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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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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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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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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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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DUMMY

 

 

어느 날 기지에서 있던 일이었다.

 

민서는 점퍼 조직의, 기지 내 인원들을 전부 마주하고 있었다.

 

시간은 22년 8월. 늦여름의 더위가 사람을 괴롭히는 시기였다. 다만 어딘가에 있는지 짐작도 잘 가지 않는 지하 기지는 냉방이 제법 잘 되는 공간이다. 환풍구를 어떻게 뚫은 건지는 모르겠다.

 

쾌적한 기온과 깔끔한 인테리어의 내부에서 민서는 서 있다. 나머지는 어딘가의 집합실, 혹은 회의실처럼 보이는 방에서 앉아 있다. 하얀 전등빛이 실내를 밝히는 장소였다.

 

세로로 긴 회의용 테이블에 앉은 인원의 수가 제법 된다. 십여 명은 앉아 있었고 나머지가 뒤편에 서서 팔짱을 껴고 있었다.

 

방 안의 톤은 기지의 다른 공간과 마찬가지다. 어딘가에 특색 없는 기업 사무실처럼 생긴 공간이었다. 점퍼 기지 내의 모든 공간이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적당히 급하게 자재를 가져다 두고 만들어낸 회의실같은 구색이다.

 

민서는 앞자리의 단상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아닌 이들도 있었다. 이미 이름도 알고 친숙한 사람도 있었다. 코드 네임을 잘 알고 자주 마주치는 인물들. 홍인수, 김만철, 스미스, 라고 불리는 송경태. 그리고 야가미 소우타도 비교적 잘 아는 얼굴이다. 조직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김민서는 늘 움직일 때 조직원의 비호를 받는 일이 많았다.

 

홍인수나 송일우가 같이하지 못할 때는 야가미가 그의 곁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야가미의 코드 네임은 ‘쉴더Shielder'였다. 따로 그가 김민서에게 코드 네임을 밝힌 적은 없었다. 그는 조직에 적대적인 점퍼들이 요인을 노리거나, 조직의 전복을 노리는 비상 상황이 아니라면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쉴더는 요인의 옆에 있어야 했다. 그 말은, 쉴더의 정체가 드러남에 따라 요인 역시 파악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습관적으로, 코드 네임 대신 본명이나 다른 별명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인수나, 송일우, 혹은 쉴더인 야가미 소우타가 그의 곁에 있다는 의미는 김민서가 조직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전까지 그는 단순히 점프의 뺑소니 사고에 휘말린 일반인이었지만, 연구부의 연구나 추리가 거듭되면서 점차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정도 스위스의 연구소에서의 연구와 실험, 그리고 훈련에 진척을 보이면서 ’재머Jammer'라는 코드 네임을 얻기도 했고.

 

오늘 이 자리는 그가 정식으로 조직에 참여함을 알리는 소개의 자리였다. 김민서는, 점퍼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어차피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일할 곳을 찾아보아야 하는 처지였으니, 김민서로서도 만족스러운 취직처를 찾은 셈이었다.

 

이전까지 단순한 아르바이트처럼 조직의 실험을 돕는 것보다, 정식 요원이 되는 건 훨씬 수당이 센 경우였다. 그는 직접적으로 점프를 할 수 있는 인원은 아니었지만, JE2라는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를 다루는 인물이다. 그 자체만으로 모든 JE관련 연구소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을 만한 인물이었으며, 또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점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능력자이기도 했다. 점프 조직은 이런 인물들이 필요했다.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을 점퍼들에 대한 통제권을 얼마나 얻느냐, 가 결국 조직의 관건이었다. 미약한 통제력을 가질수록 점퍼 요원 외적인 인원들의 고생이 심해졌다. 조직에 속한 능력자들이 특별함을 가지며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점퍼로서의 능력을 사회의 여러 방면에 헌신에 사용하고 도움이 될 수 있었고 말이다.

 

김민서의 등장은 조직의 오랜 고민에 대한 해갈을 해주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는 연구소에서의 훈련에서 충분한 가능성과 실적을 보여주었다. 그의 발전상에 커맨더는 민서를 조직의 점퍼 요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있었고 지금 이 자리에 이르게 된다.

 

‘조직’에서 점퍼 요원들이 받는 기본급은 월 2,000만원 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현장 임무의 위험도나, 시간 외 근무에 대해서 추가적인 수당이 지급된다. 세계 여러 사회에 막대한 이익을 끼치거나, 큰 재난 상황에서의 활약을 하거나, 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때는 또 그만큼의 인센티브가 있었고 말이다.

 

이러한 활동 하나하나가 서로가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 속에서 영향을 미치고, 또 그 국가의 이익으로 귀결되고, 또한 점퍼 조직이 맺고 있는 각국의 여러 단체와의 관계성에 이익을 주기 때문에 그러했다.

 

누구나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총화기나 칼날이 날아다니는 전투 임무에 나서는 리시버나 소드 마스터의 경우에는 그런 전투 추가 수당이 어마어마한 편이었다.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나설 때는, 한 달에 십억 이상의 수당을 받기도 한다. 그것이 1차적인 추가 지급 수당이었고 일의 결과와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에 따라 받는 보너스가 더 있었다.

 

가령, 미국에서 갑작스레 일어난 영국 공주의 납치 사건에서 활약을 했던 리시버는 영국 정부가 건 의뢰금과 소정의 감사금의 일부에서 그의 몫이 떨어지게 되었다. 점퍼 조직 자체가 원래 그러한 일을 하는 단체였기에, 거래의 관계에 있어서 지나친 폭리를 취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을 상대편에서 챙겨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점프’라는 막대한 초능력을 일정 금액으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는 건, 각국의 수뇌부에게 있어서 상당히 유용한 거래처로 인식되는 일이었다. 그들이 해결해내는 의뢰에 따라 단골이 되어가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점퍼 조직은 나름대로 규율이 강하고, 엄정한 훈련과 기준에 따라 의뢰를 완수하는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김민서는 그런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20대에, 할 일이 없이 그저 방구석에서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시간을 버리던 일상에서 일어난 일 치고는 말이다.

 

어찌 되었든, 김민서는 만족스러웠다. 점퍼 조직이 그가 죽을 만한 사지에 함부로 그를 내몰 일은 없을 테니, 두려움이야 어쨌든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도 있어 보였고 말이다. 그저 그가 눈을 한 번 꾹 감고 시키는 대로만 따른다면 어지간한 현장들은 모두 이겨낼 수 있을 테였다. 언제나 그의 곁에 최정예 요원들이 붙어 있을 것이기에.

 

“엄······.”

 

김민서는 그런 상황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따로 마이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크거나 넓은 자리도 아니었고, 인원들도 아니었다. 평범하게 말을 하면 닿을만한 거리.

 

아직도 모르는 일원들이 아주 많았다. 그는 제한된 현장과 임무에만 참여를 했었고, 정식으로 혼자 움직이는 경우가 없었으니.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테였다. 점프 능력이 없는 점퍼 요원인 그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임무에 단체 도약으로 함께 움직일 조원들이 늘 필요할 테다.

 

그래도 비단 점퍼 요원으로서, 기지 내에 개인실을 배정 받고 그 안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앞으로 알게 될 인물들이었다.

 

현재 점퍼 조직의 점퍼는 총 21명이다. 커맨더를 포함해서. 그리 넉넉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점퍼가 100여 명을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한 비율이 그들 사이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그럴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겠으나, 존재하는 모든 점퍼들이 폭주한다고 해도 개별적으로 진압이 가능한 무력이 그들 조직의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20명의 훈련된 점퍼들이 있다면, 동시에 전 세계의 점퍼들이 능력을 사용하며 미쳐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아슬아슬하게 상대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도움을 받을 각국 정부와 군 등 다양한 단체들의 백업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무엇보다 강력한 강도로, 군사 훈련 따위를 받게 된다. 그들의 본질은 결국 무력을 사용하는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여성 요원도 있었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몸이 아닌 이들도 있었으나 반복되는 꾸준한 훈련 속에서 그럭저럭, 쓸만한 인원들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방향성의 사명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조직의 ‘코치’인, 김만철의 일이었다. 조직에는 조직의 사상과 세계 정세를 이해하고 조직의 키를 잡을 커맨더와, 조직의 무력 수준의 유지를 위한 군사 전투 전문가인 ‘코치’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그 외에 다양한 고정적인 코드 네임들이 있었고.

 

김민서가 받은 ‘재머’라는 코드 네임이 앞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일단은 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코드 네임이 되기는 했다. 현재 상황에서.

 

김민서는 좌중을 둘러보며 어색하게 말을 시작했다. 단순한 인삿말을 하는 시간이었다. 자신에 대한 소개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한 발표. 언제, 어느 단체를 가나 하게끔 되는 그런 시간이다.

 

“제가, 재머Jammer입니다. 뭐···. 많이 부족합니다만, 죽지 않게끔 잘들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여러분의 안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처음 이 조직과 마주쳤을 때, 홍인수 씨··· 소드 마스터의 설명을 들으면서 상상한 모습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한 조직인가 하며 떠올린 비밀 조직의 모습입니다······. 뭐 실제적으로 하는 일들은 그다지 거창한 구석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왕 무언가 한다면 평화와 정의를 위한 방향이 좋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민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청년의 말은 단순하고 담백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별 것 아닌 말에, 나름대로의 낭만이나 순정의 한 조각은 담겨서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점퍼 조직에서 헌신하는 이들의 마음에도 있는 것이었어서, 그들은 민서를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점퍼 조직에서 ‘재머’의 정식 탄생이었다.

 

*

 

22년도에 들어 조직에 새롭게 생겨난 점퍼 요원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코드 네임들을 받았고, 그 이름들이 앞으로도 조직에 필요한 능력들을 포함한다는 게 눈여겨 볼 만한 변화였다.

 

‘레이더’라는 이름의 옌이 있었다. 그녀는 반경 수 킬로미터에서 JE의 변화를 감지하며 점퍼를 발견할 수 있는 탁월한 추적자였다.

 

그리고 김민서, 라는 한국인 청년이 가진 ‘재머’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는 잠깐의 집중을 통해서, 근처 점퍼들의 점프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능력자였다. 또한 그 능력의 한계나 범위가 뚜렷이 정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능력이 한계라고 할 만한 지점에 도달한다면, 어떤 능력자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블레이더blader 또한 합류했다.

 

어느 영화에 나오는 흑인 흡혈귀 사냥꾼은 아니었고, 한국인 청년이었다. 다소 눈매가 사납게 생긴. ‘송일우’의 코드 네임이었다. 그는 지난 봄, 조직의 홍인수에 의해 제압당한 이후로 순종적인 협력을 이어왔다.

 

점퍼 조직의 활동과 각국의 범죄에 대응하는 움직임에 있어서, 나름의 헌신도를 보이며 그의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점퍼로서 움직이면서, 동시에 군사 활동의 전문가로서 강한 전투력을 보이는 요원은 귀한 편이었다. 보통은 한 쪽의 특별함을 갖지, 둘 모두를 동시에 가지는 이들은 점퍼 조직으로서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편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점퍼들은 훈련을 받고, 근접 전투나 총화기 사용에 대한 실력을 쌓지만 정말로 실전에서 목숨을 걸고 움직일 수 있느냐, 고 물었을 때 장담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은 많지 않았다.

 

점퍼라고 하더라도 총에 맞으면 똑같이 꿰뚫리고 죽는다. 순간이동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는 인물들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테러 현장이나, 범죄 현장, 심지어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다른 강인함이 필요했다. 그건 온갖 인적 자원의 백업과 기술적 지원, 최첨단 장비의 특수성을 활용한다고 해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 외면적인 평화의 시대에서 전쟁터로 뛰어 들어가 사선을 넘을 만한 용사들이 늘 필요했다. 송일우는 그럴 만한 물리적인 능력을 가진 이였고, 자신의 의지대로 조직에 협력했다. 조직은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을 할 인물들이 늘 부족한 입장이었고, 그렇게 그는 받아들여졌다.

 

물론 단순히 잘 싸운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이전까지 저질렀던 행각들이 모두 말소된 건 아니었다. 일부분은, 여전히 진 빚을 갚듯이 활동하는 게 필요할 테다. 법적인 절차에도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는 점퍼 조직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점퍼 요원들에 비해 낮은 대우로 일을 해야할 시기를 가지게 된다.


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가진 바 능력을 조직을 위해 사용하고 코드 네임을 얻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완벽한 자유와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의무적인 헌신에 가까웠고, 일정 기간 동안은 단적으로 말해 수당이 제한된다.

 

그럼에도 그들이 어떤 신변의 직접적 구속 없이, 자유를 가지고, 일정량의 급여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환경이 제법 근사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활약을 공적치로 계산해서 사법상의 형량을 삭감하듯 바꿀 수 있다는 게 아주 해볼만한 일이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그저 받아들이는 절차밖에 겪지 못하니 말이다.

 

둘은 조직에 헌신적으로 임했다. 여태까지의 삶에서 사회에 분란을 만들어내는 쪽을 선택한 건, 그저 선택지가 그 쪽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상황적으로, 지식적으로 무지했고 그들은 더 나은 길을 찾지 않았다. 직접 살아보니, 지금 그들이 겪는 삶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이었다.

 

*

 

“여기가 개인실입니다.”

 

친숙한 홍인수의 소개에 민서는 자신의 기지 내 배정받은 방을 둘러보았다. ‘호오오오오.’ 그는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희고 깔끔한 방이다. 혼자 살기에 부족해 보이는 공간도 아니었고. 흰 천으로 시트가 깔린 침대는 호텔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따로 기지에는 청소업자가 있어서 주기적으로 내부 먼지를 없애주고는 한다.

 

조직과 연이 닿은 다양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고용인들로, 신뢰성에 있어서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이들이었다.

 

어쨌든, 적어도 처음 그가 스스로 구한 청량리의 원룸보다는 훨씬 나은 처지였다. 설비도 최신식으로 되어있었고. 무엇보다 조금만 걸으면 기지 내 식당이 있어서 고급 요리를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컸다. 그는 자신의 삶의 질에 굉장히 만족했다.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앞으로의 시간들은 돈을 쓸 여유가 없는 일상이 될 확률이 높았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초능력 중 ‘순간이동’ 능력을 가진 특수 요원들의 모임이라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특수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공간들이 아주 많았고, 순간이동은 전 세계 각지의 고민들에 대해 즉시 응답할 수 있는 종류의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점퍼 조직의 요원들은, 그들의 능력의 성질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물론 지나친 임무 할당으로 피로도가 과중되는 것은 지양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무런 일도 없이 여유롭게 휴가를 떠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임무와 임무 사이에, 잠시 여가 시간을 즐길 뿐이다. 그러다가도 비상이 터지면 여지 없이 복귀해서 조직의 행동에 동참해야 했고.

 

홍인수는 김민서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만큼 많이 부려 먹으니 주는 혜택들입니다. 특히 당신 능력은 모든 종류의 임무에 필요하게 될 지도 몰라요.”

 

JE2는 점퍼가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점퍼가 없으면 그의 능력 또한 무용하지만, 점퍼들에게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는 현장에서도, 혹은 기지 내의 점퍼들을 상대하게 될 때도 고생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뭐 어차피 지나가는 젊음을 이곳에 투자를 좀 해 보죠.”

 

민서의 대답은 홍인수로서는 기꺼운 것이었다. 그들 역시 그러고 있다. 자각하든, 하지 못하든. 점퍼 조직의 일들은 그저 지나가는 일처럼 하고 때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니. 누군가의 인생을 상대하는 수 많은 의뢰들은 그들 역시도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어야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들은 이 건물과 사람들, 조직에 남다른 애정과 애틋함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다지 내색은 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가 정식 요원이 되고 나서 여러가지 것들을 받게 되었다. 늘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통신기나, 세계 어디에서나 연락이 가능한 위성 전화. 장비실에서 받게 된 다양한 전투 현장의 착용 장비들. 그리고 그가 전용으로 쓸 수 있는 작은 권총 역시 하나를 받았다.

 

민서는 그것을 받았을 때는, 그저 손 위에 올려 두고 멀뚱히 한참을 처다 보았다. 난데 없이, 한국의 20대 청년에 불과한 그에게 주어지는 것 치고는 제법 부담감이 있는 물건이었다. 기록은 남겠으나, 원한다면 신청만으로 얼마든지 실탄을 지급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다루기 위해서 손에 피가 나는 훈련을 이수해야 했지만 말이다. 김민서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체력 훈련과 격투(일방적으로 굴림 당하는)훈련 외에도, 총화기를 다루는 훈련 시간을 가졌다.

 

나름대로 익숙은 하지만, 자기 스스로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물건이라는게 놀라움이었다. 이 조직은 대체 자신의 무엇을 믿기에 이런 것들을 쥐어주는가, 싶은 심정.

 

그러나 곧 그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적대적인 점퍼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가 또한 가게 될 테였으니.

 

“앞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곳입니다. 기지 이곳저곳을 좀 둘러보고, 내부 인원들이랑 편하게 이야기도 좀 나눠보고 그러십시오. 나가고 싶을 때는 비번인 인간 아무나 붙잡고 외출을 하시고요. 아마 저나 리시버가 비번일 때는 저희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남들보다 도약 횟수가 많으니.”

 

홍인수의 설명에 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지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웠지만 나갈 일도 분명 많을 테다. 인간 관계가 극단적으로 협소한 그였으나 그래도 사람을 만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봐야 할 사람들도 있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소드 마스터는 웃으면서 어깨를 쳤다. 습관적으로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제법 아프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점이라면, 그가 조직의 정식 요원이 되면서 받는 훈련의 양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평일에 연구소에서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체력 훈련을 했다. 이제는 평일에 실험과 훈련에 할애하는 시간도 늘었고, 체력 훈련도 동시에 겸했다. 김만철은 좋아라 하는 것 같았다. 김민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였지만, 그 중년의 교관은 사람을 굴리면서 행복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좋든 싫든, 빠르게 그는 다양한 상황과 움직임에 익숙해져 갔다. 물리적으로 말이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자 어느 정도 자신감 역시 생겼다. 어떤 현장 임무에 끌려가도, 쉽게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이전까지는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도탄에 맞아 쓰러지는 상상까지 하고는 했지만, 지독한 시간들을 거치면서 현장에서의 돌발 상황들에 반응하는 것까지 머리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자신이 할 수 있는 움직임들을 추가하자, 나오는 가능성 높은 상상들이었다.

 

*

 

아직은 한참이나 부족하다, 고 김민서는 생각했다.

 

어두운 방이었다. 그가 있는 곳은. 정확히 말하면, 대형 창고 따위다. 항구에서 화물선에 적재되어 실려 나가는 물건들이 잔뜩 있고, 컨테이너 박스 따위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다소 오래된 창고.

 

항구에 있었으며 조용하고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어느 비밀스런 어둠의 조직 따위가 거래 장소로나 쓸 법한 그런 곳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런 조직이 뒷거래를 하기 위해 사용중이었고.

 

김민서는 그런 거래 현장을 덮친 처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한 건 아니다. 단순히 그는 옆에 있을 뿐이었다.

 

현장 경험의 축적을 위해 따라나선 순간이었다. 부상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조직에서 점퍼 요원들에게 제공하는 특수 방탄복 따위를 전신에 착용하고 있는다면 어지간해선 다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살기 넘치게 총구를 겨누며 욕설을 하는 범죄자들과 상대를 하고, 운이 나쁘면 몇 발인가 몸에 박혀서 체감상 헤비급 복서의 맨주먹을 맞는 느낌을 경험할 뿐이다. 그가 입은 옷은 총알에 뚫리는 종류는 아니었다. 인생에 대해서 다시금 되돌아볼 만큼 더럽게 아픈 체감만 허용하는 종류였지.

 

민서는 어느 방치된 컨테이너 박스의 뒤켠에 몸을 웅크린 채 있었다. 양 팔로 귀를 감싸고, 황급히 바닥에 엎드린 자세이다. 일부러 하라고 해도 하기 어려운 수준의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금방 근처로 총알이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곁에 있는 것은 홍인수와 리시버였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임무에 나서는 건 그리 자주 있는 아니었다. 그만큼이나 확실하게 일을 끝내고자 할 때, 조직에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둘 만도 아니었고, 다른 백업 요원들도 있었다. 비점퍼 요원들로, 근처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온 인원들도 있었고 점퍼 조직 내에서 함께 단체 도약으로 온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필리핀의 어느 항구 도시에 있는 범죄 조직을 소탕하러 온 참이었다. 예전 ‘윤민혁’이 조직적으로 일을 일으키려고 했을 때 연을 맺었던 조직이었다. 그는 동남아를 기반으로 국제적인 다양한 범죄 조직과 연계해서 더욱 큰 분란을 일으키려고 했었고, 그 계획을 키워나가는 중간에 홍인수에게 걸려 붙잡혀 들어오게 된다.

 

그 팀에 속해 있던 송일우와 옌이 점퍼 조직의 편에 서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다양한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었고 이번 소탕 작전은 그 정보에 대한 대응이었다.

 

점퍼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지 모르는 범죄 조직들을 굳이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민간인들에게도 정보를 통제하는 와중에, 어떤 계획을 세울 지 모르는 음흉한 이들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줄 이유가 없다. 가급적이면, 뿌리를 뽑고 와해시키는 게 좋은 방법이었다. 그를 위해서 가장 간편한 건 무력을 사용한 진압이었고.

 

후욱, 하는 바람이 스치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어두운 창고 곳곳에서 난다. 급조해서 달아둔 듯한 전구나, 백열등 따위가 빛을 밝히는 곳이었다. 이곳에 익숙한 자라도 흔들리는 전등빛 아래서 완전하게 윤곽을 구분하는 게 어려운 장소이다. 오래도록 방치되어서 메마른 먼지 따위가 날아다니고, 고요한 장소였다.

 

한 밤의 필리핀, 어느 항구 도시의 인적 드문 창고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필리핀의 공적 단체에는 여러모로 언질을 주고 협조를 구해둔 상태였다. 그랬기에, 필리핀 쪽의 특수부대 인원들을 백업으로 얻은 것이었고.

 

투두두두! 하고 기관단총이 총알을 쏟는 소리도 간혹 들렸다. 전체적으로 백업 요원들은 차분하게 몰이를 하고 방진을 형성하는 정도에서 그 역할을 마친다. 지나치게 무리해서 교전을 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점퍼이자 특수 전투 요원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리시버나 소드 마스터가 마무리를 해준다.

 

변변찮은 장비도 없이, 그저 총질만 해댈 뿐인 범죄 조직은 그들에게 있어 아주 쉬운 상대였다. 적절히 위치만 확인한다면, 그들은 혼자서 수십 명도 처리가 가능했다. 둘은 임무에 권총만을 들고 온 상태였고, 늘 그렇듯 신속한 반사 신경으로 상대의 사지를 노리며 제압을 시도했다.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필리핀어나, 영어로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도 같았다. 어쨌든 간간이 울리는 총성과 찢어지는 괴성 소리에 섞여서 제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민서는 백업 요원들보다는 교전 위치에 가깝게 있었고, 홍인수나 최길우가 있는 곳에서는 떨어진 곳에서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창고 바닥이라, 차갑고 딱딱하다. 그는 자주 바닥과 접하는 것도 같았다. 러시아에서도 그랬다. 그 동안 많은 훈련을 받고, 또 경험도 했으니 그 때보다는 대담하게 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실탄이 날아든다는 걸 인식 하자마자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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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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