을 밝혔던 것.


“...Jay?”


윌리엄 파커의 손짓에 류지호가 침대로 다가갔다.


“저예요. 할아버지.”


류지호가 간병인을 돌아봤다.

고개를 가볍게 숙인 간병인이 옆방으로 사라졌다.

기운이 없어 많은 말을 할 수 없는 윌리엄 파커다.

류지호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월드시리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외에도 사업이야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들 이야기 등.

자장가 삼아 이러저런 이야기를 속삭이듯 들려주었다.

두서없이 말하다 보니 회귀에 대한 비밀도 털어놓았다.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여태 살았다니.... 예술가에게 망상이란 것이 창작에 도움 될 순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영혼을 망치게 된단다.”


윌리엄 파커는 믿지 않았다.

마약을 하는 것은 아닌지,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도리어 걱정했다.


“인생은 말이다. 밀고 당김의 연속이란다.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에도 상처를 받지 말거라. 우리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 중간을 유지하며 산다는 건 매우 어렵지. 하지만 말이다. 결국 사랑이 승리하게 되어 있단다. 사랑하며 살 거라.”


진부한 말이지만.

어쩌면 사랑이란 것이 유일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네 인생을 의미 있게 하려면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공동체에 헌신하거라. 네게 삶의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헌신하거라.”


결국 이 말이 류지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되고 말았다.


삼일 후.


윌리엄 파커는 잠든 모습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달 전에 와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낼 것을 그랬어.”


그 동안 전화도 자주 드리고, 틈이 날 때마다 방문하곤 했다.

솔직히 가정을 꾸리고, 게다가 자식이 생기고 나니 전만 못했던 것도 사실.


‘회귀 사실을 털어놓을 때까지도 살만 하셨던 것 같은데....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이래서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있는 거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마다 그렇다.

꼭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후회한다는 것이.

어쨌든 대니얼 그레이엄의 장례 때와 마찬가지로 윌리엄 파커의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르기로 했다.

전·현직 대통령이 모두 참석한 장례식을 과연 조촐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 류민상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 해만 더 사셨어도 구순을 채우셨을 터인데.....”


누가 뭐라고 해도 호상이다.

호상이라고 해서 떠난 사람에 대한 추억과 남은 자손들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모두가 이날이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가 마음에 준비도 했고.

그렇다고 해도 눈시울을 적시는 이들이 많았다.

장례식에서는 고인에 대한 슬픔보다는 자기 설움에 운다는 말이 있다.

떠나간 자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남겨진 자신 때문에 운다고 한다.

남은 사람들 자신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짊어져야 하는 저마다의 삶의 무게와 삶의 서러움을, 장례식을 핑계 삼아 펑펑 쏟아낸다는 의미리라.


“삶이란 게 이렇게 떠나면 그만인 것을, 우리네는 왜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아가는 걸까?”


에드워드 버펫과 함께 온 노파가 삶의 부질없음을 한탄했다.

곧 본인도 친구가 향한 나라로 떠날 것을 알고 생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인지, 집착의 덧없음을 깨달을 것인지....

고령의 노파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저분은 누구지?”


노파 본인의 몸가짐이나 함께 온 자손들의 행색을 봤을 때 거물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Harst 가문의 가장 웃어른.”


하스트 가문은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를 소유한 미국의 언론·미디어 가문이다.

2013년 기준 Forbes 선정 미국 최대 부호 가문 10위에 들어가는 명문이다.


“할아버지와 친분이 깊으셨나? 유독 구슬프게 우시네?”

“오래 전에 할아버지와 염문이 있었대.”

“.....!”

“달링도 혹시 나중에 죽으면 과거 여자들이 찾아와서 슬퍼해 줄까?”

“내가 허니가 모르는 과거 여자가 있었나?”

“나중에 보면 알겠지.”


대니얼 그레이엄의 죽음으로 가족들 모두가 심리적으로 단단해진 모양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주고받는 걸 보면.

암튼 깨끗하게 단장된 윌리엄 파커가 고급스런 관 안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장의사들이 애를 쓴 덕분에 윌리엄 파커의 얼굴에 주름도 없고 울긋불긋한 얼굴빛도 아닌 화사한 낯빛에 약간 미소까지 띠고 있다.


‘나는 괜찮다.‘


윌리엄 파커의 편안한 얼굴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여오는 것만 같았다.


흑흑.


사람이 태어날 때는 본인은 울고, 지켜보는 이들은 웃는다.

그런데 사람이 세상을 떠나갈 때는 거꾸로 본인은 웃는 얼굴이고, 지켜보는 이들은 운다.


‘저 세상이 이 세상보다 좋은 걸까?’


세상에 나올 때는 울고 돌아갈 때는 웃고 있으니 말이다.

가까운 사람이 떠나갈 때면....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는 생각들, 가령 산다는 건 무얼까 하는, 그러저러한 초연한 생각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 싶겠지만.

뉴욕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됐다.

전용기에 시신이 실려 아이오와 디모인으로 옮겨졌다.

대니얼 그레이엄의 시신이 뉴욕주에 안치된 것과 달리 윌리엄 파커의 시신은 디모인의 공원묘지 파커 가문 구역에 안장되었다.


“먼저 가신 할머니와 하늘나라에서 만나셨으면 좋겠다.”

“새롭게 신방을 차렸을지도 모르지.”

“두 분이 생전에 함께 여행도 자주 못 다니셨다고 들었어.”

“헤어지는 일 없이 두 분이 영원히 함께 계실 거야.”

“그럴까....?”


어찌 알 수 있을까.

바람일 뿐.

부부는 별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가신 분에 대한 아쉬움과 남은 자로서의 슬픔을 달랬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

사람들과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들.

새삼 하루하루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류지호다.

그것이 남겨진 후손들의 몫이니까.


✻ ✻ ✻


롱 아일랜드 파커저택에서 윌리엄 파커와 함께 지내던 장인장모가 맨해튼의 집으로 돌아갔다.

브래들리 아담 집사는 평생의 임무를 완수한 후에 고향인 영국으로 떠났다.

윌리엄 파커가 사망하면서 파커의 대저택이 온전히 류지호 부부의 차지가 되었다.

등기는 한참 전에 이전되어 있던 상태였지만.

사실 부동산 자산은 중요하지 않다.

파커의 유산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으니까.

대저택에 남겨진 수십 대의 클래식 자동차, 승마용 말, 서재의 고서들, 소장품, 미술품 등.

그리고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전통을 물려받았다는 의미도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Forbes는 매해 미국 최고의 상속가문을 선정해서 발표하고 있다.

미국 내 자산규모 10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185개 집안을 대상으로 한다.

각각의 집안의 기업 지분, 현금부터 부동산, 개인 소장품, 미술품 등 모든 자산을 조사해 순위를 매겨오고 있다.

공식적으로 미국 최고 부자 가문은 월튼가문이다.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튼마트의 그 가문이다.

구성원 6인의 자산 규모가 1,520억 달러(약 153조8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위는 석유·에너지기업 코흐 인더스트리의 코흐 가문이 차지하고 있다.

코흐 가문은 4명의 집안사람들이 890억 달러(약 90조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멜란 가문은 120억 달러로 19위, 락커펠러 가문은 100억 달러로 24위, 헨리 가문은 20억 달러로 115위에 올라있다.

Forbes 발표만 놓고 보면 과거 미국 경제의 리더들이 일선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후손들의 무능으로 완전히 몰락한 상속가문도 많다.

그러나 멜란, 락커펠러, 케네기 같은 상속가문은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재산이 더 많고 그보다 더 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곳곳에서 발휘하고 있다.

파커가문도 마찬가지다.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Forbes 발표에서는 4~5위 권 사이를 오가고 있다.

류지호가 알기로 말도 안 되는 조사다.

가문 구성원들이 소유한 자산 가운데 실제보다 저평가 되어있는 자산이 많았다.

외부에서 알 수 없는 비공개 헤지펀드도 여러 개다.

조세피난처에 잠들어 있는 자산까지 하면 능히 월튼가문과 자웅을 겨룰 만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집이 커 보이네.”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흘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꿈나라에 갔던 정신이 들면서 현실을 인지하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윌리엄 파커 한 사람이 없을 뿐인데.

롱아일랜드 대저택의 대부분이 텅비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파커저택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 조셉이 저택 현관 앞에 25년 쯤 된 클래식 캐딜락 리무진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

윌리엄 파커가 생전에 애용하던 모델 가운데 하나다.

조셉이 웃으며 리무진의 문을 열어주었다.


“땡큐. 조셉~”


폴짝.


제일 먼저 류시아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공항까지 배웅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파커 패밀리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할 수 있지.”


기존의 고용인들은 모두 파커 저택을 떠나기로 했다.

굳이 떠날 필요는 없지만, 류지호 가문의 집사장인 윌튼이 취한 조치다.

브래들리 아담이 떠난 롱아일랜드 저택은 앞으로 윌튼 집사의 관리를 받을 예정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원한다면 계속 이 저택에서 일해도 된다니까....”

“나도 이제 아내와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어?”


조셉이 마지막으로 운전하는 클래식 캐딜락 리무진을 타고 류지호 가족이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향했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조셉과 포옹으로 작별인사 나누며 류지호가 당부했다.


“살면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오고.”

“곤란한 일이 생기면 안 되지.”

“가끔 뉴욕에 오면 술 한 잔 해.”

“전화만 줘. 열 일 마다하고 달려올 테니까.”

“부디 조셉의 삶이 해피엔딩이길 기원할 게.”

“너 역시도.”


운전기사와 윌리엄 파커의 후원인 자격으로 만났지만, 죠셉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파커저택 사람 가운데 류지호와 가장 죽이 잘 맞았던 고용인이었다.

오래된 인연들이 하나둘 류지호의 삶에서 퇴장하고 있다.

혼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육체의 시간은 제 아무리 길어야 100년이다.

하루로 치면 너무나 긴 시간이지만.

영겁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참 짧은 시간이다.

짧고도 긴 인생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꾸리고 자손도 낳고.... 그렇게 역사에 작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윌리엄 파커 역시 그런 사람의 역사를 살다 갔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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