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24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7.06 02:06
조회
157
추천
0
글자
7쪽

제 3 부 천명 (19)

DUMMY

제3장 복병


-1-


연산군이

연방원(聯芳院)으로 개명하며

절의 승려들을 모두 내쫓고

흥청(興淸) 기생들을 머물게 한 이후,


한때 조계종의 본산으로서

그 위상을 자랑하던 원각사는

거대한 기방(妓房)으로 전락하였다.


그렇게

나랏님의 원초적인 욕망에 의해

몰락하게 된 고찰(古刹)의 수난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왕조의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권력을 잡은

중종 시절에는

원각사를 둘러싸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성부(漢城府)를 잠시 이전해

관리들이 머물며

집무를 본 적도 있었고,


대신들의 회의장소인

의득청(議得廳)으로 활용하자는

건의도 있었다.


절의 일부 전각들을 헐어

그 재목을

다른 건물을 짓는데

사용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폐허로 변해가던,

방치된 절터를 탐낸 고관대작들이

그곳에 들어와 살기를

청원한 일도 있었다.


그들의 요구를

상이 윤허하지 않자,


이번엔 잡인(雜人)들이

대거 숨어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원각사는 도둑들의 소굴로 변했다.


원각사의 무리들이

도성의 치안을 계속 어지럽히자

무너진 담을 보수하여

사방에 문을 만들고

경비를 세우자는 공소를

포도청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사람들의 삶이 스며들기 시작한

원각사 절터는

이미 민초들의 터전으로

서서히 그 모습이 변해가고 있었다.




반정 이후 39년 동안 제위에 머물던

중종이 승하하고

세자 이호(李峼)가 왕위에 올랐으나,

그는 용상에 앉은 지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경원대군 이환(慶原大君 李峘)이

이복형의 뒤를 이어

상의 자리에 올랐다.


실로 오랜 세월동안

궁중에서 치열한 암투를 벌이다

최후의 승자가 된,

대왕대비 윤씨가

8년간의 수렴청정을 시작하였다.




원각사의 복건을 여러 번 꾀했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그녀가,


스무 살이 된 자신의 아들에게

‘어쩔 수 없이’ 권력을 이양한

이듬해 8월.


원각사 옛터에서 큰 불이 나

민가 100여 호가 소실되었다.


이 화재로

많은 수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조정에선

다음 날 급히 구휼을 시행하였다.


상은

원각사 인근에서 자꾸 화재가 나니

앞으로는

그 근처에 집을 짓지 못하게 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그 명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화재를 구실로

절터를 비우라는 왕명이 시행되면,


원각사를 재건하려는

대왕대비의 시도가

또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대신들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상이 즉위한지

20년째 되던 해의 3월,


원각사 옛터에서

또 다시 큰 불이 일어났다.


대비와 대신들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무주공산처럼 변한


도성 한가운데의 이 좋은 땅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게 몰려든 수많은 이들이

판잣집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이곳에서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이번에 난 큰 불은

민가 200여 호를 태우고

많은 사상자를 냈다.


상은 다시 한 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절터를 비우라’는 명을 내렸으나,


사헌부와 사간원의 양사는

이번에도 여러 이유를 들어

왕의 뜻을 막았다.


순회세자 이부가 갑작스럽게 죽고

실의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던 상 대신,


대왕대비 윤씨가

다시금 권력을 휘두르려는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절터에서 이주를 명하는 왕과

그것을 막으려는

대신들의 줄다리기 속에


화려함을 자랑하던 고찰은

몇 번의 큰 화재를 겪고

이제 석탑만 홀로 남아

쓸쓸히 절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의 큰 화재로

원각사의 대부분이 불에 타버린

바로 다음 달.


을축년 4월 6일에

마치 그녀를 지켜주던

부처님의 기운이 다한 듯,

대왕대비 윤씨가

창덕궁 소덕당에서 눈을 감았다.


권력의 축을 잃어버린 정국은

그때부터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대왕대비의 죽음 이후 2년이 흘렀다.


조정의 높으신 분들이

궁중을 무대로

치열한 암투를 벌이는 동안,


권력투쟁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던

가난한 민초들은


이젠 과거의 흔적만 남은 절터에서

여전히 판잣집을 짓고 있었다.


마치 생존의 의지인양,


그렇게 민초들이

도성 한가운데에

거대한 판자촌을 구축한

원각사의 땅엔,


주민들 외에도

검계와 왈짜,

색인(色人)과 포주,

기녀와 기둥서방,

도둑과 강도 등등


어둠에 기생하여

밤이슬을 맞고 사는 무리들도

단단히 똬리를 틀고

그들만의 터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

도성의 북대 중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박자흥의 조직 ‘야접(夜蝶)’의

새로운 근거지 ‘연풍관’이 있었다.




“준비들은 끝났나?”


추설의 살주계

3조 부조장을 맡고 있는

박정진이


주변에 있는

젊은 사내들에게 물었다.


“네.


무기는

각자 손에 익은 것만

챙겨왔습니다.”


젊은 사내들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잘생긴 청년이

박정진의 물음에 답했다.


박정진을 가운데에 두고

약 삼십여 명 정도 모여 있는

젊은 사내들은,


방주와 접장들을 갑자기 잃고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홍방의 계원들이었다.


잠시 후,

달빛을 등지고

커더란 덩치의 사내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연풍관 안을 정찰하러 다녀온

추설의 살주계

2조 부조장 송창식이었다.


송창식은

준비를 끝낸 홍방의 젊은이들을

한 번 스윽 둘러보더니

박정진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북대 놈들이 별로 없어.

많아야 열댓 명?”


“그래? 그럼 일이 수월하겠군.

박자흥은?”


“연풍관의 방 아홉 개가

모두 손님들로 꽉 차있으니,


아마 부하 몇 놈과

별채 쪽에 있겠지.”


“그럼 패를 나누세.


박자흥한테 누가 갈까?

내가 갈까? 아님 자네가?”


“그자만큼은

꼭 살려서 데려오라는

노사장 어르신의 명이 있었으니,

내가 가지.


동지 열 명만 추려서 데려가겠네.


자네 칼이 혹시라도

놈의 멱을 따버릴 수도 있으니,

힘으로 제압해야지.”


“그래, 그게 나아보이네.



연풍관 안의 패거리들을

동지들과 정리함세.”


“반항하면...죽여도 좋다고

명이 내려왔으니,

봐 줄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조심하게.”


“어차피 기생들한테 빌붙어서

수금이나 하러 다니는

왈짜 놈들 수준인걸...


너무 걱정 말게.”


“멀쩡한 여염집 처자들을

백주대낮에 납치해 와서

색인으로 만들어 먹고 사는 놈들이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말게.


나도 박자흥 외에는

모두 목을 꺾어버릴 생각이야.”


“오랜만에 피 맛을 제대로 보겠군.


자, 움직이세.”


달빛 아래서 둥글게 모여 있던

삼십여 명의 사내들이

두 패로 나뉘어

연풍관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센 피바람이

곧 불어 닥칠 것도 모르고,

요염한 붉은 등으로

환하게 밝혀진 기루의 밤은


기생들의 웃음과

술 취한 사내들의 소리들로

매우 시끄러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8 제 3 부 천명 (20) 21.07.08 165 0 8쪽
» 제 3 부 천명 (19) 21.07.06 158 0 7쪽
76 제 3 부 천명 (18) 21.07.03 169 0 8쪽
75 제 3 부 천명 (17) 21.07.01 159 0 8쪽
74 제 3 부 천명 (16) 21.06.29 160 0 9쪽
73 제 3 부 천명 (15) 21.06.26 153 0 7쪽
72 제 3 부 천명 (14) 21.06.24 154 0 7쪽
71 제 3 부 천명 (13) 21.06.22 157 0 7쪽
70 제 3 부 천명 (12) 21.06.19 154 0 9쪽
69 제 3 부 천명 (11) 21.06.17 164 0 7쪽
68 제 3 부 천명 (10) 21.06.15 167 0 7쪽
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3 0 7쪽
66 제 3 부 천명 (8) 21.06.10 173 0 7쪽
65 제 3 부 천명 (7) 21.06.08 176 0 8쪽
64 제 3 부 천명 (6) 21.06.05 182 0 8쪽
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8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3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6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3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4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5 1 7쪽
52 제 2 부 꿈 (13) 21.05.04 205 2 4쪽
51 제 2 부 꿈 (12) 21.05.01 202 1 8쪽
50 제 2 부 꿈 (11) 21.04.29 201 2 5쪽
49 제 2 부 꿈 (10) 21.04.27 276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