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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26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6.08 02:11
조회
176
추천
0
글자
8쪽

제 3 부 천명 (7)

DUMMY

정창수가 입격한 그해 가을에,


정효상은

정세호의 권유로

도성의 시전상인이자

어용상인 중 하나인

포목상 이정수의 막내딸과

혼인을 맺게 되었다.


이정수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집안의 일에서 큰 비중이 없는

막내 사위라고 하나,


무과에 합격한 것도 아니고

그저 준비 중인

가난한 집안의 장남과

사돈을 맺는 것이

그리 달갑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균관 대사성으로 시작해

명나라에 파견되는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연경에 다녀오고,

승정원부승지를 거쳐

홍문관부제학까지 오른


정세호의 청을

거절할만한 배짱이

한낱 장사치에 불과한 이정수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언젠가는 정세호가

예조(禮曹) 또는 호조(戶曹)의

최고위직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는

세인들의 평도

그의 결심에 한몫했을 것이다.


이정수에게 정세호는,

경쟁자들로부터

자신의 이권을 보호하며

안정적으로 부를 늘리는데 있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장사치들에게 뇌물을 받고

이권을 위해 결탁하여

부정한 이익을 나누는

고관대작이 너무 많아서

세상이 어지럽다’고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정작 실제 일에서는

그런 동아줄을 찾기도

매우 어려울뿐더러


그런 동아줄을 겨우 찾았다 해도

계속해서 단단히 잡고 있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권력자와 거래를 트는 것도

극소수의 상인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으나,


그 특권을 대를 이어 유지하는 것도

탁월한 처세술을 발휘하지 않는 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세상에 부의 총량은 정해져있는데,

그것을 다루는 자들은 수시로 바뀐다.


수년 간 힘들게 닦아놓은 공들인 ‘길’이

어느 날 갑자기 막혀버리는 것은 예사요,


조정에서 혹여

사화라도 한 번 일어나면


동아줄을 내려주던

높은 분뿐만 아니라

‘줄을 잘못 선 죄’로

자기 자신은 물론 가문까지 모두,


대역 죄인이나 모리배로 엮여

저잣거리에

모가지가 내걸릴지도 모르는,


전락의 위험이

상존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넘보는

같은 계통의 경쟁자들이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주야장천

자신의 빈틈과 허물을 찾고 있다.


간자들을 풀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뒷덜미를 잡히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간 간자들이 수집해 세상에 풀어놓은

자신에 관한 정보들 중에

다행히 치명적인 것이 없어

여태껏 잘 버텨왔지만,


자신의 주변에 있는 수하들 중

경쟁자가 심어놓은 세작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는

어렵고 고된 일이었다.


지척에 있는 적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세인들이 볼 때


그의 몸은 한없이 편해보일지 몰라도,


그의 마음은

항상 외줄타기를 하는 절박함에 치어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기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이후로,

의원이 처방해준 두통약을

달여 먹지 않은 날이

어디 하루라도 있었던가.




아무튼

이러한 저간의 사정으로 인하여,


집안끼리

서로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는

이 혼담은


‘중매인의 권위’ 덕분에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정수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이권이

서서히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굳이 자신의 뒷배를 봐주는 분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 이 혼담을 거절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 제안이 들어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윗분의 체면을 깎아가면서까지

거절한 이 혼담을

혹여 자신의 경쟁자가

덥석 물기라도 한다면,


어쩌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라면,

기회가 왔을 때 얼른 잡아야한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제안을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일일지 모른다.


이 혼인은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지만

당신이 시키니까

군말 없이 따르겠다는 느낌으로,


자신이 좀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윗분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겠다는 모양새로,


권력을 대하는 장사치로서

가장 현명한 처세술을 발휘하는 것이

훗날을 위해 더 좋을 것이라고,


어용상인으로서의 오랜 감은

이정수에게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언가 미묘한 느낌’이,


자신이

정세호에게도

뭔가 마음의 빚을 안겨주었단

뒷맛이 남아서

나름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들에겐 철저히 숨겨왔지만,


이정수의 막내딸에게는

혼인을 해서 가정을 꾸리기엔

큰 흠이 있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등을 떠밀리듯 혼인을 치루고

초야를 보내던 밤에,


정효상은

반려자의 건강이

아주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온몸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야말로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앙상하게 메말라있었다.


정효상도 그 당시에는

여인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처지였기에


여인의 몸이란

원래 이런 것인가 보다 하고

그냥저냥 넘어갔지만,


훗날 세상의 경험이 쌓여가고

어느 정도 남녀 간의 물정을 알게 되자

그제야 아내의 건강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의 부인인 이민정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심한 수족 냉증을 앓았고,


식욕부진에 시달려

밥을 제대로 먹지를 못했으며,


일 년에 반 이상은 병치레를 하며

자리에 누워 보냈다 한다.


그러다 보니

초경(初經)도 또래에 비해

근 십여 년이 늦을 정도로,

여인으로서의 성장이 매우 더뎠고


달거리의 날짜도 일정치 않아

그 주기가 들쭉날쭉했다.


생리통도 워낙 심해서

어쩌다 한 번 월경이 시작되면

그녀의 상태는 그야말로

곁에서 보기 괴로울 정도였다.




비록 그런 병약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이민정은

심성이 곱고 따뜻한 여인이었다.


의지도 강했다.


혼인을 한 이후부터는

자신을 오랫동안 잠식해온 병마에

꿋꿋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쉽지 않은 투쟁 속에

그녀의 심신은 나날이 지쳐갔지만,


아내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그녀는 아주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신통치 않았고,

계속되는 패배에 그녀는 지쳐갔다.


병마에게 짓밟혀 병석에 누울 때마다,

누군가의 반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은

그녀의 신경을 더욱 예민하게 했다.


그리고 그런 예민함은

가시 돋친 말들과 냉정한 태도로 변해

부부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녀의 본심은 그렇지 않으나

겉으로는 냉기가 쌓여,

부인이 남편을 멀리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래서였을까.


혼인을 하고도 7년이 넘어가도록

그들 사이에선 자식이 생기질 않았다.




그렇게 힘든 가정사와는 별개로,


정효상은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드디어 무과에 합격했다.


격구에서 점수를 좀 깎아먹은 탓에

정창수처럼

‘갑과 3인’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을과 5인’안에 드는

훌륭한 성적이었다.


비록 부부사이는 좋지 못했지만,

처가의 넉넉한 지원을 받아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수련을 시작한지 17년 만에

겨우 맺을 수 있었던 귀한 결실이었다.


홍패(紅牌)를 받아온 날,

그는 아내와 장인 장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는지 몰라도,

이민정은 방으로 돌아가

남편 몰래 홀로

기쁨의 눈물을 훔쳤다.




정효상의 첫 공무는,

가족과 헤어져

남쪽으로 떠나는 일이었다.


근 십여 년간

왜구들의 잦은 습격으로

북쪽보다 남쪽이 더 소란스러워

매해 골치를 썩던 조정은,


그해 봄에 장계로 올라온

전라감사의 무관 증원요청을

받아들였다.


새롭게 뽑힌 무관들이

전라병사의 휘하로 가게 되었고,

정효상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늦깎이 무과응시생에서

홍패를 가진 출신군관으로

신분이 변한 그는,


자신의 첫 임지인

전라도 강진으로 단신부임하면서

그렇게 도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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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 3 부 천명 (13) 21.06.22 157 0 7쪽
70 제 3 부 천명 (12) 21.06.19 154 0 9쪽
69 제 3 부 천명 (11) 21.06.17 164 0 7쪽
68 제 3 부 천명 (10) 21.06.15 167 0 7쪽
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3 0 7쪽
66 제 3 부 천명 (8) 21.06.10 173 0 7쪽
» 제 3 부 천명 (7) 21.06.08 177 0 8쪽
64 제 3 부 천명 (6) 21.06.05 182 0 8쪽
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8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3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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