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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67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1.12 03:23
조회
91
추천
0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45)

DUMMY

그날 저녁,


해가 지고

모든 손님들이 돌아간

한적한 밤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부뚜막에 서서

국밥을 만드느라

허리가 너무 아팠던 김기훈은

잠시 툇마루에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했다.


‘아...저녁밥도 먹고,

얼른 묘향산으로 보낼

통문도 써야하는데...


오늘 너무 피곤하구나.


어차피 내일 새벽이나 되어야

역참에 보발꾼들이 모일 테니

조금만 더 누워있자.’


그렇게 피곤한 몸을 누이고

툇마루에 누워있던 김기훈은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달빛도 구름에 가려 어슴푸레했던

그날 밤,


검은 옷과 검은 두건으로

온몸을 가린 채

어둠 속에서 두 눈만 반짝이는

네 명의 사내가

양재역참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둘러 움직인 그들이 발을 멈춘 곳은

홍방의 남쪽 연락소인

김기훈의 주막 앞이었다.


사내들 중 하나가

맨 뒤에 서있는

마른 체구의 키 큰 남자에게 말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

조장님까지

직접 나서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


조장님이라 불린 사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이번엔 또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조장님께서 왜 이리 신중하게

일을 꾸미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깟 도둑질의 포석을 깔기 위해


그 밀주업자 일가를

모조리 죽인 것도 그렇고,


큰 재물까지 들여

사람들을

백 명도 넘게 푼 것도 그렇고...


너무 번거롭게

일을 처리하시는 느낌입니다.


지금 저희가

전력을 집결해 들이치면,

묵향루든 연풍관이든

하룻밤이면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남자의 말에 드디어,

조장이라 불린 사내의 입이 열렸다.


"일랑(一狼),

책사의 당부다. 신중해라."


짧지만 강한 어투로

사내의 말이 끝나자,


일랑이라 불린 남자가

바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넷. 죄송합니다. 조장님.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자신의 말에 겁을 먹은듯한

수하의 모습을 보고


조장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돌려


이번엔 처음 말을 꺼낸 남자에게도

무겁고 짧게 말했다.


"이랑(二狼),

고부에서의 일을 벌써 잊었느냐?"


그러자 이랑이라 불린 남자도

바로 허리를 깊숙이 굽히며

간곡한 사죄의 말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조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주 잠깐 침묵이 흐른 후,

조장이라 불린 사내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놈들이

난생 처음 보는

화약무기까지 썼던 것을

절대로 잊지 마라.


대두령께서도

끝내 무릎을 꿇리지 못한,

전통의 강자들이다.


그자들만으로도 버거운데

이젠 묘향산의 늙은이까지 끼어들었다.


책사가 그자들의 손에 떨어진 지금,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넷!"


"우리들의 방패가 되어주셨던 대두령은

이제 이 세상에 안계시다.


내가 구월산의 흑호이고,


너희들이

살수대 흑랑(黑狼)이라고 해서,


무작정 우리를 두려워하거나

우리에게 맞서지 않고

도망치기에만 바쁜 적들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없다.


대두령이 돌아가신 지금,

우리의 둥지는

우리의 힘으로 직접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반드시,

책사를 구출해야만 한다.


심신이 상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최대한 빨리."


"넷!"


수하들이

자신의 말에 결연한 의지를 보이자


조장이라 불린 사내, 흑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주막의 안쪽을 정탐하러 갔던 남자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늘 하루 종일

저희가 보낸 손님들 상대하느라,


김기훈은

많이 지쳐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며

잠이 깊이 들어있는 상태고,


다른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용인들은

아까 장사가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삼랑(三狼).


자, 그럼 다들 들어가 보자.


우리가 찾아야할 곳은,

통문들이 보관된 장소다.


신속하고 조용하게 처리해라."


"넷!"


흑호의 명령에

세 명의 사내가 짧게 대답하고

재빨리 주막 안으로 숨어들었다.


흑호는

부하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천천히 주막의 마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흑랑의 조원인 사내 셋은,

어둠 속에서도 아주 능숙하게

주막의 구석구석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밀문서가 숨겨져 있을만한 장소를

몇 군데 특정하여

가장 먼저 뒤지기 시작했는데,


살림집의 옷장,

부엌의 선반에 놓인 상자들,

헛간의 연장상자 같은 곳이었다.


일각 정도의 시간 동안

치밀하게 수색을 했음에도

홍방의 통문은커녕,

종이쪼가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유일한 수확이라면,

헛간의 연장상자에

농기구대신 들어있던

병장기 몇 개가 다였다.


허탕을 친 셋이

다시 마당으로 모여,


곤히 잠들어있는 김기훈을 지켜보며

툇마루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는

흑호에게 보고를 했다.


"쉽지 않습니다.


문기가 숨겨져 있을만한 장소를

어느 정도 추려서

샅샅이 훑었습니다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발견한 것이라고는,

헛간에 숨겨놓은

각궁 하나와 칼 두 자루 뿐입니다."


일랑의 보고를 받은 흑호가

책사의 말을 떠올리며

잠시 고민해보았다.


'이 자들은

정해진 암호를 조합하여

정보를 완성한 후,


문장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어 넣어

평범한 편지처럼

기밀문기나 통문을 만든다고

재우에게 들었다.


그렇다면,

숨기기 좋은 곳보다는

굉장히 허술해 보이는...

그런 의외의 장소일수도 있다.'


생각을 정리한 흑호가

천천히 주막의 안을 둘러보았다.


출입구 옆의 헛간,


그 옆에

손님들을 재우는 봉놋방 두 개,


그 옆에 부엌,


부엌 옆에 살림방,


그리고 한참 떨어진 곳에

마구간과 측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역참의 주막이었다.


흑호는 곽재우가 말해준 것들을

계속 곱씹어가며

주막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흑호의 발이 한 장소에서 멈췄다.




흑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마구간 기둥에 매달려있는

보발꾼들의 행장꾸러미 앞이었다.


매일 저녁 해질 무렵이면


일을 마친 보발꾼들이

자기가 쓰는 행전이나 토시,

가죽을 덧댄 튼튼한 미투리나

솜옷 같은 개인장비를


행장에 둘둘 말아

주막에 맡겨놓고

국밥 한 그릇에

탁주 한 사발을 비우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무못이 여러 개 박혀있는

마구간 기둥에는


열 개도 넘는

각양각색의 행장꾸러미들이

걸려있었다.


흑호가 고개를 돌려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 행장꾸러미들을

한 개도 빠짐없이

툇마루로 다 가져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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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제 4 부 개화(開花) (56) 22.02.07 88 1 8쪽
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7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9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9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9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4 1 9쪽
156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4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0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5 1 7쪽
»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2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0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6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5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4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6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8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7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7 1 7쪽
140 제 4 부 개화(開花) (34) 21.12.17 89 1 9쪽
139 제 4 부 개화(開花) (33) 21.12.15 100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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