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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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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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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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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DUMMY

유진과 마이클 못지않게 불안한 건 윤민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의 편집증적으로 정신적 질환을 겪고 있었다.


질환이라 하기엔 사소한 증상일지 모른다. 어쨌든 개인에게 고통이 된다는 것 자체로는 충분한 질병이었다.


윤민혁은 독방에 있는 모기 새끼 한 마리가 더럽게 거슬렸다.


의외로- 점퍼들이 있는 감옥은 깔끔한 편이었다. 수감자의 편의를 얼마만큼 봐주는 것인지. 그들은 그저 사회와 단절되었고 갇혀 있다는 걸 제외하면 그렇게 어려움이 없는 생활이었다. 벌레 따위를 찾아보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윤민혁은 큰 몸뚱아리를 접듯이 구부리고 딱딱한 침대의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어지간히 불편한 자세였지만 그저 시간이 가지 않아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한 마리의 모기였다. 계절과 상관 없이 이런 벌레가 들어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특별히 방역이라도 주기적으로 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무언가 다양한 루트를 뚫고 그의 앞에 기적적으로 도달한 모기는 그의 심기를 매우 거슬리게 만들었다. 저것을 잡으려고 뛰어다닐 힘이나 기력은 그에게 없었다. 정신적인 비굴함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이미 끝장이 났다는 생각은 별다른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만히 관찰을 하고 있는데, 살아서 왱왱대는 꼴이 어딘가 심사가 꼬이게 만든다. 귓가를 앵앵대기도 하고 근처에 다가와서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저었지만 저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바람의 흐름이라도 타는지 쉽사리 죽지 않았다.


말했듯, 적극적으로 잡기 위해서 뛰어 다닐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만 거슬릴 뿐이었지.


그리고 사람의 짜증이라는 건 의외로 축적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 한계가 어디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모기 새끼는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윤민혁의 심사를 건드렸다. 죽은 듯한 눈동자, 두터운 팔다리에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은 근력이 있는 몸뚱이. 손발목에는 검고 거추장스러운 구속구를 찬 채, 별다른 무늬가 없는 죄수복을 입고 방의 모퉁이에 기대어 있는 꼴이었다.


이따금씩 모기가 지나가거나 시야에 잡힐 때마다 죽은 듯한 눈을 신경질적으로 들어 흘길 뿐이다.


움직일 생각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내면의 화가 어느 정도 차오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후욱.


하는 익숙한 느낌은 기시감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 감옥 내에서 점프는 금기 사항 중 한 가지였다. 감옥 내부의 거의 모든 곳이 사각이 없는 CCTV의 감시 장소였고, 언제 어디에서 일이 벌어져도 3분이면 도달하는 감시원들이 있었다.


함부로 점프를 유용한다면 곧바로 제재가 가해진다. 육체적으로는 금식을 당하던, 미약한 전류의 고문을 당하던, 며칠이고 밀실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던.


천천히 체력을 잃고 죽고 싶다면 마음껏 점프를 해도 되기는 했지만. 일부러 그런 일을 자행하는 미친 인간은 달리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점프로 다가온 사내가 아마 감옥 내부의 수감자가 아닌 외부인이라는 설명과도 같았다. 말 그대로였다. 그의 눈에 등장한 것은 한 사내였다. 3-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검은 머리의 서양인. 움푹 패인 눈으로 슬쩍 웃고 있다. 독실 내부에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 점퍼가 등장한 것이다.


윤민혁은 눈가를 뒤틀이듯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점퍼 조직의 감옥 내부 좌표를 알아낸 것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고. 대담하게 등장해서 몇 초간 웃는 얼굴을 보이는 것도 적잖이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 보스, 마이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윤민혁. 맞나? 영어는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생김새와 똑같은 언어였다. 윤민혁은 마주 영어로 대답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잡놈이십니까.“


다소 표현하기 어려운 언어였지만 적절히 슬랭을 섞어주면 비슷한 뉘앙스를 얼마든지 낼 수 있었다.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아서 좀 거칠고 목이 막힌 듯한 목소리였다. 마이클이 답한다.


”개자식. 너를 풀어주러 온 구원자한테 그 따위로 말을 하다니.“


그렇게 사내, 마이클이 마주 웃으며 이야기를 할 때 한 번 더 점프의 전조 현상이 나타난다. 익숙하거나 미리 알고 있지 않다면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고요한 밀실 속에서도. 후욱, 하는 식으로 공기가 빠지거나 바람이 슬쩍 불듯한 소리가 들린다. 촉각으로도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잠깐의 텀이 지나면 밀실 내부에 한 사람이 더 서있게 된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인 사내였다. 윤민혁은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건가.


”2분 30초 뒤면 감독관들이 들이닥쳐서 자네들을 나와 같은 꼴로 만들려고 할 텐데. 그리고 구원자라. 아무리 봐도 속내가 검은 미치광이로만 보이는군.“

마이클은 윤민혁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부정의 내용은 아니었다.


”미치광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네. 다만 자네와 같은 부류라면 같이 일을 할 수는 있겠지. 점퍼가 발휘할 수 있는 공간 단절에 대해서는 아는가?“


윤민혁은 그 눈을 껌벅거리며 마이클을 처다 보았다.


”그게 뭔······.“


뭐, 마이클은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윤민혁이 필요했다. 미친 개처럼 조직을 향해서 달려들만한 전투 요원이 말이다. 그것을 위해 주어야 할 것을 단순하게 줄 뿐이고.


그가 가볍게 손가락으로 지시를 했다. 그러자 필리핀인 사내가 다가왔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마이클이 윤민혁에게 다가갔다. 윤민혁은 딱히 그것을 뿌리치거나 저항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구속되어 있는 몸이었고, 이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 의도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감옥에 들어오는 자라면 대충 수감자의 탈출을 위해서 하는 것이겠지. 그 방법이 유효할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혹여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 단체 도약이라도 하려면 거절하면 된다.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면 코 앞에서라도 제압을 할 자신이 있었고. 구속구는 점퍼로서 점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었지 그 외 신체 능력에 제재를 가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감독관들에게 힘을 쓰려 들면 곧바로 강력한 전류가 흘렀지만.


그 외의 이들이라면 그는 이전까지와 다름 없는 전투력으로 대해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느 정도, 현재 상황에 대한 절망감도 작용을 했을지 모른다.


윤민혁은 힘을 빼고 몸을 늘어뜨린 채 그들을 맞이했다. 마이클과 필리핀 사내는 다가가서 침대에 앉아 있는 그의 오른 팔을 들었다. 오른 손목의 검고 두터운 구속구를 집어 들었다. 윤민혁이 힘을 빼고 늘어뜨리고 있는 것은 기술을 행하기 편한 상태를 만들었다.


마이클이 주머니에 있는 전화기의 버튼을 눌러 미리 적어둔 텍스트를 발신했다. 내용은 별 것 없었다. 미리 정해둔 동작이 중요했지. 지구상의 어딘가, 은신처에 있는 텔레포터에게 가는 것이었다.


텔레포터는 신호를 받고 바로바로, 정해진 대로 텔레포트를 실행한다. 공간단절을 위한 도약이었다.


윤민혁의 구속구를 반으로 나누듯 각각 두 사내가 집어들고 있었다. 윤민혁은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팔을 들어올린 채다.


1초 뒤에 필리핀 사내가 이동했다. 바로 몇 걸음 옆 자리였다.


그리고, 구속구는 말도 안되게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것이 잘려 나가는데 어떤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윤민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순간 말을 잃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어?’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구속구가 쉽사리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자 순간 인식이 잘 되질 않았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마이클은 씩 웃었다.


”구원자라고 하지 않았나.“


필리핀 사내가 텅그럭, 하고 반이 잘려나간 구속구를 바닥에 던지고 다시 다가왔다. 이번엔 왼 손목의 구속구를 두 명이서 나누어 들었다. 삑, 하고 마이클이 다시 통신기로 텍스트를 전한다. 1초 뒤에 똑같이 점프가 발동된다.


그리고 연이어 잘려지는 왼손의 구속구. 약 5-6센티미터의 두께를 지니고, 두껍게 손 발목을 감싸던 구속구였다. 윤민혁은 그 모습을 보며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고, 어이가 없었다.


”3분이라고 했나. 충분히 시간이 있군.“


그들이 자연스럽게 윤민혁의 발목을 집어 들었다. 자세를 슬쩍 낮추었고, 침대에 걸터앉은 윤민혁의 다리가 들렸다. 마찬가지로 마이클이 텔레포트를 위한 신호를 보냈고, 필리핀 사내가 움직였다.


구속구가 모조리 잘려서, 독실 바닥에 두 동강이 난 채로 널브러지기까지 십 초가 더 걸리지 않았다. 텅그렁 거리며 나뒹구는 반원 형태의 스페셜제 구속구를 두고 마이클이 씩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신기를 조작해 텍스트를 보냈다.


텔레포트가 발동이 된다. 필리핀 사내가 사라졌다. 그 다음은 보스였다. 마지막으로 윤민혁은 자신이 사라짐을 느꼈다. 기이한 일이었다. 점퍼로서 자신이 점프를 발휘하기도 전에 자신이 도약의 과정 중에 있음을 느끼다니. JE의 작용을 느끼는 것이었다.


단체 도약도 아닌데 이럴 수가 있는가. 그러나 자연계에서 ‘절대’라는 말은 의외로 잘 통용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점퍼라는 존재가 있는 것부터가, 말이 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옌’을 발굴했던 것처럼 특질을 가진 점퍼가 있어서 기현상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윤민혁은 자신의 몸이 점프의 과정에 휩싸이며 어디론가 이동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독실에서 자신의 방을 감시하던 CCTV가 있는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지도,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그 구석을 바라보다가 곧 사라졌다.


이상 사태를 깨달은 감독관들이 윤민혁의 독실로 달려오기 전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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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48. 22.11.05 36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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