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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80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12.15 03:13
조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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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33)

DUMMY

-2-


진용은 사흘 만에 눈을 떴다.


일곱 살의 어린 소년이

생사의 기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소년을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속도

새까맣게 타 재가 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마치 겨울잠에 들어간 곰처럼,

긴 잠에 빠져 모두의 애를 태우던

진용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눈을 떴다.


정신을 잃은 동안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 듯,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소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조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손을 꼭 잡은 채

곁에 잠들어 있는

여동생 진영의 모습이었다.




"진...영이?"


갈증 탓인지 심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여동생의 이름을 작게 소리내어 부른

진용의 모습을 보고,


사흘째 꼬박 밤을 새며

아들의 옆에서 머물던 미순이

후다닥 바느질거리를 내려놓고

진용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거의 닿을 정도로 바싹 가져다대었다.


"엄마? ...엄마...맞죠?"


가늘게 뜬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엄마를 부르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미순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반가운 한마디 말보다 뜨거운 눈물이

더 빨리 몸 밖으로 나왔다.


"아들...내 아들...고마워...

정말 다행이다...정말 다행이야..."


"...엄마..."


"아아...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 진용이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 늑대는요? 도망갔나요?

엄마는...엄마는 괜찮아요?

등에서 피 많이 났는데..."


막 눈을 뜬 어린 아들이

자신의 안부부터 챙기자,

너무나 기특하고 고마워

어찌할 바를 모른 미순이

와락 진용을 껴안으며

감격에 겨워 울기 시작했다.


"엄마...괜찮죠? 괜찮은거죠?"


진용이 자신을 껴안은 채 흐느끼는

미순의 상처입은 등을 어루만졌다.




그때,

덕관이 몹시 피로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눈에

정신을 차린 아들의 얼굴과

그런 아들을 꼭 껴안고 울고있는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 모습을 보자마자

곰처럼 커다란 거구의 사내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내어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빠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 진영이

눈을 부비며 주변을 둘러보다

깨어난 오빠를 보았다.


소녀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며

그야말로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오빠야!!!"


소녀는 후다닥 오빠의 목을 껴안고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기쁨이 가득한 두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진용과 진영을,


미순이 팔을 뻗어 끌어당겨

자신의 가슴으로 품었고,


엉엉 소리내어 울며

성큼성큼 다가온 덕관이

커더란 몸으로

그런 미순의 등을 덮어주듯

두 팔을 활짝 벌려 감싸안았다.


아주 오랜만에

그렇게 네 명의 가족은 하나가 되었다.




다음 날부터,

대사는 진용의 상태에 맞춰

회복에 중점을 둔 치료를 시작했다.


대사의 치료가 잘 들어맞았는지,

진용은 서서히 건강을 되찾아갔다.


급한 일정으로

다시 묘향산을 떠나야했던

금강산과 지리산의 사내들은

일하는 틈틈이 보발꾼을 보내어

진용의 상태와 안부를 챙겼다.


몸에 좋다는 약재부터

진기한 음식까지

이것저것 마구 챙겨 보내는 통에,


나중에는 대사가

더 이상 처리할 수도 없고

먹일 수도 없으니

그만 보내라고 통보를 해야 했다.




덕관이 류현진, 유정스님과 함께

무술수련에 매진하는 낮 동안은


미순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진용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부상을 회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민감하게 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 덕관이


조금쯤은 여유를 가지라고

달래도 보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세 줄기의 큰 흉터가 깊게 새겨진

자신의 등을 내보이며

단호한 말로 그의 입을 막았다.


“이까짓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워요.


당신의 팔에 생긴 흉터처럼

내 자식을 지키려다 생긴 거니까요.


설마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백일도 되기 전에

칼잡이들에게 죽을 뻔했던 아이예요.


벌써 두 번째에요.


더 이상은 싫어요. 절대로.”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다.


정신도 맑게 돌아오고

식사도 할 수 있었으나,

상처가 워낙 깊었던 탓에


진용이

자신의 힘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정신을 차리고도

근 세 달이 지나

묘향산에 겨울이 왔을 때였다.




그 지루하고 긴 시간 동안

진용의 무료함을 달래준 것은

여동생 진영이었다.


진영은

오빠가 병상에 누워있는 세 달 동안


아예 그 옆에 자리를 펴고

침식을 같이 하며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재미난 이야기나 재롱을 떨어

오빠를 웃겨주기도 했고,


산책을 나가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을 주워와

오빠와 놀이도 했고,


진용이 열이 나거나

상처가 욱신거려 아파하는 밤이면

물수건을 차갑게 적셔와

어머니에게 건네주는 심부름을

잠도 안자고 열심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용의 병간호를 위해

진영이 했던 많은 일중에

무엇보다 대단했던 것은,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진영이

글을 배운 것이었다.


비록 언문이긴 했지만,


그 전부터 방장스님에게

하루에 한 글자씩 배워오곤 했었고,


진용이 다친 이후에는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한 가지,

열심히 집중해서 배웠기 때문이었고


네 살 박이 소녀가

그렇게까지 노력한 이유는

바깥에 나가지 못하는

아픈 오빠 때문이었다.




진영은, 진용의 곁에 앉아

재미있는 책들을 읽어주었다.


낮이고 밤이고 틈만 나면,

병상에 누워있는 오빠의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진영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보현사의 스님들은

그런 진영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


유명한 중국의 군담소설이나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고전명작들

그리고

사기(史記)의 열전(列傳)같은 책들을

언문으로 필사하여

진영에게 건네주었다.


어려운 부분이나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나오면

직접 스님들이 찾아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해설해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진영에게든 진용에게든,

병상에 있던 세 달의 시간은

아주 값지고 귀한 시간이 되었다.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재미있고 유익한 공부를

아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오빠의 무료함을 달래주기위해

진영이 했던 세 달간의 독서와 낭독은,


진용에게도

아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진영에게는

그녀의 머리를 일찍부터 확 트이게 한

획기적인 기회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이듬해 정월,


진용은 드디어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오랜만의 바깥공기를

한껏 맛볼 수 있었다.


그런 진용의 모습을 보며

미순과 덕관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대사와 유정스님을 비롯한

보현사의 스님들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쁘게 웃을 수 있었다.


신이 난 류현진은

금강산과 지리산에

반가운 소식을 전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바람처럼 산을 내려갔다.




진용이

자신의 힘으로 다시 세상에 섰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진영이었다.


진영은

오빠의 손을 꼭 잡은 채

오빠의 시선을 따라

눈앞에 펼쳐진 묘향산의 설경을

한참동안 같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명의 위기를 다시 한 번 극복해낸,


여덟 살 소년의 등은

전보다 한층 크고 두터워져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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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제 4 부 개화(開花) (57) 22.02.09 83 1 5쪽
162 제 4 부 개화(開花) (56) 22.02.07 89 1 8쪽
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8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9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9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9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4 1 9쪽
156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4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1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6 1 7쪽
151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2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1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6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5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5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6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9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8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7 1 7쪽
140 제 4 부 개화(開花) (34) 21.12.17 9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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