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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22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5.25 03:40
조회
208
추천
1
글자
9쪽

제 3 부 천명 (1)

DUMMY

제1장 흑막


-1-


온양 근교에서

조운용과의 혈투로

열 명의 금군이 죽은 날로부터

한 달 후,


도정궁의 허락을 얻어

‘호환(虎患)’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온양수령 김명우의

확인서한까지 받아온 안현수는

정창수를 만나 보고를 하여

아주 큰 칭찬을 들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안현수는

정창수와 헤어지고 나서

근처 주막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며

얼큰하게 술을 마셨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기분 좋게 취한

안현수의 발길이 향한 곳은,

한강 두모포 근처의

어느 단아한 민가였다.


그가 대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안에서 여인 하나가 나와

그를 기쁘게 맞이했다.


안현수도

그 여인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가 깜짝 놀라 그를 뿌리치며

얼른 대문 안으로 들이더니,

혹시라도 누가 본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여러 번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닫아걸었다.


마당에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던

안현수에게


그 여인이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조심 좀 해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안현수에게 핀잔을 주는

여인의 정체는,

바로 무당 박술녀였다.


“알았소, 알았소...미안하오. 임자.

내가 오늘 무척 기분이 좋아서...”


“얼른 들어와요.

자꾸 실없이 큰소리 내지 말고...”


박술녀는

서둘러 안현수의 손을 잡아끌어

방으로 향했고,


안현수도

그녀의 뒤를 따라

급히 문지방을 넘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마치 교미하는 뱀처럼

둘은 서로를 뜨겁게 탐하며

흐드러지게 얽혀들었다.


서로의 몸을 탐하는 모양새가

결코 한두 번이 아닌,

둘은 무척이나 오래되고

익숙한 사이로 보였다.






-2-


“그래, 선전관은 뭐래요?”


방금 전

뜨거운 정사(情事)를 마치고도

열기가 쉬이 가라앉지 않은 듯,

얼굴에 홍조를 띤 박술녀가 물었다.


누워있던 안현수가

느긋한 표정으로 기분 좋게 말했다.


“엄청나게 기뻐하더군.


내 일처리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앞으로도 계속 자기 곁에서

일을 도와달라고...


무엇보다 제일 큰 성과는,

이제 누군가를 거칠 필요가 없이

바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거지.


어차피 도정궁 마님은

...곧 죽을 사람이니,


정창수만 꽉 잡고 있으면 되니까.”


“아직은 마음 놓지 마요.


도정궁 마님이

그리 쉬운 사람이 아니니...


우리 계획이 완성될 때까지

바짝 긴장해요.

더 이상 실수가 있어선 안돼요.


그럼 이제,

그 인간만 때내면 되겠네.”


“정효상은 아마...

당분간 신경 안 써도 될 거야.


이번에 애들을 열이나 잃은 게

다 자기 책임이라 자책하면서

아주 기가 팍 죽었어.


실력도 좋고 우직한 면도 있는데,

원래가 그리 모질지가 못한 사람이라...


양심의 가책 같은 걸

지금 엄청나게 느끼고 있을 거야.”


“이번에 당신이

일처리를 잘 했다 해도,


아직까진 선전관이

당신보단 종사관을 더 믿죠?”


“아무래도 그렇지...

동료이기 이전에 둘은 친구니까,

그것도 아주 오래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언젠가는 쳐내야 해요...


정가 그 인간, 많이 거슬려.”


“차분하게 기다려 봐,

아마 조만간 뭔가 일이 생길거야.”


“뭐 들은 얘기라도 있어요?”


“아까 길에서 우연히 동규를 만났는데,


그 친구 말로는

정효상이 휴직에 대해 물어봤대.


몸이 안 좋다고 하면서...

뭔가 결정되면 조만간 찾아갈 테니

그땐 잘 처리해달라고 했다더군.”


“동규면...

예전에 당신이랑 같이 일했던

겸사복 김동규?”


“응,


동규가 지금

선전관청으로 옮겨 갔거든.


선전관 나리들 일을 보조하면서

문기 같은 걸 다루고

여기저기 심부름을 다니니까,

아마 절차를 알아본 거겠지.


휴직하려고”


“흐음...그래요?”


“응, 그러니까 당신은

정가 쪽은 신경 끄고

도정궁 쪽이나 잘 다뤄.

거기가 훨씬 중요하니.”


“이제 거의 다 됐어요.


아마 곧 중전께서

도정궁 마님을 은밀히 부를 거예요.”


“그래?

엄상궁이 일을 잘 맞췄나보군.


역시...교동마님이 대단해.


요소요소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잘 박아놨어.


어휴,

그리 허무하게 가실 분이 아니셨는데...


아까워, 너무 아까워...


마님이 아직도 살아계셨으면

우리도 지금 이렇게

개고생 안 해도 될 텐데...”


“이미 지난 일이예요.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틈 있으면

칼이나 한 번 더 휘둘러요.


앞으론 우리끼리

알아서 잘 살아야해.”


“그래야지...

남은 우리라도 잘 살아야지.”


안현수가 고개를 돌려

박술녀를 쳐다보았다.


박술녀의 벗은 몸을

지그시 바라보던 안현수는

다시 색욕이 발동했는지,

슬그머니 손을 뻗어

탐스런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박술녀가 안현수를 보고 씩 웃더니

몸을 돌려 입을 맞췄다.


둘은 다시 뱀처럼 엉켜들었다.






-3-


안현수와 박술녀는 모두

정난정의 사람이었다.


세인들에게 ‘교동마님’이라 불리며,


윤원형을 등에 업고

엄청난 권세를 자랑하던 그녀는


한마디로 부와 권력에 미친 여자였다.


그녀가 납작 엎드려 비위를 맞춰준

유일한 사람은,

문정왕후밖엔 없었다.


그녀의 뒷배가 된 남편 윤원형조차도

그녀에게 쩔쩔 맸다.


정난정은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먼저 대비에게 재가를 얻고

남편을 시켜 마무리를 했다.


미천한 출신의 첩실에 불과했던

그녀가


윤원형의 정실이었던

연안 김씨를 독살하고

안방을 차지한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관비였던 어머니를 둔

얼녀의 신분으로 태어나

정경부인이 되기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은

정말 파란만장했다.


을사년의 사화를 거치고

‘소윤’의 세상이 되자


드디어 때를 만난 그녀는

악착같이 부를 축적하고

자신의 사람을 늘려갔다.


남의 땅이나 집을 빼앗는 것은 예사요,


상인들을 겁박하여

팔도의 이권과 거래에 개입했으며,


필요하면 사람을 시켜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난정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세력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

곧 권력임을 알았고,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이라 여겨지면

그 사람을 얻기 위해

재물과 청탁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정난정의 사람’이 된 이들이

나랏님이 사시는 왕궁에,

내명부의 깊숙한 별채에,

대신들과 정적(政敵)들의 집안에,

상단의 창고에

하나하나 박혀 들어갔다.


그들의 면면도 아주 다양했다.


내시와 상궁 같은

궁인(宮人)들을 비롯해

관리, 별감, 갑사, 역관, 의관에

무당, 스님, 상인, 기생, 노비 등등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성별도 관계없이

정난정의 손과 발과

귀와 눈과 입이 되어준 이들은

그 수가 백여 명이 넘었다.


그녀가 심복으로 부리던 이들 중엔

심지어

도적과 왈짜들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안현수와 박술녀는

정난정이 시킨 작은 일 하나를

같이 처리하다가

안면을 트게 되었다.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는 바가 있었는지

금방 눈이 맞은 둘은,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간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당시 박술녀에게는

그녀의 피를 빨아먹으며 기생하는

한량남편이 있었고,


그는

기방의 기둥서방들처럼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돌리면서

박술녀를 가혹하게 다뤘다.


어떤 때는

사납게 주먹질을 하고

어떤 때는

한없이 자상하게 보듬으면서,


‘자신의 말만 듣는 개’가 되도록

그녀를 오랫동안 길들였던 것이다.




그런 남편이

정말 지긋지긋했던 박술녀는

내연관계가 된 안현수에게

‘부탁을 가장한 의뢰’를 했고,


‘깔끔한 칼잡이’였던 안현수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박술녀의 남편을 처리해주었다.


달도 뜨지 않은 어느 밤에

한강변의 갈대밭에서

한칼에 머리가 날아간

박술녀의 남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었다.


머리와 몸으로 나눠진 그의 시신은

방금 전까지 그의 아내였던 여자와

그 여자의 새 애인에 의해

돌을 매단 쌀가마에 담겨

강물 깊숙이 가라앉았다.




박술녀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안현수에게

후한 대가를 주었다.


박술녀의 무당으로서의 능력을

무척이나 높이 샀던 정난정은

총애하는 그녀의 청탁을 받아,

상단의 호위에 불과했던 안현수를

겸사복으로 만들어 금군에 넣어주었다.




그날 이후,

그렇게 죄를 공유한 남녀는

끈끈한 궁합을 유지하며

정난정을 지렛대삼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이가 되었다.


몸도 아주 잘 맞았지만,

무엇보다 ‘생각’이 비슷했던 둘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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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8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3 0 9쪽
»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6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3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4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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