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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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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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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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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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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32.

DUMMY

*


민서가 보기에 리시버는 미친 것 같은 인간이었다.


그들은 성큼성큼, 걸음을 걸어 나갔다. 칼슨의 무리들을 제압하기 위해 뒤로 온 만큼을 빠르게 돌아갔고, 그 이상 앞으로 나갔다. 기관실을 목표로 하고 움직이는 이들을 잡아야 한다. 앞으로 갈수록 열차의 내부가 달라졌다. 급수에 따라 칸의 모양이 달라지는 듯했다. 점차 실내처럼, 간이형의 모텔같은 객실이 있는 곳으로 변해간다.


열차 내부의 모습도 개방형이 아니라 한쪽에 복도가 있고 다른 이들이 일부러 그 안에서 고개를 내밀어야만 했다.


라미노프와 강도단의 두목은 많은 이들을 손쉽게 무력화하며 금품을 갈취했다. 앞칸으로 갈수록 소득이 괜찮았다. 아무래도 하등칸에 타는 것보다는 상등칸에 있는 애들이 재력이 괜찮은 경우가 많았다. 귀금속, 현금, 수표, 악세사리, 전자기기 따위들을 무차별적으로 걷는다.


질기고 오래 된 가죽 보자기 따위에 아무렇게나 집어 넣었다. 전자기기가 깨질 것도 같았지만, 그런 걸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최대한 털어 넣고 그들을 빠르게 자리를 뜨는 것이 목적이었다. 열차 하나를 털고 나면, 기관실까지를 점거해서 바로 움직임을 멈춘다.


한 자리에 멈춘 열차는 강도단에게 협력하는 점퍼가 오기에 좋은 장소이다. 그 전까지가 타임 어택이었다. 지나치게 시간을 끌게 되면 러시아의 군 병력이나 치안 병력이 들이닥칠 수도 있었다. 러시아가 잘 사는 나라는 아니고, 국토에 대한 영향력도 워낙 넓어서 부족하다고 하지만 정말로 아무런 힘도 없는 곳은 아니었다. 정면에서 걸리면 그들 같은 범죄자들은 뼈도 추리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굵은 몸통의 라미노프와 비슷한 장정인 두목이 앞으로 움직이는 것을 리시버와 김민서가 따른다. 강도단의 두목의 이름은 ‘첼시’였다. 남성적인 분위기의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더 험악하고 거친 인상의 인간이다.


첼시와 라미노프를 비롯해서 총 11명의 인원이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마치 오래도록 해온 일인냥 움직였다. 리시버는 승객들의 소란을 따라 움직인다. 그들의 증언에 따라, 첼시와 라미노프가 있는 바로 전 칸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겨우 수 초 전에 떠났다고 한다. 그들이 조금만 빨랐어도 맞닥뜨렸을지 모르는 시간의 차이였다.


리시버는 망설임 없이 도약을 시도했다. 한 번 더, 보여주는 기예였다. 달리는 열차 속에서 정확히 핀포인트로 점프를 해내는 것은 말이다. 열차의 속력이나 방향을 고려해서 하는 것이었고, 만약 복잡한 커브 길을 계속해서 돌고 있다면 최길우에게도 실패 확률은 있었다.


다행히도 열차는 쭈욱 직진을 하고 있는 채였다. 철로를 따라. 속도도 일정한 편이었고. 계산이 어렵지는 않다. 리시버는 민서의 어깨에 손을 대며 이동했다.


“가자마자 일단 침대에 숨으십시오.”


관객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줄 수 있는 팁은 민서에게 준 이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앞쪽으로 가면 복도가 좁고 승객들이 노출된 확률이 더 적었다. 대신 그는 죽어나겠지만,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 아까처럼 수가 많은 상대방을 농락할 수도 있었다. 상대가 동료의 몸뚱아리를 넘어서 자신을 쏘는 걸 망설이지 않는 종류의 사이코패스라면 여전히 위험했지만.


민서는 참 다양한 직업 체험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다니. 솔직히 조직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무직 따위의 일을 하고 싶었지, 이런 현장직에 투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즈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조직원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건 아주 다른 것 같았지만 말이다.


후욱, 하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그들이 단체 도약을 했다. 다시 나타난 자리는, 라미노프 등이 있는 객실의 앞 칸이었다. 상당히 앞쪽으로 왔을 것을 생각해서 기관실 근처의 자리로 넉넉하게 이동을 한 것인데, 생각보다 반대쪽의 진행이 빨랐다.


벌써 기관실이 코앞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열차가 멈추고, 상대편의 점퍼를 상대하며 난전을 벌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상황까지 상정하고 온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민서를 데려온 것이었지만 말이다.


가급적 쉽게 갈 수 있다면, 빠르게 끝내는 것이 좋다.


탕! 하는 총성이 객실의 너머로 들렸다. 열차 내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 열차 전체로 퍼져나간다. 총성이나 심각한 분위기를 느끼고 다른 칸으로 도망가는 이들이나, 연락을 취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달리는 열차는 그것만으로 밀실이다. 강도들은 그 내부에서 자신들의 완력을 이용해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 다음에, 서둘러 이곳에서 빠져 나가야 했다.


리시버는 대충의 상황을 살피며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했다. 앞 칸에서 총성이 울렸다면, 상황 정리에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앞 칸에서 정신적으로 지옥도나 마찬가지인 패닉 상태가 펼쳐지고, 그것을 강도들이 다시 제압을 하고,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틈을 타서 금품을 갈취하고··· 그리고 강도단의 리더가 무리들을 내세우며 이번 칸으로 넘어올 것이다.


어차피 들어오는 통로는 한 군데였다. 사람들 역시 총성을 듣고 숨죽이고 있다. 리시버는 다시 한 번 통제를 위해 총을 쏘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했다. 대신 나지막하게, 하지만 최대한 멀리까지 들리도록 힘을 주어 발음했다. 영어였다.


“다들 침대 밑에 들어가있던, 각자 룸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열차 강도들의 샷건 탄이 어디로 튈 지 모르니까.”


그 말에 사람들은 일단 제대로 반응을 했다. 겁을 집어 먹고 바들바들 떨기야 했지만. 민서 역시 그런 바들바들 떠는 이들 중에 하나였다. 리시버의 말에 잘 순종하는 중이었다. 위기 상황에서는 전문가의 말을 듣는 편이 좋다. 자신이 그 상황에 대해 무지한 문외한이라면 더욱 말이다.


다만 빼꼼히, 바닥에 죽은 듯이 누운 채 조금 고개를 내밀어 앞을 바라보기는 했다. 설마 샷건의 탄환이 이곳까지 올까, 하는 마음은 있었다. 그럼에도 총격전이 시작되면 다시 고개를 집어 넣을 생각이었다.


머리 부위는 캡처럼 뒤집어 쓰는 방탄구로 인해 보호받고 있다. 눈이 있는 부분만 가려진다면 걱정 없이 구경을 해볼 수 있을 텐데. 그는 위험함에 대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떨면서 앞을 본다.


최길우가 권총을 앞으로 들고 뻗은 채 문을 주시하고 있다. 위력이야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9mm자동 권총 가지고 샷건을 든 무리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무모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길우의 솜씨를 모른다면 그렇게 느낄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상 장비로 보더라도, 사실은 리시버쪽이 온 몸을 뒤덮고 있는 방탄갑을 입고 상대가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침착하게 사격을 한다면 보통 이긴다. 달리는 열차 내부, 일직선상의 좁은 통로 속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리시버는 조용히 열차 문을 바라다보았다. 덜컹덜컹, 움직이고 흔들리는 기차의 진동이 일정하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상대를 정확하게 사격해야 한다. 최길우의 사격 솜씨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잘 설명이 가지 않는 수준의 기술들이었다. 타고난 인간이 사선을 몇 번이나 넘으면서 손에 피가 베이도록 훈련을 한다고 해도, 될까 말까한 모습이다.


덜컹, 하는 기차의 소음과 진동에 발맞추어 앞쪽의 철제 도어가 돌아간다. 잠금 레버가 돌아가고 문이 열린다. 무리들이 넘어온다. 최길우는 가장 먼저 들어오는 무리들, 두터운 몸통에 각자 샷건을 꼬나쥔 러시안 강도들을 향해서 총구를 들이밀었다.


“반갑네.”


들릴 리가 없는 인사였지만, 최길우 나름의 스타일이었다. 긴장을 풀어내는 헛소리는 나름대로 유용하다. 그런 헛소리와 여유를 가지고도 이길 수 있을 만큼의 실전 감각과 실력이 있다면 말이다.


탕탕탕! 일정한 간격으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연사보다는 조준 점사였다. 그러나 그 텀이 지나치게 짧았다. 똑같은 박자로 북을 두드리듯 고음의 총성이 열차 객실 내부를 잠식했다. 갑작스러운 총격에 강도들은 당황한다. 콰앙! 샷건 하나가 쏘아졌다. 최길우를 향한 건 아니었다. 문을 넘어오던 무리 중 하나가 동료의 몸에다 대고 발포했다.


차마 말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방탄 장비가 없이 샷건을 맨 몸에 맞으면 당연히, 대형 동물이라도 심각한 부상이나 죽음의 위기에 놓인다.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눈뜨고 보기 어려운 심각한 꼴이 튀어나왔다.


피나, 그 안에 담긴 것들이 반경으로 흩어진다. 강도단 역시 패닉에 빠졌다. 그들은 약탈하는 자들이었지, 일방적으로 당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최길우는 침착하게, 어떤 요소에 반응하지 않고 조준사격을 계속했다.


그가 움직이는 트리거는 한 가지 뿐이었다. 점퍼가 없다면 앞에서의 공격 뿐이다. 정면에서 자신의 안면부를 노릴 정도로 겨누어 지는 샷건의 총구가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없다면 그저 계속해서 탄알을 흩뿌릴 뿐이었다.


팔, 다리, 팔, 다리, 팔, 다리, 상대가 가진 샷건의 몸통부위. 여기저기에 자동 권총의 탄알이 날아가 박혔다. “으아아악!” 강도들 역시 총을 맞으면 비명을 지른다. 그들이라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삶의 방식을,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길을 선택한 어리석은 인간들일 뿐이었다. 총에 맞으면 똑같이 아프고, 비명을 지르고, 실신을 한다.


아무리 건장한 남성이라도 보통 납탄이 들어가면 그렇게 된다. 사람의 신경계나 혈관, 뼈마디 따위는 연결이 되어있는 탓이다. 보통 여러 발을 맞으면 즉사를 하게 되고 말이다.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강도 무리가 뛰쳐나오며 얼마간 쓰러져갔다. 개중에 한둘은 자신들의 사격에 스스로 넘어갔다. 최길우는 아직까지 그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오래도록 두면 실혈사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통로는 좁다. 그리고 1등 칸으로 오면서 복도는 더 좁아지고 객실 내부의 침실 칸이 더 넓어졌다. 작은 복도에서 비집고 들어오다가 그대로 총탄의 충격에 패닉 상태에 빠진 장정들이 허우적거렸다. 그 뒤로 도망가지는 않았고, 계속해서 밀고 들어온다. 손에 든 샷건은 쏘지 못하도록, 앞에 들어오는 이들의 손과 팔, 샷건 자체를 노렸다. 그렇게 한 열을 제압하고 나면 나머지는 뒤엉켜서 제대로 사격을 할 상황이 나질 않는다.


강도들은 후퇴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뒤에서 그들을 밀어대는 두목의 존재 때문인지도 모른다. 열이 오르면 그대로 돌진을 해서 샷건을 몸통에 박아 넣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


강도들에게도 나름대로의 행동 강령이나, 규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승객들을 억압하고 무력으로 모든 것들을 해결해야 하는 그들은 겁에 질려서는 안된다. 후퇴를 해서도 안되고. 총을 들고 무력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빈틈을 보인다면 그들이 눌러 놓았던 승객들이 결국 그들에게 덤빌지 몰랐다.


수 많은 인원들을 동시에 겁박하고 제어하는 것도 깨나 힘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렬한 위압감이나 기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발휘할 수 있는 힘 이상의 영향력을 동시에 끼칠 수 있는 것 말이다.


김민서가 보기에, 최길우는 그런 분위기를 가진 자였다. 한 치도 물러섬이 없이 총을 든 괴한들을 상대로 사격을 해대는 건 기계적이라기보다,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그 정도의 침착성과 정확성을 사람이 가진다면 도리어 경이로운 생각마저 든다. 그는 작은 권총 하나로 십 수 명을 확실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심지어 죽이지도 않고서.


객실의 내부는 엉망이었다. 저들끼리 중구난방으로 쏘아댄 샷건의 탄환이 박혀 들어간다. 기차의 벽면은 나름대로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혹은 승객들이 잘 숨은 것인지 승객 칸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기차의 외벽은 총탄으로 바로 뚫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오사격으로 인해 발생한 중환자나 사망자들의 신체 일부, 혹은 신체 내부의 것들이 출입구 쪽에 흩어져 있었다. 길게 튄 핏자국도 있었고, 최길우가 쏘아낸 탄환에 맞아서 질질 흘리는 핏자국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비명을 지르고, 승객들은 웅크린 채 숨을 삼키거나, 고개를 내밀지 않거나, 총성이나 그 여러가지 살을 파고드는 소리만으로 벌벌벌 떨면서 여기저기 몸을 박아대거나 했다. 김민서는 나름대로 침착한 심정으로 그 모든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한도가 넘어버린 현실성에 눈이 맛이 가버린건 지도 모른다.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뇌에 문제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갑자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백인 열차 강도들의 무리와 맞닥뜨린 다음에 그들의 죽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한국의 청년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장 군대에 가서도, 그런 모습들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부대마다의 사정이 있고, 사건 사고는 언제나 일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건과는 조금 거리가 먼 평탄한 삶을 살아온 편이었다. 김민서는 말이다.


김민서가,


최길우는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다음에 그가 벌인 일 때문이었다.


최길우는 어느 정도 정면에서 그들을 제압했다고 느끼자 곧바로 도약을 시작했다.


난전을 유도하고 상대들 스스로를 장벽으로 만들어서 사격을 해대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앞을 막는 것들이 사라지고 상대 역시 침착함을 찾는다면 샷건의 앞에서 권총이 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는 제한적이다.


이럴 때는 자신이 가진 다양한 능력들을 활용하는 것이 좋았다. 최길우는 점프를 사용해 무리들이 있는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거리를 잘 재고, 공간감각이 탁월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만한 자리가 멀리서 보이는 것 같자 그 사이에 이동한 것이다.


후욱, 하는 서늘한 감각이 느껴진 것 같았다. 조직원들 사이에서 말이다. ‘조직원’이란 범죄 조직의 일원인 강도들이었다. 그리고 강도단의 행동대장이자, 이 자리에서의 리더인 첼시와 라미노프 역시 그런 싸늘한 감각을 느꼈다.


그들 역시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며 부하들을 밀어 넣고 총을 갈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들이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이미 시작한 약탈 행위는 끝까지 가야만 했다. 결국 타인의 목숨을 빼앗고자 하는 건 자신의 목숨도 빼앗길 위험이 있는 일인 것이다.


열차 강도를 시작했다면, 그것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기다리는 건 비참한 죽음 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의 당국은 이런 강력 범죄자들에게 어설픈 온정을 베풀어 주는 단체가 아니었다.


최길우가 그들 사이로 넘어오는 전조를 느낀 것은 그들 범죄 무리가 ‘점퍼’에 의해서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모른다면 잘 느낄 수 없었지만, 점프에 대해서 경험이 있는 자들은 JE에 대해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길우는 머릿속에서 밀도 높은 시뮬레이터를 돌렸다. 실제 시뮬레이터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 상상의 영역이었다.


점퍼들이 사용하는 JE는 가상의 컴퓨터에 비유하고는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계산들을 대신 처리해주기 때문이었다. JE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힘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때문에 점퍼들은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기능이 아니라면 훨씬 더 제약적이고, 일부만이 쓸 수 있는 힘이었을 테다. 점프라는 것은.


최길우는 그런 JE의 미세한 사용과 응용에 있어서 달인에 가까운 자였다. 그리고 그 가상의 컴퓨터에 도움을 받는 것조차 일부 가능했다.


점프를 시도할 때 그곳이 점프가 가능한 자리인가, 아닌가 하는 감각이 있다. 빈 자리라는 감각이 있다면 그곳은 자신의 몸이 비집고 들어갈만한 공간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점프를 미세하게 나누어서, 짧게 컨트롤을 한다. 점프의 전체 과정에서 시작 단계를 의식적으로 발동했다가, 오류를 보고 캔슬을 하는 것이다. 이 미세한 조작에서 실패를 하면 헛되이 점프의 도약 횟수를 낭비하고 만다.


이 미세한 계산, 최길우가 이해하기 쉽게 간보기 점프라고 이름 짓는 것은 일반적인 점프보다 훨씬 빨랐다. 익숙해질수록 더욱 시간이 짧아진다. 전체 점프의 과정 중에서 초반의 일부만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1초의 반의 반 정도면 수 번을 시도하고 정확한 자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찾는 일은, 해당 좌표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는가, 혹은 고체 등의 물질로 차 있는가, 를 구분하는 일이기에. 조금 더 감각적으로 미세하게 구분을 한다면 해당 장소의 생김새 역시 알 수 있었다.


점퍼들간이나, JE에 익숙한 인간과의 전투에서 상대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상대 역시 JE의 움직임에 반응하기에, 긴장과 집중 상태라면 자신이 그 자리를 점프를 이용해 짐작하는 것을 알게 마련이었다. 강력한 위화감, 점퍼가 곧 점프를 해올 것이라는 예고를 해주고 만다.


그러나 지금처럼 난전의 상황 속에서, 알아도 피할 길이 없는 구조 속에서는 쓸만하다.


최길우는 눈으로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사이 공간의 생김새를 파악하고 그리로 넘어갔다.



*



최길우는 총을 든 채였다. 그의 전신은 방탄 갑옷으로 채워져 있다. 샷건을 맞는다고 해도, 뚫리지는 않는다. 최고 구경의 단일탄을 맞으면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그런 종류를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산탄으로도 제압이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권총을 들고, 편안하게 선 채로 그가 이동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한 명의 엉덩이를 쏘았다. 탕! 아악! 비명을 지르며 그가 주저 앉았다. 주저 앉으려고 하기엔,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는 사이라 무너지는 장정의 몸뚱이에 앞 뒤가 밀렸다. 최길우는 당황하지 않고 이번엔 옆으로 돌아, 옆에 서 있는 장정의 허벅다리를 쏘았다. 탕!


마찬가지로 높은 소리를 내며 발악을 한다. 최길우는 그대로 몸을 빼서 돌렸다. 뒤에는 라미노프와 첼시가 있었다. 라미노프는, 거한이었고 레슬러나 비슷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움직여서 샷건을 들었다. 물론, 그들 사이에 샷건처럼 긴 물건을 제대로 들어 올릴만한 자리는 없었다. 중간에 턱 하고 넘어지는 동료의 몸뚱이에 걸렸다.


최길우는 반면 자유롭다. 몸을 주위로 약간의 반경만이 필요하다. 그 정도의 공간만 있다면 그는 연속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탕! 라미노프가 무언갈 하기도 전에 최길우의 속도가 빨랐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자동권총을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거한의 허벅다리에 총알이 박혔다. 타당, 탕! 계속해서 공이가 탄을 때리고 화약이 폭발하며 납탄이 날아갔다. 연속된 조준 사격이었다. 라미노프는 양 허벅지에 납탄을 두 세 개 정도 박힌 다음에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사람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는 충격은 아니었다. 이미 육체의 감각이 마비된 다음에 약물 따위의 힘으로 다소 움직여볼 수는 있겠다.


그렇게 허물어지는 라미노프에게 다가가며 그 뒤에 있는 첼시를 겨누었다. 첼시는 가장 뒤에 있었고, 그나마 샷건을 정상적으로 겨누어 볼 수 있는 자세였다. 최길우는 라미노프의 몸뚱이를 방패 삼아서 조준 사격을 했다. 정확히는, 쓰러지는 그를 안듯이 받으며 라미노프의 오른쪽 옆구리 너머로 총구를 내밀어 첼시를 사격했다.


타타탕! 총알이 얼마 남지 않았다. 30발들이 탄창도 이런 식으로 갈기다 보면 오래 못 간다. 첼시의 손에 한 발, 그의 허벅지에 한 발이 들어갔다. 정면에서 서너 명을 날렸고, 한 두 명은 동료의 손에 갔고, 지금 네 명을 제압했다. 남은 이들이 두 명이었다. 최길우는 라미노프의 쓰러지는 몸을 기대어 잠시 지탱시켜 두었다. 그를 등으로 받치며 뒤를 돌아 사격한다.


탕, 탕! 철컥, 철컥. 마지막 남은 탄환이었다. 그는 두 발로 사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던 이들의 어깨를 쏴서 샷건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그들에게는 비로소 그것이 평안일 것이다.


애써서, 무거운 샷건을 들고 누군가를 겨누며 그렇게 달려들지 않아도 인생은 여전하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보호전이 아니라면야, 약탈따위의 일이야 언제든지 멈추어도 될 뿐이다.


말로는 쉬웠으나, 최길우가 보여준 모습을 실제로 행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어렵다는 묘사 이상의 난이도가 있었다. 한 시도 상황 판단을 놓치지 않고 완벽한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일이다. 그 사이에 약간의 흐트러짐이나 겁, 긴장, 당황도 있어서는 안되고. 이제 겨우 20대 중반인 청년이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놀라운 활약이었다.


‘점프’라는 능력은 최길우의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한계라는 걸 지워버렸는 지도 모른다. 이런 것도 되는 세상인데, 이 정도가 안되겠어?


그런 식의 훈련이나 움직임이 지금의 그가 보여준 움직임을 만들어낸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민서는 그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총탄이 날아들지도 않았다. 그는 다른 의미로 점점 충격을 받았다.


아니, 저게 사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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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6. 22.10.23 60 2 12쪽
39 35. 22.10.22 61 3 16쪽
38 34. 22.10.22 58 2 17쪽
37 33. 22.10.21 62 2 16쪽
» 32. 22.10.21 63 2 22쪽
35 31. 22.10.20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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