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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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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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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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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가을

DUMMY

9월 1일.


가을의 초입이다.


여름의 더위도 어느샌가 한 풀 꺾이고, 약간은 쌀쌀한 바람에 대비해 옷을 여며야 하는 계절이 다가온다.


민서의 외로움도 그에 맞추어 더욱 커져갔다,


라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미치광이 습격자가 나타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야가미 소우타와, 하야시 슌스케 외무부대신은 광장 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부 일정은 이미 어느 정도 얼추 본 상태였다. 어딘가의 고급 호텔, 식당, 혹은 대사관. 다양한 곳들을 지나면서 스케쥴을 소화하는 그는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를 따라다녀야 했던 점퍼들도 마찬가지였고.


미국, 일본의 경제계 인사들과 정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면서 이후 이루어진 협약에 대해 토의하고 또 진전을 시켜 나갔다.


공산업 계열의 대형 기업들이 국책 사업과 맞물려서 규제 완화를 받고 좀 더 본격적으로 시장을 공유하며 협업하자는 이야기였다.


하야시 슌스케는 나름대로 정정한 풍채의 5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라지만 나잇살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운동으로 관리하는 듯 청년기에 비해 그리 뒤지지 않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수트가 잘 어울리고, 멀끔하게 다니는 젠틀한 신사였다. 그는 일본과 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다양한 나라들의 동맹을 위해 정력적으로 뛰어 다니는 인물이었다.


한 개의 나라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들의 공조에 힘을 쏟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 있어서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이를 노린다고 하는 범죄 단체나 사이비 종교 단체 또한, 나름대로 세계 정세를 읽는 눈 정도는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구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려야 가장 큰 사고를 내고 세계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를 이해하는 행동과 선택이었다.


하야시는 자신의 중요한 일정들을 다 마치고, 낮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무렵 한적한 어느 청사 근처의 광장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위협하는 협박자를 낚기 위해서였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불안 요소를 가지고 활동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겨냥하기 쉬운 빈틈을 만들어 주어서 미끼로 낚아 올리고 불안을 제거하는게 앞으로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훨씬 나은 일이었다.


10월 전에 미국의 인사들이 한번 더 일본을 방문해서 열리는 포럼에 참여하고 진행하는 협약에 대해 확정을 내린다. 경제적 공조는 곧 각국의 정세와 안보에 대한 협약으로 이어질 것이고, 각 시장의 안정성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이상 군사적인 협약으로 이어지기에도 쉬운 수순일 테였다.


공조와 협력, 발전을 저해하고 분란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불만 많은 사이코들은 그 전을 노릴 테였다.


이미 외무 부대신에게 협박 편지를 보낼 정도의 인물들이니 최악을 상정하면 언제나 시기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빈틈이 있을 때 그리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 확률이 높았다. ‘점퍼’라는 존재가 저들에게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다음 일정이 있는 듯이, 하야시는 광장에서 약 삼십여 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경호로 있는 점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굳이 외무성 청사에 있는 부하 관료를 불러내어 광장에서 잠깐 담소를 나눈 뒤 퇴근길에 올라섰다.


동선을 짐작하지 못하도록, 짙게 선팅된 승용차 여러 대로 한꺼번에 지하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중간에 점퍼를 이용해 안가로 귀환을 했다.


야가미가 끝까지 하야시와 함께 했다. 쉴더로서 임무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그는 거의 요인과 떨어지지 않는 것이 수순이었다.


민서는, 카페에 남아있다. 조금 시간을 보낸 뒤 여유롭게 돌아가게 된다. ‘재머’로서 김민서는 적대적인 점퍼 세력에 노출되지 않을 의무가 있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임무 상의 이득이 있었다.


약간은 피곤하고, 긴장감이 서려 있고, 지루하고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났다. 그가 한 것이라곤 사실 점심으로 메밀 소바를 먹고,


잘 타보지도 못할만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도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뒤에, 마지막에는 카페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창가를 바라본 것 뿐이었다.


멋들어진 외무성 청사의 전경을 바라보며 그 앞의 광장 경치를 구경한다.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나 경호원들이 서서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는 꼴을 구경하며 자신 역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사실 그런 적당한 탈력감의 유지야말로 그의 능력인 재밍을 발휘하기에 가장 적당한 상태이기는 했다. 눈으로 광장 중심에 있는 하야시 슌스케 부대신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으니, 이 시기에 상대가 도약을 해왔다면 아마 필연적으로 카페 근처에 나타났을 테였다.


수십 미터 정도의 오차가 일어났을 때 어떤 변고가 일어날런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화약 뭉치를 몸에 지고 자폭 테러라도 감행하는 이였다면 카페 채로 날아갈 지도 몰랐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청사가 정면으로 보이는 이 카페 내부에는 김민서와 메리를 제외하고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일본 정부와 관련된 임무였으므로, 자연스레 경시청 등의 협조를 받아 민간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카페의 주인인 30대의 젊은 여사장은 직접 민서와 메리의 커피를 타주고는, 가게를 잠시 비워둔 상태였다.


세련되고 깔끔한 현대식 인테리어에, 목재 가구들과 비슷한 톤의 조명을 사용해 따뜻한 느낌을 놓치지 않은 카페 내부였다. 민서는 그런 곳의 창가 바Bar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옆에는 메리가 의자에 앉지도 않고, 등을 탁자에 기댄 채 멀뚱멀뚱 서서 다리를 휘젓고 있었다.


심심하다, 에 대한 멋들어진 표현 같은 자세였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곧바로 민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점프를 할 긴장감은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실전에 강한 편이었다. 십년 차 이상의 베테랑이기도 했고, 수많은 전투 임무들을 수행한 전투 요원이었다. 여성이지만, 정면에서 싸운다면 민서가 셋 정도 있어도 아마 이길 테였다.


민서 역시 타고난 운동신경과 관계 없이 극한의 매질을 통해서, 억지로 격투기나 싸움에 대한 신경을 박아 넣어진 상태임에도 그렇다.


그다지 의욕이 없는 그라고 하더라도, 몸이 알아서 반응을 할 정도로 처맞고 굴려지다 보면 저절로 탈출을 위해 움직이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하다보면, 열 번의 시도 중 아홉 번은 다시 들쳐져서 날아가는 꼴이 된다.


개중 한 번은 간신히 다음 공격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말이다. 홍인수나 김만철의 판단에서, 그래도 괜찮은 움직임이었던 선택들을 받아주며 그의 운동 신경을 개발해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후룹.”


커피는 나름대로 맛이 괜찮았다. 커피 맛을 그다지 따지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런 그의 입맛으로 느끼기에도 솜씨가 괜찮아 보이는 풍미였다. 장사가 잘 되는, 장인 정신의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인지도 몰랐다. 스쳐 지나갔던 여주인이 실력자였는지도.


메리가 톡톡, 발끝으로 카페 바닥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갈까? 오 분 지났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그들이 사라지기로 했다. 카페의 화장실은 문을 열고 들어가 세면대까지는 공용이었고, 한번 더 갈라져서 여성용과 남성용 화장실이 있었다.


그들은 세면대가 있는 자리에서 움직였다. 메리가 민서에게 손을 올렸고, 그대로 점프로 사라진다.


*


9월 3일.


토요일이었다.


하야시 슌스케라는 정치계의 정력가와 발걸음의 보조를 맞추는 일도 삼일 째였다. 그는 오전 시간에는 안가에서 사무 업무를 보았고, 여지없이 점심 즈음에는 밖으로 나서서 다양한 이들과 만났다.


일본의 외무 부대신을 만나러 오는 이들은 참 많았다. 하루에도 몇 명과 번갈아가면서 약속을 잡고 도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교통이 나름대로 복잡한 자리도 잘도 우회해서 길을 트고 운전사들이 방향을 잡는다.


세계 100대 기업중 미국 쪽에 있는 회사의 실무자나, 혹은 일본 쪽 기업의 수뇌, 그리고 미일 양측의 정계의 인물들이나 고위 관료들과의 일정이었다.


거대한 프로젝트는 진행하는 것만으로 사전 작업이 방대했다. 심혈을 기울여 조율을 하고, 돌다리를 두드리고, 점검을 하고, 동의를 구하고, 마음이 바뀌지 않았는가 협상 대상의 안색을 살피고, 각국에 미칠 영향력을 계산하고, 하야시는 바쁘게 움직였다.


민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늘 움직였다. 외무부대신이 타고 움직이는 승용차와는 완전히 모양도 다른 차에 운전사겸, 경호원인 일본인과 움직였다.


그리고 메리와 민서. 셋이 하얀색 승합차에 타서 뒤를 따른다. 눈가에 간신히 어른거리는 수준의 거리였다.


검은색, 썬팅된 고급 승용차에 타고 있는 하야시의 차에는 야가미 소우타가 옆자리에 같이하고 있었고, 경호원들이 그 근처를 빙 둘러싸듯 차량으로 같이 이동한다.


부담스러운 절차들이었다. 총리도 아니고, 외무부대신이었으나 모든 일정 중 여러 인력을 대동한 채 움직여야 한다니.


그러나 협박을 해오는 단체가 몇 번의 전과가 있고 실행력을 가진다고 보여지는, 범상찮은 미치광이들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처사다.


도쿄 도심의 시내 거리를 주행하며 민서는 하늘을 처다보았다. 구름이 하얗다. 하늘은 파랗고. 스위스의 하늘이나, 한국의 하늘이나 생긴 건 결국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을 하고 있더라도 하늘은 늘 그 모양 그대로이다.


심지어, 전쟁터에 있더라도 그럴 것이다.


민서는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다시 시야에 앞서가는 차량을 담았다. 시종일관, 외부에 있을 때는 결국 습격이나 점프의 점퍼를 경계해야 했다. 그가 하는 일은 그저 재밍 능력을 가동시키는 것 뿐이었으나, 최소한의 인지나 대비는 있어야지 않겠는가.


아마 움직이고 있을 때의 피습 확률은 다소 낮겠지만. 아주 고도로 단련되고 재능있는, 감각적인 점퍼가 아니라면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작은 대상에게 정확히 이동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조직에서도 완벽하게 해내는 이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리시버나, 소드마스터는 그 일부에 당연히 포함된다.


메리의 경우에 급하다면, 충분히 실전에서 사용할만한 수준인 일이었다. 안정적으로 그런 현장에 계속 투입이 되기에는 좀 부담이 있었지만.


리시버나 소드마스터의 경우보다 도약에 조금 더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도약 자체의 작동 시간은 모든 점퍼들이 똑같지만 그 전에, 위치 데이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는 개인 역량에 따른 차이가 다소 있었다.


전투 요원으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자들은 결국 그런 점퍼의 메커니즘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이들이었다. 묘사하듯, 가상의 컴퓨터나 CPU를 사용하는 게 점프의 작동이라면 그 가상 기계의 달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같은 성능의 기계를 다루더라도, 부품 하나, 매커니즘의 한 부분 부분을 분해해서 과정을 이해하고, 그 변용을 해낼 수 있다면 목적에 따라 다른 성능을 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용자에 따라 말이다.


원래대로의 루틴이라면 주말은 점퍼의 본부 기지 훈련실에서, 홍인수를 상대로 죽었다고 복창한 뒤에 인간 샌드백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사물의 기분을 체험해야 했겠지만, 오늘은 임무상의 문제로 일본에 있다.


민서로서는 차라리 훈련실에서 다치지 않는 보호 장구를 끼고 샌드백의 기분을 체험하는게 조금 더 나았다. 실전은 언제나 떨리고 두려운 일이다. 눈 앞에서 적의를 가진 테러리스트가 화약에 불을 붙인다면 찰나의 망설임으로 그대로,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전이란 그렇다.


3일 째, 그들은 비슷하게 움직였다. 저녁 무렵이 되면 하야시는 일정을 마치고 다시 외무성 청사로 돌아온다. 청사의 앞에 있는 공터에서 약 삽십 분을 조금 넘게 시간을 두고, 누군가와의 약속을 기다리듯 미끼를 던진다.


미리 약속된 부하 직원의 마중으로 짧은 담소를 마치고 퇴근길에 오른다. 그것을 세 번 째 반복할 때, 변화가 일어났다.


*


민서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삼일 째 같은 메뉴를 마시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메리는 옆에서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홀짝이고 있다. 미국인이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다니. 민서가 한국말로 핀잔처럼 농담을 주었으나 메리는 씨익 웃으면서 그의 등을 두드렸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그녀는 김만철에게 사사받았다고 한다. 비단 점퍼의 모든 전투 요원들이 그렇긴 하지만, 특별한 애제자 중 한 명이었더너 모양이다.


그리고 김만철의 애제자라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선에서는 건드릴 방법이 없는 탁월한 무술가라는 말이기도 했다.


아마 민서가 세 명이 있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 들어도 제압이 어려울 것이다. 맨손에, 점프 능력 없이 싸운다면 말이다.


결국 한 번에 상대를 실신시킬 수 있는 탁월한 스트라이커striker라면, 수적 우위는 순식간에 별 게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 민서는 그 정도의 감각이나 기술을 익히지는 못했다. 갖은 방향에서 처맞으면서 간신히 맷집은 길렀지만.


여전히 실전에서 홍인수나, 송일우같은 자를 만난다면 영 방법이 없다. 멀리서 물건이나 집어 던지고 다른 방향으로 도주를 해야지. 메리는 민서의 기준에서 분류를 나눈다면,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점퍼 조직의 베테랑 전투 요원이라는 설명이란 그런 얘기였다.


여전한 인테리어에, 하늘은 일찌감치 어스름한 빛을 내보이며 저녁을 알린다. 풍치는 좋았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청사 건물의 외형이나 광장, 쓸쓸할 정도로 사람이 적고 고적한 분위기.


원래는 이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있을 테였다. 지금은 테러 대책의 일환이었으므로 카페 내부나, 근처 가게에도 손님이나 사람이 없었다. 광장에도 다른 시민이 없다. 청사 자체가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공문을 알리고 대민 업무를 중지한 걸지도 모른다.


가을 바람이 나름대로 차가웠다. 민서는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바람막이나 다름 없는 비슷한 것이었다. 진한 녹색깔의 옷차림. 메리는 늘씬한 다리에 청바지를 입고 가죽 재킷으로 상체를 여민다. 늘 호쾌한 느낌이 드는 여인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찰랑이는 적발이 인상적이다.


민서는 앉아 있었고, 메리는 한가하게 탁자에 몸을 기댄 채 이곳 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리가 긴장감이 적거나 태만한 경계를 하는 건 아니었다. 아닌 척하면서, 다양한 방향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앞을 바라보는 민서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곧바로 움직일만한 주의를 놓치지 않고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전시나, 실전에서 웃는 얼굴 속에 긴장감이나 주의력을 감추는 타입이었다. 베테랑이라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대로 그려질 것 같은 형상이다.


카페의 바 테이블은 다른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목질의 느낌이 물씬 나는 외형이었다. 민서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잔으로 홀짝이면서 하야시를 주시한다.


멀리서, 한 5, 60m는 떨어져 있는 거리였다. 그가 정확하게 무슨 표정을 하고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강의 제스쳐나 움직임, 위치만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근처엔 쉴더Shielder인 야가미가 멀뚱히 서 있었다. 이번 임무의 요인인 그 장년인으로부터 몇 치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를 계속해서 고수한다.


그리고 그런 야가미와 하야시의 주위로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빙 둘러서, 있었고. 광장 주위로 또 몇 명인가가 분산되어서 주변을 살피고 무전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너무 지나치게 경계하는 느낌은 주지 않으면서, 하야시는 한가로운 척 혹은 여유롭고 방심하는 듯한 태세로 시간을 보낸다.


광장의 벤치에 잠깐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있다. 얼핏 어색해보이기도 하고, 바쁜 일상 가운데 심신의 여유를 찾고 스트레칭을 하는 전형적인 관료처럼도 보였다.


감색의 양복 정장을 입고 정갈하게 넘긴 회색빛 헤어를 하고 있는 하야시의 근처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 건 그 즈음이었다.


그가 벤치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듯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민서는 그 모양을 멀리서 바라보는 즈음. 오후 6시에서 조금 지난 때였다. 해가 어둑어둑하고, 광장을 비추는 가로등이나 조명 따위가 켜지면서 그들의 모습이 간신히 비추어지는 와중.


불그스름한 하늘빛이 보랏빛으로 저물어갈 때 즈음 기이한 전조를 가장 빨리 깨달은 건 야가미 소우타였다. 쉴더로서 그의 감각은 다른 점퍼들과 비교해도 탁월한 면이 있었다.


옌이 레이더로서 광범위한 지경에 점프 에너지를 느낀다면, 그는 근처에 있는 범위에서 가장 빠르게 점퍼의 도약을 깨닫는다.


그리고 손이 닿는 곳이라면, 정확히 그 위치를 짚어서 사전에 점프를 취소시킬 수도 있었다. 도약 재밍의 응용에 가까운 기술이었고, 극히 드물게 이런 기예가 가능한 이는 조직에서 ‘쉴더’의 칭호를 받게 된다.


야가미는 순간적으로 점퍼의 이동을 감지했다. 하야시 슌스케에게서 고작 1m 떨어진 곳이었다. 그의 편이 아니라, 반대편. 곧 하야시의 뒤쪽이었고 민서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편이었다.


그는 순간의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 취소시키는가? 혹은 이대로 미끼를 던져 끌어내어 불안 요소를 제거한다는 당초의 목적대로 점프를 내버려둔 뒤 제압하는가.


재머의 존재가 없었다면 선택의 여지 없이 취소를 시키고 쉴더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민서가 재밍을 발동중인 상태였다.


그는 순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민서를 보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손에 들고 있는 통신기의 버튼을 눌렀다. 메리가 쥐고 있는 통신기에 짝이 지어져 있는 상태였다.


메리는 경보음처럼 높은 소리를 내는 통신기를 카페 내부에서 확인하고, 민서의 상태를 확인했다. 민서 역시 소음을 들었다. 작전은 단순하다. 점퍼간의 협조.


민서가 손을 들어 어설프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려고 했다. 오른 손을 채 유리창 너머로 보이도록 크게 올리기 전에,


미상의 점퍼가 하야시의 근처로 점프를 해온다.


다만 그곳에 정확히 떨어지지는 못했다. 민서의 재밍 영역 내부였다. 그는 애초에 수십 미터의 범위를 가지지만, 집중 상태에 따라서 JE2가 누적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범위가 막대하게 늘어나는 특성을 지닌다.


약 삼십여 분.


그가 잠깐의 집중을 잃는 텀을 빼고서, 계속해서 재밍을 시도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기록한 시간은 13분 정도였다. 한 호흡의 텀을 제외하고는 민서는 계속해서 재밍을 하고 있다.


점퍼가 나타난 건 수 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하야시와 그의 거리 정도는, 그 정도의 시간이 누적된 뒤라면 재밍으로 상대의 도약이 완전히 일그러지기 충분한 위치이다.


도약의 전조는 하야시의 곁에서 그 마무리를 내지 못했다. 민서는 우웅, 하는 기묘한 진동과 같은 환청을 들었다. JE의 발현은 점퍼나 그 근처에 있던 이들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는 전조나 흔적을 남긴다.


위치는,


민서가 바라보고 있는 카페 창의 바로 앞이었다.


메리가 이미 점프를 발현하면서 민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민서가 들던 손이 무릎 위에서, 카페의 바 테이블을 넘어 어색하게 들어지던 즈음 한 청년의 형상이 유리창 앞에 나타났다.


희끗한 머리를 하고 있는 사내였다. 그는 민서의 쪽이 아니라 하야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치는 바뀌었으나 점프 직전에 취했던 동작이나 계산한 방향은 그대로였다.


손에 이상한 걸 들고 있다, 고 민서가 생각했다. 묵직하게 생긴 가죽 주머니 같은 물건이다. 검은 천 위로 기계 부품처럼 보이는 회로가 올라가 있다. 회로에서 붉은 빛이 반짝인다, 라고 인지를 한 순간


메리가 발동했던 점프가 발현된다. 그녀가 민서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동시에 사라졌다.


카페 내부는 아무도 없다.


조용한 적막이 흐른다. 갑자기 나타난 미상의 인원에 하야시 쪽에서도 낌새를 감지한 듯 움직임이 있으려 했다.


야가미 소우타의 안색이 달라졌음을 경호원들이 느낀 것이다.


야가미가 일단 하야시에게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카페 쪽에서는 그대로, 폭발이 이어졌다.


쾅-!


거대한 폭음이었으나 기술할 마땅할 말이 없었다. 지독한 소리와 함께 화염과 폭풍이 일어났다. 카페의 유리창이 그대로 박살이 나면서 폭염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아니, 그 전에 카페의 외벽이 날아가면서 건물에 구멍이 났다.


한 순간에 예쁘장하게 꾸며 두었던 현대식 인테리어가 초토화되었다. 콘크리트와 정갈한 보도 블럭으로 가꾸어진 도로에도 패인 자국이 났다. 화약의 위력이 강력했다. 카페 건물은 2층이었으나 그 위력이 2층에까지 닿았다.


한 순간에, 몇 개의 벼락이 꽂힌 자리처럼 변해버린 카페이다.


희끗한 머리에, 마른 체형을 가졌던 폭탄마는 폭발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순식간에 폭발하는 시한 폭탄을 들고 이동을 해온 뒤, 곧바로 다음 점프를 발휘해서 자리를 피했다. 자신이 점프를 하는 몇 초의 시간을 완벽하게 계산해서 만들어낸 대담한 테러 행위였다.


적막했던 청사가 폭음으로 가득 메워졌다.


어두워가던 저녁 무렵의 광장이 치솟아오른 폭염에 순식간에 빛으로 채워진다.


긴 그림자를 남겼던 폭발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먼 거리에서 시민들조차 느낀 이상이었다. 청사 내부 건물에서 폭발의 잔흔을 발견하는 이들이 있었다. 창가 자리에서 광장을 바라보면 바로 발견할 수 있는 흔적이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야가미 역시 일단 하야시와 자리를 옮겼다. 기왕 손이 두 개였으므로, 그가 부관처럼 대동하며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던 경호원조의 조장도 함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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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5. 22.11.04 37 0 15쪽
48 44. 22.11.03 39 0 25쪽
47 43. 22.10.30 42 0 14쪽
46 42. 22.10.30 47 0 21쪽
45 41. 22.10.29 55 0 18쪽
44 40. 22.10.27 60 0 18쪽
43 39. 22.10.26 54 0 13쪽
42 38. 22.10.26 53 0 16쪽
41 37. 22.10.25 62 0 15쪽
40 36. 22.10.23 60 2 12쪽
39 35. 22.10.22 61 3 16쪽
38 34. 22.10.22 58 2 17쪽
37 33. 22.10.21 62 2 16쪽
36 32. 22.10.21 64 2 22쪽
35 31. 22.10.20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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