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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46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5.13 04:59
조회
183
추천
1
글자
8쪽

제 2 부 꿈 (17)

DUMMY

제7장 길몽 또는 흉몽


-1-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이규석의 시신을

마포의 갈대숲 근처에

임시로 가매장한 운용은,


진시(辰時) 무렵

반촌 현방 근처로 다시 돌아왔다.


어젯밤에 사람 여럿이 죽어나간

습격이 있었던 것치고는

너무나 조용하고 깨끗한

현방의 상태에

의아함을 느낀 운용은,


한 시진 가까이

현방과 그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혹여 감시가 붙어있는지

신중하게 둘러보았다.


한참을 살펴본 결과

다행히 감시는 없었고,

이제 현방의 안쪽만

조사가 남은 상태였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예 없었고

사람의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자,

어느 정도 안전하다 느낀 운용은


자주 얼굴을 익혀

제법 친하게 지내던 동네꼬마에게

현방의 상황을 살펴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운용은

정찰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얼마 전 이규석이 해줬던

‘겸사복 이운재’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겸사복 이운재는

원래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북계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무재(武才)가 탁월하여

토착군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정주에서 나름 양반행세를 하던

유지 중 한 명이었으나

그의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관계로

서자로서 자랐다.


그러나 서자라고 하여

크게 차별하거나 핍박하진 않았고,

오히려

본가에서 넉넉하게 지원을 해주어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렇게 고향에서 군문에 들어

어머니를 모시고

별 탈 없이 살던 그는


그의 무재를 높이 산

출신군관 임효재에 의해

겸사복으로 추천을 받게 되었고,


선발시험에 단번에 합격하여

고향을 떠나

한양으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와 이규석과의 인연은

이웃사촌이었다.


한양으로 같이 짐을 꾸려 따라온

그의 어머니가

풍토가 바뀐 탓인지

원인모를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바로 이웃에 살던 이규석이

용한 의원을 소개시켜주어

겨우 고칠 수 있었다 한다.


그 뒤로 그게 인연이 되어

이운재와 이규석은

서로 친분을 다졌고,


술을 좋아하는 둘의 공통점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작년 겨울에 환갑을 갓 넘긴

이운재의 어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셨을 때도,


이규석이

장례절차에 관한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줘서

무척이나 고마워한다고도 했었다.




만약에 이런 일이 없었다면,


이운재와 운용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규석의 소개로 교분을 나누며

서로 친한 사이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론

자기 대신 도끼를 맞은

이규석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인연에서 비롯된

이운재의 한 순간 망설임이 없었다면,


어쩌면 운용은

어젯밤 거기서

이운재의 도끼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인연이 품고 있는 두 개의 얼굴은,

그렇게 참으로 신묘한 것이었다.




“아무도, 아무 것도 없어요.

깨끗해요.”


심부름을 다녀온 꼬마 아이가

운용에게 말했다.


운용은

꼬마에게 고맙다 말하고

감사의 표시로

근처 주막으로 데리고 가

국밥 한 그릇을 사 먹였다.


“그럼...이제...어쩔 것인가...”


꼬마와 헤어진 운용이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젯밤 습격당한 동지들의 흔적마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며

보통 놈들이 아니란 뜻이었다.


일단 지리산에 알려야 한다.


그리고

방주의 말대로

한양을 뜨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생각을 마친 운용은

계향의 집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2-


“알아냈습니다.”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안현수가

정효상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래?

현수 너는 일솜씨가 정말 좋구나.

잡아온 지 채 하루도 안 지났거늘...”


부하의 솜씨를 칭찬하는

정효상의 목소리에

감탄의 느낌이 들어가 있었다.


“어차피

저잣거리에서 주먹질이나 일삼는

불한당 놈들입니다.


배짱이나 인내심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의리나 신의는 더더욱 없을 거구요.


두 놈 눈앞에서

세 놈 먼저 목을 따주고,


딱 둘만 남겨 놓고서

제대로 부는 놈만

살려주겠다고 했더니...


둘 다 지체 없이 바로 불었습니다.”


“...그래...

알아낸 정보는 쓸 만한 것이냐?”


안현수가

급히 물을 한 사발 들이켜

갈증을 해소한 후,

차분하게 말했다.


“검계 놈들끼리만 쓰는,

정해진 연통방법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놈들 연락소가

도성에는 동서남북으로

총 네 군데가 있는데,


그 네 곳만 조사하면

어지간한 행방은

다 드러난다는군요.”


“네 군데의 연락소라...

그렇군.


그럼 시간이 문제로구나...

서둘러야겠어.”


정효상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고민하자,

그 모습을 본 안현수가

힘주어 말했다.


“이미 한 번 시작한 일,

마저 끝내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군데를

종사관 나리 혼자서 모두 도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저희 다섯이 움직이면...

나리의 노고도 반으로 줄고,

시간도 반으로 절약될 것 같습니다만.”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안현수를 보면서


정효상은

즉답을 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어젯밤의 습격으로부터

벌써 하루가 꼬박 지나

또 다시 밤이 되었다.


도정궁에서는

지금쯤 초조하게

‘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두 번이나 실패를 경험한 그는

이제 ‘무언가’를 결정해야 했고,

어차피 이제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만약 이 일에

동료를 끌어들여야한다면

이런 수단 좋고 꼼꼼한 부하가

그에겐 반드시 필요했다.


그간 지켜본 안현수는

일솜씨도 좋았지만

눈치도 매우 빨랐다.


장고 끝에 결국 결심을 끝낸 정효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운재 일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느냐?”


“아버지 병구완을 위해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짜로 퇴직을 상신하는 것이 어떨지...


어머니도 작년에 돌아가셨으니,

도성엔

운재의 가족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에

여유를 좀 두고,


고향에서 사고사를 당했다고

처리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만...”


정효상의 마음에 쏙 드는

‘무탈한’ 방법이었다.


“...그래...


운재 때문에

지금 내 마음이 무척 무겁다.”


“신경 쓰실 일이 없도록

제가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래...고맙다.


그러면...

일단 이쪽 일부터 끝내보자꾸나.”


정효상이 빙긋이 웃으며

같이 움직일 것을 넌지시 지시하자,

안현수도 씩 웃으며 말했다.


“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바로 몸을 돌려

안가 밖으로 나서려는 안현수에게

정효상이 다시 물었다.


“나머지 두 놈은 어떻게 했느냐?”


나가려다 말고 걸음을 멈춘 안현수가

고개를 돌려 정효상에게 말했다.


“먼저 간 세 놈 곁에 묻혔습니다.


운재는

아까 낮에,

근처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습니다.”


“...그래...고생했다.”


“별 말씀을,

그럼 애들과 함께

서둘러 다녀오겠습니다.”


안현수는

다시 발길을 돌려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효상은

마당으로 나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에겐 이제

시간도, 여유도,

더 이상의 핑계도 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확실한 결과를 내야 했다.


그는

정창수에게

오늘 일을 어떤 식으로 말해야할지,

앞으로의 계획을 어떻게 짜야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산 중턱에 있는 안가의 마당에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달도 구름 뒤에 숨어버린,

음산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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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4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9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7 0 7쪽
» 제 2 부 꿈 (17) 21.05.13 184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5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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