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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42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5.15 11:41
조회
186
추천
0
글자
7쪽

제 2 부 꿈 (18)

DUMMY

-3-


“자꾸 힘든 일만 맡겨서

미안하오. 누님...


언젠가 꼭 이 빚을 갚으리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아직 애가 너무 어리니까

무조건 조심해라.


무리해서 막 서두르면 안 돼.

백일도 안 된 젖먹이니까

최대한 천천히...알았지?”


시간을 되돌려 하루 전,

남산의 안가에서

정효상의 명을 받은 안현수가

잡아온 홍방의 접주들에게

정보를 캐던 그 시각에,


운용은

계향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바로 옆엔

간단한 행장을 꾸린 운영이

젖먹이를 안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운용이 말했다.


“방주님은...

마포나루 안동객주 근처의 갈대숲에

일단 모셔놓았소.


옆의 나무에 표식을 해놨으니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요...


잘 부탁드리오.

원래는 내가 했어야 할 일인데...”


“지금 너의 할 일은,

운영이와 젖먹이를

지리산 산채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는 일이다.


규석 오라버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니,

그게 맞다.


그러니 그 외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에만

최선을 다해라.”


“...알겠소.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오. 누님.”


“그래,


오라버니는

내가 기회를 봐서

좋은 곳으로

잘 모시고 잘 보내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반드시, 살아서 또 만나자.


그리고 운영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아기를 안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운영이

계향을 쳐다보았다.


계향은 말없이 다가와

운영의 몸을 꼭 안아주었다.


운영의 몸 안으로

계향이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가

포근하게 전해졌다.


운영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운영이 말했다.


“언니...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고맙긴...내가 더 고맙다.


너도 그렇고...

진용이랑도 참 정이 많이 들었는데...

정말 헤어지기 싫구나...


백일도 안 된 저 어린 것을 데리고

그 험한 먼 길을 떠나야한다니...

어쩐다니...”


“그래도 해야죠.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오라버니도 계시니까요.”


계향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운영과 아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숨을 길게 한 번 내쉬고는

품속에서 비단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주머니를 운영에게 건네고,

계향이 말했다.


“은자니까...잘 간수해.

꼭 필요할 때만 꺼내서 쓰고.


건강해야한다.

꼭 다시 만나자.”


계향의 따뜻한 호의에

운영의 눈에서

결국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여인은 아기를 가운데 두고

다시 한 번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운용의 눈시울도

살짝 붉어졌으나,

그는 먼 곳을 바라보는 척하며

얼른 시선을 돌렸다.




계향과 헤어진 운용 일행은,

일단 양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양재에 있는 홍방의 연락소인

역참 근처의 주막에 도착한 운용은,


먼저 어제 있었던 일과

앞으로의 일정을

간략하게 ‘암호형식’으로 적었다.


지리산 본진으로 보낼 보고서였다.


운용에게 서한을 받은

홍방의 연락책이자 주막의 주인인

김기훈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왔다.


차분하게 차를 마시며

운용은

이번엔 덕관에게 편지를 썼다.


한참동안 만나지 못한 동생에게

어려운 부탁이 담긴 편지를 쓰려니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웠지만,


혹시라도

혼자서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길 것을

그는 대비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운용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지할만한 사람’은

오직 덕관밖엔 없었다.


구구절절한 긴 사정보다는

명확한 짧은 사실이

덕관에게 더 유효할 것이라

판단한 그는,


간단하게 내용을 적고

답신을 안성연락소로 보내 달라

마무리했다.


젖먹이에

여동생까지 데리고 가는 여정이니

어차피 급하게 걸음을 재촉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서두르기보다는 신중하자.


덕관이도 지금 일 때문에

남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니

방향도 대충 맞는다.


차분하게 움직여보자.


그렇게 결정한 운용은

덕관에게 전할 편지까지

김기훈에게 맡기고 주막을 나섰다.


주막 근처의 큰길 옆에 서서

장옷으로 온몸을 감싼 운영이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동생의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운용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자상하게 말했다.


“배는 고프지 않으냐?


여기 근처에

콩나물을 잔뜩 넣은 국밥을

파는 곳이 있는데,

아주 맛나다.


거기 가서

허기나 좀 채우고 출발하자.”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아까 잠깐 알아보니,


오후에 안성 쪽으로 출발하는

상단무리가 있는데

그 사람들 수레가 여러 채라더라.


이미 내가 그쪽 행수를 만나

손을 좀 써 놨다.


할 수 있는 한, 되도록 편하게 가자.


젖먹이도 있으니

너라도 수레를 얻어 타고

안성까지 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만약을 위해

힘을 최대한 아껴놓아야 한다.

너도, 나도...


괜히 서두르고 무리하다가

정작 가장 필요할 때

힘을 쓰지 못하면,

그거야말로 낭패다.”


“네...알겠어요.

마음써줘서 고마워요. 오라버니.”


“별 소릴 다한다.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 집 국밥이 아주 별미야.”


국밥을 먹고

그들은 곧바로 상단에 합류했다.


운영은 아이를 안고

상단의 수레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운용이 그녀의 옆에서

천천히 수레를 따라 걸으며,

그렇게 그들은 한양을 떠났다.




어느덧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보면서,

흔들리는 수레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운영은,


마음 한구석이 죄스럽고 답답해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친구뿐만 아니라

오빠의 동료들까지 목숨을 잃었다.


이젠 더 이상 진실을 숨겨선 안 된다...


그렇게 결심한 운영은

고개를 돌려

운용에게 말을 걸었다.


“오라버니...”


“응? 왜?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느냐?”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뭔데?”


운영이 고개를 들어

노을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용이를 가졌을 때...꿈을 꾸었어요.


하늘도 땅도 물도 바위까지도

모두 붉은...

그런 세상에서


구름을 가르고

검은 용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한참을 날아서

제 배 위에 내려앉았어요...”


품속에서

조그마한 가락지 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운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예전에 꾸었던 꿈 얘기를 시작했다.


수레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운용은 동생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노을의 붉은 빛이 절정에 달하고,

서쪽 하늘 끝에서부터

서서히 어둠이 밀려왔다.


남쪽을 향하는 상단의 수레행렬이

속도를 조금 높였다.


흔들리는 수레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는지,

방금 전 배를 가득 채운 젖먹이가

어미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수레를 따라 걷는

사내의 넓은 등이

그날의 마지막 붉은 빛을

가득 머금었다.










파천

제 2 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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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제 3 부 천명 (12) 21.06.19 15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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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4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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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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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4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 제 2 부 꿈 (18) 21.05.15 187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3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6 1 7쪽
52 제 2 부 꿈 (13) 21.05.04 205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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