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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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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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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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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DUMMY

*


그가 근래에 자주 불리는 이름은 '보스'라는 것이었다. 어떤 회사의 오너나 조직의 수장은 아니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아주 소수의 인원들과 나누는 계획이었고, 직접적으로 그와 맞닿는 이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손가락에 꼽는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호칭을 듣는 경우는 한 사람에게서였다. 어릴 적부터 많은 시간을 보내 온 대상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대부와 후견인의 관계에 가까울 것이다. 개인의 야욕을 위해 목적을 가지고 키워 낸 인물이었지만. '보스'의 입장에서 헛소리를 한다면, 말하자면 그가 정성 들여서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를 보스라 부르는 존재는 말이다.


자신의 모든 세심함을 다 기울여 깎아낸 명품이었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는 잘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모양을 만들어버린 말이다.

단 한 가지 용처를 노리고 만들어낸 날카로운 칼이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사용방법으로 눌러 찌르지 않는다면 날이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 정도로 사용법이 까다로운.


그런 것에 마음을 쓰는 편은 아니었다, 사내, 보스는 말이다. 한 인간의 인생을 불의한 목표를 위해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일에 대해서.


보스는 박사였다. 미국 학계에서 학위를 취득한. 본디 그는 점퍼 조직의 일원이라 할 만한 자였다. 그리고 점퍼 조직과 닿아 있다면, 나름대로 실력이 뛰어나고 남다른 점이 있는 재원이라는 이야기였다.


제한된 자원으로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더 방대한 규모의 사회인 점퍼 조직 외부의 협력 단체에서 재원들을 추리는 수 밖에 없었다. 점퍼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더 희소하며 귀중한 자원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수 많은 학자들 중에서 나름의 창의성과 빛나는 지성을 인정 받은 젊은 천재 중 한 명이었다. 정확히는 이었었다. 지금의 그는 학구자로서의 길보다는 꼼수를 부려 이득을 얻으려는 교활한 사기꾼에 가까웠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의 본질은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이전까지 쌓아왔던 학문적 지경과 인맥들은 써먹고 있었다.


예컨데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한 물건이 그러하다.


그는 막대기처럼 보이는, 검은 색의 조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예의 그 폐건물이다. 필리핀의 어느 외딴 섬, 한 구석에 있는 오래된 건물.


얼마간 청소를 해서 그래도 사람이 지낼 수 있는 정도로는 실내를 만들어 둔 공간에서 그는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자리에 적당히 걸터 앉아 플라스틱 바를 주무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함면 플라스틱 바는 아니었다. 얼핏 그렇게 보이는 매끈한 재질이었지만, 그것보다 훨씬 단단하다.


툭, 툭, 툭.


그것이 그의 연구 대상이었다. 과학적 목표를 위해 파고드는 대상은 아니었다. 어떤 일을 꾸미기 전에 해야 하는 선결 과제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어떤 일 역시,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보스 개인의 야욕에는 이바지를 하는 편이다.


그것은 사실 ‘점퍼 조직’이라 불리우는 비밀 조직에서 흔히 쓰는 물건이었다. 단단한 물질을 만들 때 재료로 삼는 것이었고, 화공학 계열, 소재공학 계열에서는 거의 신세기의 발견이라 할만한 물질이었다.


여태껏 시중, 일반적인 대중들에게는 선보이지 않은 물건으로 소수의 연구실과 선진국들 정도만이 연구 결과를 공유하며 양산화를 노리고 있는 물질이었다. 제작 단가가 비싸고 아직 원활하게 사용할 정도는 못된다. 그러나 다소 비싼 가격을 치루고, 써야할 곳들에 제공을 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단적으로 점퍼 조직이 개중 하나였다. 이것으로, 보통 범죄자라 불리는 점퍼들의 구속구의 외형을 만들어낸다.


무섭도록 단단하고 질긴 물질.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는 이것은 강철이나 합금보다 단단했다. 원활하게 공급만 된다면 당장 내구성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제공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물건이다.


이와 비슷한 소재로 점퍼들의 방호복, 방어구 또한 만들어진다. 전투에 앞장 서는 점퍼 요원들이 입는 방탄 피복과 헬멧 따위를 만들어내는데 역시 쓰인다.


무게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내구성과 방어력을 가진 소재였고, 이것을 부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어떤 도구도 주어지지 않는 ‘점퍼 감옥’ 내에서의 환경에서는 말이다.


이것으로 외형을 감싼 고성능의 전자기기, 곧 폭발하는 구속구 때문에 감옥 내의 점퍼들은 모두 자유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보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서 이 소재를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툭, 툭. 가볍게 움직이지만 두드리면 쇠막대기나 비슷한 소음이 난다. 그는 그것을 한참 바라보고, 매만지고, 심지어 냄새를 맡고 혀끝조차 대어 보았다. 과학자라 하기에도 기괴한 짓이었다. 그는 가끔 심취한 채로 이상한 행동들을 자행하고는 했다.


이것을 구하는 데, 예의 그 학자로서의 경지나 인맥이 필요했다. 여간해서는 필요처 외의 곳으로의 반출이 불가능한 물질인데다 일단 손에 쥐어보는 것조차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가 학자로서 쌓아 온 인맥은, 그런 소재공학계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학자들 역시 분포하고 있었고, 이런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공급자에게 아주 소량을 빼오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고심한다. 이것을 부술 수 있다면, 점퍼 조직에서 구류하고 있는 이들 중 유용한 자들을 마음대로 빼돌려 멋대로 부려먹을 수 있었다. 자유를 되찾은 범죄자가 과연 자신의 통제에 따른까하는 불안은 남았지만, 그에게는 뒤가 없다는 점 또한 유효했다. 그들이 멋대로 날뛰며 소란을 일으켜준다면 그걸로 좋다.


혹은 점퍼 조직에 두려움을 갖고 지레 용기를 잃어 숨어버린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었지만. 그의 조건은 그것이었다.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 그리고 점퍼 조직에게도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이 있을 것.


그런 대상은 그가 알기로, 가장 최근에 감옥에 수감이 된 인물이 있었다.


‘윤민혁’.


점퍼 조직 내에도 아직까지 연줄이 있는 그는 친근한 몇 마디 말로 여러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비점퍼 요원들에 국한된 일이었지만, 그들이 행정적 사무를 모두 처리하다보니 정보가 샐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말을 하면서 자연스레 몇 가지 정보를 꾀어 내는 것이다.


어쨌든 윤민혁에 대한 정보는 입수를 했다. 대담하게도 점퍼 조직의 운영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활동을 했던 이이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보스 그 자신의 선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지금 자신이 벌이려는 짓을 먼저 시도했고, 활약하다가, 꼴 좋게 실패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반면교사로 삼을 것들은 무수하게 많을 테였다. 절망감에 어른거리는 그 정신을 빼앗아 점퍼 조직에 대한 불만으로 치환한다면 막대한 전력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었고.


그동안 소재의 일부를 가지고 별에 별 것들을 다 해보았다. W31강금속이라 불리는 이 물건은 그가 구사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물리력을 무효화시켰다. 단순하게 떨어뜨려도 보고, 돌로 찍고, 불에 태우고, 유압 프레스로 누르고, 기계적인 집게의 힘을 빌어 양쪽에서 당겨보기도 했다. 그 모두 상당한 크기의 힘, 그러니까 사람으로는 결코 낼 수 없는 수준 까지를 검사하셨지만 별 일은 없었다.


망치나, 소총, 화염방사기나, 급격한 온도 변화 등. 여러 종류의 충격들을 가했지만 소재는 놀라울 정도로 튼튼했다. 이런 소재로 만든 방어구들이 있기에 점퍼들의 생환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지금 조직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입장으로서는 그만큼의 어려움을 부과하는 방해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툭툭툭.


한 손 뼘만한 정도 길이에, 3-4cm정도 되는 너비의 막대기였다. 보스는 그것을 가벼운 자를 다루듯 손 안에서 굴리다가, 이내 손아귀에서 놓았다. 이건 이대로는 답이 없었다. 일반적인 상식이나 과학의 상리 안에서 당장 쪼개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뭐 물론 강력한 폭탄 따위를 쓴다면 손상이야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만한 폭발력과 충격을 주어서는, 구속구를 벗게 하기 위해 해체한다는 의미를 상실한다.


구속구의 형질은 특이할 정도로 질기고 단단한 것이었고, 그것이 폭발할 때는 여러 개의 부위가 맞물려서 만들어진 형태가 풀어지며 내부의 폭발력이 온전히 드러난다. 구속구의 대강의 메커니즘이나 실물 역시 본 적이 있는 보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한 가지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실적인 선에서 방안이 없다면 비현실적인 수단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마침 그의 손아귀에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점퍼'가 있었고.



*



W31강금속. 속칭 '스페셜'이라고도 불리는 소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깨뜨리는 것이 지극히 어려웠다. 그러면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보스는 자신의 말을 따르는 청년, 을 이용했다. 그는 자신의 위치와 관계없이 타인을 공간이동 시킬 수 있는 능력자다.


해체에는 약간의 인원이 필요했다. 하나의 물체를 분리하는데 두 명이면 된다. 두 쪽으로 나눌 것이라면 말이다.


그는 청년을 이용해 일단 한 명의 조력자를 자신이 있는 필리핀 무인도 어딘가의 폐건물로 불러왔다. 보스는 비단 청년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을 턱짓으로 부리고 있었다. 보안이 중요한 일이었지만, 나름대로 꽤나 큰 조직 비슷한 것을 만들어 다루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연락하고 다루는 이들은 서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저 각각의 일을 하는 점조직의 형태였고, 보스만이 전체적인 계획을 늘 알고 있을 뿐이다.


다양한 일들을 할 때 보조로 쓰는 인물이었다. 보스가 청년을 통해 불러온 인물은.


청년과 이야기를 할 때는 국제 통신이 가능한 위성 전화기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가 지시 사항을 짧막하게 텍스트로 보내자 청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행을 했다. 그가 앉아 있는 폐건물의 구석. 정확하게 그 몇 걸음 앞으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나타난 이는 동남아 계열의 청년이었다. 곱슬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마른 체형에 명령에 따른 행동이 잽싼 인간이었다.


필리핀 인인 남자는 보스의 얼굴을 보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말이 많은 사내는 아니었다.


보스는 말없이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은 바, 를 내밀었다. 남자는 그것을 눈치껏 반대편에 손을 대어 잡았다. 가지라는 뜻인가 싶어 힘을 주었지만 보스 역시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두 명이서 강금속을 잡고 있는다. 보스가 텔레포터에게 보냈던 지시 사항은 조금 더 길고 복잡한 것이었다. 필리핀 인을 내가 있는 폐건물로 보내고, 약 1분 뒤에 이동시켜라.


두 사람은 검은색의 바의 양 끝을 손으로 슬쩍 쥐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분이 지났고, 지구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텔레포터가 필리핀인 청년을 자리에서 옮겼다. 그가 옮겨진 위치는 그리 멀지 않았다.


딱 한 걸음 뒤. 거리로 치면 보스가 바라보는 쪽으로 1m 움직인다.


두 명의 사람이 한 가지 연결된 물건을 잡고 있다가 이동을 한다. 점퍼가 이용하는 도약의 범위는 어디까지 미치는가. 점퍼의 몸 바깥, 약 3-5cm정도의 짧은 범위로 보고 있었다 보통은. 그리고 특별히 손으로 쥐거나 들고 있는 물건의 경우는, 개인의 소유물로 인식이 되어 같이 이동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완벽하게 무게를 지탱하지 않고 함께 쥐고 있던 물건이 있다가, 이동을 했을 때 점프는 그 물건에게 일부만 영향을 끼쳤다. 정확하게는, 한 남자가 잡고 있던 '스페셜' 바의 말단을 시작으로 일부가 같이 공간을 이동했다.


점퍼의 점프는 그 자체로 초자연적인 힘이었고, JE에 연관되어 움직이는 법칙은 가공할만한 힘이었다. 그 말은 그 소재의 물리적인 강도와 상관 없이, 공간이동 간의 단절부에 속한 물질은 잘려나간다는 이야기였다.


생명체에게 해당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손에 들 수 있는 크기의 물질을, 1회의 도약 횟수를 소모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한정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인 전투에서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손에 들어오는 물건을 부술 필요가 있을 때 써 먹을만한 기예였다.


필리핀인 사내가 쥐고 있는 부분에서 주먹 하나 정도의 길이가 그와 함께 이동을 했다. 보스가 쥐고 있는 부분부터 그 중간까지는 여전히 손에 있다. 쥐고 있는 손에는 어떠한 감각도 없었다. 소총탄을 쏴도 흠집하나 없는 강력한 바bar, 였지만 그것이 부서지는데 어떤 에너지의 여파도 없던 것이다. 공간이동의 칼, 공간 단절이라 할만한 기술은 그런 것이었다.


일반적인 점퍼가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건 그도 확인한 것이었고, ‘텔레포터’만이 가능하다. 아마 자신이 아닌 상대의 위치를 점프 과정 중에 인식하고 전이시키면서 어떤 특이한 작용을 하는 모양이었다. 보통의 점퍼들이 똑같이 어떤 물건을 같이 쥐고 혼자 이동을 해보았자, JE는 점퍼 개인만을 이동 시킨다. 물건은 분리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게 된다.


필리핀인은 짐짓 자신이 들고 있는 막대의 한 부분을 멀뚱히 처다 보더니,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띡띡띡. 박사는 그 모습을 감상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통신기로 텍스트를 치고 있었다. 대강 필요를 다 봤으니 부하를 돌려 보내라는 이야기였다. 청년은 그들이 몇 군데 만들어 둔 어느 오지의 은신처에 있을 것이다. 오지라고는 하지만,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지어둔 장소였으므로 깨나 있기에는 편한 장소일 테다.


지금 자리하는 이 무인도 구석의 폐건물 역시 그런 장소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정기적으로, 그러한 은신처들을 많이 만들어 두었기에 만일에 있을 추격전 따위에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늘어가는 것이다.


“Bye Bye."


보스가 적당히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필리핀인 사내는 그 모습에 대강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사라졌다. 텔레포터의 텔레포트는 참으로 편리하다. 자신이 어딘가를 가지 않아도. 수하들의 위치만 알면 대부분의 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역시 하루의 도약 횟수의 한계가 있었기에 머릿속으로 늘 셈을 해가면서 움직이게 해야 했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수가 나오지 않지만, 점프를 이용한다면 손쉽게 분리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보스는 손에 잡고 있는 스페셜 바를 낡은 돌더미같은 곳 위에 적당히 올려 두었다. 문제가 해결 되었다면 사람을 구하러 갈 차례였다.


구해서 어딘가에 쓸런지는 이제 자신의 문제였다. 점퍼 조직의 감옥에는 여러 명의 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지만 개들 중 말이 통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윤민혁 정도라면, 그래도 조직에게 개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 적당히 쓸만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



‘보스’의 이름은 마이클 샌더스였다. 이공 계열의 천재 중 한 명이었고,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다가 ‘점퍼 조직’이라는 세계의 비밀과도 같은 조직에 연관이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학자적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연구에 몰두했고, 이런저런 성과를 맛보았다. 물리학계의 저명한 인사인 ‘왓슨 박사’가 있는 스위스의 연구소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었다.


어쨌든 그는 헌신적으로 일을 했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꾸몄다. 결국 점퍼와 점프 에너지는 제한적이고,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점퍼라는 존재들이 개인 의사를 가진 능력자라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자신의 개인적 욕심을 위해서 점프를 이용하고자 하는 계획에 말이다.


그는 이런저런 불만을 품고 조직에 헌신했다. 정확히는 틈을 보았다. 평생에 찾아올지, 아닐지 알 수 없는 틈들을 말이다. 그러던 와중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의 친우 중 한 명이 거두어들인 양자에게서 ‘점퍼’라고 보이는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천문학적인 확률이었다. 고작 세계에서 백 수십 명. 자연적으로 발현되며 어떠한 연관성이나 특이성도 알 수 없는 점퍼의 생태 메커니즘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의심을 사지 않도록 은밀하게 자신의 곁에 도구가 들어오다니.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전적인 후원을 약속했고, 그 아이의 대부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깊은 관계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자신의 계획에 맞게끔 사용하려고 조금씩 시간을 두며 훈련을 시켰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신이 바라는 도구로서의 ‘점퍼’에 맞게 길러낸 것이다. 그의 친우 역시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다. 양자로서 데려온 아이의 인생과 미래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국에서 데려왔던 소년은 마이클의 충실한 종이 되어갔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밖에 없는 것 같은 특이한 능력을 가진 아이를 조금씩 감화시키면서 개인적인 사상으로 물들이는 건 충분한 시간과, 노력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특이성을 알아주고 관련한 정보를 주는 유일한 어른은 소년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기 쉬웠다. 마이클은 그 점을 십분 활용하고 이용했다.


작았던 아이는 어느새 장성해서 20대 중반이 되었고, 마이클의 모든 계획에 있어 키 플레이어로 활약하기에 충분한 존재가 되었다.


다만 아이, 청년, 텔레포터, ‘유진 쿠퍼’는 정서적으로는 많은 부분이 결여된 아이로서 자라났다. 사춘기 이후로 부모보다도 많은 시간을 유대감을 형성하며 그를 길러낸 마이클의 영향이었다. 그 역시도 정서적으로 풍부하지 못한 인간이었고, 굳이 따지자면 소시오패스에 가까웠다.


공감이나 정서적 능력이 결여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확고한 악의와 야욕을 위한 계획력 역시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질이 다소 안 좋았다.


그런 이의 훈련을 받고, 사상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온 유진 역시 그러했다. 대개는, 임무의 성패가 그의 인생의 전부와도 같이 만들어졌다. 어떤 일에서 실패하는 건, 자신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같이 일하는 이들이나,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정서적인 밑바탕. 존재의 근간이 되는 ‘자연스러움’이랄 것이 다소 부족했다. 그건 가정 내에서 풍부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인격의 근거와도 같은 것이었다.


존재성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결여된 채 행위나 임무에 있어서만 계속해서 강요를 받으면서, 청소년기의 전체를 보냈으니 멀쩡한 성격이 될 리 만무했다. 그 말은 직접적인 임무에 관여된 것이 아니라면 제멋대로 살아도 좋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혹은 임무에 실패한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유진과 마이클은, 어쨌든 그토록 불안한 인격적 결함을 가진 채로 끝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두 다리와 같았다. 두 다리라는 점에서 그나마 넘어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 스스로의 손괴된 인간성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멀리까지는 나아가지 못할 노릇이었다.


작가의말

필력을 좀 더 늘려보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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