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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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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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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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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3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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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43.

DUMMY

*


“쓰으으으으으읍.”


한낮.


홍인수는 벤치에 늘어지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어깨가 매우, 몹시 결렸다.


며칠 전에 맡았던 임무의 후유증일 지도 몰랐다. 점프를 하고, 총을 쏜다. 단순한 일이었지만, 의외로 수십 명을 다운시킨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긴장감이 있는 일이었고, 상대가 예민한 반응을 해온다면 그에 맞추어서 대응을 해야 했기에 교전의 순간이 짧더라도 체력 소모가 크다.


그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피로감은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옌’을 기다렸다. 직접적인 전투 임무를 맡고 나서 얼마간은 이렇게 쉬는 텀이 주어진다. 이전보다 더 늘어난 휴식이었다. 다른 요원들에 비하면 딱히 휴식은 아니었지만, 소드마스터로서 조직의 전투력을 담당하는 그에게는 휴식에 가까웠다.


그는 조직의 내정을 위해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수뇌부의 의지에 따른 일이었다. 이번에는 옌과 함께 뉴욕을 돌아볼 시기였다. 만남의 장소는 서울이 적당했다. 왜냐면, 그가 마침 임무 중간의 휴식을 서울에서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다. 옌 역시 서울로 왔다.


시간이 난다면 김민서 역시 동참시키고 싶었지만, 그는 최근 JE2에 대한 실마리를 더욱 잡아가는지 스위스의 연구소 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임무로 방해할만한 여건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말이 되면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 빡세게 체력 훈련을 시키고는 있었지만.


“요.”


요, 는 만국 공통어였다. 손을 들면서 반갑다는 듯 흔들어주면 더욱 그렇다. 홍인수는 어딘가에서 천천히 걸어 나타나는 옌을 보고 맞이했다. 그녀는 곧잘 청순한 분위기의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편이었다. 전투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옌이 싸워야 할 상황이라면 최악에서도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대부분은 홍인수의 선에서 마무리가 될 테다.


옌은 홍인수와 처음 만났을 때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지 아직도 긴장된 듯한 모습이다. 말 수가 많지는 않다. 아니, 원래 말이 많지 않은 편일지도 모른다.


홍인수가 가볍게 이야기했다.


“갈까요. 새로운 동료를 구하러.”


해적왕의 동료 선원을 구하러 가는 듯한 분위기였다. 물론 그와 비슷한 일은 아니었다. 훨씬 보잘 것 없고, 현실적이며, 치졸한 협상이 일어날 때가 많다. ‘점퍼 조직’이 딱히 을의 입장은 아니었으나 민간인이나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점퍼를 만난다면 별로 강제할 만한 수단도 없었다. 그들은 구차하게 자신들의 사정과 배경을 설명하고, 납득을 구하고, 연락처를 만든 뒤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이미 눈깔이 맛이 가 버린 점퍼를 만난다면 전투에 돌입해서 강제 진압에 들어가야 했고.


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집이 서울에 있었다. 이전에 윤민혁과 일을 도모하면서 만들어 두었던 집에 묵고 있었고, 기지 외에 거주하거나 시간이 날 때는 한국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홍인수는 한국인으로서, 이곳이 익숙하고 좋았기에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고.


그는 굳이 어딘가의 화려한 휴양지 따위를 바라는 성격은 아니었다. 실제 휴가가 주어져도 말이다.


홍인수가 그대로 고개를 젖혀 하늘을 처다보았다. 맑다, 푸르다.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태양빛이 따사롭다. 아, 눈이 아프다.


그는 그만 처다보기로 하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옌은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되도록이면 홍인수가 도약을 소모하는 편이었다. 그의 횟수가 훨씬 많았으므로. 그는 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턱, 올리면서 단체 도약을 한다.


*


“···Who the hell are you?"


정겨운 인삿말이었다. 홍인수와 옌은 즐거운 눈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열린 현관 너머에서 말했다.


”어··· 당신이 점퍼라는게 다 들통났습니다. 우린 조직에서 나왔고요. 순순히 따라와 주시죠.“


홍인수는 가끔 장난기가 올라오거나, 혹은 피로도가 극에 달하면 헛소리를 줄줄 내뱉고는 했다. 그 말에, 스킨 헤드에 인상을 팍 쓰면 함부로 다가가지 못할 것 같은 백인 청년이 위협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키도 큰 훤칠한 사내였다. 180은 넘어 보인다.


흔히 집에서 입는 듯한 흰 셔츠에 오래 입은 청바지를 입고서 슬리퍼 차림이었다, 상대는. 그들은 뉴욕 어느 거리에 있는 작은 렌트 하우스의 방문을 두드렸고, 거기서 나온 청년이다.


”WTX······."


청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욕을 중얼거렸다. 옌이 그나마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있는 근처에서 싸움이 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에게 불똥이 튈까봐서.


“어···. 순간이동 능력이 있으시죠? 금방 집으로 ‘점프’를 해왔고요. 저희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관리하는 조직의 사람들입니다. 잠깐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당신들 정신 나갔어? 한 마디만 더 하면 경찰을 부르겠어.”


의외로, 청년은 상식적인 편이었다. 총을 꺼내들기 보다는 경찰을 부르겠다고 정중하게 협박을 하고 있었다.


홍인수는 총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일단 이야기를 하기는 해야 했으므로 입을 열었다.


“우리들도 역시 점퍼입니다. 다른 점퍼들을 찾고 있죠. 아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점퍼들은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졌다고,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큰 변을 당하게 마련이니까요. 젊은 나이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을 하고 싶지는 않겠죠.”


청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미 상대들은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하고 찾아온 것 같았다. 홍인수가 말한다.


“어··· 게다가 미국 정부와는 연이 닿아 있어서, 여기서 우리를 쫓아낸다고 해도 얘기 정도는 나중에 또 들어야 할 겁니다. 많은 걸 원하지는 않아요. 뭘 강제하지도 않을 거고. ‘세상’이 돌아가는 얘기 정도만 해주고, 연락처만 교환하죠.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도움이 될 겁니다.”


그가 씨익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훤칠한 미소였다. 동양인이던 서양인이던, 결국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시원스레 생긴 미남은 어딜가나 비슷하게 통용이 된다.


마침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가정집들만 있는 거리였고, 한산하다. 이쪽 집을 찍고 있는 CCTV장비 따위는 없는 듯했다. 홍인수는 그가 손을 잡기만을 기다렸다. 청년이 머뭇거리면서, 이내 손을 내밀었다. 옌은 홍인수가 다음에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짐작이라도 한듯,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홍인수가 도약을 할 때, 그의 몸에 손을 댄다면 손을 댄 옌의 도약 횟수를 소모해서 그를 따라가는 일이다. 단체 도약이 아닌 추적 도약이었다. 옌도 차분하게 시간을 준다면 그 정도의 일은 가능했다.


청년이 손을 마주잡자 마자 홍인수가 곧바로 사라졌다. 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리에, 문이 열린 작은 집이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었다.


*


그랜드 캐니언은 제법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면, 그 경관에서 압도적인 분위기또한 느낄 수 있다. 당신이 감수성이 풍부하다면 말이다.


스킨헤드의 백인 청년, 은 슬리퍼 차림으로 뜬금없이 미국의 대협곡에 와 있었다. 홍인수의 악수를 마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는 점프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춘기가 지나서 십대의 후반 시절에 각성하게 된 능력은 그 날부터 그의 비밀이자 자랑이었다.


삶의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용도로 써먹으면서 지내왔던 점프에 대한 비밀이 다소 그의 앞에서 풀렸다. 이 세상에 순간이동이 가능한 사람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같이 순간이동을 하는 것조차 가능해 보인다. 청년은 그 점에 있어서 입을 딱, 벌리고 협곡을 처다보았다.


옆에서 보기에는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한 풍경에 감동을 받아 열린 입처럼 보인다.


홍인수는 마주잡은 손을 그대로 위아래로 짧게 흔들며 말했다.


“말했죠. 점퍼라고. 세상에는 약 백여 명이 넘는 점퍼들이 존재합니다. 개중 일부가 저희 조직에 속해있고, 우리는 점퍼들이 세상을 망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악의를 품는다면 어떤 개인의 힘보다 위험해질 수 있는 게 순간이동의 능력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틀린 길로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찾아오곤 합니다. 점프는 유용하고 특별하지만 분명 만능은 아니고, 아마 높은 확률로 악행을 저지르다 보면 실패를 하거나 저희를 다시 만나게 될 거거든요.”


홍인수의 말은 제법 무서운 것이었다. 악행을 저지르다 보면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고는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수퍼맨도 배트맨도, 정의의 히어로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점퍼 범죄자들에게 있어서만큼은 비슷한 효율을 내줄 수 있는 훈련된 점퍼였다.


누구보다 능숙하게 점프를 하면서, 동시에 어떤 점퍼보다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했다는 건 점퍼를 상대하는 전투에 있어서 최강이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지금도 청년 같은 어리버리한 점퍼들이 네, 다섯 명이 있다고 해도 30초 정도면 제압할 수 있었다.


그 묘한 여유에서 청년은 자기도 모르는 위압감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 이해는 가지 않지만, 말에 따르면 그럴싸한 소리였다. 자신이 생각해보아도 세상에 점퍼가 그 정도 수가 있다면, 그들이 모인 조직이 있어서 그들의 폭주를 막고 통제하기 위해 움직인다는게 합리적인 이야기처럼 들렸다.


악의를 품은 순간이동 능력자가 여러 명 모여서 세상을 어지럽히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소란을 만드는 게 가능할 테였으니까.


“어··· 그래서··· 케이비스 씨?”


홍인수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백인 청년, 케이비스는 화들짝 놀랐다. 별다른 트릭은 아니었다. 그들이 점퍼를 감지해서 해당 위치에 도착했을 때, 주소를 확인해서 본부 기지에 연락을 넣었다.


본부 쪽에서는 연결된 미국 단체에 요청해서 필요한 정보들을 빼어 홍인수에게 다시 전달해주었고. 점퍼들을 막는 일이라면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다. 수월한 협상이나, 제압을 위해서라면 각국의 단체들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했다.


“이건 제 연락처입니다. 지금까지처럼, 점퍼라는 특별한 능력에 매몰되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좋겠군요. 그러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는, 연락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마 당신이 해결 못하는 대부분의 일은 우리 쪽에서 해결 가능할 테니까요.”


점프 능력과 관련된 문제라도 좋고, 아니어도 괜찮았다. 어쨌든 말이 통하는 점퍼에게 빚을 지운 뒤,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서 일을 시키면 효율이 아주 좋은 거래였다.


케이비스는 고개를 어눌하게 끄덕거렸다. 연속되는 상황 속에서 그의 인지를 다소 벗어난 진행이었던 탓이다.


그랜드 캐니언의 어느 황량한 절벽 위쪽이었다. 관광객들이 잘 다가오지 않는 자리였고, 위를 날아다니는 헬기 따위도 없었다. 고원 지대의 햇살과 바람이 불어온다. 모래 먼지에 입이 조금 텁텁하다.


케이비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자 홍인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양한 정보를 심어주고, 이렇게 시간을 보며 때를 기다리면 될 뿐이다. 말이 통하는 점퍼를 만나는 건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홍인수는 케이비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청년. 그런데···.”


그가 뜸을 들이다 입을 연다.


“뉴욕에 알고 있는 맛집은 혹시 없습니까? 늦은 점심을 좀 해결하고 싶은데.”


짧게라도, 뭐라도 먹고 움직일 요량이었다.



*



뉴욕의 스테이크 하우스는 맛집이었다.


기지에서의 식사로 늘 입맛이 상향 평준화 되어 있는 홍인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가격대도 나오는 물건을 생각한다면 썩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고. 오랜만에 포만감을 가득 안고 나서는 발걸음이다.


옌의 식사량은 홍인수에 비해 한참을 못 미쳤다. 체구의 차이도 있었고, 그녀는 고기만 때려 박는 식의 식사를 선호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들은 부랴부랴, 수색을 마치고 점심을 해결했다.


케이비스는 딱히 점퍼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없는 인물이었다. 운이 좋은 경우라면, 한 명의 점퍼로부터 여러 인물들의 정보를 들어 줄줄이 엮어서 수색을 마칠 수도 있는데. 그런 행운이 따르는 날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루한 수색을 마치고, 당일의 분량을 마무리했다. 케이비스를 만난 짧은 시간까지 쳐도 12-1시 사이에 뉴욕 전역을 돈 일이었다.


어지간하면 같은 달 내에, 빠르게 한 도시를 도는 것이 나았다. 점퍼들이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리를 옮기는 것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영영 만날 수 없을 확률이 많았으니 말이다.


당장 옌을 활용한 추적도 그 성공률이 아주 확실하다고는 말못할 것이었지만 그래도 맨 바닥을 헤집는 것보다는 억만 배 나은 방법이었다.

louis-hansel-oyUqUV1Q0Zg-unsplas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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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2. 22.10.30 46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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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3. 22.10.21 62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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