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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64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1.24 03:11
조회
93
추천
1
글자
9쪽

제 4 부 개화(開花) (50)

DUMMY

-6-


안현수와 박술녀가

배에서 내려 거처로 돌아가자,


임돌석은 다시 돛을 잡아

바람을 타고 강 위로 나갔다.


한참동안 강물을 바라보던 흑호가

몸을 돌려 배의 뒤쪽 선실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둘과 밀담을 나누던 선실과

벽 하나를 공유한 채 맞붙어 있는

작은 선실은,


커더란 미닫이 격자창이 달려있어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흑호가 작은 선실로 들어가

두건을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얼굴의 반을 가르듯

커더란 흉터가

왼쪽 눈에서 오른쪽 턱 부근까지

길게 새겨져있는,


호랑이 같은 굵고 긴 눈썹이

무척이나 돋보이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흑호는 길게 숨을 한 번 내뱉고는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려

공손히 자세를 바로 잡았다.


미닫이 창문을 활짝 열어

강바람을 맞으며 뒷짐을 진 채

바깥을 바라보고 서있는,


또 다른 사내의 뒷모습이

흑호의 눈에 들어왔다.


흑호는

천천히 사내의 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장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처리하였습니다.


안현수와 박술녀,

양쪽 모두

아주 기뻐하며 돌아가더군요.


역시 조장님의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러자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서있던 사내가

조용히 몸을 돌려 흑호를 바라보았다.


그 사내의 얼굴도 반쯤,

검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마와 두 눈만 드러낸 채

그 사내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다. 일랑.”


두건을 쓴 사내의 ‘수고했다’는 말에,


방금 전까지 자신을 ‘흑호’라 칭하며

안현수와 박술녀를 만났던 일랑이


‘진짜 흑호’에게 바로 허리를 숙이며

짧게 말했다.


“이랑과 삼랑이

미행도 잘 따라붙었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입니다.


무언가 이상이 보이면

바로 처리할 것이고,


약속한 대로 잘 이행이 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랑의 추가보고에

흑호는 대답대신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를 마친 일랑이

잠시 숨을 고른 후,

계속 궁금했던 것을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책사의 능력은 정말 신출귀몰 하군요.


추설 김덕관의 가족관계가


박술녀와 안현수,


더 나아가

금군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찌 알았을까요?”


일랑의 궁금해 하는 얼굴을

지그시 한 번 바라보더니,

흑호가 말했다.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의 주변엔

그들도 모르는 간자들이

선사가 살아계실 때부터

붙어 있었으니까...


그들이 모시는 도정궁의 윗선이

왜 그리 오랫동안 끈질기게

김덕관의 뒤를 쫓았는지,


책사도 그 이유까지는 모른다.


다만 그리도 열심히

오랜 세월 찾아다닌 이유가

둘 중의 하나일거란 생각은 했었지.


하나는 복수, 하나는 사냥.”


“복수...아니면 사냥이요?”


“그래, 하지만...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안현수든 박술녀든 간에,


그들은

동료의 복수 같은 것에

연연하는 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목적은 사냥,


그리고 사냥감은 아마도...

김덕관 주변에서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


어느 날 갑자기 그들 부부에게 생긴

그 사내아이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한 것뿐이다.


물론 그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그런 해석을 이끌어내는

책사의 능력도 대단하긴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팔도 곳곳에 거미줄처럼 깔아놓은

선사님의 정보망이다.”


흑호의 말에

일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선사님은

아주 오래전에 먼발치에서 뵌 적이

저도 몇 번 있습니다만,


정말 생각할수록 엄청난 분이시군요.


이 땅의 어느 곳이든,

그 분이 펼쳐놓은

천라지망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정보망을...”


흑호가 고개를 돌려

두건의 틈으로 드러난

두 눈을 반짝이며

일랑에게 말했다.


“선사께서 생전에 만들어놓으신

이 정보망의 진짜 무서운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적들의 주변에만

깔아놓은 것이 아니다.


동지들에게도 깔아놓으셨지.


아마 박술녀나 안현수에게만

간자와 세작들을

붙여놓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네?”


흑호의 마지막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일랑이 의아한 표정으로

흑호를 쳐다보았다.




흑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랑,


넌 어제 이랑과 함께

마포나루터의 박씨 주막에서

저녁으로 편육과 탁주를 먹었다.


탁주는 세 병, 편육은 두 접시


...맞느냐?”


“...아니..조장님께서 어떻게...그걸...”


흑호의 질문에

일랑은 말끝을 흐리며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실로 놀랍고 두려웠다.


흑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독특하거나 도드라져서

남들의 눈에 쉽게 드러난다면,


그건 간자나 세작이라 할 수 없다.


평범함이 극에 달해

세상의 풍경 속에

마치 공기처럼 섞여있어야


간자나 세작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건 우리 같은

살수(殺手)들도 마찬가지다.


일랑,


네가

얼굴에 큰 자상(刺傷)을 입은 뒤로,


내가 잠입임무를 맡기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암살은,

사냥감의 경계심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되니까 말이다.”


“..........”


일랑이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살짝 고개를 숙이자,

흑호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선사께서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만든

그 정보망을,


어떻게

서림 그자가 손에 쥐게 되었는지...


그것은 아직도 의문이다.


아마도 대두령님과 선사님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고

그걸 서림이 관리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은 한다만...”


“네...”


“서림 그자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랬는지는 모르나,


어찌됐든

책사를 통해 우리의 손에

그 ‘그물’을 넘겨준 것은

실로 천운이다.


평상시 임무처럼

대상의 주변에 자연스럽게 잠입해

암살을 시도하는,

우리의 특기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그 늙은이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지리산, 금강산 놈들까지 버티고 있는

적의 본진으로 직접 치고 들어가

책사를 구출해 와야 하는,


이번 일 같은 난제는

이 그물이 우리 손에 없었다면

아마 시도조차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면에서 적과 칼을 맞대고 싸우는

전면전은, 우리와 맞지 않아.”


“네...그래서 이번에 저들을 통해서

금군을 끌어들이시는?”


“우리 애들의 솜씨가

금군이나 도정궁의 사냥개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생각은 결코 아니다.


다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우리가 제일 잘 하는 것을

가장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도록

사전에 무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적들과 창칼을 맞대고 싸우는 것은,

우리보다

금군과 사냥개들에게 더 잘 맞는다.


특히 금군은, 그게 특기다. ”


“네.

그자들이 매일 밥 먹고 하는 일이

습진(習陣) 훈련이니까요.”


일랑이 흑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흑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이 서로 물어뜯을 동안

우리의 특기를 살려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


물론...우리 애들도

어느 정도 피를 볼 수밖에 없겠지만...


금군이나 사냥개들 덕에

우리 쪽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적들과 전면전에 임할 때

화살받이든, 방패든 간에...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네...그렇지요.


저희들까지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장님.”


“신경을 써준 것이 아니라,

일을 반드시 성공시키기 위해서다.


출정 전야까지 하루도 쉬지 말고

삼인살법(三人殺法)을

애들에게 계속 연습시켜라.


암살이 아닌, 전투에서

효율적으로 확실하게

상대를 죽이는 방법은

그것만한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조장님.”


“큰일을 앞두고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아까 내 말을 듣고 느꼈겠지만,


적들의 주변은 물론이고

동지들의 주변에도,


그리고 너의 주변에도


‘보우의 그물’이 깔려있음을

절대 잊지 말고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마라. 알겠느냐?”


“넷!”




일랑의 대답과 함께

흑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상념에 젖어든 것처럼,

강물을 지그시 쳐다보는 그의 두 눈은

아주 깊고 공허했다.


그들을 태운 배는

잔잔한 바람을 타고

한강의 남쪽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어디선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돛대 위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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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제 4 부 개화(開花) (59) 22.02.14 80 1 7쪽
164 제 4 부 개화(開花) (58) 22.02.11 81 1 7쪽
163 제 4 부 개화(開花) (57) 22.02.09 83 1 5쪽
162 제 4 부 개화(開花) (56) 22.02.07 88 1 8쪽
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7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9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9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9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3 1 9쪽
»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4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0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5 1 7쪽
151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1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0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6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5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4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6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8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7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6 1 7쪽
140 제 4 부 개화(開花) (34) 21.12.17 8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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