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75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2.07 06:03
조회
88
추천
1
글자
8쪽

제 4 부 개화(開花) (56)

DUMMY

-3-


그날 밤,

묘향산 정상에는 보름달이 떴다.


아주 둥그렇고 커더란, 밝은 달이었다.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여러 줄기의 맑은 시냇물들이 시작되는,

정상부근의 폭포 근처에

넓고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묘향산의 수원(水原)에 해당되는,

아담하지만 세찬 물줄기를 떨어트리는

폭포 주변엔


그 큰 바위를 중심으로

초목과 돌들이 물과 어우러져

아주 예쁜 계곡을 형성하고 있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비춰주는 밤이라 그런지,


달빛을 제대로 받은 오늘,

계곡의 밤풍경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그 아름다운 풍경 정중앙에

무척이나 이질적인 존재 하나가

바위위에 우뚝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온몸을 검은 색으로

휘감은 것도 모자라,

얼굴과 머리 전체까지

검은 두건으로 가린

그 호리호리한 사내는,


자신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바깥으로 형체를 드러낸 두 눈으로

아까부터 한참동안

달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구월산의 살수대 흑랑을 이끄는

임꺽정의 칼, 흑호였다.




흑호의 주변에는

역시 검은 색으로 복장을 통일한

수십여 명의 흑랑대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며

조용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계곡 입구에서

그들과 똑같은 복장을 한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자,


흑호가 달을 올려다보던

자신의 시선을 거두며

언짢은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필...오늘 달이 저리도 밝다니...

구름 한 점 없구나.


날씨 운이 없군. 요즘..."


그때,

계곡 입구에서부터

서둘러 달려온 사내가

바위에 올라

흑호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그 사내는 흑랑의 부조장 중 한 명인

일랑이었다.


"안현수가 이끄는 사냥개들이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숫자는

다 합쳐서 팔십이 조금 넘습니다.


선발된 금군들과

도성에서부터 같이 움직여서 그런지,

약속시간보다 좀 늦은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 조원들 삼십 명까지 합하면,

전력은 우리가 월등히 우세할 것이다.


다만..."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도?"


일랑이 묻자

흑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저리도 달빛이 밝아서야...

우리의 검은 색이

더 도드라지기만 할 것이다.


본시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자

일부러 검은 색을 입는 것이거늘..."


"아....네..."


"뭐, 어쩌겠나. 감수해야지.

날씨를 내 뜻대로 바꿀 수는 없으니...


안현수는 어디 있나?"


"저 아래 쪽 공터에 모여

지금 병장기들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금군무사들도 함께요."


"그래...


금군은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따로 챙겨왔더냐?"


"특이한 거라면...


갑주를 갖춰 입고

방패를 든 창잡이들이 몇 있었고,


아, 아까 언뜻 보니

총통을 몇 자루 챙겨온 것 같더군요."


"갑주를 입고 방패를 든 창잡이에

총통이라....


글쎄, 둘 다 야습에 써먹을 무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알았다."


"금군무사들이 합류한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좀 실망입니다.


느슨하게 삐딱하니 모여 있는 걸 보니

군기도 많이 빠져있는 것 같고,


야습에 어울리지 않는

병장기들을 챙겨온 것도 그렇고...


어떤 자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처럼

투구까지 쓰고 있었습니다."


"나랏님을 지키는 칼들이

요 몇 년 새

많이 녹슬었나보구나.


괜찮다. 나에게 생각이 있으니...


우리도 움직이자.


얼른 가서 작전을 짜야지.


각자 맡을 곳을 분담해서

배치도 해야 하고."


"넷!"


흑호가 앞장서고,

뒤따르던 일랑이 수신호를 보내자

바위 주변에 흩어져있던

흑랑의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대오를 갖추고

약속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흑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계곡 아래 공터에 모여

무기들을 점검하던,


안현수가 이끄는 사냥개부대는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그들의 신경이 곤두서있던 이유는,


도성에서부터 합류해

요 며칠 동안 같이 움직인

금군의 무사들 때문이었다.




물론 안현수 본인도 그렇고,

그의 수하들 중 몇몇은

금군 출신자들도 있었으나,


이번 임무에 같이 투입된

금군무사들과

사냥개부대의 금군출신자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그 차이란 바로,

입격(入格)의 여부였다.


정창수가

이번 임무를 위해 직접 선발한

금군의 무사들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한 무사들,



무과에 합격한 공인된 실력자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사냥개부대는


당장 수장인 안현수만 해도

상단의 호위나 서던 칼잡이를

박술녀의 부탁을 받아

정난정이 억지로

겸사복에 꽂아 넣은 자였고,


다른 몇몇 금군출신자들도

사정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사실들을 뻔히 알고 있는

금군무사들이,


무과에 입격하여 품계를 받아

정식으로 무반의 신분을 얻은

금군의 현직무사들이


그런 처지의 안현수와 사냥개부대를

인정할리도 없었고

굳이 어울릴 일도 없었다.


왕의 외삼촌이자

무과 갑과 출신의 선전관인

정창수가 명령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이번 임무에서

안현수의 통솔을 받고 있지만,


도성을 떠나올 때부터

금군의 무사들은

이번 임무의 지휘체계에 대해

내내 언짢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며

시비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도

몇몇 있었으나,


그때마다 안현수의 임기응변으로

어찌어찌 잘 넘기고

겨우 약속장소인 이곳에

때를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두 무리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파여 있었고,


직접적인 충돌만 없었을 뿐이지


같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료라기보다는

사이가 나쁜 이웃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이런 감정적인 문제 말고도,


'허울뿐인 지휘자'인 안현수의

머리를 아프게 만든 또 다른 문제는

금군무사들이 가져온 장비들이었다.


그들이 챙겨온 무기와 방어구,

옷 안에 받쳐 입고 온 두꺼운 찰갑들...


어떤 자는 아예

갑주와 투구까지 가져왔다.


기동성을 중시해야 하는 야습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습진용 병장기들이었다.


세상의 어떤 살수가

야음을 틈타 적을 습격할 때,


자기 키보다 더 큰 창과

무겁기 만한 전장용 방패를 들고

두꺼운 갑옷을 입은 채

둔한 걸음으로 열을 맞춰

진을 짜서 잠입을 하겠는가.


여기가 전쟁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번 임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신속하고 은밀하게

처리해야할 일인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무술실력은

당연히 뛰어나겠지만,


야습의 기본조차 모르는,

실전경험이 전무해 보이는

금군무사들을 바라보는

안현수의 마음은


그렇게 새까맣게 타들어간 지

이미 오래였다.


혹시라도

저들 중에서 사망자라도 나오면


정창수가

자신을 얼마나 꾸짖고 핍박할지

겪어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안현수의 머리는 더욱 아파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둘러보던

안현수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커더란 보름달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오늘밤은 달이 엄청나게 밝군.


그나마

총통은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이걸 야습이라고 할 수가 있나.


흑호에게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하는가...


갑갑하구나. 정말....'


그렇게 달을 올려다보는

안현수의 심난함과는 아무 상관없이

약속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잠시 후 숲을 헤치고

흑호가 이끄는 살수대 흑랑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8 제 4 부 개화(開花) (62) 22.02.21 77 0 7쪽
167 제 4 부 개화(開花) (61) 22.02.18 78 1 5쪽
166 제 4 부 개화(開花) (60) 22.02.16 81 1 6쪽
165 제 4 부 개화(開花) (59) 22.02.14 80 1 7쪽
164 제 4 부 개화(開花) (58) 22.02.11 81 1 7쪽
163 제 4 부 개화(開花) (57) 22.02.09 83 1 5쪽
» 제 4 부 개화(開花) (56) 22.02.07 89 1 8쪽
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7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9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9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9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4 1 9쪽
156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4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7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0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6 1 7쪽
151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2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1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6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5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5 1 7쪽
146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6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8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8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7 1 7쪽
140 제 4 부 개화(開花) (34) 21.12.17 90 1 9쪽
139 제 4 부 개화(開花) (33) 21.12.15 100 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