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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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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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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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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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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54.

DUMMY



메리는,


그대로 드론을 공중에서 잡아채어 돌리면서 한 순간의 근력으로 움직임을 통제했다.


그리고 적당히 먼 곳으로 도약했다. 그녀가 움직인 곳은 태평양의 어느 한복판, 수면 위의 상공이었다. 사람도, 무엇도 없고 그저 태양과 바다 뿐이었다. 그 아래로 유영하는 물고기들이야 무수하겠지만.


한낮의 열기는 지나고 태양의 위치가 다소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거칠 것 없는 광대한 공간에 태양빛이 하늘과 바다 사이를 가로지르고 그 안에서 메리는 마저 대회전을 했다.


한 바퀴를 1이라고 친다면, 4분의 1정도를 마저 돌고 그대로 타이밍에 맞추어 손을 놓았다. 대형 드론은 그대로 관성에 따라 메리로부터 멀어지게 날아갔다. 돌고 있는 프로펠러 탓에 이리저리, 방향을 꺾었지만 메리로부터 직선 운동의 방향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대로 드론은 구불거리는 형태의 포물선을 그리며 바닷물에 처박혔다.


그리고 메리는 자신이 올바른 일을 했음을 깨달았다. 드론이 단순히 부딪혀서 사상자가 날 뻔한 일 이상의 것을 잘 막아 내었다.


드론이 바닷물에 잠기고 한 십여 초 뒤에, 쾅! 하는 폭음이 들리더니 바닷물이 치솟았다. 그녀 역시 상당한 높이에 나타났기에 떨어지고 있었고, 공중에서 다이빙을 준비하는 자세로 바꾸어서 수면에 파묻힌 다음에 물속에서 들은 것이었다.


깨나 먼 거리였음에도 물을 통해 파장이 전달되었다. 수면 아래에서 폭약이 불꽃을 전부 피우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후끈거리는 열기마저 조금 전해지는 것 같았다.


메리 역시 그 안에 폭약이 설치되어 있으리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비상식적인 수준의 화약을 넣고 그 일대를 전부 날려버리려 했다면 지금 메리 역시 무사하지 못할 뻔 했다. 그녀는 방심했음을 인정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론을 던진 순간 곧바로 점프해서, 그로부터 먼 위치로 도망가는 것이 보다 안전한 선택지였으리라.


수중에서 갑작스러운 열기와 폭발을 마주한 그녀는 그대로 조금 뒤로 밀려나서, 바다 속을 유영하며 능숙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수영에 능숙한 편이었다. 이런저런 장비나 옷을 입고 있는 채로도, 물 위로 떠오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푸후."


전투 수영, 같은 동작으로 수면 위에 고개를 내민 그녀는 팔 다리를 휘저으며 태평양 한복판의 물길을 즐겼다.


그리 오래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요란스런 사건의 정리 뒤에는, 또 다른 행정적인 처리와 뒷감당이 필요한 법이었다. 상세하게 현장의 상황을 보고하고, 사건의 발단을 찾기 위해 치안 조직들과도 힘을 합쳐야 했다.


10월, 태평양 한 복판에서 잠시 수영을 하던 그녀는 다시 도약을 사용해 일단 점퍼 기지로 돌아갔다.



*



야가미와 민서는 일단 그 날 아무런 피해 없이, 무사히 잘 복귀를 했다. 인명 피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빌딩이 부서졌으나 사람이 없는 층의 내부에 닿아 있는 위치였어서 재산 피해만이 막대하게 생겼을 뿐이다.


거리를 지나 다니는 사람들도 폭발로 인한 부스러기에 맞아 사소한 타박상이나, 부상을 입었을 뿐이지 후유증이 남거나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격에 트라우마가 생긴 이들은 꽤나 있을 법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대형 사고란 그런 것이었다. 수정은 나름대로 담력이 강한 편이었지만, 놀란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 뒤로 한동안은 바깥에 잘 나가지도 못했다.


아무 의미도 연관성도 없지만 충격적인 기억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것. 그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트라우마의 특징이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교통 사고를 당한 충격이 너무 크고 고통스럽다면, 평범한 도로에 나서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수정의 경우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길지 않은 시간만에, 안전한 생활을 반복하며 스스로 회복했다.



*



"음. 괜찮니. 어. 다친 덴 없잖아. 같이 있어놓고 그러네. 그러게. 나도 그런 건 처음봤어."


민서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걸고 있는 전화였다. 그가 사용하는 건 국제 통신이 자유롭게 되는 기종으로, 다소 송수신료가 비쌌지만 점퍼 조직에서 점퍼들 대상으로 다소 싸게 계약할 수 있도록 제휴를 맺어준 물건이었다.


스위스의 시간으로 새벽이었다. 서울의 시간으로 한낮일 것이다. 그는 그 날의 사건 이후로 종종 걸게 된 전화로 수정의 안부를 살피며 이야기를 건넸다. 민서는 연구소의 실험에서 잠시 벗어나 테라스, 발코니 같은 공간에 서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수정은 며칠 째 방구석에만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다고 딱히 위협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는데. 민서로서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점퍼 본부는 세간에 드러난 점퍼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생각해야 했지만, 그런 일련의 테러 사건을 저지른 점퍼 또한 주목하고 추적해야 했다. 어디로부터 그런 자가 나왔는가.


다른 어떤 단체보다 점퍼 조직이 힘을 좀 쏟아야 할 일일 것이었다.


연구소는 경치가 좋은 곳에 있었다. 얼마 나가지 않아서 주변을 바라보면 풍광이 좋은 근처의 산야를 구경할 수 있다. 도시에서 다소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하늘을 처다보면 별이 좀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 어딜 가든, 서울보다는 훨씬 잘 보일 것이었다.


온갖 인위적인 조명으로 강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보면, 별 정도는 잘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뭐든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스위스에 있다지만 점프로 이동하는 민서에게 시차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옮겨 올 때에 송일우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이후로도 조직에 헌신하면서 원래 받았어야 할 대강의 형량을 감하고 있었다. 점점 누그러들고, 사람이 순해지는 것도 같았다. 뭐든 자신만 알고 날뛸 때 보다 좀 제어를 해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면 사람이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래, 거긴 낮이겠네. 잠깐 다른 데 나와 있어. 응. 전에 말한 무슨 일하는 데서 필요해서. 그러게... 비행기도 태워주고. 좋은 곳인 것 같기도 해 있을수록."


이것저것 공유하면서, 중요한 내용 빼고는 거의 다 말하는 것 같았다. 민서는 자신이 일정한 비밀을 감추면서 오래도록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수정과 대화하면서 깨달았다. 의외의 재주였다.


어쨌든, 폭발 사건도 사건이고 점퍼에 대해서도 수정 역시 목격을 했다. 야가미가 갑자기 다가온 건 아마 못본 것 같았다. 워낙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러나 드론을 타고 있던 남자가 사라지고, 메리가 나타났다가 드론과 함께 사라진 건 그녀 역시 목격했으리라. 그 자리에 그 장면을 보지 못한 이는 없었으니.


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목격한 일이라 전처럼 '암시'를 통해서 기억을 지울 수도 없었다. '맨 인 블랙'이 떠오르는 일이었지만, 그 만큼 고성능은 아니다. 이 세계엔 외계인도 없었고. 가진 기술력 또한 고작해야 근미래에 한 발 걸친 수준이었다.


한 두 사람을 대상으로 최초의 1회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 가능한 것이었지만. '암시'는 말이다. 그 또한 완벽한 것도 아니었고. 상대가 의심이 많고 의식을 뚜렷하게 가지려 한다면 그다지 통하지 않는 종류였다.


민서는 이후로 의도적으로 '점퍼', '순간이동'에 대한 주제는 피하고 있었다. 수정이 물어온다면 어설프게 모른 척을 하다 들킬 것도 같아서, 왜인지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다보면 심장 한구석이 긴장감으로 아려오기도 한다.


이게 사랑인가?


"음, 아니 잠깐 딴 생각했어."


아마 아닐 것이다.


"점심은 먹었니. 여기는 밥이 잘 나와. 무슨 연구소처럼 생긴 곳인데... 밥이 맛있네. 그냥 서양인들이 국적 상관없이 여럿 있는 곳이나 간단한 양식이나, 중식 비스무레한 것도 좀 있는 것 같아. 볶음밥도 있고."


그 뒤로 여러가지, 몇 마디를 더하다가 통화를 끊었다. 어쨌든 수정이 잘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마음은 놓인다.


연구소에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늘상 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별다른 사건이나 임무에 참여하는게 아니라면, 기본적인 그의 루틴은 늘 단조롭다. 연구소에서 JE2를 사용한 재밍 능력의 강화를 위해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한다.


그에 맞추어서 연구소 직원들이나 기계들은 그의 능력의 변화와 세기 따위를 측정하고 JE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다.


어느 정도 연구소 내부에서의 실험을 겸한 연습을 끝내면 개인적으로 재밍 능력의 사용을 위해 집중을 하고 반복을 한다.


주로 연구소로 올 때에 그를 데려다 준 점퍼가 협조자가 되어서 일정한 시간마다 능력 발현을 체크해준다. JE2는 본질적으로 JE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에너지이고 능력이었다.


민서는 단조로운 반복을 계속하며 과연 이것이 점프 능력에 대한 해석에 도움이 되고, 진보의 한 걸음이 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유리창 너머에서 연구진들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무언가 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종종 마주치며 따뜻한 눈 인사를 해주는 연구소장이나, 괴짜 박사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익기도 했고.


연구소에서 디저트로 나오는 블루베리 잼 핫케잌이 제법 입맛에 맞기도 했다.


사회의 변화나, 점퍼 조직의 분주함과는 한 발 물러서서 민서는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JE2라 불리는 에너지는 점점 발현할 때마다 강력해졌다. 에너지의 누적이나 발현 시간은 꾸준히 조금씩 늘어갔다. 그로 인한 JE에 대한 간섭 지수는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지만.


발현자인 민서 스스로의 발동 시간은 연속적으로 늘어간다.


10월에는, 최초에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을 제외하면 별다른 일이 없었다. 물론 민서의 관점에서였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도시에서의 경우였다. 이런 평범한 날도 어딘가의 누군가는 비극과 고난을 겪기도 하고, 전쟁이나 굶주림에 배를 움켜쥐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나날들도 있었다.


그런 공간들을 점퍼 조직의 다른 요원들이 제약 없이 뛰어넘으며 고생을 했다.


민서가 발현하는 '재밍' 능력이 30분 단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발현하는 JE2의 영향 범위가 km단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해서 능력이 발전한다면, 정말로 재머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점퍼의 능력에 제약은 없지만 점퍼 스스로에게는 제약이 많았다. 사람은 별다른 기구 없이 지구를 벗어나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아무것도 없는 극한의 오지나 야생에서의 생존도 제한적이었다.


그런 일정한 범위 내를 재머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면 결국 점퍼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km란 단위에 진입하는 것은 그런 가능성의 실마리를 보게 했다.



*



옌은 스스로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런 생각을 애써 하고 있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 시달리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녀는 흔히 대도시들을 돌며 점퍼들의 흔적을 찾을 때처럼, 다양한 지역을 누비며 레이더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폭탄을 던진 일이 발생한 이후로 각국의 단체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


서울이라는 점에서, 타국의 수뇌부가 개인적인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낄 필요는 없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서울처럼 치안 수준이 높은 곳도 범죄를 저지르는 점퍼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증명이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벌일 지 모르는 상대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자본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듯했다. 사람을 태우고 안정적으로 공중 기동을 할 수 있는 드론이나, 가볍게 폭탄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말이다.


악의를 조금만 더 날카롭게 품는다면 어떤 나라의, 어떤 도시도 그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그런 불안감이 추적을 재촉했고, 사실 점퍼를 찾는 일에 왕도 따위는 없었다. 그저 여태까지 활용하는 각국의 정보 단체들을 이용해서 직접 수색을 하는 수 밖에는.


'옌' 정도만이 유일하게 박차를 가하며 써먹을 수 있을만한 수색 자원이었고.


그 덕에 점퍼 조직 내에서 온갖 이들의 지원을 받으며 옌은 각국의 도시들을 돌았다. 이런다고 해서 반드시 점퍼가 잡힌다는 확증은 없었지만, 적어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하루에 백 회가 넘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점퍼들은 의외로 무심결에, 또 반복적으로 점프를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만약 그 능력이 하루에 3회 정도로 제한된다면 아마 그러지 않겠지만, 백 회 즈음 된다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점프를 낭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일 옌 같은 존재의 추적을 예상하고 어느 정글이나 인적이 드문 외딴 곳에 처박혀서 일정 기간동안 은둔을 한다면 찾을 도리야 전혀 없었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옌은 신나게 굴려졌다.


점퍼 조직 내, 외에도 어떤 나라에서는 점퍼를 보유하고 있었다. 점퍼, 가 인간인 이상 보유한다는 것이 어색한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남다른 능력의 자원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점퍼는 자연발생적이었고, 점퍼 조직은 애초에 점퍼들 중 일부가 모여서 만들어낸 곳이지 절대적인 단체는 아니었다.


만일 어떤 점퍼가 나타나고, 그가 목적이나 사상이 없이 범죄 조직에 닿아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며 불의한 이득을 취하는데 심취할 수 있는 것처럼, 때로 어떤 인물의 경우에는 정부쪽 인물과 연이 닿아서 비교적 건전하고 양지의 일에 자신의 능력을 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드물게 그런 경우가 있었다. 2개 국가에 한명 씩 두 명 정도.


캐나다와 벨기에였다.


둘 모두 세계 정세에 리더로서의 위치를 지니고 활약하는 나라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합력 속에서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얼마든지 능력을 내보일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벨기에는 대개 유럽 쪽의 사건에 자국의 점퍼를 이용해서 지원을 주고 정치적 이익을 얻고 있었고, 캐나다는 미국이나 호주 등 비슷한 위치에 있는 서방 국가의 영향력 아래에서 점퍼를 유용했다.


각 국의 점퍼들은 정부의 소속으로, 희소한 자원에 대체가 불가능한 능력이라는 점에 있어서 꽤나 극진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점퍼 조직 또한 파악하고 있는 대상들이었고, 그들의 JE보유량은 평균치에 근접하며 점퍼 조직 내의 인원들에 비해서는 역량이 부족한 능력자들이었다.


캐나다인의 이름은 ‘존 케이지’였다. 벨기에 인의 이름은 ‘에바 캐롤’이었고.


옌은 그런 서방 세력을 일구는 선진국 연합의 의지에 따라, 조직 외의 점퍼들의 지원까지 받으면서 하루에 수십 번 이상의 점프를 기본적으로 반복했다.


도약 횟수는 결국 JE의 총량에 따른 것이었다. 하루에 점퍼가 임무 등에 사용하는 점프 횟수들이 있었고, 잉여 횟수들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다소 아끼고 절약해서 잉여분을 만들어낸다면, 약 20여 명의 점퍼 인원들이 십시일반해서 상당량을 모을 수 있었다.


게다가 수색 임무에 차출된 점퍼를 한 두 명정도 할애해서 옌과 함께 하게 된다면 수십 번이 아니라 백 번, 이백 번 이상의 점프 역시 가능했다.


그리고 존과 에바가 더해진다면 그 정도 수의 점프가 거기에 그대로 합쳐졌고.


점프를 하는데 딱히 소모되는 체내의 에너지는 없었다. 칼로리가 낭비되는 일도 아니었고(가끔 다이어트가 필요한 부류는 안타까워하지만), 정신 에너지가 관련하여 소모된다고 해도 가시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집중을 많이 해서 뻐근하고, 피로한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 JE를 다루려 집중을 하느라 공부를 빠듯하게 했을 때와 같은 피로감이 일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기본적으로 옌은 스스로 점프를 하는 것보다 타인에 의한 단체 도약을 더욱 많이 경험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정신적인 피로감을 누릴 건덕지도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수 백번 정도 계속해서 풍경이 바뀌며 점프를 경험하는 일은 약간의 어지러움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냥 시야가 빠르게 변하는 것에 따라 일반적인 멀미였을 지도 모른다. JE의 작용과는 관계 없는.


눈을 감아도 딱히 레이더로서의 옌의 능력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십 회가 지났을 즈음에는 옌은 그냥 눈을 뜨지도 않은 채, 기계적으로 수색을 반복하며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들을 돌았다.


수색을 위해 이동하는 것이라 잠깐의 텀도 없었고 경치를 구경할 겨를도 없었다. 이런 집요한 수색에 한 명이라도 걸리면 좋으련만.


세계에 있는 약 백 명을 넘는 점퍼들이 하루에 백 회 이상의 점프를 평균적으로 사용한다면 하루에 만 회 정도의 도약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날 텐데. 개중에서 옌은 쉽사리, 해당하는 테러리스트의 기척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



점프를 사용한다고 해도 여행은 피로한 일이었다.


옌은 10월의 몇 주간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녀가 가진 능력이, 점퍼들 중 유일하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10월 15일. 토요일. 그녀는 딱히 운동을 한 건 아니었지만 녹초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기지 안에 머물렀다. 개인실에서 보통은 샤워를 하고서 나돌아다니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일단은 휴게실로 가서 음료수를 한 병 땄다.


마치 술을 따듯한 흐름이었지만 그녀는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리 건강하지 못한 몸에 무리를 주는 일이기도 했고.


애초에 휴게실에는 주류가 없다. 늘 비치되어 있는 음료수들이 있을 뿐이지.


한국어는 간단한 단어들은 읽을 수 있었지만 뜻을 다 알지는 못했다. 듣고 말하기는 얼추, 조직 내에서 다양한 이들과 교류하고 또 많은 한국인들과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느는 것 같았다.


조직 내에서 이런 저런 임무들을 맡고 책임을 지다 보니 자연스레 기지 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송일우는 아직 기지 밖, 한국에 있는 집에서 대기를 하다가 일을 하기 위해 종종 들르는 모양이었지만 그는 얼마 전부터 개인실을 배정받아 지내고 있었다.


기지 내부는 고층 빌딩을 몇 층씩 나누어서 넓게 분포시킨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지하에 만들어진 건물이었고, 대충 짐작을 하더라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었을 것 같은 생김새다.


실제로, 핵이 터지거나 하는 상황에서도 방공호로서의 기능을 어느정도 하는 건물이었다.


점퍼 조직과 교류하는 선진국들의 비상 상황의 메뉴얼에는 조직의 점퍼들을 이용해 각국의 수뇌부가 빠르게 이 곳 점퍼 기지에 모여서 타개책을 논의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었다.


실제로 시간이 급할 때는 가장 쓸만한, 그리고 가능성 높은 도피 방법이기도 했다. 공간이동을 이용하는 게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개인실에 들르지 않고 먼저 휴게실에서 이름도 뜻도 모르는 음료수 하나를 까서 홀짝였다. 바 형식의 투명한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서 피로를 풀고 있을 때 휴게실에 다른 이가 찾아왔다.


휴게실은 각 층이나 동마다 있는 것으로, 같은 곳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굳이 점퍼들만 사용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있는 동은 점퍼들의 개인실이 몰려 있었고, 기지 내의 휴게실을 이용하는 점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휴식을 취하지 밀폐된 기지 내에서의 시간을 달가워하는 이들은 적었다.


홍인수는 그런 조직 내의 휴게실의 단골이었다. 갖은 궂은 일을 바깥에서 하다가 기지 내에 돌아오면, 어딘지 모르게 집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고 말이다.


휴게실의 바 테이블이 붙어 있는 벽면은 그저 흰 색이었다. 조직의 기지가 다양한 첨단 기기들이나 기술력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라는 설명대로, 가끔 보다보면 영문 모를 최첨단 기술들이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고는 했다.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휴게실의 벽면에도 들어 있는 기능이 있었다. 벽면 전체가 거대한 터치 패널이었고,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일정한 인터페이스대로 입력을 마치면 마치 야외의 풍경을 보는 듯한 고화질의 열상이나 그림을 선사했다.


옌은 얼마 전에 휴게실에 있다가 우연히 기능을 발견했다. 달고, 적당히 미치근한 페트 병의 음료를 마시면서 동남아의 해변과 비슷한 그림을 구경하던 그녀는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놓쳤다.


“여.”


심술궂은 장난처럼도 들리는 말투로 사내가 말을 걸었다. 어깨를 움찔 떨며 뒤를 바라본 옌의 눈에 보인 것은 홍인수였다.


옌은 둘 사이에 가장 원활하게 소통 가능한 언어인 영어로 입을 열었다.


“어··· 네.”


사실 영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의 대답이었지만.


홍인수는 그런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한국어로 다시 말을 걸었다.


“다른 점퍼들이랑 편하게 일하려면 한국어 정도는 익히는 게 좋을 겁니다. 다들 본국어나 영어, 한국어 정도를 능숙하게 하고 있기도 하고요. ‘재머’ 빼고는.”


듣기는 그래도 가장 능숙한 부분이었기에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오해는 없었다. 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인수는 그런 그녀를 보더니 마찬가지로 어딘가 지친 표정을 짓고는 근처의 자리에 앉았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항상 집어 드는 매실 음료를 쥐고 마신다.


둘은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

sebastien-gabriel--IMlv9Jlb24-unsplash.jpg


작가의말

딱히 봐주는 이는 없지만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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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4. 22.10.22 58 2 17쪽
37 33. 22.10.21 62 2 16쪽
36 32. 22.10.21 64 2 22쪽
35 31. 22.10.20 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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