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623
추천수 :
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2.10.23 08:00
조회
59
추천
2
글자
12쪽

36.

DUMMY

*


여름은 더웠다.


6월이 어느덧 지나가고 있었다.


여름, 개중에서도 한국의 여름은 꽤나 무더운 편이었다. 뚜렷한 4계절을 지닌 나라의 특징이었다. 어느새인가 부터 4계절도 사라지고 기후 변화로 여름과 겨울만이 남는 느낌이라지만··· 어쨌든 여름은 더웠다. 민서는 계절감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덥군요.”


서울 어느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처지였다. 홍인수와 같이.


그는 여름날이라고 양복 정장은 어디론가 치워버린 채였다. 얇은 베이지색 면바지에 칼라 티Collar T-shirt를 입고 있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약간 푸른빛이 감도는 티셔츠였다. 어딘가의 디자이너가 만들기라도 한 건지 그 마감이 깔끔하고 괜히 귀티가 나는 듯하다. 단순히 훤칠한 외모의 그가 입어서 그런 것 같지만도 않았다.


민서는 자주 입는 청바지에 반팔 티를 입고 벤치에 늘어지듯 등을 기대었다. 홍인수는 마침 근처에 있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서 오는 길이다. 그가 걸어오며 민서에게 하나를 던졌다. 나름대로 시원한 포카리 스웨트 캔이었다.


휙, 하고 날아오는 것을 민서가 능숙하게 받았다. 그걸 보며 홍인수가 입을 연다.


“그러게요. 어디 실내에서 볼 걸 그랬습니다.”

“아니 뭐··· 그래도 늘 기지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는 바깥 구경도 좀 하는게 낫죠.”

“저는 당신과 달리 외부 임무를 주로 맡고 있긴 합니다.”

“여유롭게 즐길 때는 없을 거 아닙니까.”


김민서가 지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보통 홍인수와 그가 만나는 것은 기지에서의 일이었다. 그게 아니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다른 장소를 찾기도 하지만.


오늘은 평일이었고, 늘 있는 주말 간의 훈련이 있는 날은 아니다. 연구소에서의 실험이나 재밍 훈련도 미루고 따로 시간을 내서 밖에서 만나는 참이다.


홍인수가 말했다.


“태국 여성은 관심 없습니까?”


민서는 뜬금없는 말에 더위도 잊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받았다.


“···그게 뭔···. 이성적으로 말입니까?” 홍인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친구가 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고요?”


홍인수가 낄낄거리며 말한다. 그 역시 포카리스웨트 캔을 들고 있었다. 딱, 하고 캔을 따면서.


“없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의향이 있냐는거지.”


민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 젠장. 일단 말이 안 통하는 건 좀 빡세군요. 한국인 여성은 없는 겁니까. 영어도 안되는 판국에.”


마침 잘 됐습니다, 라고 홍인수가 중얼거렸다. 그는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면서 다른 손의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늘어뜨린 왼손에는 작은 발신기가 있었다. 크기에 비해 서울 전역을 커버할 만큼 고성능의 장치였다. 버튼을 누르면 하나의 짝 기계에 신호가 가는 물건이다. 검고, 삐삐처럼 생겼다.


그가 그것을 슬쩍 누르자 정해진 수신기에 알람이 간다. 좌표 데이터도 길게 떴고. 수신기를 가지고 있던 이는 반사적으로 도약을 했다. ’점퍼‘였다. 여성이었고, 가녀린 체구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지녔다.


후욱, 하는 민서나 홍인수에게는 뚜렷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이 먼저 있었다. 그 다음에 곧바로 한 여성의 신형이 나타난다. 그들이 있는 공원의 자리는 인적이 없었다. 외딴 곳이었고, 주변은 나무로 가려져서 멀리서 잘 보이지 않는다. 고층 건물 따위도 근처에 없었고. 그렇기에 그들이 선택한 곳이다.


서울 어딘가의 옥상에 있다가 공원으로 온 이는 머리를 어깨 즈음까지 기른 동남아 계열의 여성이었다. 민서는 그녀를 보고 홍인수를 처다 보았다. 늘 그가 새로운 인간을 소개 시켜 줄 때는 나름의 설명을 곁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뭣보다, 동남아 계열의 언어는 하나도 모른다. 심지어는 영어도 말하기는 부자유스러운 솜씨였다.


작은 체구의 여성, 옌 쩻 티아마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여름 날에 어울리는 원피스에 위로 얇은 셔츠를 걸친 채다.


“어··· 없습니다, 근처는.”


다소 어색한 말투였다. 물론 발음이나, 무엇이든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한국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 뿐이었지.


그녀가 없다고 한 건 홍인수를 보고 한 말이었다. 그녀는 오늘 수색을 위해 이들과 함께 했다. 옌의 머릿속에 있는 건, 자신이 들고 있는 수신 장치가 신호를 보내오면 동시에 뜨는 위치로 도약하는 것. 그리고 하자마자 자신의 감지 반경 내에 있는 점퍼나 JE 에너지의 유동이 느껴지는지 확인하고 홍인수에게 보고하는 것.


하는 일 자체는 이전에 자주 행해본 것이었다. 그녀의 리더가 ’윤민혁‘이라는 한국인이었을 때도 말이다. 일정한 텀을 두고 시간별로 세계적인 대도시들을 수색한다. 그녀가 감지 가능한 범위인 반경 2-3km를 원으로 두고 수색 범위에 허점이 없도록 하며 도시의 전 지역을 돌아다닌다.


의외로 사막에서 모래 바늘 찾기와 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고작 몇 달 만에 몇 명의 점퍼들을 찾아내고 회유하는 데 성공한 방법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맞이한 나이대의 점퍼들은 점프를 사용하는데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백 회가 넘는 순간이동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라면 마음껏 이용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었다.


일탈을 즐기는 이라면 그 나름대로, 혹은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라면 그 나름대로 말이다.


돈을 내지 않고 여행을 다니고 싶다거나, 교통비를 아끼고 싶다거나. 그런 단순한 이유들로 점퍼들은 점프를 사용하고는 했다. 의외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계적 메트로폴리스나 이름 높은 관광지들 따위는 점퍼들이 많이 유동하는 장소들이었다. 당장 홍인수도, 자신에게 조직이라는 사명이 없었다면 적당히 여행이나 다니면서 지냈을 지도 모른다.


1차원적으로 순간이동은 그런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조금 연차가 오래 되어서 ’조직‘같은 단체의 정체를 아는 이들, 혹은 점퍼로서의 능력을 교묘히 숨기려 하는 이들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천방지축 날뛰는 젊은 이들을 낚아 채기에는 좋은 방법이었다. 옌만 하더라도, 대강 비슷한 연유로 윤민혁에게 발견되고 스카웃 된 처지였고 말이다.


그래서 시간대별로 하나의 도시를 집중적으로 돈다. 하루에 수백 회. 점프를 이용하면 옌의 반경이면 대도시를 커버할 수 있었다. 자정에서 시작해서 자정까지, 하는 식으로 점퍼 개인이 유용하는 시간대가 있다면 찾아내기 위해 약 한 달 여간 하나의 도시를 수십 번 돌며 탐색을 한다.


직장인으로서 출퇴근을 하며 점프를 이용하는 자라도 걸릴 테였고, 정해진 시간마다 유흥을 즐기러 메트로폴리스에 오는 이도 걸릴 테였다. 어쨌건, 각 조직의 정보력을 이용한 탐문 수사보다는 훨씬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위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수색 방법이었다.


홍인수는 그런 사정을 대강, 민서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왜 온 겁니까.”

“대충 알아 두십쇼. 조직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익숙해지고, 조직의 움직임을 머리에 넣어두고, 훌륭한 구성원이 되라는 말입니다.”


홍인수는 이미 김민서를 조직의 일원으로 거의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어떤 임무를 맡기기에는 부족한 솜씨였지만, 가진바 특수 능력도 아주 유용한 종류였고, 조금의 경험들을 쌓아준다면 쓸만한 친구였다. 성품도, 딱히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파탄난 구석은 없어 보였고 말이다.


만일 지금의 인연이 십수 년을 넘게 이어질 수 있다면, 홍인수는 김민서가 조직의 중추에 서는 것도 이따금 상상해볼 수 있다.


“오늘은··· 서울 중구를 시작으로 주욱 돌겁니다. 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감지범위가 반경 2.53km 맞죠?”

“예, 253km."


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홍인수에게 붙들린 이후에 조직으로 넘어와서 다양한 일 처리를 돕는 중이었다. 전투원으로 써먹을 만한 전력은 아니었지만, 점퍼로서의 능력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일이 가능했다. 더군다나 머리 회전도 제법 잘 돌아가는 편이었고. 그리고 이런 점퍼 맵핑mapping은 전 세계에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말이다.


”대강 일정은 시간 나는대로 이루어집니다. 서울 돌고, 도쿄, 뉴욕, 런던, 파리, 베이징···. 대도시나 메트로폴리스라 할 만한 곳을 전부 돌고 나면 각지의 유명한 관광지 따위를 볼 거고요. 장님이 코끼리 더듬어 찾듯 막막한 일이지만, 여태까지 손도 없이 점퍼들을 발굴하고 찾아낸 것에 비하면 아주 쓸만한 방법입니다.“


홍인수가 말했다. 김민서가 포카리스웨트를 든 채로 질문한다. 한 모금을 마시고, 채 먹기도 전에 진행되는 상황이 제법 급작스럽다.


”어··· 뭐 설마 제가 그 대도시들에 다 함께 가는 겁니까?“


홍인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하는 중간중간에 잘도 음료수를 삼킨다. 벌써 바닥을 보이는지, 찰랑 거리는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키면서 말했다.


”음, 아뇨. 시간이나 일정 봐서. 중간중간에 함께 할 겁니다. 그것 말고도, JE2관련이나 체력 단련이나··· 당신은 아직 시간을 쏟을 것들이 많아요.“


민서가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홍인수가 말했다.


”그래서, 태국인 여성은 관심 없습니까?“


옌도 한국말을 알아듣는 건 얼추 가능하다. 그녀가 김민서를 빤히 처다보았다. 김민서가 입을 연다.


”아니··· 미쳤습니까. 왜이래요. 아저씨는 연애 잘 하고 다녀요?“


민서는 왜인지 공격을 당한 것처럼 울컥해서 받아 쳤다. 홍인수는 웃으면서 다 마신 캔을 적당한 쓰레기통을 향해 날렸다. 한 번의 스냅으로 잘 들어간다. 휙, 타당.


”저도 누구 하나 없는 건 마찬가지네요. 서로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줍시다. 알겠죠.“


옌은 홍인수의 말에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아직 농담을 주고 받기에는, 첫 만남이 지나치게 강렬했다. 그녀에게 홍인수는 자신을 조직에 반쯤 납치해 온 괴한과도 같았다. 더군다나 웃고는 있지만 도저히 상대할 구석이 보이지 않는 전투 요원이었고 말이다.


사무적인 말투로 옌이 입을 연다.


”어··· 갑니까?“


화제를 바꾸는 듯한 말에 홍인수가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죠.“ 한적한 공원. 정오. 홍인수는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제스쳐를 둘에게 취했다.


옌과 민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도약을 준비한다. 최초에는 홍인수가 일정 부분. 이후는 옌이 일정 부분. 서로 점프를 나누어서 부담하며 수색을 하기로 했다. 혼자서 수백 회를 다 감당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홍인수로서도, 여유분은 남겨 두어야 했고.


미리 조직에서 정해둔 포인트들이 있었다. 사람의 시야가 잘 닿지 않는 곳들을 위주로 빠르게 서울 전역을 조사한다.


조사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였다. 옌의 감지 또한 순식간이었으니. 만일 정말로 운이 좋게 곧바로 점퍼의 이동이 감지되면, 그를 찾아가며 복잡한 인간사를 체험하고 시간을 잡아먹을 테였지만 말이다.


홍인수가 단체 도약으로 둘과 함께 사라진다.

mike-benna-SBiVq9eWEtQ-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4 60. 22.11.18 27 0 10쪽
63 59. 22.11.16 30 0 19쪽
62 58. 22.11.15 28 0 25쪽
61 57. 22.11.15 29 0 16쪽
60 56. 22.11.12 34 0 19쪽
59 55. 22.11.10 38 1 16쪽
58 54. 22.11.10 33 0 22쪽
57 53. 22.11.10 30 0 14쪽
56 52. 22.11.09 44 0 22쪽
55 51. 22.11.08 32 0 17쪽
54 50. 22.11.08 42 0 16쪽
53 49. 22.11.08 35 0 11쪽
52 48. 22.11.05 37 0 22쪽
51 47. 22.11.04 36 0 24쪽
50 46. 가을 22.11.04 46 0 22쪽
49 45. 22.11.04 37 0 15쪽
48 44. 22.11.03 38 0 25쪽
47 43. 22.10.30 42 0 14쪽
46 42. 22.10.30 46 0 21쪽
45 41. 22.10.29 55 0 18쪽
44 40. 22.10.27 60 0 18쪽
43 39. 22.10.26 54 0 13쪽
42 38. 22.10.26 53 0 16쪽
41 37. 22.10.25 61 0 15쪽
» 36. 22.10.23 60 2 12쪽
39 35. 22.10.22 60 3 16쪽
38 34. 22.10.22 58 2 17쪽
37 33. 22.10.21 62 2 16쪽
36 32. 22.10.21 63 2 22쪽
35 31. 22.10.20 65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