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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68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1.14 04:38
조회
85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46)

DUMMY

명령을 받은 사내 셋은

신속하게 움직여

행장꾸러미들을 수거해

흑호의 앞에 늘어놓았다.


흑호가 툇마루에 앉아

자신의 앞에 놓인 행장꾸러미들을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그의 바로 옆에는

큰 소리로 코까지 골며

김기훈이 깊이 잠들어있었다.




행장꾸러미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었다.


어떤 것은

언문으로 김, 박 같은 성씨가

바느질로 수놓듯 새겨져있었고,


또 어떤 것은

낡고 해진 부분을

조각 천 같은 것으로 덧댄 것도 있었다.


똑같은 행장꾸러미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 물건들의 주인이

각각 정해져있다는 뜻이다.


흑호가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지리산 본진에 보내는 기밀문기나

동지들끼리의 암호통문 배달 같은

중요한 일에는

아무 보발꾼이나 쓰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길을 아주 잘 찾거나

발이 제일 날랜 것으로 인정받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보발꾼이겠지.


어쩌면 이곳의 보발꾼들이

모두 한패일수도 있고...’




그렇게 하나하나씩 신중히 살펴가던

흑호의 눈에

특이한 행장꾸러미 하나가 들어왔다.


꾸러미가 풀리지 않도록

가죽 끈으로 단단히 묶어놓은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끈의 색깔이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붉은 색이었다.


누군가가 염료를 써서 붉게 물들인

튼튼하고 질긴 가죽 끈이었다.


이거로군...


자신이 정답을 찾았다는

강한 예감을 느낀 흑호가

그 행장을 집어 들고

묶여있는 붉은 가죽 끈을

천천히 풀어보았다.


잠시 후,

풀어진 행장 안에서

수십여 장의 문기가 나왔다.


두건 안에서 빛나고 있던

흑호의 두 눈이 반짝였다.


흑호는

한장 한장씩

문기를 차분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진 정인(情人)에게

안부를 묻는 기생의 연서부터


급히 쌀을 좀 보내달라는

상인의 기별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평범한 편지처럼 쓰여 있었으나,


이 서한들에는

딱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보내는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보내질 곳은 모두 같았다.


평양의 대동강 나루터에 있는

서북객주의 행수 이구남.


흑호의 머릿속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 땅에서

이십 년이 넘게 머무른 내가 알기로,


평양의 대동강 나루터에는

서북객주라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객주의 행수를 맡고 있는

이구남이란 자도 존재하지 않겠지.'


드디어 원하는 답을 찾은 흑호가

서한들을 다시 둘둘 말아

원래의 형태로

행장꾸러미에 담아놓으며

마지막으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열 개도 넘는 모든 통문이

평양으로 간다.


그렇다는 건,

지금 추설의 지휘부가

평양이나 그 근교에 머문다는 뜻이다.


그러나 평양에는

우리 쪽 사람들도

이미 만만치 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불안한 곳으로

굳이 위험을 무릅써가며

우리 책사를 납치해서

끌고 가진 않았을 터,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늙은 중이 있는 곳.

묘향산 보현사다.


재우는 그곳에 잡혀있다.'




찾고자했던 답을

드디어 발견한 흑호는

가죽 끈을 다시 힘주어 묶으며

풀어헤쳤던 행장꾸러미를

원래대로 복구시켰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흑호가

수하들을 향해 말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가져다 걸어놓아라.


여기서는 더 볼 일이 없다.


답을 찾았으니

이제 서둘러 움직일 일만 남았다."


"넷."


신속히 명을 수행한 사내 셋이

흑호의 곁으로 막 돌아온 순간,

갑자기 곤히 잠들어있던

김기훈의 몸이 심하게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날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흑랑의 사내 셋이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어 들고

김기훈에게 다가갔다.


들키기 전에 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때

짧고 굵은 흑호의 목소리가

그들을 제지했다.


"그만...잠시 기다려라."


흑호의 명령에

셋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흑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자를 죽이면,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된다.


저들에게

우리의 의도나 행적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신중하게 움직였는지

벌써 잊었느냐?"


그러자 일랑이 답했다.


"하지만 조장님,


저자가 깨어나기라도 하면...

일이 더 커집니다.


어쩌면 지금도

자는 척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흑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삼랑만 가까이 다가가서

저자의 숨소리를 살펴라.


만약 일랑의 말대로라면, 처리해라."


명령을 받은 삼랑이라 불린 사내가

김기훈의 바로 곁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

신중히 기척을 살피기 시작했다.


무언가 악몽이라도 꾸는지,

김기훈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삼랑이 오른손에 비수를 쥔 채

그런 김기훈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얼마 후,

김기훈이 뒤척임을 멈추고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의 호흡이 다시 일정해지는 것까지

확실히 확인한 삼랑이

다시 흑호에게 돌아와 보고했다.


"잠에서 깨거나 한 건 아닙니다.

자는 척 하는 것도 아니고요.


숨소리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조장님의 판단이 맞습니다."


"그래...그럼 되었다. 얼른 돌아가자."


그렇게 목적을 완수한 흑호 일행은

서둘러 김기훈의 주막을 빠져나왔다.




역참마을을 벗어나자

일랑이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이랑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참 웃기는군."


"뭐가?"


"저 자가 가진 정보를

이렇게 표시가 나지 않게 얻으려고,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던

그 밀주업자와

죄도 없는 그자의 처자식을 죽였는데...


정작 저 자는

자기가 죽을 뻔한 것도 까맣게 모르고

저렇게 꿈속을 헤매고 다니는군."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


누군가는 자다가 날벼락을 맞고,

누군가는 자다가 횡재를 하고...


저 자는 아마 오래 살 걸세.


방금 자기도 모르게

저승문턱을 밟고 돌아왔으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호가

조용히 한 마디를 던졌다.


"그것이 운이라는 것이다.


세상일의 모든 결론은

사람이 내지 않는다.


마지막은 항상, 운이 결정짓는 법이다.


돌아가신 대두령님처럼..."


"아...네...."


"그러니, 너희들도 꼭 명심해라.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성사시키려 노력은 하되,

운을 놓치지 않도록

항상 신중해야한다는 것을..."


"넷. 조장님."


그때,

길잡이를 하며 먼저 앞서간 삼랑이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삼랑이

흑호에게 말했다.


"양재천에 다 왔습니다.


배는 저기 있습니다."


서둘러 삼랑의 뒤를 따른 흑호 일행이

갈대숲속에 숨겨져 있던

나룻배에 올라탔다.


그들이 탄 배는

시커먼 강물을 거슬러 올라

곧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몇 시진 후,


시끄러운 새소리와

서늘한 아침공기에

눈을 뜬 김기훈이

툇마루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침 해가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간밤에

저승사자들이 다녀간 줄도

까맣게 모르고,


김기훈은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후

평상에 앉아

그날의 일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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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제 4 부 개화(開花) (57) 22.02.09 83 1 5쪽
162 제 4 부 개화(開花) (56) 22.02.07 88 1 8쪽
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7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9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9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9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4 1 9쪽
156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4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0 1 8쪽
»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6 1 7쪽
151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2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0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6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5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4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6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8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7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7 1 7쪽
140 제 4 부 개화(開花) (34) 21.12.17 89 1 9쪽
139 제 4 부 개화(開花) (33) 21.12.15 100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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