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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연재소설

죽어 마땅한 인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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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8.16 12:20
최근연재일 :
2023.08.16 13:58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965
추천수 :
3
글자수 :
152,143

작성
23.08.16 13:31
조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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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16. 술 장식장

DUMMY

현수가 주방에서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탄산수를 챙겨서 안방으로 향했다.


딸깍

안방 전등 스위치를 켠다. 전체적으로 누리끼리하고 꽃무늬가 그려진 벽지가 발린 촌스러운 방에 창호와 방문만 새것으로 교체해서 이질감이 든다.

교체 후에도 주변을 마감을 안 해서 뜯어낸 가벽 사이로 시멘트벽이 고스란히 보인다.


현수가 챙겨온 컵을 침대 옆에 두고, 술 장식장 앞에 선다.

담금주부터 온갖 위스키가 가득한 안방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술 장식장.

아버지가 살아생전 애지중지 모은 컬렉션이다.

현수의 손가락이 로열 살루트. 발렌타인, 조니워커 등 수많은 위스키를 지나가다가 정중앙에 떡하니 있는 맥캘란 18년에서 손을 멈칫한다.

하지만 정작 집어 드는 건 평소 마시던 제임슨 위스키.

아버지가 남대문 시장까지 가서 박스로 사서 마시던 제임슨 위스키는 현수가 즐겨 마시는 위스키가 되었다. 아버지가 생전 좋아했다는 이유로 현수도 좋아하게 됐다.


침대에 기대앉아 TV를 켠다.

TV에서는 정권 교체 후 청와대를 비우고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합동참모본부의 연쇄 이동으로 당초보다 많은 예산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얼음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하이볼을 한 모금 마신다.


“개새끼들...”


현수의 입에서 나지막이 욕설이 나온다. 누구를 욕하는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TV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볼륨을 낮춘다. 현수는 높게 쌓인 베개에 편히 기댄 채 술을 홀짝이며 아버지의 장식장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꽤 애주가였다.

특히 중학교 3학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술이 급격히 늘었는데, 한잔 두잔 마시던 게 버릇이 되어 매일, 하루에 한병씩 소주를 마시고는 했다.

매일 밤이면 삶에 의욕을 잃은 듯 술만 마시는 아버지를 보게 되니 술이 싫었다.


고2 무렵부터 아버지는 소주 대신, 위스키로 술을 바꿨다.

아버지랑 절친한 친구분이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앞으로는 건강을 생각해 위스키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하셨다.

마시는 양이 줄어들고 나니, 모으는 양이 늘었다.

주방 한켠에 양주 장식장이 생긴 게 그쯤이었다.


“현수야! 아빠가 오늘 뭐 사 가지고 왔는지 알아?! 바로 맥캘란 18년. 2009년 꺼! 우리 아들 생일 빈티지다! 이거 사려고 아빠가 18년을 기다렸어! 아주 큰맘 먹고 샀다고!

2병이니깐, 한병은 아들 20살에 아빠랑 같이 마시고, 나머지는 너 환갑 때 마셔라. 이거 두 병이 거의 100만 원이야. 하하하!”


소주에서 위스키로 바꾸기 전까지는 위스키 마시는 거 본 적도 없는데, 무슨 18년을 기다렸다고 하는지.


아버지는 다양한 이유로 술을 수집했다.

안 먹어 본 술이라고 사 오고. 새로 나온 술이라고 사 오고.

우리나라 정식으로 안 들어오는 술이라고 사 오고.

올드바틀이라 귀한 술이니 사 오고.

아들 생일 빈티지라고 사 오고.

엄마가 돌아가신 해 빈티지라고 사 오고.

온갖 술에 온갖 이유가 붙어 장식장을 채웠다.


지나고 보니 수집을 하는 이유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3. 입시 준비 한창이던 때, 갑자기 집안이 크게 변모했다.

아버지는 거실한 쪽 벽을 가득 채우는 술 장식장을 설치했다.

하루종일 애지중지하는 술병들을 하나하나 닦으며 다시 장식장에 넣는 모습이라니.

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안 취한 모습이었다.

장식장이 커지니 몸에 좋다는 것들을 구해서 주기적으로 담금주를 담갔다.


“현수야 봐라. 아빠가 산삼 구해 왔다! 18년 근 산삼이야! 마침 다음 주면 우리 아들 20살이 되니까. 20살 기념 주가 되는 거지! 아들 30살 생일에 먹자고.”


“캬 현수야 이거 봐라. 뱀술이다. 김씨한테 선물 받았어! 이거 완전 약주야 약주! 아들 성인 되면 아빠랑 한잔하자”


“아들! 오늘 아빠가 뭐 구했는지 알아!? 뒷산에서 산 더덕을 구했어! 20년은 족히 묵은 놈 같아. 한 10년만 기다려라. 아주 약이 되는 더덕주를 먹게 해줄 테니! ”


그렇게 현수가 원하던 대학, 학과에 붙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성인이 되는 그 순간만을 고대했는지, 모둠회와 대하구이, 삼겹살을 사다가 현수의 대입을 축하하며 술을 가르쳐 줬다.


‘으엑, 맛없어. 이런 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처음 술을 거하게 들이킨 아들은 결국 취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게워 내느라 바빴다.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조만간 술맛을 알게 될 때가 올 거라고 자주 마시자고 했지만, 정작 현수는 재미도 없고 맛도 없는 아버지와의 술자리가 싫었다.

아버지가 술 마시자고 할 때마다 온갖 이유를 대며 술 한잔을 안 마신다.

약속이 있어서, 군 생활 중이라서, 토익 공부해야 해서, 연애하느라. 졸업 전시 준비하느라. 석사 졸업하느라.

취직한 다음에는 타지에서 회사 생활하느라.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음주운전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야, 집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술들이 보인다.

아들과 함께 마시겠다고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모으기만 하고, 정작 급히 가느라 마시지도 못한 아버지의 술 컬렉션.


“현수야. 아빠한테 최고의 술안주가 뭔지 알아? 저 컬렉션. 껄껄”


언젠가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던 아버지께 ‘속 버린다고, 뭐라고 같이 드세요’라고 하자 나왔던 아버지의 컬렉션 자랑.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게 아버지의 사랑이었다는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아버지의 목숨을 대가로 받은 4억을 가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날릴 수는 없었다.


“그래... 그게 최선이었어.”


잠꼬대인지, 혼잣말인지.

창밖의 밤은 더 깊어졌다.

TV는 계속 켜진 채.



* * * * *


추석 당일 이른 아침.

강현수가 차례상 위에 올릴 술과 음식, 일회용 그릇. 아버지가 생전 좋아하시던 위스키를 챙긴다.

현수가 짐을 들고 익숙하게 뒷산을 오른다.

며칠 전 일이 있기도 했고, 납품 때문에 바쁘기도 해서 한동안 산 쪽으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추석. 당연히 가족묘에 가야 한다.


[신천강씨 가족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신 가족묘다.

현수네는 본래 북에 살던 조부모님이 6·25 때 피난하면서 인천에 정착했다.

친가 쪽은 북쪽에 있어서 왕래하는 친척이 전무했다. 아버지는 외동아들.

전쟁통에 크게 고생해서 조부모님이 아버지를 힘들게 얻었다고 들었다. 먼 친척이야 있겠지만 차례에 찾아올 사람들은 없다.


외갓집은... 개판이다. 현수가 커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큰 외삼촌이 찾아와서 원래 유산은 장남의 것이고, 외가 쪽 형제가 몇인데 죽은 사람 몫까지 나누냐며 현수가 받을 어머니 몫의 유산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그때 크게 의가 상한 현수의 아버지는 외가와 왕래를 끊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외가 친척들은 어머니 묘에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들었다.


음식을 꺼내 세팅을 하고, 향을 피운다. 잔에 술을 따르고 절을 한다.

분명히 얼마 전에 벌초한 거 같은데, 태풍이 지나가면서 한바탕 비가 오고 나니 주변에 잡풀이 무성하다. 잔디 사이로 나온 잡초들을 뽑아서 정리한다.

가족묘 근처에 멍하니 앉았다.

혹시 가족들이 왔다면 식사는 하고 가셔야 하니까 적당히 기다린다.

다시 절을 두 번 하고 차려 놓은 음식을 아침을 겸해 먹었다.

상에 올렸던 위스키를 합동 묘 위에 뿌렸다.


묫자리 주변을 정리하고 주변을 훑는다.

혹시 손볼 곳은 없는지, 두고 가는 건 없는지. 그러다가 저 멀리 풀 없는 맨땅이 보인다.

현수가 천천히 다가가는데 가까이 갈수록 확실하다.


“아 씨발! 미친 새끼.”


육성으로 욕이 절로 터져 나온다.

그때는 어둡기도 하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신경을 못 썼더니만.

가람과 성일이 시체를 매장한 곳이 어딘지 이제야 알았다.

가족묘 위쪽,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 자리다.

가족묘에 조부모님 성함만 세겨져 있을 뿐 두 분은 여전히 여기에 잠들어 계신다.


원래부터 묫자리라 주변에 옹벽도 처 있고, 오래돼서 많이 주저앉기는 했어도 누가 봐도 튀어나와 있는데. 게다가 바닥에 엄연히 비석도 있는데. 하필 여기에다가.

그것도 두 분 사이에?


“하아... ”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랬다고, 시체를 숨긴다고 남의 조부모님 묫자리에 숨기다니.

이 새끼가 제정신인가? 똑똑한 거야 멍청한 거야. 양심도 없는 새끼.

열이 확 올라서 바로 가람에게 전화를 건다.

너무 이른 시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전화해서 한소리 해야겠다.


‘뚜 뚜 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세번이나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잠깐 바람을 맞으면서 머리를 식힌다. 열 받았던 감정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생각해 보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가람이가 조부모님이 어디 모셔져 있는지 알고 있던 것도 아니고, 조부모님의 묘는 오래돼서 봉분도 거의 평평해지다시피 했다.

어두운 밤에 급하게 매장하기에는 딱 좋은 자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근처에서 가장 평평한 땅이니까.


게다가 명절 아침 일찍 전화해서 기껏 잘 숨겨 둔 걸(?) 당장 옮기라는 것도 가람의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자기도 명절이라 가족과 있을 거고, 일정이 있을 텐데.

더군다나 당장 옮길 곳도 없다.


하지만. 조부모님과 같이 둘 수는 없다. 절대로 안 될 말이다.

옮기기는 하되 가람과 성일의 일정에 맞춰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혼자서라도 옮기고 싶지만, 엄연히 이 사건과 무관한 자신이 할 일은 아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차라리 잘됐어. 어디 우리 집 선산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묻으려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국가 소유의 땅에 옮겨 묻으라 그래야지.

끙... 이쪽 지리 몰라서 사람들 오고 가는 등산로에다가 옮기는 거 아냐?

하... 그건 안되지. 차라리 내가 좋은 자리를 찾아 두는 게 좋겠네...’


사람들 눈과 손길이 안 닿을 만한 곳으로 자리를 찾아주는 게 좋을 거 같다.

현수는 뒷산에서 근처에 밤이나, 산나물 같은 게 없어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게다가 적당히 나무 사이의 공간이 넓어서 뿌리의 방해 없이 땅을 팔만한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최대한 사각지대이자, 현수네 땅이 아닌 곳으로.

그리고 돌아다니기를 수십여 분. 현수는 딱 적절한 위치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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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7. 대치 23.08.16 19 0 11쪽
28 26. 굴레 23.08.16 17 0 9쪽
27 25. 다솜분식 23.08.16 17 0 10쪽
26 24. 합의 23.08.16 23 0 9쪽
25 23. 장막 23.08.16 17 0 13쪽
24 22. 교살 23.08.16 19 0 11쪽
23 21. 우리종합건설 23.08.16 20 0 10쪽
22 20. 설득 23.08.16 17 0 13쪽
21 19. 춘천 데이트 23.08.16 21 0 10쪽
20 18. 일상 23.08.16 21 0 10쪽
19 17. 그린벨트 23.08.16 22 0 14쪽
» 16. 술 장식장 23.08.16 24 1 11쪽
17 15. 선 긋기 23.08.16 21 0 10쪽
16 14. 뒷처리 23.08.16 26 0 11쪽
15 13. 대리운전 23.08.16 25 0 10쪽
14 12. 루나코인 23.08.16 23 0 10쪽
13 11. 공사대금횡령 23.08.16 23 0 11쪽
12 10. 이민가방의 정체 23.08.16 30 0 9쪽
11 09. 검은색 이민가방 23.08.16 27 0 11쪽
10 08. 압수수색 23.08.16 28 0 8쪽
9 07. 국립과학수사연구소 23.08.16 31 0 10쪽
8 06. 롤렉스의 주인 23.08.16 30 0 11쪽
7 05. 목매단 시체 23.08.16 34 0 11쪽
6 04. 더원종합건설 23.08.16 33 0 11쪽
5 03. 단서 발견 23.08.16 40 0 11쪽
4 02. 실종자 명단 23.08.16 47 0 12쪽
3 01. 신원미상의 시체 23.08.16 7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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