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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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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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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52.

DUMMY

*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일어난 소음이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거리를 걷던 민서는 수정과 같이 있었다. 사이 좋게, 나란히 길을 걸으며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하던 중이었다. 원래는 둘 다 돈이라곤 궁한 처지였지만, 최근에는 민서가 취업 비스무레한 걸 하게 되어서 식비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민서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빌딩들이 늘어선 번화가였다. 그들은 서울 중심부의 한 대로를 걷고 있었다. 넓은 차선에 차들이 여러 방향으로 달리고 있고, 언제나와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 혹은 그 중간에 바깥으로 나선 이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로수가 단풍이 져서 제법 가을의 운치를 뽐내고 있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원래 저런 소리가 잘 나지 않는 공간이었다. 실제로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이 편집증적인 국민성과 높은 치안은 테러라는 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 북한이라는 거대한 위기에 리스크가 편중되어 있어서 다른 소란이 적은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상식이 깨지듯이 한낮의 대로변에서 들은 폭발음에 민서는 기겁을 했다.


물론 기겁한 속마음에 반해 움직임은 극도로 적어졌다. 위기 상황에서 그는 보통 행동을 멈추고 주변을 살핀다. 그의 곁에 보호해야 할 대상,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중심으로 정보를 모으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한 빌딩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고, 그 잔해가 거짓말처럼 허공에 흩뿌려졌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대비되는 광경이었다. 민서는 거짓말이거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사실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장면이 사실이었고, 그가 떠올린 거짓말이나 영화라는 가능성이 사실이 아닌 쪽이었다.


빌딩의 잔해는 유리조각, 건물의 내장재나 외장재, 그 안의 가구 따위가 포함된다. 부스러기처럼 흩날리는 것도 있었고, 덩어리를 유지한 채 인도에 닿는 것들도 있었다. 쿵! 하고 목재 가구의 일부가 도로 바닥을 깨뜨렸다. 민서가 다닐 때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되던 보도 블럭은 한 번에 수명을 다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귀를 찌르는 여성의 고음이 먼저 들린다. 건물 내부에서도 소란이 이는 것 같았다. 그리 높은 층은 아니었다. 한- 7, 8층 정도. 주변에 있는 고층 빌딩들에 비하면 가장 높은 자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소란을 시작한다.


우왕좌왕,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들을 비웃듯이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고 있었다. 헬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얇은 몸체에 빈약한 구조를 지닌 기계였다. 차라리 드론을 거대하게 키워 놓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어 보였다. 나름의 양력을 지니고 부유하는 민서로서는 본 적이 없는, 시중에서는 볼 일이 없어 보이는 검은 색의 기계가 네 개의 프로펠러를 돌리며 시내의 공중을 유영했다.


그 기계에 하부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아마 그 스스로가 그곳에 매달린 것일 테였다. 웅웅웅, 하고 시끄럽게 들리는 프로펠러의 소리는 사람들의 소란과 차들의 경적, 폭발 때문에 먹먹한 귀 때문에 제대로 전해지지는 않았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으나 나이대가 제법 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시야의 외곽에서 기이한 것이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 폭발음이 들렸고, 그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도록 시끄러운 소란이 일었다.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어보면, 저 위에 있는 남자가 저 드론- 비스무레한 것을 타고 날아와 무언가 빌딩의 유리창으로 던졌다.


그것이 폭발하면서 낸 소음과 사고였다.


악의적인 테러에 가까운 짓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치안 병력과 군대는 이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남한의 소란은 곧 적성 단체인 북한에게 틈을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휴전 중이라고 하지만, 정전이 아닌 휴전이었다. 집 내부의 과도한 소란에 여력을 빼앗기면 결국 전선 이북의 이리가 다른 생각을 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 내부의 치안이란 대한민국이라는 고도화된 공업 국가의 총력이 아낌없이 투입되어 지켜야만 하는 일종의 마지노선이었다.


이런 종류의 대담한 짓거리가 가능할 정도의 빈틈이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민서는 자연스레 점퍼 조직의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알리바이도, 증거도 없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미제 사건에 점퍼의 능력을 대입했을 때 풀린다면 그건 다른 점퍼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민서는 저 사내가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 특별히 추적해야 할 적이라고, 느꼈다. 그는 일단 늘 품에 넣고 다니는 통신기에 손을 옮겼다. 바지 주머니나, 겉옷의 안주머니에 넣어 두고는 하는 폴더폰 모양의 물건이었다. 실제 전화나 문자도 가능하다. 외부에 있는 버튼을 누르기만 해도, 세계 어디에서나 조직의 대기 인원에게 알림이 가게 되어 있었다.


점프 능력이 없는 점퍼 요원으로서 조직의 중요인의 일원인 민서는, 이런 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곧바로 통신기 내부에 있는 GPS의 위치로 전투 요원이 구조를 오게 된다.


지금 조직의 기지 내에 있다가 비번으로, 뛰쳐나온 인원은 ‘쉴더’인 야가미 소우타였다. 민서로서는 많은 합을 맞춰보고 또 신뢰가 가는 인물이다.


길다란 체형에 브라운 계열의 더벅머리. 그는 다급해 보이는 얼굴로 민서의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정말로 비상 사태이거나, 한시를 낭비할 수 없는 현장에서 점퍼들은 때로 대놓고 도약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주변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지 않을까 싶은 현장에서는, 아무런 전조나 소음도 없다시피 사라지고 나타나는 점퍼의 움직임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제대로 한 곳을 처다보고 집중하며, 관찰하는 시야는 거의 없는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둘러대면 될 뿐이었고.


소란스러운 서울의 사건 현장에서 그는 대충 걸쳐 입은 두터운 재킷이나 작업용 바지를 입고 있었다. 별 것 아니어 보여도, 아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에 오기 위해 갈아입은 최첨단 소재의 방탄 피복이었다. 방검 기능도 겸하고, 방화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방한의 경우에는, 생긴 것 정도의 따뜻함만을 제공 한다.


급한대로 바지춤에 챙긴 자동권총 정도가 현재 야가미가 가진 무장이었다.


야가미는 민서와 수정의 상태를 보며 곧장 말을 물어 왔다. 애초에 그들의 바로 곁에 나타났으니 시야를 회복하고 바로 안색을 살핀 뒤 묻는 말이었다.


”괜찮습니까?“


힐끗, 하고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 본 야가미였다.


”뭐라도 터진 모양이네요. 안 그래도 서울 쪽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마침 연결이 되어있던 쪽에서 사건 소식을 파악했고 저희 쪽으로 정보가 넘어온 참이었습니다. 제대로 파악이 안되어서 시간이 걸리려던 차에 통신이 있었고요.“

”아니··· 저기.“


민서가 바라보는 허공에는 여전히 프로펠러와 함께 허공에 멈추어 있는 인형이 있었다. 멀어서 그 안색이나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다. 사내는 무언가를 더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악의를 제대로 품고자 하면, 저 위치에서 총탄이라도 난사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 정도의 테러라면 대대적인 사건이었다.


야가미 역시 사내를 확인했다. 이상한 낌새 역시 느꼈다. 한국에 저런 모습은 이상하다. 저런 기계가 있다고 치더라도, 그것을 국내에 들여오고 사용해서 저 위치까지 다다르도록 아무런 제제가 없다? 넌센스 같은 일이었다. 물론 한 번은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기계 부품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분해한 뒤 근처 빌딩으로 옮겨서 대대적으로 조립을 한다, 그리고 화약 따위를 어찌 저찌 옮겨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번의 행운이나 기가 막힌 도움과 협업이 있다면 혹시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에 저런 일을 벌인 자가 무사하게 도망칠 수 있을리 없었다. 한국 땅의 치안력의 핵심은, 이 좁은 땅덩어리를 샅샅이 수색할 만한 인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저 따위 프로펠러로 어딘가 제대로 도망칠 수는 없다. 이 도시에 당장 배치된 무장된 공권력 아래의 병력들이 다 허수아비들도 아니었고.


당장 사고가 나자 연락이 갔고, 근처 지부에서 경찰 병력들이 당장 움직이고 있었다. 사태가 저 사내 혼자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면 금방 잡힐 것이다. 그러나 사내의 행태가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것이 야가미에게 위화감을 주었다. 그의 상식선에서,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결국 점퍼의 존재였다.


미치광이 점퍼가, 충분한 자원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뒷 세계의 집단과 공조를 한다면 혹시 모른다. 그는 불길한 예감이 맞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정은 의외로 갑작스러운 사태에 큰 변화를 일으키거나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무서움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았으나,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위로라도 되는지 도리어 조용하게 있어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편안했다.


평소라면 시끄럽도록 말을 걸면서 민서를 가만두지 않았을 그녀였지만 도리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것이, 내면적인 당황이나 놀라움을 반증하고 있는 듯도 했다.


야가미는 일단 그런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곧바로 도약을 할 셈이었다. 세 명이 동시에 사라진다면 눈에 띌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부상이나 사망의 위험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천천히 사람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사각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상황의 마무리를 위해서 야가미 역시 힘을 써야겠지만 일단 동료를 옮겨놓고 다시 와서 해도 늦지는 않아 보였다. 추가적인 테러의 낌새는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허공에 떠 있는 사내는 사람들을 비웃듯이 움직였다.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따위 일을 자행한 자가 가만히 있는 모습 자체가 그런 의도를 표현하는 듯하다.


그리고 야가미가 현장의 동태를 살피며 멈춰 서 있는 어느 버스의 뒤편으로 움직일 때, 그보다 먼저 허공의 사내가 사라졌다. 후욱, 하는 기묘한 소리와 감각은 한참을 떨어져 있었으나 왜인지 감지가 되는 것도 같았다. JE의 변화는 일반적인 물리 법칙에서 약간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을 이해하고 감지하는 순간, 환청처럼 근처에서 느껴지는 듯 들리기도 한다.


이러한 류의 기능 변화의 극점에 있는 것이 ‘옌’의 레이더로서의 능력일 지도 모른다.


JE가 움직였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던 사내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패닉에 가까운 상태 속에서 다시금 짧은 비명을 지르는 듯도 했다. 그들이 집중하고 있던 건 결국 허공에 있던 정체불명의 인간이었다. 그가 대놓고 사라지자, 이번에는 점퍼 조직의 요원들이 현장에서 뻔뻔하게 도약을 하던 때와는 다른 반응이 보였다.


시민들이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도약을 해버린 것이다. 이 정도 수에게 저렇게 감지가 된다면 변명을 떠올리기도 마땅찮다. 디지털 기계에 기록이 되지 않더라도, 집단 환각 같은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다수의 목격자의 말은 결국 무엇보다 뚜렷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은 그 다음에 연이어 벌어졌다. 남자가 사라지고,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는 기계가 남았다. 초대형 드론처럼 생겼고, 사람을 부양할만큼 큰 크기의 기체가 허공을 맴돈다.


어떤 종류의 조작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달려 있던 인형이 사라지자 기계는 불안하게 허공을 선회했다. 기어코 주인을 잃은 그것이 아무 곳으로나 추락한다. 아래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이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꺄악!“


하고, 높은 톤의 소리가 가장 먼저 울리고 들린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소방서나 경찰서의 인원들이 근처 지부에서 오기까지도 약간은 텀이 필요했다. 야가미는 속으로 비명처럼 욕을 했다.


대형 드론은 크기로 미루어 볼 때 그 무게가 수십 kg 단위의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처음에 던진 것처럼 화약류의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면 대형 사고가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었다. 빌딩에서 난 피해는 사람들에게 놀람을 선사했지만 실질적인 인명 피해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종류에 따라서 저 물건의 추락은 꽤나 거대한 규모의 재해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추락하는 기계를 바라보며 한낮의 오후, 야가미는 고민에 휩싸였다. 빠른 판단만이 현장에서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그 자신을 포함해서, 타인들의 생명까지 말이다.


그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저격하듯한 핀포인트 점프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 기체의 근처에 다가가서 일단은 손을 대어야 했다. 일시적으로라도 그의 근력으로 기계를 지탱했다, 고 판정이 된다면 점프로 저것을 한 번에 옮길 수 있었다.


무버의 조건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떤 것을 드는 것 말이다. 보통은 손을 사용해 물건을 들어야 한다.


짐을 옮길 때는 가장 높은 무게를 옮길 수 있는 데드 리프트의 자세를 보통 이용한다. 바닥에 둔 것을 잠깐만 들어도, 점퍼가 그것을 옮긴 것으로 인식해서 도약지로 물건과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


저 기체를 그렇게 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야가미도 야가미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움직여야 했다. 수많은 무작위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보다는, 그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조금이라도 사활을 걸어보는게 나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야가미가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추락하는 검은 기체의, 원래 사람이 매달리며 잡고 있던 하부의 손잡이께를 조준하며 도약을 준비했다. 쉽사리 한 번에 되지는 않았다. 주변 상황 역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기도 했고. 결국 다른 이들이 모두 목격하는 자리에서 점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 역시 부담이 가는 일이었다.


결국, 점퍼 조직과 그 전통에 따른 비밀주의를 자신의 손으로 이렇게 깨고야 마는가. 물론 그것이 생명보다 앞서는 절대원칙 따위는 아니었다. 가급적이면, 사회적 혼란과 그것을 무마하는데 드는 비용을 생각해 가급적이면 지키자는 것이었지.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할 생각은 평소에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야가미가 마음을 먹고 점프를 준비하는 가운데, 먼저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도약에는 전조가 있다. 야가미와 민서는 그들이 있는 현장 근처에서 누군가 JE를 발동하는 기척을 느꼈다. 이 정도라면 눈으로 분명 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야가미와 마찬가지로 비번으로 휴식을 가지다가 서울의 사태 때문에 호출을 당한 점퍼가 마침 있었다. 야가미와는 따로 지시를 받고 움직였기에 그가 눈치채지 못했다. 같은 장소의, 인적 없는 골목에 도착을 했다가 기체의 이상을 발견하고 도약을 시도한 점퍼는 ‘메리’였다.


그녀의 코드 네임은 브레이커였고, 그 별명의 유래는 그녀가 발휘 가능한 괴력으로부터 기인한다.


메리는 완전한 무장 상태였다. 그 때문에 조금 늦은 것도 있었다.


야가미가 움직이기 전에 그녀가 먼저 도약을 했고, 기체의 아래에 갑자기 나타났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기보다 추락을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정말로 무슨 헬기 따위의 추락이라면, 점퍼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얇은 몸체에 사람이 들 수 있어 보이는 무게의 물건이라면, 어떤 위치에 있던 점퍼가 그래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있었다.


일시적으로 몸의 근력으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을 점프의 타이밍과 맞출 수 있다면, 공중에서의 도약도 가능할 테다.


브레이커는 골목에서 먼저 도약을 했다. 기체는 대로변의 건물들 사이, 약 이십 미터 쯤의 상공을 부유하다가 이리저리 방향을 비틀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다. 프로펠러는 계속 돌아가며 난수처럼 그 방향을 바꾸어대고 있었다.


브레이커는 그래도 나름대로, 점프의 정밀도가 높은 편이었다. 저 정도의 속력에 눈에 보이는 자리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메리가 골목에서 사라지고, 기계의 아래 부분에 모습을 드러낸다. 정확하게 먼저 있던 사내가 손으로 쥐고서 안정적으로 자신을 지탱하던 손잡이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손잡이를 쥐었다. 그대로 온 몸에, 그녀의 근력을 일순간 증폭시켜주는 기계를 발동시켰다. 그녀가 일정한 행동을 하거나, 근육을 긴장하고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기계가 움직인다. 아주 예민한 것이었고, 익숙치 않는다면 도저히 움직임을 조절하기 힘든 장치이다.


그녀는 공중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주었고 기계를 발동시켰다. 두 손으로 어깨 정도 너비의 손잡이를 쥔 채, 검은 대형 드론을 아래 방향으로 길게 휘둘렀다. 그야말로, 휘두르는 것처럼 움직였다.


보통 공중에서 지지대도 없이 그만한 물리력의 물체를 움직인다면 도리어 몸이 끌려갈 것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주 일시적으로 그사이 틈에 그녀가 그 물건의 무게를 지탱한 것이 된다면.


반원 형태로 그녀는 그대로 팔을 끌어내렸다.


전방으로 휘둘러지는 양팔의 방향대로 대형 드론이 움직인다. 그녀는 자유낙하보다 약간 나은 처지였다. 방향이 흔들리는 드론과, 그것에 달린 프로펠러가 메리와 드론이 의지하는 양력의 전부였다.


고작 공중 십 수미터의 위치에서 위태로운 곡예를 보인다. 곡예보다도, 사고에 가깝다. 그녀가 점프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 확실히 목숨을 잃었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점프 능력이 있더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거리를 지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더 휘말릴 수도 있는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으득.“


메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팔다리에서 신호를 받아 움직이는 기계가 수 초마다 새롭게 작동했다. 뼈나 근골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타고난 강한 신체가 있어야 했다. 그녀는 다행히도, 그런 체조직을 타고 난 편이다. 운동 선수를 했다면 탁월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 역학을 잘 이해하는 머리나 재빠른 움직임도 중요했다. 그녀는 억지로 주어지는 힘, 관성 따위에 저항하지 않았다. 공중에서 춤을 추듯 그대로 프로펠러의 힘이나 중력 따위에 적응하며 공중제비를 돌듯 움직였다.


그저 힘을 사용하고 몸을 추로 삼아서 기계의 방향만 조금 바꾸는 것이다. 지상이나 어딘가에 닿기 전에 한 순간만 그녀가 조작할 수 있다면 된다.


공중에서 대회전을 하듯이, 프로펠러가 달린 드론의 손잡이를 잡은 그녀의 팔이 아래로 주욱 내려갔다. 그녀의 하체가 유연하게 접어들며 움직임에 따라 돈다. 물 속에서 유영을 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대류의 흐름은 아찔하다. 서울 한복판의 거리에서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수준 높은 기예였다. 어떤 서커스도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하지는 않는다. 이건 실제 사고의 상황이었다.


빌딩들 사이에서 메리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서 노력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고 힘이 풀려도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그녀는 점퍼로서,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사명감을 되새겼다.


그대로 몸이 회전한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프로펠러는 그녀의 움직임과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막강한 힘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같이 돌았다. 드론이 거꾸로 뒤집혀 그녀의 아래에 있었고, 그녀는 그대로 관성을 이용해 몸을 계속 돌린다.


드론은 그에 맞추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크게 한 바퀴를 접어 도는 동안 드론의 고도가 많이 낮아졌다. 아래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에 인지가 늦는 이들이나, 다가오는 위압감에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 공존했다. 영화보다도 더 믿기 힘든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가 자신의 신체 능력을 모조리 활용해서 액션 무비를 찍으면 이런 영상이 담길까.


드론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떠오른다. 중력의 역방향이었고, 일시적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메리가 드론의 무게를 감당하고 컨트롤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녀의 사지에 작용하는 신경 신호를 이용한 괴력의 기계가 동시에 작동했고,


동물적이라 할만한 것 이상의 감각으로 그 타이밍을 캐치해낸 메리가 정확하게 점프를 발현했다.


후욱, 하고 그녀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수십 kg의 무게를 자랑하는 길쭉하고, 뭐가 붙어있을지 모르는 대형 드론도 함께였다.


사람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꼈다. 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와 눈 앞에서 본 것의 현실감이 머리에서 괴리를 일으킨다.


서울 시내에서 도로변에 있는 수십 명, 혹은 그 이상의 목격자들이 동시에 꿈을 꾼 게 아니라면 그들이 바라본 일은 현실이 맞았다.


”후우······.“


야가미는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일단 메리가 해결했다는 안도감과, 이 일 이후에 벌어질 지 모르는 사태들에 대한 예감과 뒷감당을 동시에 떠올린 탓이었다.


민서는, 일단 살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곁에 있는 수정 역시 그러했고, 다른 이들을 향한 위협도 일단 사라졌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대낮의 서울. 갑작스럽게 일어난 테러에 가까운, 아니 이미 벌어진 테러 행각은 현대의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와 같이 벌어진 믿을 수 없는 현상들 역시도.


*

max-bender-VmX3vmBecFE-unsplash.jpg


작가의말

즐겁게,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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