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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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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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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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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48.

DUMMY

청년의 자세가 약간 무너졌다.


청년이라 함은, 볼이 움푹 패였고 소름 돋는 무표정을 지닌, 범죄 단체의 점퍼였다. 그는 애초에 외무성 부대신, 하야시 슌스케를 노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영문 모를 오류를 일으킨 의문스런 적을 겨누고 총을 든 것이다.


그야말로 명민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미상의 적에 대한 추리나 예상을 뛰어넘어 실제로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의 표정이나 행색은, 명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꼴이었다. 마약성 약물에 취한 중독자의 것이나 비슷해 보였다.


그런 약물의 힘을 빌어 총에 맞았음에도 의연하게 움직이는 지도 몰랐다. 미상의 점퍼의 운동 능력은 알 수 없었다.


경호조의 인원들과, 점퍼 역시 방탄 피복을 입은 상태였다. 경호조는 그들이 사용하고는 하는 방탄 재킷을 받쳐 입은 상태이다. 지나치게 외부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투를 상정한 차림으로 있는 것이 그들의 작전 상세였다.


두두두두, 하고 불꽃을 뿜은 기관단총의 총구는 살짝 흔들렸다. 자세가 무너지기도 했고. 벽 너머에 보이지도 않는 대상에게 대응 사격을 한 것조차 일반적인 의지나 판단력 이상의 반응이기는 했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날아간 납탄들이 벽을 뚫는다. 자동권총과 같은 구경의 납탄이지만, 조금 더 빠른 연발을 보여준다. 고작 1초에 십 수 발이 나가는 것이 기관단총이었다.


그가 방아쇠를 눌러 긁은 시간이 그보다는 못되었다. 날아간 납탄들은, 벽을 뚫고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 너머의 스위트 룸의 창문에 박힌 것이 있었고, 벽에 상흔을 남긴 것들이 있었다. 몇 발인가는 민서의 몸통에 맞았다. 경호조의 인원들도 몇 발인가 맞았고, 한 명은 재킷을 입지 않은 허벅지를 관통해 쓰러졌다.


메리는 전투 태세에 임해 있었다. 손목부터 손을 완전하게 감싸는 장갑은, 내부에 금속 재질의 판이나, 손의 뼈를 잡아주는 완충 구조가 있는 물건이었다. 얼핏 두꺼운 가죽장갑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사용한다면 콘크리트도 깨부수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녀에게 온 총알은 없었다.


그녀는 날아온 총알로부터 상대의 위치를 역산했다. 보이지 않는 위치였고, 점프의 취소를 이용해 정확한 좌표를 잡지도 않고 곧바로 이동했다.


이번에 상대는 아마, 폭탄을 들고 오지 않은 듯했다. 곧바로 폭발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이곳에 있는 조직의 점퍼들이 상대를 잡을 수 있을 테였다. 추적전은 점퍼 전투 요원이 필수적으로 얻어야 하는 능력이었고, 브레이커와 쉴더 또한 능숙한 종류였다.


메리가 한 호흡 뒤에 방에서 사라졌고, 그가 벽 너머에 나타났다.


약간은 어두운 스위트 룸의 조명 아래 사람들이 비산하고, 움직인다.


총알에 피격 당한 경호조나 민서는 잠시 움직임이 멈추고 몸을 웅크렸다. 야가미는 하야시를 데리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호흡의 점프를 잘못 사용하면 상대를 놓칠 수도 있었다. 점퍼간의 싸움은 결국 움직임을 뛰어넘는 수싸움에 가까웠다.


쉴더로서 상대의 근접 점프를 경계하며 하야시를 자신의 등 뒤, 실내의 구석으로 몰고 가며 눈으로 청년을 노려보았다.


청년은 여전히 벽을 노려본 채로 자세가 조금 무너져 있었다. 마약류의 복용이 있는 듯했지만 고통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혹은 고통 이전에 몸의 물리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청년이 움직이기 전에 메리가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바깥은 다소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였고, 커튼이 쳐져 있어서 실내의 조명이 부족했다. 은은한 불꽃처럼 실내를 밝히는 조명 안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얽힌다.


메리는 순간이동의 직후에 걸리는 시야의 암전에도 아랑곳않고 크게 팔을 휘두른다. 상대의 위치는 대강 짐작을 했다. 민서의 재밍은 효율 좋은 도구였다. 어차피 벽에 바싹 붙은 위치라고 생각해보면,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보건데 대강 때려 맞출 수 있었다.


거의 정확한 위치에, 그녀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굳게 쥐어진 가죽 장갑 내의 주먹은 파괴적인 위력을 가지고 청년의 얼굴을 노렸다. 놀라운 정확도였다.


다만 청년의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굽어진 몸에 이마가 먼저 그 주먹에 닿았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장 단단한 뼈 중 하나인 이마 뼈를 들이대며 주먹을 빗겨낸다면 타격의 위력을 최소화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주먹 나름이었다. 메리의 코드 네임은 브레이커였고, 지금 역시 그 코드 네임을 달게 된 기구를 상완과 양 허벅다리에 차고 있는 상태였다. 검고 두꺼운 띠같은 것들이 움직임에 맞추어 전기신호를 냈다. 일정한 운동 상태를 만들면, 그 타이밍에 맞추어 저절로 메리의 몸을 이끄는 기계였다.


사람이 무의식중에 거는 신경적인 락Lock을 푸는 듯한 기계의 작용으로 메리의 힘은 초인적인 힘을 냈다. 퍼-억. 하고 끔찍한 소리가 났다. 머리뼈가 아작이라도 나는 것 같은 효과음과 함께, 사람 몸에서 나면 안될 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그의 몸이 정반대로 날아갔다.


들이댄 이마가 그대로 뒤로 젖혀지며 몸이 걸레짝처럼 나부꼈다. 쿠당탕, 하며 스위트 룸의 갖은 가구들과 박으며 청년의 몸이 던져진다. 주먹을 얼굴부에 맞았다고는 믿기 힘든 결과였다. 그가 쥔 기관단총이 그 소란 속에서 격발되는 일은 없었다. 다만 끝까지 놓치지는 않은 것이, 청년의 초인적인 의지력을 반증하는 듯하다.


청년이 1, 2m 정도 뒤로 날아가 작은 화병용 테이블을 박고 구석에 찌그러졌다. 일순간 회복하기 힘들어 보이는 상태였다.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메리는 연이어 움직였다. 곧바로 타격에서 오는 경직과 관성을 이겨내고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녀는 다시 점프를 했다. 한 호흡 뒤에 그녀가 나타날 곳은 청년의 바로 앞이었다.


그대로, 다리 힘으로 찍어서 특수 제작된 장화로 상대의 뼈를 부러뜨릴 생각이었다. 그녀의 브레이커란 별명에 어울리는 이력은, 여태껏 부러뜨린 상대방의 뼈의 숫자였다.


청년의 왼편에 나타나 왼 손의 훅으로 상대를 날려버린 메리는 그 관성 그대로 자세를 잡고 오른 발을 들었다. 직전에 시행한 점프가 발현되며 그녀가 다시 사라졌다. 그녀는 순간적인 파괴력이나 전시적 효과에 대해서는, 홍인수보다 때로 나을 지도 몰랐다. 총이나 격투기를 통한 제압은 어쩌면 인간적일지 모른다. 브레이커의 압도적인 파괴는 적들의 전의를 상실시키기에 좋았다.


청년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점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전투에 사용되는 피지컬이기도 했지만 뇌와 관련한 터프함이기도 했다. 결국 정신으로 인해 작용하는 능력이었으므로, 이성을 잃고 또 혼절한 상태에서는 점프가 불가능하다. 무력하게 제압되고 마는 것이다.


어두운 실내의 방구석에 청년이 널브러져 있다. 메리가 그 앞에 나타났다. 방 내부에서 총을 맞은 인원들은 아직 회복을 하지 못했다. 상대의 습격으로부터 겨우 수 초, 혹은 십 초 정도가 지났을 뿐이었다. 메리의 반응이 기이하게 빠른 것이다.


그녀는 적발을 휘날리며 청년의 앞에서 높이 든 발을 내려 찍는다. 청년은 눈을 뜨고 있었다. 완전한 의식 상실은 아니었다. 몽롱한 눈빛이 어딘가 모를 곳을 처다 본다.


후욱, 하고 바람이 부는 듯했다. 널브러져 있던 청년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메리의 발이 빈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쾅! 하고 찍어내는 신발은 호텔 바닥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마감재가 벗겨지고 내부의 콘크리트가 갈라지며 드러날 정도였다. 사람이 맞는다면 확실하게, 어디 한구석이 박살이 났을 만한 위력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추적을 시작했다.


*


점퍼끼리의 추적전은 지루한 순간이동의 반복이었다. 결국 도약 횟수가 누가 더 많은가, 집요한가의 싸움이기도 했다.


먼저 달아나는 이는 점프와 점프 사이, 틈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다른 장소에서 도약을 하기 위해 애쓴다. 짧은 순간에 만들어내는 오차를 통해 추적자의 추적 도약을 따돌리기 위해 머리를 쓴다.


거의 흰, 새어버린 머리를 가진 청년이 먼저 호텔 방에서 사라졌고, 메리가 그를 뒤쫓았다. 야가미는 호텔에서의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하고 먼저 하야시를 피신시켰다. 그가 방의 구석에 몰아넣고 등 뒤로 가리고 있던 부대신의 어꺠에 손을 얹으며 도약해 사라졌다.


아마 아직 위치가 노출되지 않았을 안가로 옮겼다. 단체 도약으로 인해 갑자기 풍경이 바뀌는 것을 느낀 하야시는 생경한 표정을 지었고, 야가미는 그에게 별다른 설명을 해 줄 시간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저녁, 다시금 벽난로가 화면 속에서 타들어가는 안가의 소파에 그를 둔 야가미가 호텔로 움직였다.


호텔에는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에, 자책하는 표정을 짓는 경호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민서 역시. 민서는 여러 발의 총알을 몸통에 맞고 꺽꺽거리며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딱히 토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비스무레한 자세를 취하며 고통을 표현한다.


보통 점퍼 조직의 방탄 자켓과 피복을 입은 채로 총에 맞으면 저런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날카로운 맨주먹을 살에 맞은 느낌이다. 헤비급 복서의 것으로 말이다.


이런 추적전에 있어서도, 결국 재머의 존재는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메리가 사라진 곳에서 그녀가 향한 도약의 위치를 읽었다. 그리고 민서의 곁으로 점프했다. 호텔 내부의 방 안. 몸을 웅크린 민서의 등에 손을 얹으면서 야가미가 도약을 한다.


수 초가 지났으나 도약의 흔적은 간신히 잡아내었다. 이런 류의 행동은 야가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류이기도 했다. 도약의 전조 증상이나 그 흔적에서 정보를 읽어내는 일 말이다. 재머의 재밍이 제대로 듣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호텔로 이동을 했음에도 별다른 왜곡이 없는 것을 보면. 일부러 민서가 풀었을 수도 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웠다.


야가미가, 민서와 함께 메리가 향한 곳으로 도약했다.


*


시야가 회복되기 전에 야가미가 느낀 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한 호흡이 지나기 전에 암전되었던 시각이 돌아왔다. 그는 떨어지고 있었다. 메리를 쫓은 곳은 허공이었다. 지독한 점은, 그렇게 높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다. 깜빡하면 그대로 낙상을 당할 만한 자리였다.


어느 도시의 폐건물 옥상에서, 깨나 떨어진 허공이었다.


민서의 등에 얹었던 손이 떨어지기 전에 상황을 인지했고, 곧바로 도약을 했다.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지 않고 그 위에 착지한다. 수 미터 아래로 안전하게 점프를 한 것이다. 점프를 하면 전후에 있던 관성은 사라진다.


전투 중에 점프를 이용한다면, 동작의 중간부터 힘을 주어야 하는 묘기를 많이 부리게 된다. 필연적으로 근력의 향상이 요구되었다.


홍인수는 얼핏 마른 체격처럼 보이지만, 늘 걸치고 있는 양복 재킷 너머로 나름대로 탄탄한 근질을 보유하고 있었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야가미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소드 마스터나 리시버에 비해서는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같은 근접 전투 요원끼리도, 약간의 차이는 있는 법이다.


야가미는 자신이 자리한 곳에서 JE의 흔적을 읽어냈다. 앞선 도주자와 추적자의 점프는 바로 그곳에서 시행되었다. 옥상의 허공에서 나타난 그들은 거의 바닥에 닿을만한 장소에서 도약을 했던 모양이다.


추적 도약에 약간의 텀이 걸리므로, 청년은 허공에서 다시 곧바로 움직였을 테고 메리가 지금의 야가미처럼 관성을 줄인 뒤 조금의 차이를 두고 쫓았을 것이다. 야가미는 희미하게 남은 그들의 정보를 파헤치며 계속 움직였다. 후욱, 하고 그의 신형이 사라진다.


야가미는 아까 같은 상황을 상정하고, 민서의 팔을 강하게 안으며 움직였다. 미치광이 점퍼가 어디로 도주로를 선택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가미는 곧이어 이어지는, 목 아래 까지의 몸이 전부 보내는 물에 대한 감각에 이번 추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야 했다. 상대가 정말로 어느 곳을 도주로로 택할지 알 수 없었다.


금세 눈이 뜨였다. 그들은 바다처럼 보이는 곳에 있었다. 대략적인 정보로 얻은 위치도, 대서양 어느 한복판 즈음이었다. 점프를 자주 반복하다 보면 약간의 데이터가 개인에게 조금쯤은 남게 마련이었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서 현재 위치를 대강 추론하는 것도 가능 했다.


“풉”


민서는 조금 아래에 위치해 있고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물을 먹었다. 다행히 상대가 어디론가 멀리 간 뒤 점프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 계속 추적한다.


야가미가 단체 도약을 했다.


*


메리는 집요한 추적자였다. 딱히 조직의 트래커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코앞에서 도주하는 상대를 놓칠 정도로 녹록한 요원도 아니었다.


기어이 뒤를 쫓아 상대를 아작내고야 마는, 유도 미사일과도 비슷했다. 그녀의 성격이나 행동이 말이다.


그녀가 쫓는 상대방의 도주로는 나름대로 참신한 편이었다. 자신의 몸에 대한 혹독함은 신경쓰지 않는 듯 대담한 점프를 반복했다. 금방 부딪힐 듯한 허공이나 바닷 속, 아무 데로나 도약을 한다. 상대의 몸 상태가 그녀보다 좋지는 않을 테였다. 뇌에 가해진 충격은 바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청년의 머릿속은 번쩍거리거나, 계속되는 현기증이나 멀미처럼 어질거리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점프를 한다는 게 나름대로 강단이 있는 도주자였다.


폐건물 위의 허공, 바닷 속, 사막, 산, 도시, 인적 없는 산 속의 마을, 어느 모텔.


다양한 곳을 뒤따르며 지나쳤다.


상대는 결국 끝까지 메리를 뿌리치지 못한다.


그녀는 반복적으로 추적을 하다가, 한 가정집 처럼 보이는 주택의 내부에서 멈칫했다. 다음 도약지로 향하는 정보가 이상한 낌새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지상’은 아니었다. 심지어 지구의 대기권 내부가 아닌 것 같았다.


도약의 흔적에서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감 정도는 우선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고도가 너무 높다 못해, 일반적으로 지구에서 행하는 점프의 위치 정도가 아닌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분명히 우주 공간이다. 대기권을 넘어서. 만약 도주자가 스스로 자폭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지구 근처의 우주 공간에 그가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가 되면 점프 자체의 난이도가 올라간다.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위치로의 점프는 상당히 숙련된 점퍼가 아니라면 애를 먹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지구 내의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의 일이라면, 어지간한 달인이 아니라면 실패의 확률이 훨씬 높았다.


예컨대 지구 근처에서 궤도를 그리며 떠다니는 인공 위성, 우주 정거장의 좌표를 계산해서 그 내부에 들어가려고 해도 자칫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그대로 우주 공간 바깥에 노출되게 된다. 그리고 우주 공간의 궤도를 떠다니는 정거장의 속력은 일반적으로 지구상에서 겪는 것과는 단위가 다른 종류였다.


정말로, 이 급박한 도주 중에 한 순간의 계산으로 그 내부에 정확히 안착을 할 수 있나?


메리로서도 망설여지게 되는 도약이었는데, 그를 앞서가는 청년은 일단 도약을 해내었다.


일정한 궤도 상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보조 자료가 있다면 점프를 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기는 했다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예측이 되는 자리라면 JE상의 용량을 그리 많이 잡아먹지도 않는다(점퍼들은 JE로 이루어진 무형의 컴퓨터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난이도가 어려운 점프를 시도할 때, ‘가상 메모리’ 따위의 개념이 있어서 실질적으로 보다 시간이 걸린다. 이는 가시적이거나 실질적인 보조 자료들이 있을 때 적게 소모된다).


굳이 따라가고자 한다면, 시도는 해볼 수 있었지만 일단 메리는 멈추었다. 다만 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가 어떤 우주 정거장에 안착을 했는지 찾는 정도로 일단락 하기로 했다.


이런 종류의 일에 점퍼 조직은 상당한 인프라를 갖고 있었다. 짧은 연락만으로도 해당하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메리는 위성 통신이 되는 전화기로 조직 내부의 백업 팀에 연락을 했다. 그녀가 전할 수 있는 대략적인 좌표나 방향, 고도 따위로 상대가 도망친 장소를 좁혀볼 수 있었다. 해당하는 곳이 하나였다. 누구나 간단하게 위치를 찾아볼 수 있는, 국제 우주 정거장의 내부였다.


*


추적의 끝은 일종의 실패였다. 청년, 샤오 첸의 뒤를 쫓는 점퍼는 없었지만, 그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일반적으로 추적전의 마지막은 상대의 제압이었다. 신병을 확보하고, 그로부터 정보를 토해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과정 중에 상대를 놓치거나, 도주자가 변고를 당한다면 그건 일종의 실패일 테다.


샤오 첸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가지고 대담하게 점프를 시도했다. 마구잡이로 가는 듯, 보일 정도로 이곳 저곳을 오가던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도주지는 지구 바깥이었다. 이 정도의 모험을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를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라는 본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중국쪽 조직 범죄의 일원이었고, 점프 능력을 각성한 뒤로 다양한 곳을 오가며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알게 모르게, 크게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그가 두각을 드러낸 것은 최근이었다. 일본 쪽 조직과 연이 닿아서 그 쪽의 조력자로 움직이게 된 그는 깨나 유명한 대상의 암살을 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괴상한 사이비 종교와, 비정상적인 정치적 단체, 그리고 범죄 조직이라는 악랄한 연계를 가진 무리들 속에서 그는 주어진 임무를 다하다가 삐끗하게 된다.


‘재머’, 라는 존재를 만난 것부터가 예상 외의 시작이었다. 점퍼 조직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자신처럼 움직이는 이들이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은 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사실이 그에게 조급함을 주었는 지도 모른다.


샤오 첸은 마지막 순간에 비장의 도주로처럼 여겨졌던 곳으로 도약을 한다. 비단 생각은 해두었지만, 실제로 도주 중 이용하는 것은 그때가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전에는 안전한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어 시도를 해서 성공을 했었다.


그는 자신의 점퍼로서의 능력을 과신했고, 실패했다.


급박한 순간, 얻어 맞아서 어질거리는 머리와 전투를 위해서 복용한 마약류 진통제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는 대강의 감각으로 점프를 시도한다. 일본 쪽 조직에서 내어준 어느 저택의 내부에서 몇 초의 여유도 가지지 못한 채 곧바로 계산하고는 했던 궤도 상의 위치로 움직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점퍼로서 움직이며 다양한 잡기들을 익혀왔다. 그건 점퍼 조직의 베테랑들이 오랜 시간 노하우를 쌓아와 공유하고는 하는 기술들의 편린과도 닿아 있었다.


점프의 실행과 취소를 반복하며 대강의 거리감을 잡고, 도약지의 상태를 살핀 뒤 우주 정거장을 발견했다고 한 순간 그것의 속도를 계산해 도약했다.


그리고, 어딘가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듯 몽롱한 눈빛으로 저택에서 사라진 그가 나타난 곳은, 이미 지나가 버린 우주 정거장을 바라본 채로 있는 황량한 우주 공간이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검고 어둡고, 끝이 없는 허공에 그가 떠 있었다. 그의 너머로는 거대한 지구의 모습이 보인다. 저 멀리에서는 태양 빛이 그를 비추는 듯하다.


샤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뇌진탕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고, 어깨는 얕지만 총상을 입었다. 마약류 진통제에 의해 정신도 뚜렷하지 않다.


그는 진공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공기가 없는 공간에 노출이 되며 헛숨을 삼키고 숨을 참았다. 감압 상태에 놓인 몸에 제동이 걸리자 부하가 일어났다. 빠져나가야 할 기체가 외부로 나가지 않고 내부로 파고들었다.


압력 변화로 폐에도 무리가 간다. 그는 통증에 둔한 상태였으나, 더욱더 이성을 잃어갔다. 그가 죽기까지에, 점퍼로서는 꽤나 많은 시간이 있었다. 그는 다시 점프를 시도했다. 그러나 JE가 그의 생각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JE, 점프는 그의 정신으로 조작하는 기계 장치에 가까웠다. 입력 장치가 되는 그의 정신이 오류를 일으켰다.


제대로 버튼이 눌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곧 몸의 이상 속에서 패닉에 빠져들었다. 정신이 혼미하다. 일단 공기가 없기에 질식의 위험이 있었고 함부로 참은 숨 때문에 내부 장기도 이상이 생겼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휘저었다. 손에 끝까지 움켜지고 있던 기관단총이 맥없이 놓여졌다. 환상처럼도 보이는 비현실적인 우주공간 속에서 그가 겪고 있는 고난은 실존하는 것이었다.


샤오는 사라지는 우주 정거장 쪽으로 자기도 모르게 점프를 시도했다가, 제대로 계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패했다. 곧장 어디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지구 상의 장소로 이동하려 했지만 몸도 정신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곧이어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내부 장기도 엉망이었고 질식에 대해 침착할 수 없었다. 마약류의 약물은 그의 정신이 그저 이대로 죽어감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어딘가 현실감이 없었다. 그는 감기듯 반쯤 내려온 눈꺼풀 사이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다가,


수 분 내에 결국 정신을 차리고 점프를 해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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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마약은 이름처럼 지극히 건강에 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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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1. 22.10.29 55 0 18쪽
44 40. 22.10.27 59 0 18쪽
43 39. 22.10.26 54 0 13쪽
42 38. 22.10.26 53 0 16쪽
41 37. 22.10.25 61 0 15쪽
40 36. 22.10.23 59 2 12쪽
39 35. 22.10.22 60 3 16쪽
38 34. 22.10.22 58 2 17쪽
37 33. 22.10.21 62 2 16쪽
36 32. 22.10.21 63 2 22쪽
35 31. 22.10.20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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