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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28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6.05 04:23
조회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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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제 3 부 천명 (6)

DUMMY

따뜻한 재회를 끝낸 셋이

한껏 정성을 들인

푸짐한 밥상 앞에 마주앉았다.


도성에서의 부진했던 식욕은

어디론가 말끔히 사라진 듯,

정효상은

밥을 두 공기나 연거푸 비웠다.


맛있는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밥상을 물릴 무렵,

바로 옆방에서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막 깨어난 듯,

아기의 세찬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휘인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해인이가 드디어 깼나 봐요!


오늘은

낮잠을 엄청나게 오래 잤네요.”


휘인의 호들갑에

민소희도 얼른 몸을 일으켜

옆방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잠시 후

젖먹이를 품에 안은 민소희가

다시 돌아왔다.


정효상이 그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

그 애는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는가?”


“예...아주 건강합니다.


처음 거뒀을 때만해도

휘인이가 젖을 뗀지 오래되어서,

제가 젖이 말라

어떻게 돌봐야하나

걱정이 많았습니다만...


그때

동네의 정식엄마가

마침 둘째 젖을 떼려고 하던 참이어서

시기가 잘 맞물렸지요.


젖동냥 받아 큰 아이치고는

아주 튼튼합니다.”


“그것도 어찌 보면,

이 아이의 운이지...


그래, 지금은 무얼 먹이는가?”


“석 달 전부터 미음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해산물을 섞은 죽을

먹이고 있습니다.


아마 곧 걸음마를 뗄 것입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첫 돌이 되니까요.”


“그렇군. 벌써 그리 되었나...”


“이것도 다 나리의 은덕입니다.


그날 밤, 나리께서

새벽에 마구간으로

나가보시지 않았다면


아마 이 아이는

어미의 뱃속에서

같이 얼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나보다야 흑염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날따라 왜 그리 심하게 울어대는지

하도 이상해서

내가 자다 말고 나가본 것이니.”


“...그래도...

꼭 키우고 싶다는

저의 고집을 받아주신 것은,

나리의 결정이셨잖습니까.”


“그거야...자네가 하도 원하기에...


내 원래 생각은,

제생원(濟生院)에 맡기는 것이

더 낫지 싶었지만...


그땐 아직

자네 혼자 휘인이 하나도

돌보기 힘들 때라,


그간 솔직히 걱정이 많았네.”


“지금은 휘인이도 아주 좋아합니다.


자기가 누나라며

얼마나 아기를 챙기는데요.


다시 돌아보아도

그때의 결심은 잘 한 것 같습니다.


비록 친남매는 아니지만,

휘인이도 외롭지 않고...”


“그래...

휘인이도 좋아한다니, 그럼 됐네.


사내놈이니

이대로만 튼튼하게 잘 크면

나중에 제 몫은 제가 알아서 잘 하겠지.


자네가 힘들지만 않다면 됐어.”


그때,

부뚜막에서 아기가 먹을 죽을 가지고

휘인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휘인은 자기가 직접

아기에게 밥을 먹이겠다며

엄마에게

아기를 방바닥에 눕혀 달라 청했다.


민소희는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달래듯 말했다.


“아기는

누워서 밥을 먹으면 큰일 나요.


엄마가 안고 있을 테니

휘인이가 조금씩 떠먹여 줘 봐요.

천천히, 한 숟갈씩...”


휘인은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의 입에

죽 한 숟가락을 떠서

천천히 가져다 대었다.


아이가 음식 냄새를 맡고

입을 조그맣게 벌렸다.


휘인이

혹시라도 뜨거울까 후후 불어서

아이에게 죽을 한 숟갈 먹여주었다.


아기가 잘 받아먹자,

휘인이 아주 기뻐하며

아비에게 물었다.


“아버님,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 아기의 이름이 무슨 뜻인가요?


제 이름의 뜻은 잘 알고 있으나,


해인이라는

이름의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궁금하냐?”


“네.

제 이름하고

마지막 글자가 똑같잖아요.”


“네 이름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다.


바다 해(海), 사람 인(人).


바다에서 온 사람이란 뜻이다.”


“아...바다에서 온...그렇군요.”


“그래, 그저 그뿐이다.


이 아비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아이의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된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붙여준 것뿐이다.”


아버지의 설명이

이해하기 좀 어려웠는지

휘인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아이의 이름에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이에게 죽을 먹여주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민소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뭐랄까.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가족을 잃고 막막하기만 했던

그 당시의 처량했던 제가 떠오릅니다.


그때

모든 희망을 잃고 자진을 결심했던

저를 구하셔서,


이렇게

지금의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신 것이

나리셨지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애에게 정이 참 많이 갑니다.”


“.......”


슬픈 듯, 아련한 듯...

많은 감정이 담긴 그녀의 이야기에


정효상은

아무 대답도 없이

아주 오래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를

눈을 감고 차분히 떠올렸다.






-3-


정난공신(靖難功臣)이자

벼슬은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거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나랏님과 사돈까지 맺었던

권신 정인지의 후손이긴 했지만,


직계도 아닌 방계이자

종가(宗家)와도 촌수가 다소 멀었던

정효상의 집안은


사실 양반이라 부르기엔

가세가 무척 한미(寒微)했다.


그런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하루 두 끼도 챙겨먹기 힘들었던

그의 어린 시절은,


지금도 가끔씩 떠올리면

몸서리처질 정도로

추위와 가난으로 점철된

불우한 세월이었다.


그런 그에게

아홉 살 때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종가의 동갑내기 정창수는,


그의 어려웠던 처지를

일거에 바꿔준

구원과도 같았던 존재였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종가의 큰 제사에

아버지를 따라 참석했던

아홉 살의 정효상은,


그날 낮에 장난삼아

또래의 친척아이들과 어울려

씨름을 했고


거기서 정창수를 꺾으며 1등을 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경쟁심과 승부욕이 남달랐는지,


정창수는

자신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정효상에게 큰 관심을 가졌고,


그날 이후

옆 동네에 사는 그를 일부러 찾아와

씨름승부를 청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어떤 날은 이겼다가

또 어떤 날은 졌다가


그렇게 승패를 주고받으며

서로간의 전적이 비슷비슷 해질 무렵,


둘은

서로를 가슴 깊이 인정하는

친구로 변해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눈에 띄는 무재를 드러냈던

둘째 아들 정창수를

내심 눈여겨보고 있던

그의 아버지 정세호는

그에게 무관의 길을 권했다.


정세호는,

한때 금군에 몸을 담았다가

지금은 은퇴한,

이름값 높은 무사 이주동을

아들의 스승으로 초빙하였다.


열둘의 나이에 좋은 스승 밑에서

정식으로 무술을 수련하게 된

정창수는,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자

정효상을

자신의 동문으로 삼아줄 것을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정세호의 명으로

정효상을 불러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본 이주동은,


그가

정창수에 버금가는

무재를 지니고 있으며

무관으로서의 미래도

아주 밝다고 평했다.


정효상이 종친의 아이이기도 했고,


믿을만한 사람이

무재가 뛰어나다 보증도 했고,


힘을 쓰는 무관은

하나라도 더 있는 것이

집안을 위해 든든하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들이 저리도 간절히 원하니,


정세호가

정효상의 후원을 결심하는 것에

더 이상의 걸림돌은 없었다.




그렇게 그날부터

집을 떠나 거처를 옮겨

정창수와 같이 지내며,


한 스승 밑에서

정식으로 무술을 수련하게 된

정효상의 실력은

단기간의 수련만으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수련의 단계가 점차 올라갈수록

몸은 무척 고되고 힘들었으나,

그의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자유로워졌다.


하루하루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의 자존감도 점점 커져갔으며,


스승으로부터

칭찬이라도 받는 날에는

뿌듯함까지 더해져

얼굴에서

하루 종일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십여 년의 고된 수련 끝에

드디어 정창수가 무과에 응시할 때

그가 부상을 핑계로

같이 응시하지 않은 것은,


사실

자신을 가난에서 구해준

오랜 벗이자 동문인 정창수에 대한

일종의 작은 보은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창수가

‘갑과 3명’ 안에 드는

매우 훌륭한 성적으로

무과에 입격하자


자기 일처럼 가장 기뻐한 것도 그였고,


그가 무관으로서

청요직에 올라 승승장구하기를


가장 바랐던 것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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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제 3 부 천명 (17) 21.07.01 159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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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 3 부 천명 (13) 21.06.22 157 0 7쪽
70 제 3 부 천명 (12) 21.06.19 15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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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 3 부 천명 (9) 21.06.12 173 0 7쪽
66 제 3 부 천명 (8) 21.06.10 173 0 7쪽
65 제 3 부 천명 (7) 21.06.08 177 0 8쪽
» 제 3 부 천명 (6) 21.06.05 183 0 8쪽
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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