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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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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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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5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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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DUMMY




생존성은 김민서에게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현장에서 적어도, 허무하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애초에 점퍼 조직에서 그에게 요구하는 신체 능력도 딱 그 정도였다.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전장에서 생존해 있고,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발휘하고 있는 것만으로 점퍼 간의 교전에서는 전황이 바뀔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샤오 첸'이라는 인물과의 싸움에서 민서는 중요한 변수였다. 재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기에 그 폭탄광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약점을 드러내며 결국 물리치기에 이르렀다.


결국 점퍼 조직의 가장 큰 의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먼저 꼽아야 하는 목적을 구분하자면 한 가지였다. 사회에 악의를 드러내며 활동하는 점퍼들의 움직임을 막는 것.


점퍼는 점퍼들이 결국 막아야만 했다. 일반적인 대처법 역시 유효할 수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그 동선을 쫓아갈 수 있는 존재는 같은 점퍼 뿐이었다. 한 명의 점퍼가 하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반 전력으로는 수십, 수백의 인원들이 동원되도 모자랄 수 있었다.


지대한 낭비가 아닐 수 없었고, 혹여라도 놓친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한 점퍼들에 대한 통제가 완성 단계에 이르거나, 일시적으로 소강 상태에 다다른다면 점퍼 조직이 해야 하는 건 다른 중요 의의의 실천이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초능력을 이용해서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


세계에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 고난들이 널려 있었고 개중에 순간이동이라는 초능력을 대입했을 때 의외로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해결이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 부분들에 점퍼들이 변수로서 대입되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더 많은 부분에서 더 다양하게. 결국 공익을 위하는 것이 점퍼 스스로가 사는 길이었다. 공동체 내에서 그들도 살아가기에 그러함이다.


점퍼 조직이 신경을 쓰는 부분들은 계속 그 두 방향성 사이에서의 전환이었다. 심각한 수준의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점퍼가 발견된다면 그 쪽으로 신경을

집중시키며 조직의 운영 방향을 결정했다가, 미친 초능력자들이 어느 정도 안정감을 보이면 사회적 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웠다가, 의 반복이었다.


수뇌부는 커맨더, 코치가 있었고 그 외에 비 점퍼 인원들이 여럿 있었다. 개중에 얼마간은 각 단체와의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혹 어떤 이들은 점퍼들과 관련된 일들만 특별히 처리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의 일들 중 하나가 전 세계 각국의 빅데이터를 모아 AI를 통해 정리를 시키고, 개중에서 점퍼에 관한 것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는 정보를 하루종일 처다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조금 나아진 편이었다. 옌이라는 레이더가 조직에 참여하고서 말이다.


끝도 없는 망망대해를 조각배로 떠다니는 기분일 것이었다. 드넓은 지구에서 고작 수십 명에 불과한 점퍼들의 흔적을 찾아낸다는 게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수색 시도가 허탕을 치기는 하지만. 간혹 마치 초자연적인 이끌림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찾고 닿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사의 흐름이라는 게, 수학적으로만 이루어지지도 않는 법이었다.


그런 점에서 홍인수와 김민서의 만남은 다소 특이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김민서가 가지고 있는 재머로서의 능력이 있었으니. 수학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필연성을 가지는 만남이라는 게, 삶에서 얼마나 있겠는가.



*



김민서는 꿈을 꾸었다. 11월. 어느덧 추워진 날이었다. 주변의 한기에 영향을 받거나, 혹은 깨어 있을 때의 기억 탓인지 꿈 속에서의 배경도 마찬가지로 쌀쌀해진 날씨에 외투를 걸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어둡고 검은 공간에 있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빛이 별로 없는 어두운 골목길, 혹은 방 안. 혹은 조명이 전부 꺼져버린 넓은 광장의 한 가운데일지 모른다.


그가 꿈 속에서 느끼는 건 오로지 춥고 쓸쓸하다, 뿐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공간감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하늘이 높다. 거대한 광장인가보다. 혹은 예전에 다녔던 성현대의 대운동장인가.


그는 말을 멈추고 꿈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마치 점프에 휘말렸을 때와 비슷했다.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점프는 일순간의 시력의 상실을 유발했다. 시각은 막대한 정보 입력 장치였고, 점퍼들의 점프는 개인이 인식하는 위치 정보가 필요했다.


시각의 상실로 인해 점퍼들은 텀이 없는 연속 점프에 다소의 제한을 받는다. 그저 아무 곳으로나 움직인다면 사실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로 연속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보조 기구나 질 좋은 암기력, 혹은 주변 동물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을만한 추리력이 필요했다.


민서는 단체 도약에 휘말렸던 적이 올해 굉장히 많았으므로, 그런 느낌으로 생각했다. 다만 그것보다 조금 더 긴 시간동안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캄캄한 공간인가보다.


민서는 숨을 크게 쉬었다. 몸의 가슴 어림께를 만져보니 코트를 입고 있었다. 작년에 자주 입었던 코트의 질감이다. 올해는 오래 되어서 버렸다. 어떻게 바로 아느냐면, 그가 입는 코트는 한 벌 밖에 없었으니까다. 그는 이런 류의 옷을 잘 챙겨입지 않았다. 왜인지 챙겨 입는 것만 같은 폼이 나서였다.


돈도 없었고. 누군가한테 눈에 띌만한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날백수나 혹은 평범한 차림새를 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최대한 정갈하게 꾸며봐야 깔끔하게 입는 정도였다.


그는 아마 갈색의 코트를 입고, 하체의 촉감으로 느껴보면 허구한 날 입고 다니는 청바지를 입은 모양이었다. 발에는 구두와 조금 비슷하게 생긴 운동화인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차다. 감기에 걸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련만.


하고 그는 꿈속에서 생각했다. 꿈속에서 진실로 감기에 걸릴 일은 없었다. 그가 이불을 다 걷어차고 창문이라도 열어두고 있는 게 아니라면야. 아니, 정말로 그런가?


아니, 정말로 그런가,


까지 생각을 했다가 민서는 위화감을 느꼈다. 꿈속에서 현실을 인식한 순간 그것은 과연 꿈이라고 할 수 있는가. 흔히들 자각몽이라 부르는 것일 지도 모른다.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충분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 그는 이 시간을 달갑게 받아들였다.


그러자마자, 머리 위에서 희미한 빛이 나타남이 느껴졌다. 민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별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생겨났다. 하나, 두 개. 혹은 그 이상. 불이 켜지듯 천천히 나타나는 샛노란 별들이 하늘을 수놓는다. 노란색보다는 사실 흰 색이 더 많이 섞여있는 듯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점점이 나타나는 별들이 점묘화의 기법으로 미술가가 찍어내는 그림처럼 수도 없이 늘어나더니 곧 하늘을 가득이 채워갔다는 것이다.


수없이 늘어난 별들은 곧 달처럼이나 주변을 밝히는 듯했다. 별 이상의 빛이었다. 은하수라 불러야 할까. 희귀하고 또 신기하게 빛을 비추는 밤 하늘의 광류였다.


미칠 광이 아니라 빛날 광.


그러고 나서, 그 하늘 어딘가 민서의 머리 위로 달이 하나 떠오르는 듯하다. 희게 빛나며 그 표면이 눈에 담길 정도로 커다란 달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어둡다고 생각했던 주변에 빛이 비추어졌다.


운동장이었다. 그가 줄곧 다니곤 했던 성현대의 운동장. 농구장이 있고, 달리기 트랙이 있고, 축구장이 함께 있는 곳. 흔한 대학교의 운동장이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울고 웃고, 철없는 청춘을 쏟으며 나름의 캠퍼스 라이프를 즐겼다.


땀이나 눈물, 그런 것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인생이 인생다워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자신에게는 그런 것들이 다소 부족했다. 다소.


그런 익숙한 장소에서 생경한 광경이었다. 이런 새벽녘에 아무 일도 없이 운동장에 있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초자연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그러했다.


달과 함께 밝아진 주변 모습.


갑자기 나타난 별처럼, 그가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 누군가의 모습이 생긴 것 같았다.


그야말로 생긴 것 같았다. 다시 눈을 비비고 돌이켜 보아도 원래 있던 것처럼 누군가가 저 먼곳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헛것이나 아지랑이는 아니었다. 너무나도 뚜렷했고, 빛의 밝기는 적어도 사람의 형상을 헷갈리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니까.


이런 류의 나타남이 현실에서 많이 익숙했다. 그가 점퍼라고 불리우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점퍼의 점프는 아주 세밀하게 집중하지 않고, 또 그 JE에 익숙하지 않다면 아무런 전조도 소리도 없이 이루어진다. 또한 분절되거나 그 전체 현상의 딜레이가 되는 일도 없어서 그야말로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이 떡 하니 나타난다.


그러해서 처음 홍인수를 바라보고 그렇게 놀랐던 것이었고.


아니, 목부터 해서 천천히 사람의 형상이 허공에 나타났다면 더욱 놀랐으려나. 그것 그것대로 기괴할 것 같았다. 순간이동이 한 명에게 한 번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부위별로 이루어진다면 그 단면은 대체 어떻게 상상을 해야 할 것인가.


아무튼 사람의 형상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었다. 민서가 있는 것이 운동장의 한 가운데였고 '그'가 저 멀리 끄트머리에 있었다.


그리고서, 별이 점점이 많아지듯이 사람들 역시 늘어났다. 눈을 깜빡이거나, 잠시 생각에 잠겨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순간마다 금새 늘어나 있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정도를 한 열 번, 스무 번 반복할 즈음의 시간이 지나자 운동장에 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운 이들이 있었다.


마지막에는 열 명, 스무 명, 수십 명의 인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각각 다르게 생긴 이들이었다. 가까이에 보이는 이는 동양인 노인이었다. 멀리는 서양인 아가씨. 그 뒤로 어린아이도 있다. 한 중학생 즈음인가. 남자, 여자, 건장한 자, 왜소한 자. 늙은 자나, 혹은 젊은 자. 준수한 자나, 평범하게 생긴 자. 드레스를 입은 여성도 있었고, 양복을 입은 남성도 있다. 누군가는 뜬금없이 소방복을 입고 있었다. 화마와 싸우기 위해 입는 현장복이었다. 길게 늘어진 덮개가 목과 상반신을 가리는 두터운 방화복.


군인도 있었고. 누가 보아도 학생처럼 보이는 이도 있었다.


갑자기 운동장에 드러난 사람들이다. 민서는 그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말했듯, 별들처럼 순식간에 늘어났다. 이들 모두가 점퍼라고 한다면 현실이라 할 지라도 말이 되는 일이었다. 다가오는 기척도 없이 그 곁에 다가와 있는 이들.


민서는 경계심이나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의 표정 또한 썩 그리, 경계심을 품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적대적이거나 사나운 기세를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자신의 자리에 있다는 듯 편안하게 서 있을 뿐이다.


은은하게 웃는 양반도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이렇게 찬찬히 살피는 것도 굉장히 꽤나 오랜만인 일이었다. 티비 속에 비추어지는 방송인의 표정조차 이토록 심도 깊게 살피는 일이 적었다. 부모님을 만난 지도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꽤나 오랜 일이었고.


가장 최근에는 그나마 김수정의 얼굴을 몇 초인가 지긋이 들여다본 게 오래도록 본 일이었지.


홍인수는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다. 보통 그와 있다 보면 정신 없이 날아다니거나, 뛰어 다니거나, 혹은 날려져서 바닥을 구르는 일이 많다. 즐거운 일이었다, 제법.


지루한 일상에 몸을 쓰는 것도 나름대로 신나는 일이다. 다른 잡다한 것들을 신경쓸 겨를도 없어지고.


아무튼 어느덧 인파라 부를 만한 것에 둘러쌓인 민서는 딱히 무언가 하질 않았다.


그냥 그런 기이한 꿈이었다. 누군가에게 둘러 쌓이는.


요새 스스로가 외롭다고 느끼는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민서는 굳이 심도 깊게 꿈의 해석을 파보지는 않았다. 그냥 그 정도로만 생각했고,


곧 꿈에서 깨었다.


"......."


눈을 뜬 그를 반기는 것은 한결같은 천장이었다. 닳고 닳도록 수많은 1인칭 소설에서 쓰인 문장이었다. 친숙한 집의 방이라는 건 지겹고도 안도감이 드는 장소였다.


그리고 민서는 잠에서 깬 채로 곰곰이 잠시 생각을 했다.


어느새 걷어 차서 멀리 있는 이불 때문에 드러난 몸이 으슬거렸다.


"...재밍 능력이 최고조에 다다른다는 이야기인가."


굉장히, 설득력이 높은 이야기였다.


홍인수를 끌어왔던 것처럼, 이대로 재밍 능력이 극한까지 개발이 된다면 그는 앉은 자리에서 전 세계의 점퍼들을 불러모을 지도 몰랐다.


사용하기에 따라 굉장히 유용한 힘일 지도 모르지만, 민서 개인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번잡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 곳에서나 순간이동을 해대는 작자들이 그 때마다 자기 옆에 모습을 나타낸다니.



*



윤민혁은 거의 상처를 입은 짐승처럼 굴고 있었다.


무엇이 상처를 받았느냐, 묻을 때 그의 몸을 살핀다면 그다지 흔적을 발견하지 못할 테였다. 그가 잃어버린 건 자존심의 일부였다.


그는 원래 계획적인 사내였다. 거침이 없던 사내이기도 했고.


젊은 시절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총알의 사이를, 비록 제 몸으로는 아니지만 점프 능력을 이용해서 마음껏 날아다녔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을 잡았고, 또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전쟁터에서 활약했다.


한 번 '조직'에 속한 추격자에게 당해서 경고를 받고 누그러들었지만. 많은 세월이 지나 다시 다른 이들을 모았다.


'팀'을 갖추어서 한 번에 쉽게 당하지 않도록 구조를 갖추었다. 일정한 시기마다 서로 연락을 취하고, 이상이 생긴다면 곧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유기적으로 움직였고, 긴밀한 협조를 만들었다.


거기다 점퍼들만이 아니라, 비슷한 일들을 꾸미고 진행할만한 뒷세계의 이들을 만났다. 어찌 보면, 점퍼 조직이 만들어지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결국 큰 일을 도모할 때의 양상이란 게 대개 대동소이한 걸지도 몰랐다.


소수의 통제 가능한 엘리트 인력을 자신의 주변에 몰아넣고, 그것들을 자원 삼아서 규모 있는 단체와 접촉해서 대규모의 계획을 그려 나간다. 카리스마 있는 한 명이 대단위의 사건을 제어할 때 취하기 좋은 형태였다.


그러나 어쨌든 개박살이 났다. 점퍼 조직의 추격자에 의해서. 젊은 날에 그가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직은 자신의 예상이나 준비보다 늘 앞서 있었고, 수준 높은 양질의 재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애초에 그래서 모습을 감추고 행동을 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그것마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이전에 비해서 세상이 좀 더 촘촘해졌다. 도시에서 움직여야 할 때는 어쨌든 수많은 디지털 기기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일을 벌여야만 했다. 전자 상의 흔적이나 거래 기록 따위도 덜미를 잡히기가 쉬운 것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집요하고 미친- 추적자들의 눈에 든다면 가끔 이렇게 어이 없이 뒤를 잡히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 의해 초토화가 된 것도 아니었다. 고작 한 명. 중요한 건 한 명이었다. 아마 조직의 전투 요원일 것 같은 한 명의 점퍼에 의해서 한 장소에 모여 있던 팀원들이 와해되었다. 그 자신은 그 다음에 따라 붙은 다른 젊은 요원에게 붙들렸고.


나이를 먹었다지만 결국 그렇게 지고 만 것도 사실은, 분한 일이었다. 인생이 경쟁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아직도 불타오르는 젊은 날의 치기가 있을 정도로 철없는 사내였다.


그 치기가 젊은이의 패기에 눌려 사그라들었을 때의 패배감은 나름 쓰디쓴 것이었다. 그러고도, 또한 이렇게 붙잡힌 처지가 되어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섬 속의 감옥에 처박히는 일도 말이다.


감옥은 철저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위치 센서를 붙인 뒤 다녀야 해서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면 일정 세기 이상의 전류 찜질을 당해야 한다. 죽거나 후유증이 남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강력범에게 가해지는 처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적절한 수위였다.


그리고 감옥이 있는 섬을 관리자의 키 없이 벗어나게 된다면, 늘 차고 다녀야 하는 손발목의 구속구가 그대로 폭발한다. 아마 응급 의료 기관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이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실혈사나 쇼크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물건이었다.


이는 점프를 이용해도 당연히 마찬가지였고, 구속구 내부의 센서와 AI가 실시간 위치 데이터를 받고 메인 CPU로 전송을 한다. 정해진 입력값 외의 위치 데이터가 들어가게 되면 가차 없이 터지는 것이다.


아마 도약지에 도착하는 순간 날아갈 테다.


섬에 있는 기지의 기후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저 적도에서 약간 떨어진 대양의 어딘가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별자리나 여타 기후 시기를 살폈을 때 태평양 어딘가의 무인도가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그가 예전부터 숨겨두고 은밀하게 사용하던 도피처의 근방과 비슷한 날씨였다. 이런 처지가 아니라면 여유롭게 휴양이라도 즐겨도 좋을만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식사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강에 이상이 없는 정도로만 주어졌다.


도회적인 디자인으로 지어진 감옥 건물은 여러 개의 동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동에 있는 흉악범들은 자신들의 구역 외의 공간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하루 중에 그가 만나는 것은 감독관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없었다. 그저 끝없는 적막감 속에서 밥을 먹고, 지루한 운동을 조금 하고, 여러가지 생식 활동을 설비를 이용해서 마친 뒤 정해진 시간에 잠이 든다.


자신이 정신적인 활동에 도가 텄다고 할만한 인물들도 몇 개월 안에 미칠만큼 조용한 곳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건 사실 약간의 소음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있다고 느껴질만한 레벨의 적절한 소음. 완전한 침묵은 시끄러운 고성만큼이나 가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아무도 없는 외딴 자연에 던져 두더라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 속에 지어진 두꺼운 콘크리트 속 감옥은 인위적인 고요 속에서 수감자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특별한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안락할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곳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도회적인 생활과 사치에 익숙한 이들일 확률이 높았다. 자신의 능력을 부당하게 이용해 많은 이익을 취했을 확률이 높다.


윤민혁 외에도 몇 명의 점퍼들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점프를 이용하면 아주 약간의 활동은 가능했다. 점프의 시행과 취소의 반복이었다. 그가 설령 온 몸을 구속당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보유한 JE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은 아직 현대에 어느 곳도 보유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의 점프를 제한하는 것 역시 점프 자체에 대한 구속이 아닌 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폭탄일 뿐이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지만.


감옥 내에서 점프를 구사하는 건 법칙의 위반이었다. 그걸 곧이 곧대로 지켜줄 생각은 없었지만, 강박적으로 강력범들을 통제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간수들을 자극해서 불이익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고 점프를 시행했다가 그 과정에 취소한다면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해당하는 도약지에 어떤 물질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가. 시각과 비슷하다. 그 물질의 형질은 알 수 없지만 외곽선과 밀도 정도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부 정보를 안다는 점에서 x-ray따위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그가 한 번에 알 수 있는 체적은 그의 몸의 체적과 거의 동량이었으나, 그에게는 지겹도록 많은 시간과 지루함이 있었다. 오랜 시간 반복한다면, 심지어 이것은 JE를 거의 소모하지도 않으니 마냥 반복할 수 있었다. 까딱해서 요령이 없다면, 점프를 시행하는 것과 비교해도 유의미한 수준의 JE의 손실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더욱 요령이 없다면 실제로 점프를 해서 전류 찜질을 한동안 계속 당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었고.


감옥의 크기는 제법 거대했다. 대형 병원 수준은 되는 듯했다. 외딴 곳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오랜 시간 외부와 차단된 채 지내야 하니만큼, 충분한 비상 물자나 자체 공급이 가능한 발전 장치 따위의 여러 시스템들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개중에서 수감자들이 실제 사용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는 이 감옥 안에 그를 제외하고 약 20여 명의 범죄자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20여 명이라 한 것은, 때때로 그들이 위치를 옮기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평생 이곳에 갇혀 있는 건 아닌 것인지. 혹은 어떤 사법 거래 비슷한 것으로 외부와 이 곳을 왔다갔다 하는 것인지. 그 정도의 인원들이 넓은 공간에 따로 퍼져 있었다. 그런 범죄자들을 관리하고 시스템을 점검하는 조직의 인원이 약 80명 정도.


과한 인원으로도 보이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의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또 적절한 수치일 지도 몰랐다. 저들 또한 매번 이곳에 기거하는 건 아니었고, 로케이션을 돌듯 인원 구성이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런 JE를 이용한 탐색은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예민한 이거나, 혹은 점퍼라면 그의 활동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도약을 발휘한 그 장소에 상대가 있다면. 이를 통해서 감옥 내에 그 외에 잡혀 있는 점퍼들이 한 일곱 명 정도인 것을 발견했다. 나머지는 반응이 달리 없었다. 점퍼임에도 일부러 반응을 드러내지 않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앉은 자리에서 섬 내부의 구조도를 머릿속에 넣으면서도, 탈출 계획 따위를 함부로 짜지 못하는 것은 의외로 그의 손발목에 걸려 있는 작은 구속구의 완성도 때문이었다. 검은 색으로 칠해진,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끈한 외곽을 드러내는 구속구는 제법 묵직하다. 내부는 반도체 칩셋이나 전류 발생기, 화약 따위가 들어 있는 듯하다.


슬슬 건드려 보며 짐작하기로는 그 밀도가 심상치 않다. 일부러 몇 번인가 넘어져 본 적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어떠한 흠집도 나지 않았다. 대강 짐작하기에 강철이나 그 이상의 강도일지 몰랐다.


따로 열쇠 구멍조차 없는 이것은 관리자가 가진 키로 인해서, 그가 다가와 직접 제스쳐로 인터페이스를 입력하고 해제하는 수 뿐이었다.


거기다가 관리자가 가진 '키'라는 전자 기계는 아마 관리자의 생체 신호와 연결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가 별다른 예비 조치 없이 심대한 생명활동의 위협을 받는다면 아마 그대로 구속구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그가 수개월간 입을 다물며 얻은 미약한 정보들이었다. 허튼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간수들이 어느 정도, 정보를 흘리는 것도 있었다. 모든 게 진실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었지만. 점퍼 조직이라는 알 수 없는 단체의 깊이를 생각해본다면 썩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불확실한 조건에 목숨을 걸 정도로 윤민혁은 당장 큰 충동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 작은 구속구가 그런 강도나 안정성을 가진 게 아니었다면 그는 곧바로 이 감옥에 불이라도 지르고, 소란이라도 피운 뒤 무너뜨리고 유유하게 탈출을 했을 것이다. 소란 속에서 무형물인 키만을 챙겨서 구속을 풀고, 그대로 사라지면 누가 그를 잡을 수 있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먼저 잡혀온 점퍼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을 테였다. 실행하지 못한 것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뭐... 외부에 응급 의료 처치가 가능한 외과의가 있어서, 바로 그에게 이동을 한다면 혹시 모르겠다. 사지의 말단이 파괴된 상태에서 그를 살려낸 다음 의수와 의족이라도 달아야 할까. 감옥에서 차야 하는 구속구가 목에 거는 종류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윤민혁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는 아마 이대로, 평생을 이곳에 있어야 할 테다. 사회적 분란을 일으키려 했던 팀의 창단자였고, 이전에 조직으로부터 한 번 경고를 받았던 이력조차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가 가진 실행력이나 수완이 큰 경계심을 샀다. 아마 그를 다시금 감옥 바깥의 세상으로 내보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루한 하루 속에서, 주어지는 정량 혹은 소량의 식사를 먹고, 독방에서 천천히 먼 죽음을 상상한다. 인간으로서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삶 중 하나였다. 무엇하나 해낼 것이 없이 그저 시간을 죽인다는 게.


그가 멸치볶음 덮밥에 된장국을 먹고, 씻고 독방에 앉아서 밤을 새려 할 때 였다. 밝은 달이 그의 창가 창살 사이를 미약하게 비추었으나 그의 처지를 낫게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불빛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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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언제 보아도 이해할 수 없을만큼 한없이 놀라운 것은,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양심의 빛과 머리 위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의 아름다움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음.........................뭐 토씨는 전부 틀린 거 같고 위인의 이름도 사실 가물가물합니다.

어쩄든 동의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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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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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5. 22.11.10 38 1 16쪽
58 54. 22.11.10 33 0 22쪽
57 53. 22.11.10 30 0 14쪽
56 52. 22.11.09 44 0 22쪽
55 51. 22.11.08 32 0 17쪽
54 50. 22.11.08 42 0 16쪽
53 49. 22.11.08 36 0 11쪽
52 48. 22.11.05 37 0 22쪽
51 47. 22.11.04 36 0 24쪽
50 46. 가을 22.11.04 46 0 22쪽
49 45. 22.11.04 3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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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4. 22.10.22 58 2 17쪽
37 33. 22.10.21 62 2 16쪽
36 32. 22.10.21 64 2 22쪽
35 31. 22.10.20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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