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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54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12.31 01:18
조회
95
추천
1
글자
8쪽

제 4 부 개화(開花) (40)

DUMMY

제6장 거래


-1-


한참동안 의식을 잃었던 곽재우는

자신의 몸을 엄습하는

매섭고 축축한 한기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온통 캄캄한 주변의 풍경만이

그의 눈을 감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는,


근처 어디선가

일정한 간격으로 땅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자신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온통 젖게 만든 바닥의 축축한 습기,


그리고

앞쪽에서 차갑게 불어와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바람의 감촉뿐이었다.


‘대충 느낌으로만 보자면,

동굴 같은 곳인가...


도대체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것인가.’




그는

한참의 시간동안 의식을 놔버린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두 손과 두 발을 단단히 결박한

쇠사슬을 풀어보려 안간힘을 써보았다.


그러나

그의 몸을 구속한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 힘을 써보던 곽재우는

평상시 그의 버릇대로,

쓸데없는 일에

기력을 낭비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해가 뜨면,

저쪽에서 알아서 날 찾아오겠지...


저들이 날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여직 내가 이렇게 살아있을 리도 없고,


이런 번거로운 일을

일부러 하진 않았을 테니...’




그렇게 답답하고 불쾌한 시간이

한 시진쯤 지났을까.


어둠에 익숙해진 그의 눈을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의 빛이

조금씩 파고들었다.


‘역시, 여긴 동굴이 맞았군.’


춥고 음습한 공간을 파고든 햇빛이

천천히 어둠을 밀어내며

주변의 풍경에 형체를 만들어주었다.


그의 예상대로,

그가 묶여있는 곳은 동굴 안이었다.




그렇게 날이 밝고

완전한 빛이

동굴의 앞쪽을 점령했을 때,


세 명의 사내가 입구에 나타났다.


햇빛을 등에 진 사내들의 얼굴은

크게 그늘진 음영 탓에

시커멓게만 보여,


곽재우의 불안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천천히 곽재우의 앞으로 다가온

사내 중 하나가

잠시 물끄러미 그의 상태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돌려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 자가 깨어났다고

총사께 알려드리게.


지금 어르신들과

본당 근처에서 아침산책 중이시니."


사내의 말이 끝나자

둘 중 한 명이 몸을 돌려

서둘러 동굴을 빠져나갔다.


곽재우는

자신의 앞에 남아 묵묵히 서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두 사내에게 물었다.


"내 아내는...어찌 되었소?"


곽재우의 질문을 받고 잠시 침묵하던

사내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애당초 네놈이 목적이었을 뿐...

네 부인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


그날 절에 가지 못한 것을 빼고는...


그러니 안심해라."


가장 걱정되고 두려웠던 질문에

적들이 답을 해주자,


곽재우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내 예상이 들어맞았어.’


그렇게 자신을 다독인 곽재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도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거요?"


두 번째 질문엔,

사내들이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곽재우가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여긴 도대체 어디요?"


세 번째 질문에는 쉽게 답이 돌아왔다.


"묘향산 금강굴이다."


사내의 대답을 들은 곽재우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자들에게 붙잡혀

정신을 잃은 곳이 경상도 의령 땅인데,

여기가 평안도 묘향산이라고?


그럼 도대체 내가

며칠이나 의식을 잃었다는 것인가...


이 자들은

무슨 신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기에...’




물론,

곽재우가 생각하는 신묘한 재주 따윈

사내들은 부리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잃은 곽재우를 결박하고,


입안에 조금씩 꾸준히

마폐탕을 흘려 넣어

가사상태를 유지시켰던 것뿐.


배를 타고 최대한 빠른 물길을 찾아

평양까지 왔으니

아마 일주일쯤 걸렸으리라.


하지만 이런 자세한 이야기를

곽재우에게 해줄 필요는 없기에,


아까의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놀라버린 곽재우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잠시 후,


동굴의 입구에

사람의 형체 여럿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소식을 전하러 동굴을 나간

커더란 덩치의 사내가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따라

일곱 명의 남자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 후,

모두 열한 명의 사내들이

곽재우의 앞에 섰다.


곽재우는 마음의 동요를 감추려

자신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때,

사내 중 하나가 부싯돌을 켜서

섶에 불을 붙였다.


어두웠던 주변이 갑자기 확 밝아지자

곽재우는 인상을 구기며

두 눈을 찡그렸다.


사내들의 가운데에 서있던 노승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유명한 의령의 곽재우냐?


어디 얼굴 좀 보자."


곽재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누구...십니까..."


노승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난

휴정이라는 법명을 쓰는 늙은 중이다.


세인들은 나를

서산대사라고 부르는 것 같더구나."


노승의 정체를 들은

곽재우의 눈이 소처럼 커졌다.


적의 대장이 자신의 앞에

웃으며 서있는 상황이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곽재우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서산대사가 말했다.


"자...우리 이제 얘기를 좀 해보자.


도대체 네가 무슨 생각으로,


상처 입은 호랑이를

세상에 다시 풀어놨는지 말이다."


대사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곽재우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2-


"날 어쩌실 작정이시오?"


물 한 바가지를 청해

갈증을 해결한 곽재우가

당돌하게도 먼저 질문을 던졌다.


서산대사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다...


너와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너에 대한 생사여탈권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


너 때문에 수많은 동지들을 잃은

이 사람들이 정할 테니...


다만,

네가 나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한 번 말은 꺼내보마.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자고."


대사의 대답에

곽재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같은 불리한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곽재우의 침묵이 길어지자

대사가 물었다.


"자,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자.


너,

도대체 어떻게

흑호와 연을 맺게 되었느냐."


곽재우가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답했다.


"이지함 어르신이

스승님과 친분이 깊으시오."


대사가 엄한 목소리로 꾸짖듯 말했다.


"토정이?


그럼 토정이 너에게

임두령을 소개시켰다는 것이냐?


임두령이 죽은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네가 그때 몇 살인지나 아느냐?


아무리 토정과 임두령이

친분이 깊었다 해도,


열 살도 안 된 꼬마를

임두령이 맘에 들어 해서

가장 아끼는 심복을

네놈의 동지로 붙여주었다는 말이냐?


이런 간 큰 놈을 보았나.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을 말하다니..."


곽재우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덧붙였다.


"가장 최초의 연결고리는 토정선생이시오.


다만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토정어르신이 소개시켜주신

구월산 두령 중 하나요."




곽재우의 답변에

주변의 모두가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임꺽정의 의형제들인

구월산의 일곱 두령들은


모두 토벌군에게 맞서다 죽었거나,

잡혀서 참수되었기 때문이다.




서산대사가 다시금 언성을 높였다.


"이놈이...


어지간하면

좋게 대화를 이어가보려 하였더니,


입만 열면 거짓부렁이구나.


진짜 곤욕을 제대로 치러볼 테냐."


그러자 곽재우가

이번엔 항변하듯 크게 소리쳤다.


"거짓이 아니오!


나를 흑호 사부와 연결시켜 준 것은

서림이오."




서림...


곽재우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대사가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자,

뒤에 서있던 한용덕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서림 그자가 아직 살아있다고?


대두령을 관군에 팔아먹은

그 배신자가 아직도?"


좌중의 분위기가 심하게 요동치자

실로 뜻하지 않게

대화의 주도권이 곽재우에게 넘어갔다.


"그렇소.


구월산의 팔두령 중

마지막 생존자로서


그리고

대두령을 비롯한 나머지 일곱 두령을

모두 죽게 만든 배신자로서...


서림은 살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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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제 4 부 개화(開花) (56) 22.02.07 88 1 8쪽
161 제 4 부 개화(開花) (55) 22.02.04 87 1 10쪽
160 제 4 부 개화(開花) (54) 22.02.02 88 1 6쪽
159 제 4 부 개화(開花) (53) 22.02.02 88 1 7쪽
158 제 4 부 개화(開花) (52) 22.01.28 88 1 12쪽
157 제 4 부 개화(開花) (51) 22.01.26 93 1 9쪽
156 제 4 부 개화(開花) (50) 22.01.24 93 1 9쪽
155 제 4 부 개화(開花) (49) 22.01.21 96 1 7쪽
154 제 4 부 개화(開花) (48) 22.01.19 93 1 7쪽
153 제 4 부 개화(開花) (47) 22.01.17 100 1 8쪽
152 제 4 부 개화(開花) (46) 22.01.14 85 1 7쪽
151 제 4 부 개화(開花) (45) 22.01.12 91 0 7쪽
150 제 4 부 개화(開花) (44) 22.01.10 90 1 10쪽
149 제 4 부 개화(開花) (43) 22.01.07 95 1 10쪽
148 제 4 부 개화(開花) (42) 22.01.05 94 1 10쪽
147 제 4 부 개화(開花) (41) 22.01.03 84 1 7쪽
» 제 4 부 개화(開花) (40) 21.12.31 96 1 8쪽
145 제 4 부 개화(開花) (39) 21.12.29 85 1 11쪽
144 제 4 부 개화(開花) (38) 21.12.27 88 1 7쪽
143 제 4 부 개화(開花) (37) 21.12.24 88 1 7쪽
142 제 4 부 개화(開花) (36) 21.12.22 87 1 7쪽
141 제 4 부 개화(開花) (35) 21.12.20 8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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