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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69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12.17 03:27
조회
89
추천
1
글자
9쪽

제 4 부 개화(開花) (34)

DUMMY

-3-


정월대보름,


보현사가

반가운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진용의 쾌유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지리산과 금강산의 사내들이었다.




지난 3개월 동안,

투병 중인 진용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덕관과 미순 부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고,


어린 나이에 글을 깨우쳐

오빠의 곁에서 책을 읽어준

여동생 진영도

정말 대단한 짐을

같이 짊어져 준 것이었다.


혹시라도 상태가 악화될까봐

수시로 들러 진용을 살펴보았던

서산대사와 유정스님,

보현사의 승려들도

많은 신경을 써주었고,


류현진은 틈날 때마다

묘향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좋은 약재와 먹거리를 구해왔다.


회합에서 정해진 새로운 방침에 따라

곽재우의 행적을 탐문하러

다시 팔도 곳곳으로 흩어진

추설과 목단설의 사내들도

수시로 사람을 보내

진용의 안부를 챙기긴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그들이

새롭게 해가 바뀌고

정월대보름을 맞아

진용의 쾌유를 축하하고자

묘향산에 모인 것이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분위기였겠는가.


그날 진용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을 보내고

여동생 진영의 손을 꼭 잡은 채

미순의 곁에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주인공인 진용이 잠들자,

대사를 필두로

어른들의 화기애애한 자리가 이어졌다.


대사의 허락을 얻어 술을 마시며

사내들은 기분 좋게 취해갔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쯤,


대사가 홀로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크고 밝은 멋진 달이

허공을 가득 채우고

은은한 달빛을

세상만물에 비춰주는

아름다운 밤이건만,


무언가 상념에 젖은 대사의 표정은

다소 우울하고 어두워보였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어둡습니다. 총사님"


옆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대사가 감았던 눈을 뜨고

몸을 돌려 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인 구대성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한용덕이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서있었다.


"편하게 술들 마시라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줬건만,

왜들 따라 나왔는가."


"마실 만큼 마셨습니다.


저희도 빠져주는 것이

자리가 더 편해질 것 같아서

구동지와 함께

달구경이나 하려고 나왔습니다."


"그런가?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로군.


우리 셋은 빠져주는 것이

애들에게는 훨씬 좋겠군."


대사가 한용덕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구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다실 툇마루에서 차나 한 잔 하시면서

달구경이나 마저 하시지요."


"...그럴까?"


구대성의 제안에

대사가 흔쾌히 응하며

셋은 자리를 옮겼다.




구대성이 차를 끓이고,

한용덕이 수발을 들어

셋은 향기로운 시간을 시작했다.


일각쯤 지났을까.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달을 올려다보던 대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직,

그자의 꼬리를 잡지 못했는가?"


"...예.


총력을 기울이곤 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사의 질문에 한용덕이 답하자,

구대성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거의 다 도달했고,

많이 몰아넣었습니다.


이번에 산을 내려가면

저희가 준비한 덫으로

머리를 들이밀게 될 것입니다."


구대성의 말에 대사가 물었다.


"무슨 덫이기에 그리도 자신하는가?"


대사의 물음에

구대성이 잠시 망설이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새끼를 밴 어미를

미끼로 쓸 것입니다."


새끼를 밴 어미,


구대성의 말에 담긴 뜻은

명확하고 잔인했다.


대답을 들은 대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


하긴 그것보다 더 좋은 미끼는

아마도 없겠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대사의 말에

한용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동지도 저도

오랜 고민 끝에 결심한 일입니다.


그자의 반려가,


그러니까...

남명 선생의 외손녀가

회임을 했다는 정보를

한 달 전에 얻게 되었거든요.


그자가 워낙에 신출귀몰해서

번번이 허탕만 치고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는..."


한용덕이 말끝을 흐리자

대사가 타이르듯 당부했다.


"충분히 이해하네.


다만, 최대한 신중해주게.


알아서들 잘 하겠지만,


우리의 싸움에 아무 상관도 없는

무고한 생명들을 희생시켜선

절대 안 되네."


"네. 총사님.


저희도 말씀을 뼈에 새기고

최대한 신중히 움직이겠습니다."


구대성이 다짐하듯 말했다.




대사가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자네들 둘만은 알아둬야 할 것 같아

미리 얘기해주겠네."


대사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욱 무거워져

둘은 잔뜩 긴장하고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진용이가...

아무래도 한 쪽 폐가 망가진 것 같아."


"네?"


대사의 말에

두 사내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확 떠올랐다.


대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부터 허파 한 쪽이

기형적인 모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지 않은가.


여기 온 이후

무량심법 수행을 꾸준히 시킨 것도,


나중에 그 아이가 몸이 커지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 단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미리 단련을 시킨 것인데..."


"....."


"하필 그 짐승이

가슴팍을 그리 깊게 할퀴는 바람에...


얼마 전부터 내가

진용이의 호흡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소리도 박동도 확실히 망가졌어.


예전으로 돌아오질 않아."


"아...이런 난감한 일이..."


대사가 전한 비보에

한용덕이 탄식을 내뱉었다.


구대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진용이의 건강뿐만이 아니라...


수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인가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없을 걸세.


무리하지 않고

평범하게만 살아간다면...하지만...."


대사가 왜 말끝을 흐리는지

두 사내도 잘 알고 있었다.


대사가 잠시 말을 끊고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 후

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들도 이미 알고 있지?


저 아이의 무재가

하늘에서 내려준 대단한 것임을.


일평생 이 길을 걸어온 나조차도

저런 빛나는 원석을 만나본 적이 없어.


무술이라는 분야에 천재가 있다면,

아마 진용이를 두고 하는 말일 걸세."


"네.

저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용덕이 대사의 말에 동의하자

구대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련 자체를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가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


좀 더 건강을 회복시킨 후에

조금씩 알아봐야겠지.


하지만...아마 힘들 거야.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만,


모든 무예의 기본은

호흡이 만들어주는 체력 아닌가.


그게 없이는

토대가 만들어지기 힘들어."


"...그렇지요.


숨이 계속 순환되질 않으면

초식 자체를 쓸 수가 없으니까요.


실전에서는

순서를 마구 뒤섞어 쓰는 연속기가

가장 중요하니..."


한용덕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사의 말에 동의했다.


"하늘이 참 원망스럽군요...


어째서 하나를 주고서

하나를 빼앗아 가는지...


어째서 다 주지를 않는 건지...


저 아이가 백일도 되기 전부터

그리 가혹한 고난을 던져주더니


또 이렇게..."


구대성의 한탄에

슬픔이 가득 담겨있었다.


대사가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우울한 침묵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며

차를 홀짝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어느 순간, 대사가 입을 열었다.


"아직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어.


적어도 열다섯 살은 되어야

확신을 할 수 있겠지.


그러니

칠년의 시간은 벌었다고 생각하세.


내가 그동안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거야.


저 아이의 천재적인 재능도 살리고,

명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네...그리 되어야죠.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한용덕이 대사의 말에 동의하자

구대성이 강조하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꼭,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총사님.


꼭...반드시..."




두 사내의 비장한 결의를 들으며

대사가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으나,


그들이 눈에는

달빛이 왠지 슬퍼 보였다.


셋의 침묵이 길어지고

차로 입을 적시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왔다.


고요하고 쓸쓸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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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9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9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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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0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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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0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6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5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4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6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8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7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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