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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81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12.27 03:32
조회
88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38)

DUMMY

-7-


지리산과 금강산의 사내들이

만반의 준비를 끝낸 사냥터에

인영(人影)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노을이 지고

밤의 적막이 찾아온 숲의 풍경을

고고한 달빛만이

고요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보름달이었다.




화전민이 버리고 간 움막 앞에

달빛을 등에 지고 나타난 젊은 사내는

매우 특이하게도

적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사내의 넓은 어깨부터

무릎까지 내려오는 붉은 도포는


달빛을 받아

불그스름한 핏빛의 형체를

은은하게 발하고 있었다.


검은 철릭을 깊게 눌러써서

코의 아랫부분과

굳게 다문 입술만 보였지만,


갸름한 턱 선이 날렵하게

목과 어깨로 이어진 모양새가

사내의 민첩함을

어느 정도 가늠케 해주었다.


사내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두툼한 소가죽을 덧댄

검은 신발에 감춰진

사내의 두 발이 천천히 움직여

사냥터 안으로 들어갔다.




움막의 마당 한 가운데에는

가마 하나만 외로이 놓인 채,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붉은 옷의 사내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춰 서서


다시 한 번 신중히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갑자기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 의령의 곽재우요.


당신들이 그리도 열심히 찾던

그 곽재우가 맞소.


그저, 딱 하나만 말하겠소.


우리, 싸움의 도의는 지킵시다.


아무 상관도 없는 아녀자를,


그것도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여인을

미끼로 쓰다니 부끄럽지 않소?


팔도에 명성이 자자한 협객들께서

이 무슨 치사한 짓이란 말이오."


본인의 이름을 당당히 밝힌

곽재우의 일갈이

숲의 고요함을 일거에 깨부수며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일종의 도발이자 간청일 수 있는

사냥감의 간절한 표호였으나,


숨어있는 사냥꾼들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자신의 외침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곽재우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서며

다시 입을 열어 소리쳤다.


"당신들의 요구대로 나 혼자 왔소.


그러니 더 이상 숨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시오.


이미 내 뒤로 천라지망을 치셨으니

내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은

알 것 아니오.


내 안식구만

먼저 무사히 돌려보내준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하겠소."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사냥꾼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신중함이 극에 달한 모습이랄까.


이젠 살기(殺氣)는커녕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곽재우의 마음이 점차 초조해졌다.




그렇게 일각 정도,

무겁기 만한 긴장의 시간이

침묵 속에 조용히 흘러갔을까.


결국 먼저 움직인 것은

사냥감 쪽이었다.


곽재우가

발끝에 힘을 주어 땅을 박차고

가마를 향해 튀어나갔다.


드디어 사냥감이 움직이자

사냥꾼들도 행동을 개시했다.


숲속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소노에서 발사된 화살이

곽재우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갔다.


좌우 양옆에서 여섯 발씩

총 열 두 발의 화살이

사냥감의 몸통을 노리고 날아가자,


화살이 공기를 찢는 마찰음으로

첫 공격의 방향을 짐작한 곽재우는,


갑자기 땅 재주꾼처럼

몸을 훌쩍 허공에 띄워

공중제비를 돌아 앞으로 착지했다.


마치 한 마리 새처럼

날쌔고 아름다운 몸동작이었다.




그러나 사냥꾼들도 만만치 않았다.


곽재우가 착지하는 순간을 노린 듯,


움막의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열 명의 사내들이

번득거리는 날붙이를 빼어들고

벼락처럼 휘몰아쳤다.


복면으로 모두 얼굴을 가렸으나,


체구와 무기로 보아

선봉에 선 건 이정훈과 장종훈이었다.


곽재우의 철릭을 향해

장종훈의 편곤이 날아가고,


이정훈의 철봉이

사냥감의 다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곽재우는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도약하여,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이정훈의 철봉이

공기만을 가른 채 빗나가고,


장종훈의 편곤이

곽재우의 철릭을 스치며

무언가에 긁히는

기분 나쁜 쇳소리를 냈다.




몸의 탄력이 얼마나 좋은지,

그렇게 연이어 공중제비를 돌고서도

곽재우는 중심이 무너지지 않았다.


둘의 매서운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한 그에게,


이번엔 사방을 막아선

여덟 개의 병장기가

숨 쉴 틈도 없이 찔러 들어왔다.


곽재우가 급히 철릭을 벗어

마치 방패로 막듯

자신의 가슴팍을 찔러오는

창포검을 튕겨내며,


그와 동시에

오른 다리를 옆으로 내질러

환도를 휘두르는

사내의 배를 걷어찼다.


컥, 하는 단말마와 함께

곽재우의 발차기에 배를 맞은

사내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한 순간 풀린

포위망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곽재우가 몸을 날려

다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환도를 뽑아들었다.


오른손엔 방패대신 철릭을,

왼손엔 환도를 든

그의 독특한 자세는


북방전장의 갑사(甲士)들과 비슷했으나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현진이처럼 왼손잡이로군.

상대하기 까다롭겠어.


몸놀림도

최소 현진이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다...


잠깐 동안 겨뤄본 공방이었지만

곽재우의 기량을

충분히 파악한 장종훈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정훈도

장종훈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이미 쓰러진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의 수하들에게

짧게 명했다.


"너희들은 달려들지 말고

거리를 유지하며 한쪽으로만 몰아라.


우리가 알아서 하마."




이정훈의 지시에

복면사내 일곱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천천히 오른쪽으로 곽재우를 몰았다.


곽재우의 왼손에 들린 환도가

움찔거리며

망설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격으로 치고 나갈 것인가.

수비에만 집중할 것인가.


왼쪽을 막아서서

날 몰고 있는 일곱은

한꺼번에 상대하기 힘들다.


오른쪽에 버티고 있는 저 둘은

한 눈에 봐도 감당하기 힘든 고수다.


아까 날아온 화살을 봤을 때

숲속에도 최소 네 명의 매복이 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할 틈 따윈 없었다.


이정훈의 철봉이

곽재우의 얼굴을 노리고

벼락같이 찔러왔다.


곽재우는

왼손의 칼을 휘두르려하다가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꿔

철릭으로 막아야만했다.


왼쪽의 일곱 사내가

바로 치고 들어올 기세였기 때문이다.


쾅, 소리와 함께

곽재우의 철릭이

이정훈의 철봉에 맞아

허공으로 날아갔다.


방패를 잃은 곽재우가

다시 자세를 잡을 틈도 없이

장종훈의 양손에 들린 편곤과 도끼가

폭풍처럼 휘몰아쳐왔다.


아, 이건 피할 도리가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곽재우가

급히 칼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노린 편곤만을 쳐내고

옆구리를 내줄 생각을 하던 찰라,


갑자기 도끼의 날이 사라지며

묵직한 발차기가 들어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를 걷어차인 곽재우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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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8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9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9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9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4 1 9쪽
156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4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1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6 1 7쪽
151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2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1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6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5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5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6 1 11쪽
»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9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9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8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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