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31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7.01 06:32
조회
159
추천
0
글자
8쪽

제 3 부 천명 (17)

DUMMY

어느 정도 충분히 젖을 빤 듯,

생의 첫 식사를 마친 아이가

어미의 품에서 잠시 꼬물거리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산파할멈이

다시 아이를 받아 안으려 하였으나,

어미는

한사코 자식을 놔주려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민소희의 이모가

미역국이라도 끓여야겠다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슬쩍 눈시울을 훔치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정효상의 품에 안긴 휘인도

방안의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더 이상 보채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산파할멈이

체념한 표정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소희가

방을 나가는 산파할멈에게 물었다.


“가시게요?”


산파할멈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산모의 몸이 너무 약해진 상태라,

저러다 못 버틸 텐데

자꾸 고집을 피우는구먼...


하긴, 막 자식을 낳은 어미의 심정을

남이 어떻게 감당하겠나...


내 보기엔 길어야 사흘일세.”


“사흘요?”


산파할멈의 말에

민소희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정효상까지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까지 됐는지 몰라도,

어미가 제정신이 아녀...


저렇게 불에 놀란 짐승마냥

반미치광이가 된 상태로,

여기저기 떠돌면서

이 정도까지 버텨낸 것도

정말 대단한 거지.


배가 불러오고 거동하기 불편해진 것이

족히 넉 달은 되었을 텐데...


뱃속의 애를

어떻게든 지켜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저렇게라도 여태껏

살아남은 것 같아...”


“.......”


“그래도 다행히

어찌어찌 초유는 먹였는데...


몸이 워낙 쇠약해진 상태라

제대로 신경 써서 산후조리를 못하면

아마 사흘을 넘기기 힘들 걸세.


아까 애 나오고 나서는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더니만,

잠깐 사이에 또 저렇게...


미친 여자마냥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구먼.”


“아...그랬군요...”


“아무튼,

지금은 위험해도 어쩔 수 없어.


억지로 떼어놓으려 하다가

괜한 사달이 날 수도 있으니까,

좀 진정될 때까지 지켜보세.”


“네...알겠습니다.

고생하셨는데 좀 쉬셔요.”


“그럼세.

잠깐 눈 좀 붙이다 이따 다시 올 테니,

휘인엄마가 조금만 신경써줘.”


“네. 너무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산파할멈이 집으로 돌아가고,

잠시 후 미역국 한 사발을 끓여

미음과 함께 방안으로 들여놓은

민소희의 이모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방안에는 그와 그녀, 그들의 딸

그리고 갓 태어난 자식을 품고 있는

심신이 온전치 못한 어미만 남았다.


민소희가 어떻게든 여인에게

음식을 먹여보려 하였으나,

여인은 자식을 꼭 안은 채로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았다.


특히 큰 체구의 남성인 정효상에게

엄청난 적의를 내비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소희가

정효상의 품에서 어느새 잠든

휘인을 받아 안고서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나리께서는,

안방으로 건너가 계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산모에게 뭐라도 먹이려면

어떻게든

저 칼날처럼 번뜩이는 경계심을

풀어야지요.


갑작스럽게 생긴 일로

제대로 잠도 못 주무셨을 텐데,

휘인이랑 여기는 저한테 맡기시고

얼른 가서 좀 쉬셔요.”


아까부터 덫에 걸린 짐승마냥

자신을 쏘아보며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낯선 여인의 눈빛이,


정효상도

심히 부담스럽고 언짢은 참이었다.


그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자

민소희는

잠든 휘인을 여인의 옆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녀와 소통을 시작했다.


정효상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여인의 태도는 많이 수그러졌고,

자신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아서인지

그녀의 경계심은

또 다시 반으로 줄어들었다.


민소희는

미역국과 미음이 담긴 소반을

여인의 곁으로 가져와

일단 음식냄새부터 맡게 하며

천천히 식욕을 자극했다.


민소희와 잠든 휘인

그리고 자신의 품안에서 잠들어 있는

갓난아기를

번갈아가며 지켜보던 여인이,


자신의 코를 타고 들어오는

맛있는 냄새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민소희는

미음을 한 숟갈 떠서

후후 불어 식힌 후,

여인의 입가에 살며시 내밀며 말했다.


“불안하면, 아기는 계속 안고 있어요.

내가 떠먹여 줄 테니.”


잠시 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여인이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는 자상하게 웃으며

여인의 입에 미음을 넣어주었다.






-7-


민소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파 할멈의 예측대로

여인의 목숨은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그녀의 주검 앞에서

무척이나 슬퍼하던 민소희에게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가

몇 가지 있었다면,


그녀가 어미로서 자식에게

어느 정도 젖을 물렸다는 것.


자신이 챙겨준 음식을

그녀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그녀가

‘그간의 사연’을 자신에게

대충이라도 들려주었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근처의 양지바른 곳에

여인의 주검을 묻어주고,


십시일반 재물을 모아

옆 고을의 무당을 불렀다.


갓 태어난 자식을 두고

요절한 어미의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무당은 그녀의 무덤 앞에서

정성들여 천도제를 지내주었다.




여인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민소희는

마을사람들끼리 상의한 내용을

정효상에게 들려주었다.


어쨌거나 이 고을에서

이렇게 태어나게 된 것도

흔치 않은 인연이니

아이를 마을에서 거두는 쪽으로

모두 합의를 보았고,


마침 둘째 젖을 떼려했던 정식 엄마가

일단 유모를 맡아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아기를 데려가 건사하기엔

지금도 돌봐야할 어린 아이가

둘이나 있는 정식 엄마에게

너무 힘에 부치니,


일단은 태어난 곳인 민소희의 집에서

아기를 돌봐주는 것으로

정했다 하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있던 그는,

아기를 그녀가 돌보는 것으로

마을 사람들이 의견을 모았다는 사실에

상당히 강한 언짢음을 표시했다.


그는 가뜩이나 몸도 약한 그녀가

아직 어린 휘인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텐데,


수시로 손이 많이 갈

갓난아기까지 맡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크게 화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민소희는,

‘제가 자원한 것입니다’ 라는

짧고 묵직한 한 마디로

정효상을 놀라게 했다.


도대체 왜 그런 힘든 일에 자원했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그에게,

아기의 죽은 어미로부터 들은

‘저간의 사연’을

그녀가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흘 동안 그 여인을 돌보면서

모든 것을 다 듣진 못했지만,


저 아이의 내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만한

그간의 사연을

대충은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꽤 많은 얘기를 해주더군요.


오늘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어제는 정신이 온전히 돌아와

아주 맑아보였습니다.”


“아마도,

회광반조(回光返照)였나 보구려...”


“네. 그럴 지도 모르지요....


그녀가 말해준 바에 의하면,

여인의 이름은 명선.

성은 따로 없었답니다.


아버지는 어부였고,

어머니는 참 자상하셨다 하더군요.


고향은 함평이라 하더이다.”


“함평이라...여기서 그리 멀지는 않군.”


“나이는 아마

올해 열아홉 정도 된 듯합니다.


형제자매는 따로 없었고,

부모님과 함께 셋이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삼십여 호가 모여 살던

작은 어촌이었다고 하더군요.”


“...열아홉...정말 안타깝구려.

나이도 어린 처자가 어쩌다가...”


“...올 초에 바다에서 길을 잃은

왜선 한 척이 그 마을로 흘러들어왔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왜구 십여 명이 뛰어내려

마을을 약탈했다 합니다.


왜구의 수가 그나마 적었던 탓에

급히 피한 마을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집 서너 채가 불타고

열 명 정도의 마을 사람들이

왜놈들의 칼에 죽었는데...


그중에

저 여인의 부모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


이야기를 듣던 정효상이

분한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또 왜구인가...


어찌하여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녹봉을 받는 나라의 무관으로서

힘없는 민초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는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8 제 3 부 천명 (20) 21.07.08 166 0 8쪽
77 제 3 부 천명 (19) 21.07.06 158 0 7쪽
76 제 3 부 천명 (18) 21.07.03 169 0 8쪽
» 제 3 부 천명 (17) 21.07.01 160 0 8쪽
74 제 3 부 천명 (16) 21.06.29 160 0 9쪽
73 제 3 부 천명 (15) 21.06.26 153 0 7쪽
72 제 3 부 천명 (14) 21.06.24 154 0 7쪽
71 제 3 부 천명 (13) 21.06.22 157 0 7쪽
70 제 3 부 천명 (12) 21.06.19 154 0 9쪽
69 제 3 부 천명 (11) 21.06.17 165 0 7쪽
68 제 3 부 천명 (10) 21.06.15 167 0 7쪽
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3 0 7쪽
66 제 3 부 천명 (8) 21.06.10 173 0 7쪽
65 제 3 부 천명 (7) 21.06.08 177 0 8쪽
64 제 3 부 천명 (6) 21.06.05 183 0 8쪽
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3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6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3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5 1 7쪽
52 제 2 부 꿈 (13) 21.05.04 205 2 4쪽
51 제 2 부 꿈 (12) 21.05.01 202 1 8쪽
50 제 2 부 꿈 (11) 21.04.29 201 2 5쪽
49 제 2 부 꿈 (10) 21.04.27 276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