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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32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4.27 02:38
조회
276
추천
2
글자
8쪽

제 2 부 꿈 (10)

DUMMY

제5장 남매


-1-


그날 밤, 운영은 무척이나 피곤했다.


평상시 가까이 지내던 동네 처자들과

길쌈을 한 날이었고,

장소는 운영의 집이었다.


덕관 부부가 한양을 뜬 이후

어차피 오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그녀 혼자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동네길쌈은

항상 운영의 집에서 모였다.




그날의 무서웠던 일 이후,

운영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배탈이 자주 나고

몸의 상태가 시시각각 변했다.


두 달째 달거리가 멈추고

음식냄새를 맡으면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하자,


운영은 그제야

자신이 임신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오빠와 상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무섭고도 두려워

감히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매일 저녁

‘그 분’이 주고 간

가락지만 만지작거리다가

눈물로 밤을 새는 날이 계속 되었고,

운영의 상태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다 같이 모여 길쌈을 하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운영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또래 친구인 옆집 이선이가 말했다.


“오늘 나, 여기서 자고 간다.”


“괜찮겠어?

아저씨 뭐라고 안하셔?”


“너 요즘, 무슨 일 있지?


걱정돼서 그래.

이따가 나한테 다 털어놔 봐.”


친구의 넉넉한 마음씀씀이에

갑자기 울컥해진 운영의 두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이선이가 깜짝 놀라

얼른 팔을 뻗어

운영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무슨 일이래...도대체...


너무 걱정 마.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게.”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이선이의 품에 안겨

운영은 정말 오랜만에 엉엉 울었다.


그렇게 마음은 따뜻해졌지만,

그게 다였다.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운 두 처녀에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운영은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이선은

괜히 설레발을 쳤다가

친구가 더 힘들어질까 두려워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기만 하고

좋은 답이 나오지 않자

근심이 쌓인 운영의 배가

다시 아파왔다.


아까 저녁부터 내내

그녀는 측간을 들락거리며

설사를 했다.


배탈이 나도

아주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결국 운영이 몸을 일으켰다.


“나, 배가 너무 아파.

측간에 좀 다녀올게.”


“...아까부터 몇 번째라니...

탈이 단단히 났나보다.”


“그러게...암튼 쉬고 있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운영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

이선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측간에 간 운영은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그녀를 기다리던 이선은

서서히 졸음이 밀려와

잠깐만 눈을 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 되었다.




복면을 쓰고 운영의 집에 잠입한

정효상은

불 꺼진 방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지만,


곧 칼을 빼들고 문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구석에서 잠들어있는

여자의 숨소리가 들렸다.


정효상은 조용히 다가가 그대로,

잠든 여자의 목을 베었다.


벽 쪽으로 피가 튀었고,

머리가 잘린 여자의 몸은

한 번 부르르 떨더니

칼질 한 번에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정효상은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여자의 주검을 향해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의 입에서

‘미안하다’라는

짧은 말이 흘러나왔다.




살인을 끝낸 정효상은

가락지를 찾기 위해

호롱불을 켜서 방을 밝혔다.


방안이 밝아지자

그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죽인 것이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이런 낭패가...


당황하여

순간적으로 온몸이 굳어버린

그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악!”


뒤에서 난 큰 소리에

정효상이 다급히 눈을 돌리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운영이

자신을 보고 서있었다.


측간에 다녀온 운영이

방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서둘러 문을 열었을 때,


이선의 잘린 머리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놀란 정효상은

잠시 굳어 있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며

칼을 빼들고 성큼 앞으로 나섰다.


온몸을 덜덜 떨며

친구의 참혹한 주검을

바라보고 있던 운영이


화들짝 놀라

재빨리 몸을 돌려 뛰면서

길 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운영의 간절한 외침은

한밤중의 고요한 동네 곳곳에

크게 울려 퍼졌다.


운영이

마당을 거쳐 길가로 뛰어나가자

근처의 집들에서 불이 밝혀지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운영은

바로 옆의 이선이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급히 마당까지 쫓아 나왔으나

정효상은

이미 일이 틀렸음을 즉각 깨달았다.


그는

복면을 가다듬어

얼굴을 단단히 가리고

부리나케 뒤쪽으로 뛰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가 사라진 곳에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참극을 목격한 동네주민들과


머리가 잘린 이선의 처참한 시체,


오열하는 운영만이 남았다.


달도 뜨지 않았던 캄캄한 밤,

그렇게

첫 살인이 어이없이 시작되었다.






-2-


아닌 밤중에 날벼락처럼,

그렇게 황망하게 딸을 잃은

이선의 아버지는

한밤중에 좌포청의 문을 두드렸다.


당번을 서던 포졸 둘과 포교 하나가

급히 따라나서 사건현장으로 왔다.




이선의 어머니는

넋이 나가 울지도 못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고,


운영은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두 눈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하고 있었다.


포교가 사정청취를 위해

운영을 대면하여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운영은 눈물을 닦아내며,

딱 자신이 본 것만을 말했다.


아무리 배운 것 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녀자라도,


거기서 속사정을

자세히 얘기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이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포졸들이 사건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운영의 방문 앞에서 번을 서고,

사정청취를 끝낸 포교가

담당 종사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새벽 무렵 자리를 떴다.




며칠 후 이 사건은,

포도청의 정식 사건으로 접수되며

저잣거리에 방이 나붙었다.


자신의 경솔함으로

일을 망친 정효상은

장탄식을 하며 크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조용히 비밀리에 끝냈어야 할 일이

‘살인사건’으로 공식화되어

거리 곳곳에 방까지 내붙자,


이젠 더 이상

자신의 선에서 덮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궁지에 빠진 전효상은

정창수를 찾아가 사과부터 했다.


“미안하네...내가 경솔했어.

미리 확인을 했어야하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네.

그르친 일에 대해 후회해봐야

울화만 치미네.


그보단,

앞으로 어떻게 수습하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 인가.


그거나 상의해보세.”


“포도청 쪽의 반응을 보니,


그 애가

나의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발설하지 않았거나


둘 중에 하나이지 싶네.


그나마 그것이 불행 중 다행이지.”


“그럼, 어찌할 것인가?”


“지금 바로 나서서 일을 처리하기엔

너무 무리야.


때를 좀 보다가

내가 마무리하겠네.”


“...그래,

지금은 그 방법밖엔 없겠지...”


정효상의 실패가

참으로 뼈아프고 심히 언짢았으나,

정창수가

거기서 더 추가할 말은 없었다.




포도청의 두 번째 조사가 끝난 후,


운영은

자신의 배를 한 번 쓰다듬으며

결심을 굳혔다.


이젠 혼자서 있으면 안 된다.


아기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그날 저녁,

그녀는 간단히 짐을 챙겨

오빠가 기거하는 기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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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3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6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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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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