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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49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6.10 03:06
조회
173
추천
0
글자
7쪽

제 3 부 천명 (8)

DUMMY

-4-


강진에서의 최종 점고를 끝내고,

군관으로서의 첫 임무가

정효상에게 하달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습진(習陣) 훈련에 배속되어

군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었다.


출신군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습진이다 보니

업무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임지로 발령받아

부방(赴防)생활을 하게 되는

출신군관들에게는


일상의 잡다한 일부터

‘잠자리’까지 맡아 해결해주는

‘방지기’가 한 명씩 배속되는 것이

관례였으나,


새롭게 증원된 무관들의 수를

그 지역의 관기들이나 사비(私婢)들이

따라잡지 못했다.


이는 군관들의 입장에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새롭게 같이 부임한 군관들끼리

몇 안 되는 방지기를 두고

서로 추첨까지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평상시에 강도 높은 수련을 해오며

금욕적인 생활습관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인지,


소원했던 아내와의 부부관계가

너무나 안 좋은 기억으로 점철된 탓에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졌기 때문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방지기’의 ‘밤일’에 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이 없던 정효상은


자기가 먼저 제비를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료들 사이에서

무심히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그 자리를 먼저 빠져나왔다.




어찌됐든 숙식과 빨래 같은

필수적인 생활에 관한 것과

여타 자질구레한 일상의 일은

누군가에게 맡겨야만 했기에,


정효상은

전라병영의 통인(通引)으로 일하는

이중기에게

하숙할 거처를 소개해 달라 말했다.


어디가 적당할까 고민하던 이중기는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

남문에서 가까운,

상인 민수근의 집을

그에게 소개하였다.


장터에서 어물전을 운영하는

민수근은

갑작스러운 군관의 하숙 제안에

잠시 망설였으나,


정효상의 크고 당당한 체구와

믿음직한 표정을 보고

군말 없이 수락하였다.


어차피 별채에 방도 하나 남았고,

하숙비로 가외수입도 챙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제외하면

여자들밖에 없는

다소 불안한 가족의 사정 때문에라도,


든든한 군관 하나가 집안에 머물면

주변의 이웃들이

자신의 집을 쉬이 여기지 못할 거라는

나름의 계산도 섰기 때문이었다.


이중기의 구변과

민수근의 복심이 들어맞으면서,


시세보다 꽤나 저렴한 가격으로

하숙비에 관한 협상을 끝낸 정효상은


새로운 거처인

민수근의 집 별채에 짐을 풀었다.


방 상태가 정갈하고 편안하여

무척이나 마음에 든 정효상은,


좋은 곳을 소개해주어

고맙다 말하며

거간 일을 해준 이중기에게

가쾌(家僧) 비용 외에

거마비(擧馬費)까지

넉넉히 얹어 주었다.


어차피 ‘밤일’도 해결 못하는

방지기 소개라서


발품 값도 안 되는

구전(口錢)이나 받고 끝나겠거니

생각했던 이중기는,


구문(口文)에 거마비까지 얹어


정효상이

자신이 받을 첫 녹봉(祿俸)의

반 가까이를 넘겨주는

문기를 써주자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쌀과 포가 생긴 탓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변한

이중기에게,


정효상은

호쾌하게 웃으면서

‘언제 이 고을의 토착군관들하고도

술자리나 한 번 마련해보라’ 말하며

마무리 인사를 전했다.


이중기는

무척 감격한 표정으로

‘예, 예, 나리’ 하며

허리를 연신 숙여 감사를 표하고,


기대치 않았던 횡재에

입이 귀까지 걸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효상의 이중기에 대한

이런 다소 파격적인 행동은,

나름의 계산이 깔린 것이기도 했다.


부방의 병영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갈등은,


도성에서 부임해온

출신군관과

지역의 토박이들인

토착군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첫 임지에서

맡은 임무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토박이들하고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그 첫 걸음은

이중기의 입을 통해 전해질

자신에 대한 좋은 평판이었다.




그러한 나름의 복심이 있기도 했지만,


별채에 마당도 따로 딸려 있었고


무엇보다

방문을 열면

아름다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거처는

그의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어느 정도 짐을 정리한 그는

마당으로 나가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두 눈에 담으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민수근의 가족은,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다는

작은 체구의 노모와


후덕한 인상의 그의 아내


그리고

올해로 스물다섯이 되었건만

아직도 혼처를 구하지 못해 걱정이라는

그의 딸 민소희가 있었다.




자신의 가족을

정효상에게 소개한 민수근은,


식사와 빨래 같은 기본적인 일부터

그의 자질구레한 일상의 일들을

자신의 딸에게 맡겼다.


공손히 허리를 굽혀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는 민소희에게


정효상이 처음으로 받은 인상은,


겉모습은 여려 보이지만

눈빛이나 태도에서

무언가 상당한 고집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강진장터에서 일을 배우며

수십 년간 장사를 해온 민수근은


직접 운영하는 어물전 외에도

곽전(藿田)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강진에서도 꽤나 부유한 축에 드는

상인이었다.


그의 곽전에서 나는 미역은

꽤나 평이 좋아서

나라의 공물로도

반출되는 물건이었고,


점포의 수입 외에도

오랫동안 관(官)과 거래를 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장사 쪽으로는 아주 잔뼈가 굵은

수완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자식 중 장남은

일찍부터 직접 장사를 가르쳐

지금은 해남장터에서

어물전으로 제급을 나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소금장수들의 행수로 일하는 차남은

전라도 보부상들 중에서도

‘일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나름 이름값 있는 장사꾼이었다.




그렇게 그의 집은,


해마다 명절이면

각자의 터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두 아들이


며느리들과 함께

토끼 같은 손주들을

우르르 몰고 와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행복한 집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걱정거리가 있다면,


혼기가 한참이 지났건만

도통 시집을 가지 못하는

막내 소희였다.


인물도 꽤나 예쁜 축에 드는 편이었고

손도 야무져


여기저기서

중매도 많이 들어오건만,


그의 딸은 요지부동이었다.




서로 체면을 상해

거래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중매가 연이어 깨져나가자,


한 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민수근이

하루 날을 잡아

심하게 매질까지 하였으나,


민소희는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며 사정하는 것도 모자라


억지로 시집을 보내면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협박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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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 3 부 천명 (13) 21.06.22 158 0 7쪽
70 제 3 부 천명 (12) 21.06.19 155 0 9쪽
69 제 3 부 천명 (11) 21.06.17 165 0 7쪽
68 제 3 부 천명 (10) 21.06.15 168 0 7쪽
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4 0 7쪽
» 제 3 부 천명 (8) 21.06.10 174 0 7쪽
65 제 3 부 천명 (7) 21.06.08 177 0 8쪽
64 제 3 부 천명 (6) 21.06.05 183 0 8쪽
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4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9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7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4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5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6 1 7쪽
52 제 2 부 꿈 (13) 21.05.04 205 2 4쪽
51 제 2 부 꿈 (12) 21.05.01 203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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