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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34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5.27 04:07
조회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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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9쪽

제 3 부 천명 (2)

DUMMY

-4-


“도정궁 마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격렬한 관계를 나눠서 인지,

무척이나 지친 표정의

안현수가 물었다.


“남편의 뒤를 따라야죠.

남편이 죽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박술녀가 차갑게 말했다.


“...그렇군...

어찌 보면 참 불쌍한 여자구먼.


자기 자식이

용상에 앉는 것도 보질 못하니.”


“그 여자는,

자기가 몸 바쳐 희생한 대가로

자식이 용이 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죽어갈 거야.


불쌍할 거 하나도 없어요.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죽는 거니까.”


“...이런걸 보면, 임자가 참 대단해.


그 여자는

아직도 이 모든 일들이

하늘이 내려준 계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자기 남편이 죽은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믿고 있는 거고...


사람 하나 그렇게 구워삶는 게

진짜 쉬운 일이 아닌데...


임자는 정말

이런 쪽으로는 타고났어.”


“그 여자는 나를,

옥황상제가 보내준

선녀쯤으로 알아요.


바보 같은 여자...


그런 점은 좀 안쓰럽기도 하달까.


하긴,

자기 남편이 왜 죽었는지를

아예 모르니

내 말이 먹히는 거지 뭐.”


“덕흥군은...윤대감이 시킨 거지?

그 혼담이 틀어진 것 때문에

언짢으셔서...”


“윤대감도 원했지만,

교동마님이 계획을 바꾸신 거지요...


원래는,

마님의 딸을

도정궁에 시집보내놓고,

국본을 요절하게 만든 후에

천천히

일을 만들어가려고 했던 것인데...


덕흥군이

너무 사돈 맺기 싫은 티를

팍팍 내고,


결국엔 상까지 나서서

일을 망가트리니까...


나중에 죽이려던 걸

마님이

덕흥군 차례만 앞으로 당기신 거지.


예정대로였으면,

국본이 먼저 죽고

그 다음에 도정궁 부부가 죽고

맨 마지막에...

상이 죽어야 하는 거였으니까.”


“하긴...

그래야 더 모양새가 좋았을 거야.


만약에 일이 잘 풀렸으면,

대감님이랑 우리 마님이

다음 왕의 장인장모가 돼서

그 권세가 대대손손 이어졌을 텐데...


하필 대비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모든 게 다 망가져버렸어.


우리 같은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아까도 얘기했지만,

지나간 일에 가정 같은 거 하지 마요.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


박술녀의 차가운 말에

갑자기 민망해진 안현수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때랑 똑같은 독을 쓸 건가?”


“이미 쓰고 있어요.

그 여자는 모르고 있지만...


이제 두 달쯤 됐나?


나를 만날 때마다

내가 끓인 차를 마시거든요.


사흘에 한 번꼴로

독을 마시고 있는 꼴이죠.


양의관말로는

본격적으로 죽이기 전에 하는

사전작업 같은 거래요.


미리 조금씩 약을 써서

몸을 서서히 망가트려 놓아야

나중에 강한 약을 써서

때를 맞춰 죽이더라도

그냥 병으로 죽은 것처럼 보인다고...”


이미 ‘일’에 들어갔다는 그녀의 말에

안현수는 놀라 입을 다물었다.


박술녀가 말을 이었다.


“그 여자 남편이었던 덕흥군도

총애하던 애첩이

보약이라고 속여서

그렇게 천천히 망가트린 건데...


그런 거 보면

양의관이 진짜 솜씨가 좋아.


괜히 교동마님이

그렇게 총애하신 게 아니라니까요.


거의 일 년 넘게 독을 먹였는데도

정작 독살인 게

하나도 표시가 안나다니...


양을 조절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달까.”


“그 살벌한 감시를 뚫고

표시나지 않게

국본도 죽인 사람인데,


뻔질나게 기생집이나 드나들던

그깟 왕실종친 하나 죽이는 게

양의관한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겠어...


일이 벌써 그렇게까지 진행됐다면

도정궁 쪽은

그간의 일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겠네.


더군다나

자기가 죽어야

자기 자식이 용상에 앉는다고,


그게 하늘이 내린 계시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


“그렇겠죠.


엄상궁 말로는


중전께서

알아듣게 얘기할 거라고 하셨으니,


아마 궁에 들어갔다 오면

바로 날 부르겠지.


준비해달라고.

자기가 죽을 준비를...


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귀하게만 자라서

정작 중요한 물정을 모르는,

어찌 보면 참 모자란 여자예요.”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리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지만,


원한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는

지금의 처지가


둘에겐 그리 썩 달갑지는 않았다.






-5-


“그...상 쪽은...큰 문제가 없으려나?”


“...우리야

바깥에서 맡은 일만 처리하면 되지만,


지금 엄상궁하고 이내관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를 거예요.


원래는 작년,

을축년에 끝났어야할 일인데...


그때

다시 저렇게 기력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서

일 년이나 버틸 줄은

정말 몰랐어.


양의관 말로는

덕빈(德嬪)이 올린 산삼이

예상외의 효과를

본 거 같다고 하던데...


암튼 이번만은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꼭 그리 되어야지.”


“지금 우리 쪽 사람들을 밀어주는

높은 분들이...

서쪽인가, 동쪽인가?”


“정말 웃기게도...둘 다예요.


훗날에 대해선

아직 도정궁 쪽으로

확실히 마음을 못 정한 것 같지만,


의외로 심통원 대감이

이 일에 제일 적극적이에요.


아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한 것이겠지요.


윤대감과 붙어먹던 심대감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는

조정의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하루라도 빨리

자기 입김이 미치는

새 나랏님으로

바꿔 타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박술녀의 대답에

매우 놀란 안현수가

벙 찐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술녀가

입가에 표독한 미소를 띠우며

말을 이었다.


“윤대감과 교동마님이

허무하게 가셨을 때만 해도,


정난정한테 빌붙어서

종묘사직에 해를 끼쳤던 버러지들을

모두 색출해 육시를 내야한다고

그렇게들 펄펄 뛰던 양반님들께서...


상께서 저리 시들해지자

바로 태도를 바꿀 줄이야.


권세라는 것이 참 무섭긴 하죠?”


“적자가 아닌 방계 쪽 사람을

다음 용상에 앉혀야,

자기들 처세하기가 용이할 거란

음험한 계산이

양쪽 모두에게 선 것이겠지.


맨날 입으로나

공맹의 도를 읊을 뿐이지

속은 장사치들보다

더 시커먼 것들이야.


그런 놈들에게

칼자루가 쥐어져있으니

우리네가 고달픈 것이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들 손은 더럽히기 싫고

위험해지기도 싫은데


고고한 척 하면서

권세는 대대손손 누리고 싶은 거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벌레만도 못하게 생각하니


일을 벌이다 잘못 되서

우리가 죽어도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고,

여차하면 꼬리자르기도 좋고...


자기들은 안전한 곳에 앉아서

편하게 과실만 따먹으면 되니까.”


“보우선사께서

제주도로 유배가시기 전에

우리들을 모아놓고 해주신 말이

정말 큰 힘이 됐어.


너희라도 목숨을 건지고 싶으면,

교동마님이 잘못되더라도

마님이 구상하셨던 대업을

멈추지 말고 계속 진행하라고.


그때 만약에 우리가 멈췄더라면,

아마 의금부로 모조리 잡혀 들어가

정난정의 수하라고

모질게 국문 받다가

처참한 꼴로 죽었겠지.”


안현수가 보우의 얘기를 꺼내자

이번엔 박술녀가 침묵에 빠졌다.


아마도

보우를 마음 깊이 존경하며

끔찍이 따랐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으리라.


안현수는 괜스레 미안해져서

박술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살짝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닦은 박술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마님의 대업은,

자신의 자식을

중전으로 만드는 것이었죠.


그래서 나를

일찌감치 도정궁 그 여자에게

소개시켰던 것이고...


근데, 그 대업을 구상하신 분은

원래 마님이 아니에요.


보우선사님이셨어요.


자비로우신 부처님을

우리 같은 불쌍한 민초들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하셨던,

크고 깊은 계획의 일부였죠.


선사님이

대비님을 훌륭한 불자로 만들어

단단하게 뒤를 받치고,


교동마님이 앞장서서

팔도 곳곳에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그때 두모포에서

마님하고 같이 기우제를 지냈을 때,

정말 몰랐어?


당신 같은 신통한 무당이

그런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는데

그리도 큰 변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워.


아무리 쇠약해지셨다 해도

대비님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실 줄이야...”


“그 머리에서 물을 뿜는

요상한 물고기가 잡힌 것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솔직히 얘기해줘요?”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어?”


박술녀는 잠시 말을 끊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감정인지를 모를

미묘한 느낌이었다.


안현수가

궁금하다는 눈빛을 간절히 보내자

박술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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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3 0 7쪽
66 제 3 부 천명 (8) 21.06.10 173 0 7쪽
65 제 3 부 천명 (7) 21.06.08 17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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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 제 3 부 천명 (2) 21.05.27 194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6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3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5 1 7쪽
52 제 2 부 꿈 (13) 21.05.04 205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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