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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48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5.01 02:14
조회
202
추천
1
글자
8쪽

제 2 부 꿈 (12)

DUMMY

“표정이 여전히 좋지 않구나.


아직도 뭔가 더 남았느냐?

무슨 얘기를 해도 놀라지 않을 테니

남김없이 다 풀어봐라.


너랑 내가 못할 얘기가 뭐가 있느냐.

하늘 아래 단 둘만 남은 피붙이인데...


걱정하지마라.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너만은 오라비가 지켜줄 테니.”


지켜주겠다는 운용의 말은,

아주 강력하게

운영의 마음에 다가왔다.


그래,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은 오빠뿐이다.


말 그대로 가족 아니던가.


결심이 선 운영은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딱 한 가지만 빼고.




“그럼...

지금 네 몸 안에

아이가 자라고 있단 말이냐?”


“...네,

달거리가 없어진 것이

이제 세 달쯤 되어갑니다.”


“그날 밤,

너를 협박해 몹쓸 짓을 한 놈이

...누군지...짐작은 가고?”


질문을 하는 운용의 입술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정체만 알면

당장 달려가 패 죽여 버리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차분하게

동생의 말을 들어줘야 할 때다.


운용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호위하는 칼잡이가

문밖에서 계속

지키고 서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리고 입고 있던 복색이

아주 비싸고 귀한 비단옷에

가죽신이었던 것으로 보아...


상당히 지체 높은 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건 제 짐작일 뿐이지만,

어쩌면 그자의 신분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도

벌어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느낌이 비슷했어요.


이선이를 죽인 자는 아마도...

그날 호위를 서던

그 칼잡이였을 거예요.


복면으로 얼굴을 가려서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저를 죽이려고

다가오는 모습을 봤을 때

분명히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이 얘기를 포도청에도 했느냐?”


“아뇨.”


“왜?”


“그냥...

더 이상 일이 복잡해지는 것도 싫었고,

포교들이 너무 무섭기도 했고,

몸이 너무 힘들기도 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뱃속에 이 아이 때문에...”


“..........”




그 문제만큼은

운용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일의 원인을 떠나

이미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는

어쩔 것인가.


아무 원한도 맺은 적 없이

이런 끔찍한 일을 겪고,


아무 잘못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거기다가 한 술 더 떠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까지 가지게 되다니...


다 내 탓이다.


내가 귀찮고 불편해도

매일매일 집에 들어가

동생을 챙겼어야 했어.


다 내 잘못이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면서

뼈아픈 자괴감에 빠진 운용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모두 지나가버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자책하지마세요, 오라버니...


하지만,

제 몸속에 깃든 이 생명은

어찌해야할까요.


그것만이

지금 제 가장 큰 고민입니다.”


“무언가 방법을 한 번 찾아보마.


그전에,

꼭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네, 말씀하세요. 오라버니.”


“...낳고 싶으냐?”





운용의 질문에

이번만큼은

운영이 확실하게 대답해줘야 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운영은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얘기로는

간장을 마구 마시면

아기가 떨어진다고도 하고,

높은 고갯길에서 구르면

아이가 떨어진다고도 했지만,


솔직히 운영은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기보다

왠지 그렇게까지 하기는 싫었다.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의 뱃속에서 자리 잡은 이 생명을

지켜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운영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아이의 아버지 때문에

이런 험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르는 거라면,


무슨 방법을 쓰던

아이를 없애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닐 것이고...


내가 이곳에서 일하며 주워듣기론,

모질고 험한 방법을 써서

설령 아이가 지워진다 해도

여인의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간다고 하더구나.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솔직히 난,

정말 탐탁찮지만...


그냥 낳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오라버니...”


“딸이든 아들이든 간에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그놈 하나쯤은 건사해서

키울만한 능력은 되고...


무엇보다,

괜한 일을 벌여서

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것만은 안 된다. 절대.”





운용의 마음씀씀이에 감동받은

운영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이리도 자상하고 착한 오라비에게

왜 끝까지 진실을 숨기고 있나.


그냥 다 속 시원히 말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운영의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운용이 한 번 더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힘내라...

오라비가 어떻게든 도와주마


...일단 살고 보자.


아무리 억울하고 끔찍한 일을 겪었어도,

이렇게 살아있는 이상

견뎌야만 한다.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웃을 수 있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지금 네가 할 일이다.


오직 버텨내는 것만 생각하렴.”


“...정말, 정말 고마워요. 오라버니...”


운영이 눈물을 흘리며

운용을 와락 껴안았다.


운용은 말없이

동생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음 날 아침,

운용은 운영을 데리고

마포나루로 갔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그가 그녀를 데리고 만나러 간 사람은


한때는 한양에서 손꼽히던

기생이었으나,


지금은 은퇴해

견습생들에게

창가나 기예를 가리키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는


퇴기(退妓) 계향이었다.


오랜만의 재회에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계향에게

운용은

자신의 여동생을 인사시키고,

은밀히 속사정을 말했다.


차분히 사정을 들은 계향은

한 점 거리낌도 없이

호쾌하게 말했다.


“알았다.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보살펴주마.”


“고맙소. 누님.”


“고맙긴. 우리 사이에.”


“누님한테만 맡기지 않고,

나도 매일 들러서

상태를 살펴보리다.”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너도 아예 거처를 여기로 옮겨라.


여동생에게도 그게 더 나을 테니.”


“정말 그래도 되겠소?

누님이 불편하지 않으려나?”


“내가 불편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이 일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네 얼굴을 매일 가까이서 보고

같이 한 집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네 여동생의 불안감이 확 줄어들 거다.


바로 며칠 전에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지금 아기까지 품고 있는데,

하루 빨리 마음부터 단단해져야지.”


“...정말...정말 고맙소. 누님.”


운용이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자

계향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죽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을 때,

네가 몸을 던져 날 구해줬는데...


이건 당연한 것이다.


그냥

그 당시 받았어야 할 너의 몫을

지금 받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동안 정말 적적했는데

아주 잘되었다.


거기다 아기까지 태어난다니...

이제야 사는 재미가 좀 나겠어.”




그렇게 오랜만에,

남매는 다시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오빠랑 같이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거늘


넉넉하고 마음씨 좋은

언니까지 더해지자,


운영의 마음은

정말 든든하고 한없이 편안해졌다.


그날 저녁,

운영은

오랜만에 밥을 한 공기 다 비웠다.




이제 그녀에게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숨긴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건,

그저 운영의 감일 뿐이었지만,


그 한 조각의 거짓말이

그들 모두를

큰 위험에 빠트리게 될 줄은


그땐 정말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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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61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4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9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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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제 2 부 꿈 (17) 21.05.13 184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5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6 1 7쪽
52 제 2 부 꿈 (13) 21.05.04 205 2 4쪽
» 제 2 부 꿈 (12) 21.05.01 203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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