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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27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5.29 03:48
조회
198
추천
1
글자
8쪽

제 3 부 천명 (3)

DUMMY

-6-


“사람들이 다 나를

신통한 무당이네,


칠성장군님이 접신하셔서

앞날을 무섭게 맞추느니 어쩌느니

여기저기서 말들 하지만,


사실 난 아무 것도 몰라요.


내 재주라고는

선사님께 배운 사주풀이를

아주 그럴듯하게 잘 설명하는 것,


굿할 때 구경꾼들이 놀랄 만큼

신명나게 움직이는 것밖에 없어요.


점을 볼 때도 굿을 할 때도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요.”


“그게 정말이야?”


안현수가 박술녀의 고백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박술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마치 접신이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이 꼼짝없이 믿을 수 있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거예요.


이게 내가 그동안,

힘 있는 사람들한테 총애를 받고

힘 없는 사람들한테 대접을 받은

이유에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연습했던 노력이 있었지만...


암튼 나한테 신통력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잘 훈련된 화술과 연기예요.”


“...정말,

임자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


안현수의 감탄에

박술녀가 살포시 웃으며

무척이나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도정궁에서 나를

신녀(神女)처럼 믿게 된 계기가

덕흥군이 죽을 때를 내가 맞춘 것인데,

그것도 사실 아주 간단한 속임수예요.


덕흥군의 사주를 보면

그 해가 재살(災煞)하고

겁살(劫煞)이 겹친,

엄청난 흉살이 들어오는 때였어요.


그래서

7년 뒤에 첫 번째 ‘살’이 들어올 거라고

말을 해준 거고...


정씨 부인의 사주엔,

내년 정묘년에 남편하고 똑같이

두 개의 대살이 겹친 흉살이 들어와요.


그래서

그 여자가 꾸었다는 꿈에 맞춰서

즉석에서

말을 그럴듯하게 지어낸 거죠.


두 개의 천륜하고

한 개의 인륜이 끊어진다고...


난 국본의 사주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랬군...근데 그게 왜 속임수야?

그 사람들 사주에

그런 일들이 나온다며.”


“교동마님이

덕흥군을 먼저 죽여야겠다고

맘먹지 않으셨으면,

시기가 아예 틀렸을 테니까요.


뭐 틀리면 틀리는 대로

그럴 듯하게 핑계될 방법은

많이 있었지만...


내 운이 좋았던 건지,

덕흥군의 운이 나빴던 건지 모르지만,

일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 풀리게 된 거죠.”


“하긴...그건 그렇군.

만약에 틀렸으면 어쩌려고 했어?”


“뭐...방법은 아주 많죠.


저번에 공을 들여 치성 드린 천도제가

큰 흉살을 막아줬다 라든가,


당신 조상님 중에

큰 공덕이 있으신 분이

사력을 다해 막아주시는 꿈을

내가 꾸었다 라든가.”


“하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과연 먹혔을까?”


“도정궁뿐만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도 아주 잘 먹히죠.


그러니까 내가

여태껏 이렇게 살아남은 거고...


무언가에 혹해서 간절한 사람들은

자기 발밑을 못 보거든요.

생각을 아예 못해요.”


박술녀의 자신감 있는 말에

안현수가 되물었다.


“그럼 사주팔자 같은 건

아예 믿을 게 못되는 건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어떤 때는

말해준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딱 들어맞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이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화든 복이든

자기 자신이 불러오는 게

가장 크다는 거예요.


물론 남이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사기를 당하거나

상해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에게 원한을 산 이들이 제일 많고,


도대체 왜 저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싶은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욕심 많은 자들이

일을 꾸미는 경우가 많죠.


자신도 모르게

남의 걸림돌이 된 경우랄까...”


“...그렇군...”


“또 횡액을 당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전생에

큰 죄를 지었나보구나 할 정도로

어이없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말이나 이치로는

명확히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면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계속 무당을 찾는 거겠죠.”


“그럼

아주 무시할 거는 아닌 모양이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는데

달랑 사주팔자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다 설명이 되겠어요.


그저 이런 것도 있다

참고만 하는 거지요.


사람이란 존재는


피하라고 말해주면

진짜로 피하고,

조심하라고 말해주면

진짜로 조심하게 되어있어요.


말이라는 건, 아주 강력한 거예요.


같은 말이라도

어떤 때는 축복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저주가 되기도 하니까.”


“하긴,

세상에 거칠 것이 없던 교동마님도

그리 속절없이 돌아가신 거 보면,

진짜 알 수 없어. 사람 팔자는...


치성 드리신다고 목욕재계하신 것이

고뿔을 불러

대비님을 죽게 만들 줄이야.”


안현수의 말에

박술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진심을 드러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교동마님이 그렇게 되신 것도,

대비님이 그렇게 되신 것도

다 그분들이

스스로 불러온 거나 마찬가지죠.


권세에 대한 욕심이 원인이에요.


도정궁 사람들도 똑같아요.


그 사람들이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간에,


권력에 가깝게 있으면

그런 일에 휘말리게 되는 거예요.


때론 자기 의지하고 관계없이,

때론 자기 의지 때문에...”


“그렇지...

대비님은 꿈에도 모르셨을 거야.


당신 앞에선

입안에 혀처럼 굴던 교동마님이

뒤로는 국본을 죽일 음모를 꾸며서

실제로 그렇게 만들고,


더 나아가

당신 아들까지 죽일 계획을

이리도 치밀하게 세웠다는 걸...”


“교동마님이 그리도 치밀하게 살다가

딱 한 번 실수를 한 것이 뭐냐면,


자기한테 신통력이 있다고

착각을 한 거예요.


그때부터 마님도 너무 오만해져서

자기 발밑을 못 보기 시작하셨죠.


덕흥군을 죽인 거나

국본을 죽인 것은


엄밀히 말하면

양의관의 ‘때를 맞출 줄 아는’

훌륭한 기술 때문이지.


마님의 계획이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닌데...


마치 자기가 다 그렇게 만들고

자기가 다 해낼 수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한 것이


결국 마님을 망친 거예요.”


둘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진심을 꺼내는 바람에

분위기가 답답해진 것이

신경이 쓰였는지


박술녀가 다시 입을 열어

원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암튼,

지금 도정궁 그 여자도 그렇지만,


우리를 먹여 살리신 교동마님조차도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걸 모르셨어요.


내 진짜 모습을 아는 건,

나를 가르쳐주신

선사님밖에 없었지요.”


“제일 대단한 건,

교동마님이 아니라 당신이었구먼.”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요.


무당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고, 괴롭고, 답답해서

오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은 다

마음속에 욕심이 한가득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지요.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사주를 보고,

그럴듯하게

과거에 일어났던 몇 가지를 말해주면,


그 다음부터는 다루기가 아주 쉬워요.”


“그야말로 바닥부터 기어 올라간

교동마님이야 그렇다 치고...


도정궁 그 여자처럼

일생을 편안하고 부유하게 산 사람도

그런 욕심이나 고민이 있나?”


“도정궁 그 여자든,

대감댁 정경부인이든,

승은을 입은 귀인들이든 간에...


높은 자리에 앉아

권세를 누리는 사람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욕심도 많고 고민도 많아요.


그래서 바라는 것도 많고

두려워하는 것도 훨씬 많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세력이나 기술만 가지고는

일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운이 따라줘야

일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를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정말 간절히 믿고

내가 시키는 대로

정말 열심히 따라요.


이루어지면

엄청나게 큰 보상을 얻고,


실패하면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군...”


안현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박술녀도 잠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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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 3 부 천명 (5) 21.06.03 189 0 9쪽
62 제 3 부 천명 (4) 21.06.01 192 0 6쪽
» 제 3 부 천명 (3) 21.05.29 199 1 8쪽
60 제 3 부 천명 (2) 21.05.27 193 0 9쪽
59 제 3 부 천명 (1) 21.05.25 209 1 9쪽
58 제 2 부 후기 21.05.18 178 1 3쪽
57 제 2 부 꿈 (18) 21.05.15 186 0 7쪽
56 제 2 부 꿈 (17) 21.05.13 183 1 8쪽
55 제 2 부 꿈 (16) 21.05.11 185 1 9쪽
54 제 2 부 꿈 (15) 21.05.08 184 1 8쪽
53 제 2 부 꿈 (14) 21.05.06 20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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