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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56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2.09 06:50
조회
82
추천
1
글자
5쪽

제 4 부 개화(開花) (57)

DUMMY

자신의 앞에 나타난 흑호를 본

안현수는 강한 위화감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날 새벽,

배에서 만난 흑호와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보였기 때문이다.


몸매도 저렇게

호리호리하지 않은 느낌이었고,

키도 조금 더 작았던 기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은 두건 속에서 빛나는

눈빛이 많이 달랐다.


저렇게 공허하고 깊은 눈이 아니었다.




안현수의 그런 생각 따위는

하등의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흑호는

삼십 명의 흑랑 살수들을 이끌고

그들의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한참동안을

그저 둘러보기만 했다.


흑호가 인사도 없이

긴 침묵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모습만 훑어보자,


금군무사들 중에서

가장 연배가 높은 사내 하나가

언짢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안행수, 뭡니까? 이 시커먼 놈들은?"


금군사내가 불쾌한 목소리로

안현수에게 물었다.


안현수는

순간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아...그게, 이 사람, 아니 이 분들은..."


안현수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못하자

금군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혹시 현지에서 합류한다던

평양감영 애들이오?


근데 얘들 상태가 왜 이렇소?


전투의 기본이 안 서있네?


하...수준 떨어져서 정말..."


금군사내가 흑랑의 살수들을 보고

무시하는 말투로 비웃음을 날리자,


흑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침묵을 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준이 떨어지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 같구나.


너희들 정말 금군이 맞나?


내가 예전에 상대했던 금군들은

이런 저급한 하수들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흑호의 말에 가장 놀란 건,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한

금군사내가 아니라

그의 옆에 서있던 안현수였다.


'이 자의 목소리,

그때 그 자의 음성이 확실히 아니다.


아...그럼 그때

자기가 흑호라며 우리를 만났던 놈은

진짜가 아니었구나...


얼굴을 아는 자가 한 명도 없다더니,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었군.


정말 무서운 사내다.'




안현수가

흑호의 진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속으로 서늘한 공포를 느끼는 동안,


그런 속사정은 까맣게 모르는

금군사내가

흑호의 도발에 화를 참지 못하고

이미 칼을 뽑고 있었다.


그러나

사내의 칼이

칼집에서 미쳐 다 뽑히기도 전에

흑호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휘둘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금군사내의 목 부근에서

날붙이의 반짝이는 기세가

바람처럼 스쳐지나갔고,


칼을 뽑던 사내의 손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사내의 목을 지나는 동맥이 끊어졌는지

조금씩 피부를 뚫고 나오던

시뻘건 핏물이


갑자기 봇물이 터진 것처럼

거센 핏줄기로 바뀌어

주변을 흥건하게 적셨다.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시뻘건 핏물들은

밝은 달빛을 받은 탓인지

본래의 색이 변해,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 정도였다.


흑호의 일격에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숨이 끊어진 금군사내가


그대로 무릎을 꿇더니

힘없이 얼굴을 흙바닥에 처박았다.




그제야

여유롭게 그 상황을 지켜보던

금군무사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온몸을 긴장의 빛이 휘감았다.


사냥개부대의 사내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으나,

금군무사들보다는

그 정도가 심하진 않았다.


팔도 여기저기를 떠돌며

임무를 수행하면서

흑호와 구월산 살수대의

전설적인 무용담은 충분히 들어왔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두령인 안현수로부터

이번 임무에

그들이 합류한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칼질로 만들어낸

일촉즉발의 분위기 따윈

아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흑호가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단검을

한 번 스윽 보더니


너무 놀라 입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자신을 쳐다만 보는,

안현수의 어깨근처에

단도를 갖다 댔다.


안현수의 눈에 두려움이 확 일었다.


흑호가 안현수의 옷깃에

자신의 칼에 묻은

죽은 사내의 피를 천천히 닦아냈다.


그리곤 달빛에

단도의 날을 한 번 비춰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칼날에 묻은 피와 기름은,

바로바로 잘 닦아줘야 녹슬지 않지요.


안 그렇소? 안동지?"


마치 협박처럼 들리는 흑호의 질문에

안현수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애써 입을 열었다.


"네, 그렇고말고요.

네네. 조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때,


비로소 머리가 차가워진

금군 무사들 몇몇이


자신의 동료를 눈앞에서 죽인

흑호를 향해

칼을 빼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흑랑의 살수들도

각자의 무기를 쥐고 앞으로 나섰다.


그제야 안현수의 머릿속에

강한 경각심이 치고 들어왔다.


'안 돼,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된다.


백해무익, 양패구상은 물론이고

적과의 싸움을 해보기도 전에 필패다.


어떻게든 말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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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제 4 부 개화(開花) (62) 22.02.21 76 0 7쪽
167 제 4 부 개화(開花) (61) 22.02.18 78 1 5쪽
166 제 4 부 개화(開花) (60) 22.02.16 80 1 6쪽
165 제 4 부 개화(開花) (59) 22.02.14 80 1 7쪽
164 제 4 부 개화(開花) (58) 22.02.11 80 1 7쪽
» 제 4 부 개화(開花) (57) 22.02.09 83 1 5쪽
162 제 4 부 개화(開花) (56) 22.02.07 88 1 8쪽
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7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8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8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8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3 1 9쪽
156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3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0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5 1 7쪽
151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1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0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5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4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4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5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8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7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6 1 7쪽
140 제 4 부 개화(開花) (34) 21.12.17 89 1 9쪽
139 제 4 부 개화(開花) (33) 21.12.15 100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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