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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35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6.26 01:24
조회
153
추천
0
글자
7쪽

제 3 부 천명 (15)

DUMMY

-6-


기적처럼 민소희와 재회한 정효상은,

그녀를 자신의 앞에 태우고

천천히 말을 몰았다.


주인의 기쁜 마음이 느껴졌는지,

사람을 둘이나 태운 흑염의 발굽이

지치지도 않고 힘 있게 나아갔다.


그렇게

영암의 병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않으리라.


언제 또 무슨 일이 터져

엄혹한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될지,

지금보다 훨씬 두렵고 막막한

이별을 또 겪게 될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애당초 세상의 법칙이

이렇게 한 치 앞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도록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저 행복이 가능할 때

이 여인과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싶다.


이번 왜구들과의 전투에서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겪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어차피 나는

언제 전장에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다.


그러니 이 여인과 함께하는 현재를,

매순간을 소중히 하자.


그녀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

정효상은 그렇게

자신의 결심을 단단히 굳혔다.




왜란이 진정되고

다시 전주부의 무관으로 돌아오게 된

정효상에게 두 가지 좋은 일이 생겼다.


첫 번째는 당연히

민소희에 관한 일이었다.


그는

그녀의 이모가 살고 있는

부안의 바닷가에 작은 집 하나를 얻어

그와 그녀의 별가로 삼았다.


마음 같아서는

전주의 감영 근처에 집을 얻어

아예 살림을 차리고 싶었으나,

민소희가 채석강 쪽을 원했다.


민소희의 생각은,


전주에서의 임기가 끝나면

어차피 또 어딘가

낯선 곳으로 부임해야 할,

그의 떠돌이 같은 처지에 맞춰

매번 거처를 옮기는 피곤함보단


자신이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박고

그를 기다리는 것이,

생활의 안정에 있어

훨씬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뜻을 강하게 관철하려 했던

정효상도,


왜구들에게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그녀가

다시 예전처럼 건강을 되찾으려면

안정적인 거처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왜란으로

큰 고초를 겪은 민소희의 심신은,

겉으로 봐도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자신이 매일 곁에 붙어서

그녀를 챙겨줄 수 없다면,


그녀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이모님이 가까이 있는 곳에

거처를 정해주는 것이

그녀를 위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에게 두 번째로 좋은 일은,

이번의 왜란으로 인해

관운(官運)이 트였다는 것이었다.


영암 전투에서

누구보다도 앞장서 왜구들과 싸우며

적의 수급 수십여 개를 벤 그의 전공은

상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었고,


이번 진압의 논공행상을 위해

조정으로 올라가는 장계에

그의 무훈이 적절히 기재되는 것에

토를 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

아주 오랜만에 벗과 재회해

같은 전장에서 서로의 등을 지켜준

값진 경험을 얻은 정창수가


‘이번 전투로 생긴 금군의 결원을

하루 빨리 보충해야 한다.’는 건의를

상관에게 올렸다.


현장의 건의에 따라

각지의 무관들 중에서

보충할 사람을 찾던 윗분들에게


기회를 보던 정창수가

강력히 정효상을 천거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윗분들의 평가에서

출신성분도, 공적도, 실력도

모두 합격점을 받은 정효상은


그야말로 ‘무인의 명예’라 할 수 있는

금군에 무리 없이 선발될 수 있었고,


그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그의 주변 모두가

그의 한양행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비록 다시 맞게 된 그녀와의 이별은

많이 안타까웠지만,

그는 그렇게 다시

도성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떨어져 지내게 되었지만,

둘 사이에 예전과 같은 불안함이나

어려움은 더 이상 없었다.


정효상은 정기적으로 휴가를 내어

그녀를 찾아 호남 땅을 밟았고,


그녀도 점차 심신의 안정을 찾아가면서

서서히 예전의 건강과 웃음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밝게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다시

옛날처럼 웃게 된 것 만으로도

그녀보다 그가 훨씬 더 기뻐했다.


그녀는 이모의 도움을 얻어

마을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 나갈 정도로

많이 건강해졌고,


그런 그녀를

그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서한도

예전처럼 정기적으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챙겼고,


가외수입이든 녹봉의 일부든

일정한 재물을

그는 그녀에게 꾸준히 보내주었다.


그렇게 그의 별가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완성되어갔다.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나고,

또 다시 세월이 흘렀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에 시작된

둘의 인연은

어느덧 십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연을 맺은 지 12년 만에 드디어

그녀가 회임을 했다.


사랑의 결실이 잉태되었음을 알게 된

민소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으나


정효상은

서른일곱이라는 많은 나이에

첫 아이를 갖게 된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느라

진심으로 기뻐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하나,

왜란을 겪기 전에 비하면

그녀의 몸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가뜩이나 노산(老産)을 하게 되었으니,

그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소희는

정효상과의 사이에서 생긴

이 뒤늦은 사랑의 결실을

반드시 건강하게 낳겠다는 생각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녀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아이였다.


그런 그녀의 일념이

좋은 기운을 불러왔는지

다행히 열 달의 시간은

평탄하게 지나갔다.


출산 당일,

몇 번의 위기를 겪긴 했으나

다행히 아기는 무사하게 태어났다.


민소희의 상태도

그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방문 밖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며

천당과 지옥을 수천 번 오갔던 그는,


드디어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첫 자식을 보았다.


아주 귀엽고 예쁜 딸이었다.




자신의 뱃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소중한 생명을


행복한 표정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그가 방안에 들어오자

살며시 그의 품에 아기를 안겼다.


세상의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핏줄의 연대가 가져다주는

그 무한한 감동에

그는 결국 울고 말았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품에 안아본,

자신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눈도 못 뜬 딸이

작고 귀여운 손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꼭 잡자,


그는 바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곁에서 아기를 바라보느라

잠을 자는 것도 잊었던 그가

자신의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빛날 휘(輝) 자에 사람 인(人)을 써서,

‘휘인’이라 지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자식의 존재는,


그에게

마치 환한 빛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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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제 3 부 천명 (16) 21.06.29 160 0 9쪽
» 제 3 부 천명 (15) 21.06.26 154 0 7쪽
72 제 3 부 천명 (14) 21.06.24 154 0 7쪽
71 제 3 부 천명 (13) 21.06.22 157 0 7쪽
70 제 3 부 천명 (12) 21.06.19 155 0 9쪽
69 제 3 부 천명 (11) 21.06.17 165 0 7쪽
68 제 3 부 천명 (10) 21.06.15 167 0 7쪽
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3 0 7쪽
66 제 3 부 천명 (8) 21.06.10 173 0 7쪽
65 제 3 부 천명 (7) 21.06.08 177 0 8쪽
64 제 3 부 천명 (6) 21.06.05 183 0 8쪽
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4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6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3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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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제 2 부 꿈 (12) 21.05.01 20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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