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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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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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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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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62.

DUMMY

*



홍인수와 옌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홍인수는 언제나 늘 나이스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편이었다. 처음부터 그가 그렇게 입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점퍼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서 바뀐 습관이었다.


어쩌면 생사의 근처에 있는 경험을 하고 나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총알이 날아드는 교전 상황에서 동료가 다치거나, 죽는 일도 겪었다. 그 자신은 언제나 운이 좋게도 큰 상처 없이 살아남아 돌아왔고, 또 그의 재능으로 많은 동료들을 무사하게 귀환시킨 적도 많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는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삶, 늘 그럴싸하게 차려입고 준비를 좀 해두자.


라고 문장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 홍인수는 자신이 번 돈을 쓸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부양해야 할 가족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은 두 분이서 노후를 책임질만한 벌이가 되는 분들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찾아 뵈는 일이 아주 뜸해지긴 했지만.


그리고 부모님보다도 더 적게 보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잘 살고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일을 하고, 아이를 하나 낳아서 제대로 키우면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점에서 홍인수보다 훨씬 그럴듯하고 번듯한 삶을 구가하는 지도 모른다.


홍인수는 늘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마스터라는 칭호나, 그에 걸맞은 경험과 체력, 재능과 기술들은 그런 삶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성과 매너리즘을 부과했지만 점퍼이든 마스터이든 총알 한 방을 잘못 맞으면 그대로 골로 가는 건 여전히 똑같았다.


그럴 때면 또 인생의 경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요즈음에는 커맨더가 자신을 현장 요원에서 후방 임무쪽으로 돌리고 있었고, 조직 전체의 운영을 경험시킨 뒤 자신의 후임으로 삼으려는게 아닌가 한 지가 꽤 된 상황이었다.


여전히 일정 비율 이상의 현장 임무는 맡고 있었지만 이전보다는 줄었다. 커맨더가 되어서 더 편해지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골머리를 썩는 일이 더 늘어나면 늘어날 테였지.


언제든 사건은 벌어지고,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그 현장에 나서는 무수한 현장직 요원들의 삶과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는 건 도리어 앞에 나서는 것보다 더 심각한 부담감이 있는 일이었다. 교전 상황, 실제 상황과 조직의 운영에 포함되는 무수한 숫자들을 단순히 숫자로 느끼고 이성적인 판단을 이어나가기까지는 어느 정도, 마모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과정이 필요할 지 몰랐다.


리더라는 건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히 힘이 좋아서 앞장 서서 헤쳐 나가는 것보다도 더 막중한 일이었다.


애초에는 그런 일환이기도 했다. 조직에 새로이 들어온 인원이면서, 주요한 특질의 점프 능력을 가지고서 있는 옌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조직에 더욱 헌신을 하도록 케어하는 일은 말이다. 홍인수는 그녀와 자주 임무를 수행했고, 태국인이며 외부인에서 근래에 소속이 바뀐 그녀가 적응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이런 특질의 재원들이 안정적으로 조직을 위해 일할수록 조직 전체의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당장 레이더의 능력으로 인해 사방을 이잡듯 답도 없이 헤집어야 했던 무수한 인력이 업무 강도의 감소를 느끼고 있기도 했고.


직접적인 점퍼의 추적전에도 그녀를 대동한다면 놓치기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옌의 성격이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다소 종잡을 수 없는 면도 있고, 과도하게 겁을 먹거나 어색하게 구는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근처에 다가서서 세심하게 과정을 살펴 주면 딱히 반항을 하는 일은 없었다. 조직의 목적에도 금세 감화를 당하고, 영향을 받고 일을 한다.


그녀는 이끌어주는 이에 따라서 금방 변하는 편인 인간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홍인수는 조금 더 임무 외적인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이런 자연스러운 시간과 관계성이 결국 임무에 있어서의 신뢰와 협력 관계로까지 나아가게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로 홍인수는 그녀를 자신이 자주 가는 카페에 데려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하고 있었다.


"입에는 맞습니까?"

"어... 아뇨. 좀 더 달고 진했으면 좋겠는데...."


동남아 지방에서의 커피는 좀 더 맛이 진한 편이 보통이었다. 무더위가 지속되는 날씨에서 어쩔 수 없는 변형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다양한 공간들을 경험하고 이동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취향이나 익숙함을 느끼는 곳은 아직도 고향의 땅이고 경험들이었다.


"뭐... 이런 맛에도 익숙해져 보세요. 평소에 커피를 즐겨 먹지는 않았습니까? 향으로 느껴지는 풍미나, 은은한 산미나 고소한 맛이나... 맛의 비율이나 특성을 따지면서 먹으면 제법 재미가 있습니다."


홍인수는 덤덤하게 제안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작고 아담한 카페였다. 그리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주인장이 솜씨가 좋았다. 아르바이트를 한 명 두고, 주인이 보통 대부분의 커피를 내려서 주는 집이었다. 홍인수의 입맛에는 딱 맞는 곳이었고, 언제 가도 늘 변하지 않는 맛을 제공하는 집이다.


단독 주택처럼 생긴 건물에 상가 구역의 한 구석에 있는 곳이다. 간판도 그리 크지 않아서 많이들 알고 찾아오지는 못한다. 우연히 들른 이들이 보통 단골이 되어서 찾는 것이 손님의 대부분이었다.


주인은 인상이 푸근한 중년의 남성이었고, 홍인수가 와서 인사를 건네면 늘 반갑게 맞아주는 곳이라 그 역시 마음에 들었다. 인간 관계의 기본은 보통 인사였다. 그것만 잘해도 삶이 풍요로워지고, 관계가 풀릴 정도로 중요한 기본이었다.


홍인수는 옌에게, 말하자면 다소 좀 긴 인사를 건네고 있는 중이었다.


조직의 추적자로서 범죄자를 구속하러 간 것이 첫 만남이었으나, 어쨌든 그녀는 조직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함께하고 있었다.


조직을 운영하며 길게 많은 일들을 같이 해나가야 할 처지에서 껄끄러운 기색은 버리고 친근하고 새롭게 관계를 다져가면 좋을 테고.


"음... 복잡한 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되는대로 마시는 게 편한데."


어쨌든, 미각이나 후각에 집중하며 커피를 즐기고 또 구분하는 건 그녀의 취향에 정확히 맞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싫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러면 같이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홍인수는 같이 시킨 케이크를 슬쩍 밀며 말했다. 디저트의 맛은 평범한 편이었다. 개중에서 레몬이 섞인 생크림 케이크는 제법 맛있는 편이었지만.


"뭐, 디저트도 있으니까요."


작은 포크로 먼저 케잌을 갈라서 먹으며 홍인수가 말했다.


옌은 늘 여성적인 옷차림을 고수하는 편이었다. 그녀의 취향인건지, 아니면 그런 류의 옷밖에 없는 건지.


현장에서 뛰기에 적합한 차림새는 아니었다. 애초에 전투를 할 수 있을만한 능력도 그리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둘은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조직에서 시간을 더욱 보내는 와중에 옌은 떠듬떠듬 한국어를 배워 나갔다. 홍인수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실력 향상에 주요한 요인이었다. 어쨌든 홍인수는 능숙하게 영어를 사용하지만, 한국어보다 편리한 언어는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편한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건 관계성을 진전시키기에 아주 좋은 일이었다.


옌 역시 듣는 정도만 가능하고, 다소 어색했던 말하기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늘어가니 나름대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오늘은 별다른 임무가 없나요?"

"뭐, 그런 날은 없기는 합니다. 사실 있다가 오후가 되면 당신도 같이 가야 하고."


옌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순종적인 편이었지만 과로를 즐겨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레이더라는 특질은 조직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유용하기에 아주 편리한 능력이었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때로 집중적으로 붙들려서 현장에 있게 마련이었다.


"실은...."


홍인수가 다소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다른 말의 서두를 띄웠다. 감정적인 망설임보다는, 그 내용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해서 두는 계산적인 텀에 가까웠다.


옌이 그를 처다보자 홍인수가 입을 열었다.


"윤민혁이 얼마 전에 조직의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옌은 그 말에 떠먹던 케이크를 그대로 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다른 이름이기는 했다. 점퍼로서 능력을 활용하고 수많은 일들을 했던 시간들의 시작이 윤민혁 때문이었으니까.


홍인수는 이내 다시금 아무렇지 않은 얘기를 하는 것처럼 케이크를 마저 먹으며 말했다.


"자세한 방법이나 수단은 잘 모르겠더군요. 저희도 짐작하지 못한 수를 써서 탈출을 했고, 조직의 구속구는 두동강이 났습니다. 저희는 아마 당신이나 몇몇 이들처럼, '특질'을 보이는 점퍼 중 하나가 관련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설명은 자세할 수록 좋았다. 홍인수는 그런 의무감으로 침착하게 길게 풀어서 상황을 전달했다.


"지난 달에 일어났던 서울에서의 폭발 사건을 아시겠죠? 점퍼가 고스란히 드러났던. 점퍼 조직으로서 가장 악질적인 종류의 테러라고 봐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의 점퍼가 관련되어 있다고 짐작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옌으로서는 해당하는 사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는.


"여태까지의 범죄자들을 적이라고 말한다면, 이번 점퍼는 최대의 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담하고, 규모있고, 조직적이면서 아마 근접 전투도 꺼릴 것 같지 않더군요. 그러지 않고서는 그런 배짱을 부리기가 쉽지 않겠죠."


홍인수는 옌의 눈을 슬쩍 처다보며 이야기했다. 때로 너무 뚫어져라 처다보면 그녀는 홍인수를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오래도록 처다보지 않고 이따금씩 보며 대화하는 습관이 들고 있었다.


"머리를 쓰는 거나 과감한 움직임을 보건데 어디까지 상대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같이 치안이 좋은 곳에서 그런 짓거리를 벌이는 건 보통 수완으로는 어려울 텐데. 일단, 레이더로서 주기적으로 서울 정도는 범위에 넣고 수색을 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점퍼들의 단체 도약에 편승해서 상대의 기척을 감지하는 일이었다. 쉬지 않고 장기적으로 하다보면 깨나 피로감이 고된 일이다.


"그렇군요...."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들고 있던 케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어쨌든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당장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인지. 거대한 규모의 계획이나 목표 설정이 어려운 그녀는 당장 해야 할 소목표들이 주어지는 상황이 편한 면이 있었다.


둘은 자리에 앉아서, 어쨌든 잠시 더 주변적인 신변잡기 따위들을 나누며 케이크와 커피를 해치웠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자리서 일어났다.



*



커맨더의 이름은 '한형석'이었다.


그는 중년의 노장이면서 동시에 가장이기도 했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을 점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스러지듯 보내온 세월이었다. 돌이켜보면 바람에 흩어지듯 희미한 나날들이기도 하다. 가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그렇게 남는다. 트라우마는 담아두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에.


지나치게 여기저기에 상처를 남기고 달려온 기억들은 간혹 남은 것이 없게 느껴지기마저 한다.


어쨌든 그의 흔적은 확실히 남았다. 점퍼 조직이라는 형상으로 남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조직이 유지되면서 키워지고 길러진 후세대의 후배들이 그의 삶의 증거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 역시 그런 흔적이었다. 슬하에는 두 딸을 두고 있었다. 하나는 시집을 가지 못했고, 둘째는 제 언니보다 일찍 결혼을 해서 출가를 해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살기에 좀 더 좋은 사회나 세계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늘 그가 해야 하는 일들은 같았다. 몸이 부서져라 자신의 능력을 다 사용해서 사람들을 돕고, 골치 아픈 갈등이 벌어진 현장에 가서 해결을 위해 골머리를 더 썩으면 될 뿐이다.


사회란 다 다른 부분처럼 보여도 결국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아서 다른 하나의 문제가 곪으면, 다른 쪽으로 튀어나와 뒤통수를 갈기게 마련이었으니.


살아있는 생명체의 몸을 돌보듯, 거시적인 관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 나가면 될 뿐이었다. 그게 절대적으로 완성적인 대책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형석의 인생에 있어서 최선이기는 할 것이다.


그는 50을 바라보는 노장으로서, 많은 세월들을 전쟁터나 혹은 그 관련된 자리에서 머물렀다. 전쟁이란 늘 준비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었고 그는 편집증적인 수준으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가면서 삶을 버티고 또 견뎌내었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삶.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열성을 다해 조직의 운영과 사회의 안정 유지를 위해 애를 썼다. 장년층에 들어서고 다음 십 년이 지나면 그 역시 노년을 바라볼 것이다. 더이상 일선에서 움직이기 어려운 때가 올 것이고.


그런 사실들을 생각하면 이전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상념은 그의 머리와 몸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런 고민들이 들 때를 위해서 후배들의 양성에 더 힘을 쏟는 것이었다. 그는 홍인수와 최길우를 생각했다.


그는 평범한 가정집에서, 하루는 퇴근을 해서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서울 강북에 있는 주택가의 단독 주택이었다. 식탁에 앉아 아내가 차려준 한식들에 손을 대며, 미리 앉아 있는 큰 딸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건낸다. 아내는 아직 마저 국을 뜨느라 자리에 앉지 않고 있었다.


“···결혼···.”


문장이 완성되지 않고 단어까지를 뱉었을 때 큰딸이 순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제 아비를 흘겼다. 한형석은 투실한 볼 께를 두터운 손가락으로 매만지면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뱉었다.


“······. 우리 딸. 소개팅은 생각 없니. 아빠가 일하는 곳에 꽤 괜찮은 후배들이 있는데.”


근본적으로 점퍼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한형석 역시 점퍼였고, 한창 일하고 있을 때 지금의 아내와 만나서 결혼을 했고 또 행복하게 살았다. 가정은 그가 책임감을 가지도록 힘을 돋궈 주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후배들을 위해서도, 결혼은 하는 편이 좋다.


그런 김에 자신의 딸의 행복도 같이 챙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형석이 넌지시 말을 하고는 딸의 대답을 기다렸다. 큰 딸은 올해로 28살이었다. 일찍 낳은 딸이다.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가졌다. 작은 딸의 나이는 26살이었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보이며 자기의 언니에게 불편한 자극을 주고 있는 처지였다.


사실 28살이란 나이가 그렇게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어지간하면 한형석은 너무 늦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 역시 젊은 날부터 동반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오기도 했고. 자신의 딸이 그런 행복을 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다만 여러모로 컴플렉스나, 실패 따위에 시달리며 나름의 상처를 안은 듯한 딸은 쉽게 마음을 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자기 마음대로 잘되지 않는 걸 해야 할 때 사람은 가장, 지랄 맞은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었다. 그 역시도 자신의 고집 때문일 때가 많기는 했지만.


“······. 아빠. 내가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선이는, 자기가 좋아서 한 거라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생각 없어. 일하는 곳에서 적응하는 것도 바쁘고, 아직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도 확신이 없는······”


‘애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마요, 현서 아빠.’


식탁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내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형석은 물러서지 않고 말을 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었다.


“잘생겼어.”


형석의 큰 딸은 눈매를 곱게 찡그리며 말을 멈췄다.


“거기다 돈도 잘 벌지. 아빠 일하는 곳이 급여가 센 편인 건 알지? 미래도 나름 유망하고. 왜냐면 아빠 직속이라 정년 수준까지 일하게 될 거거든. 성격도 착하고 착실하지. 조직에서 가장 굴려지는데 군말 하나 없이 해내는 걸 보면. 나이도 너랑 크게 다르지 않단다.”


형석이 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당장 떠오르는 건 둘 있다. 동생이랑 오빠 중에 누가 좋니.”

“······.”


현서는 굳이 따지자면, 예쁜 편이었다. 형석 역시 인물이 젊은 시절에 그리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고, 아내도 미인이었으니 그것을 닮은 것이리라.


어깨에 살짝 닿을 정도로 기른 단발을 늘어뜨리고 갈색으로 물들인 그녀는 큰 눈을 꿈벅댄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아내가 금방 국을 떠서 가져 왔다. 한 번에 세 명분을 퍼서 쟁반에 올려 오느라 시간이 걸린 모양이다.


탁.


식탁에 쟁반을 부딪히며 내려놓을 때쯤 현서가 말했다.


“······연상?”


형석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홍인수의 최근 신변을 머리에 떠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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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사실 점퍼의 장르는 시트콤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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